제112화
아침이 밝았다.
딱딱한 마룻바닥 위에서 잤지만, 수년에 걸친 야영 생활로 맨바닥에서 자는 게 익숙해진 석찬이었기에 딱히 큰 불편함은 없었다.
이브와 진현도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일으켰고, 프레드릭이 챙겨준 아침밥을 먹었다.
“따라오게나.”
아침을 먹은 후, 프레드릭은 약속대로 세 사람을 지하 작업실로 데려갔다.
“미리 말하겠는데, 놀라지 말게나.”
지하로 내려가는 와중에도, 프레드릭은 기대하라는 말을 반복했다.
“정말 기대해도 좋다네.”
“정말 자신 있으시나 보네요? 영감님.”
진현의 물음에 프레드릭이 자신있게 답했다.
“내 역작이라고 자신할 수 있네.”
“오오…!”
탑에서 손꼽히는 명장이라는 프레드릭의 역작이라니. 벌써부터 기대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끼이익-
기대감에 한껏 부푼 석찬 일행과 함께 작업실에 도착한 프레드릭이 강하게 문을 밀어제꼈다.
그러자 정면에 환하게 빛나고 있는 새 장비들이 보였다.
“우와아….”
이브가 보자마자 작게 감탄을 내질렀다.
“오….”
석찬과 진현도 드물게 멋지다는 생각을 하였다.
“가서 마음껏 보게나. 이제 자네들 것이니.”
석찬 일행은 천천히 장비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 물건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석찬의 방어구는 이전처럼 총 다섯 개가 한 세트로 이루어져 있었다.
먼저 갑옷.
우선 디자인부터 마음에 들었다. 평소 디자인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물건을 고르는 석찬이지만, 잿빛 바탕에 녹색빛 포인트를 준 것이 부자연스럽지 않고 잘 어우려졌다.
다른 부위들도 비슷했다.
장갑, 하의, 신발, 그리고 마지막으로 갑주.
서리 거인 방어구 세트를 애용할 때는 세트 효과를 보기 위해 투구를 사용했던 석찬이었다. 하지만 투구는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있어, 프레드릭에게 투구 대신 다른 부위로 바꿔줄 수 있냐고 물어봤고, 그는 훌륭하게 새로운 장비를 만들어냈다.
어깨, 팔, 허리, 정강이 등 여러 부분에 결합할 수 있는 갑주가 석찬의 마지막 방어구가 되었다.
[오, 좋아. 이쁘네.]
라우르 또한 전체적인 장비의 디자인을 마음에 들어 했다.
“정보 확인해봐도 되나요?”
“물론이지.”
[보자, 빨리.]
라우르의 재촉과 프레드릭의 허락에 석찬은 당장 장비 정보창을 켰고.
[강석찬의 갑옷]
[등급 : 레전더리]
[방어력 + 5,000]
[내구도 : 10,000/10,000]
[체력, 내구 + 100]
[모든 물리, 마법 피해를 40% 경감시킵니다.]
[1%의 확률로 적의 공격을 99% 경감시킵니다.]
[상태 이상 저항 확률이 30% 증가합니다.]
[제작자 : 프레드릭 레나토]
[강석찬의 장갑]
[등급 : 레전더리]
[방어력 + 2,000]
[내구도 : 3000/3000]
[힘, 내구 + 50]
[모든 물리, 마법 피해를 10% 경감시킵니다.]
[피격 시 작은 폭발을 일으킵니다.]
[장갑을 낄 시, 무게를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제작자 : 프레드릭 레나토]
[강석찬의 바지]
[등급 : 레전더리]
[방어력 + 3000]
[내구도 : 7000/7000]
[체력 + 50]
[10%의 확률로 적의 공격을 회피합니다.]
[열, 냉기 내성이 20% 증가합니다.]
[급소의 타격 피해가 면역됩니다.]
[제작자 : 프레드릭 레나토]
[강석찬의 신발]
[등급 : 레전더리]
[방어력 + 2500]
[내구도 : 4000/4000]
[민첩 + 50]
[이동 속도 + 30%]
[15%의 확률로 적의 공격을 회피합니다.]
[점프력이 50% 상승합니다.]
[제작자 : 프레드릭 레나토]
[강석찬의 갑주]
[등급 : 레전더리]
[방어력 + 1000 + ?]
[내구도 : 3000/3000]
[내구, 체력 + 50]
[발사체가 갑주에 피격할 시, 피해가 50% 감소합니다.]
[갑주의 최종 방어력이 갑주가 결합된 장비에 따라 결정됩니다.]
[제작자 : 프레드릭 레나토]
“와우.”
[이야….]
압도적이다 못해 천장을 뚫을 법한 미친 성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뭐시여. 90층까지 써도 손색없을 것 같은데?]
‘그 정도예요?’
[그래, 정 못 믿겠으면 알렉산더인가 걔한테 물어봐.]
사실이든 아니든, 엄청난 것은 분명했다.
“저… 어르신?”
“왜 그런가, 맘에 안 드나?”
“아니요. 마음에 듭니다. 마음에 들다못해 행복해 죽을 것 같습니다.”
“허허, 오랜만에 써보는 고급 재료라 걱정했는데, 다행이야.”
진현과 이브도 다를 건 없었다. 장비의 성능을 확인하던 두 사람은 이내 넋이 나간 표정으로 프레드릭에게 다가와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프레드릭은 만족스러워하는 세 사람의 모습에 기뻐했다.
“자, 그럼 한번 입어들 보게나. 원래 이런 건 바로 입어봐야 하는 것이네.”
“그러죠.”
잠시 후, 새로운 장비로 무장한 석찬 일행이 다시금 한자리에 모였다.
“워우.”
서로의 모습을 보며, 세 사람은 감탄을 쏟아냈다.
“올, 간지나는데?”
잿빛 갑옷 군데군데 은색 갑주로 포인트를 준 석찬의 모습은 마치 여러 전설 속에서 나오는 용사 같았다.
진현 또한 검은빛이 도는 갑옷과 건틀릿으로 무장하여 자신의 멋짐을 뽐냈다.
이브는 머리색과 같이 은빛이 도는 로브를 입고, 한 손에는 거대한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둘 다 멋있는데?”
“고마워요.”
“땡큐.”
“멋지구먼. 세 사람 다.”
기뻐하는 세 사람을 보며 만족한 프레드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어르신.”
“내가 더 고맙지. 오랜만에 그런 멋진 것들을 만들 수 있게 해줬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거 받으시죠.”
석찬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묵직한 돈주머니를 여러 개 꺼냈다.
“이건?”
백만 골드입니다.
“어허, 집어넣게나. 애초에 이백만 골드를 줬었지 않나? 그걸로 충분하네.”
“아뇨. 이건 감사해서 드리는 겁니다. 꼭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브와 진현도 각각 백만 골드를 프레드릭에게 건넸다. 프레드릭은 세 사람의 돈을 거절하려고 했지만, 셋은 억지로 돈을 넘겨준 뒤 작업실을 빠져나왔다.
“수리할 일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게나! 새로운 장비 생각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 자네들은 앞으로 쭉 공짜야!”
“감사합니다!”
프레드릭의 배웅과 함께 그의 집을 나선 석찬 일행은 몬스터 사체를 처분한 뒤 본래 머물던 여관으로 돌아갔다.
“진짜 쩐다… 이 느낌, 이 감촉!”
“너무 예쁘게 잘 만드신다….”
프레드릭의 장비가 얼마나 뛰어난지 이브와 진현은 여관으로 가는 길에서도 장비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렇게 여관으로 도착해 식사 거리를 미리 주문해 놓은 뒤, 석찬 일행은 저녁에 보자 약속하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풀썩-
오랜만에 방으로 돌아온 석찬은 침대에 몸을 던졌다.
푹식한 메트리스 위에 엎드려 있으니 잠이 몰려왔다. 하지만 지금 잘 수는 없었다.
‘키메라, 키메라라.’
전날 밤 프레드릭에게서 들었던 내용 때문이었다.
키메라와 아예 연관이 없었다면 모를까, 키메라와 한 번 대적해본 경험이 있는 석찬에게 이건 분명 그냥 넘어갈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먼저 찾아가볼까?’
이대로 녀석들이 활개치게 내버려두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심할 경우에는 인간을 납치할 수도 있는 일.
‘가볍게 한번.’
마을 전체로 마력을 흩뿌리자, 이곳저곳에서 이질적인 마력이 감지되었다.
‘저게 다 키메란가….’
생각보다 많아서 조금 당황했을 정도다.
‘대충 50마리 정도인가….’
키메라의 숫자와 위치를 확인한 석찬은 갑옷을 챙겨 입고 방을 나섰다.
[잡아 족치게?]
‘예. 잠도 깰 겸.’
[이왕 이렇게 된 거, 크게 한바탕 해보는 건 어떠냐?]
‘예?’
조용히 녀석들을 처리하려고 했던 석찬은 고개를 기우뚱했다.
[지금 마을 상황은 키메라로 인해 밤에 잘 나가지 않을 정도로 공포에 가득 찬 상태다.]
‘그쵸.’
[만약 이런 상황에서 너가 키메라를 가뿐하게 잡아 족친다면? 사람들이 더 안심할 수 있겠지?]
‘라우르가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 썼다고.’
[조용히 해봐, 임마. 그렇게 해서 네 녀석 팬을 늘리는 거지.]
그 말에 석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거기서 더 늘어난다고?’
팬이 많은 건 좋은 일이다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렇게 반가운 말이 아니었다.
‘왜 갑자기 팬을 늘리려는 건데요? 예전에는 그런 거 신경 안 썼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생각해봐라. 언젠가는 너도 밝혀야 할 때가 올 거야.]
‘뭐를… 아.’
자신을 가리키는 라우르의 모습에 석찬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쪽 어깨에 새겨진 라우르의 화신임을 나타내는 증표. 자의로든 타의로든, 언젠가는 자신의 비밀이 탑 전체에 밝혀질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날을 위해 최대한 너의 팬을 늘려놓는 거지. 밝혀지고 나서 말해주는 거다. 내 억울함을, 천계의 쓰레기 새끼들이 벌였던 짓을!]
비장한 라우르의 외침에 석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기 위해선 내 세 번째 영혼 조각을 얻어야지. 자, 빨리 탑을 올라라!]
‘아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키메라들이랑 깽판 한번 벌이라면서요?’
[맞다. 둘 중에 아무거나 빨리 해!]
참으로 변덕이 심한 신이었다. 내 주신이란 작자는.
* * *
어두운 동굴 안. 입구부터 이어진 기다란 통로를 쭉 따라 들어가니 한 연구실이 나타났다.
연구실 안에는 한 붉은 머리의 여인이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시험관을 툭툭 두드리고 있었다.
“나 참, 왜 너희 같은 놈들은 항상 이렇게 칙칙한 곳에 연구실을 만드는 거야? 종특인가?”
“오셨으면 조용히 해주시죠. 엘리자베스 님.”
얼굴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큰 상처, 몸 이곳저곳에 나 있는 바늘 자국 등이 인상적인 남자는 그런 엘리자베스를 가볍게 무시하며 연구에 집중했다.
“너도 참 신기하단 말이야. 나 안 무서워?”
엘리자베스의 물음에 남자가 귀찮은 듯 머리를 쓸어내리며 답했다.
“연구에 집중 중입니다.”
“칫.”
말을 멈춘 엘리자베스는 잠시 남자가 진행하던 연구를 지켜봤다.
시험관 속에 잠들어 있는 한 쌍의 남녀. 그들에게 계속해서 어떠한 약물을 주입하고 있었다.
남녀는 고통스러운지 온몸을 떨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실패인가.”
약물이 조금 남은 주사기를 집어던진 남자는 종이에 무언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너도 참 징글징글하다. 몇십 년째 같은 연구하면 안 지겨워?”
“…….”
필기에 집중해 말이 없는 남자를 보며, 엘리자베스는 작게 속삭였다.
“맞다, 요즘 50층에 애들 보내던데?”
탁.
그녀의 말에 남자가 필기를 멈추고 그녀를 노려봤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나 지금 50층에 머물고 있거든.”
그 말에 남자가 놀라며 물었다.
“당신이? 왜? 오랜만에 찾아온 것도 그거 때문입니까?”
“응. 그보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너 이거 계속 하면 우리 주인님 눈에 찍힐 수도 있거든.”
“주인님? 설마 마….”
“아니, 다른 사람이야.”
“허…”.
믿을 수 없다는 남자의 표정에 엘리자베스가 웃으며 한 남자를 떠올렸다.
“응, 있어. 어리고 귀여운 주인님.”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