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키에에엑!”
캉!
“크윽!”
리자드맨이 휘두르는 창을 맞받아친 남자, 도리는 얕은 신음과 함께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자세를 고쳐 잡은 그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리자드맨을 바라보며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순전히 우연이었다.
‘어?’
재수 없게 마주친 리자드맨 전사를 피해 파티원들과 함께 돌 뒤에 숨었을 때, 미친 듯이 몬스터를 학살하고 있는 올킬러를 보았다.
리자드맨이란 리자드맨은 전부 학살하는 그를 보는 순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키에엑!’
자신들 다섯 명이 달라붙어도 어찌하지 못할 것만 같아 보였던 리자드맨 전사조차도.
‘키엑….’
올킬러와 은발의 천사 콤비에게는 쪽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엄청나다.’
말 그대로 엄청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
그 이후부터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키에엑.’
언제 나타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 리자드맨 무리가 올킬러를 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도리의 머릿속에 든 한 생각.
‘저 정도는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리자드맨 전사들에게서 도망쳤다고 해도 자신들은 전원 2급 사냥꾼이었다.
게다가 리자드맨의 숫자도 다섯인 자신들보다 하나 적었다.
‘충분히 가능하다.’
안 그래도 길드 내에서 실적도 없이 점점 떨어지는 평판이 걱정이었는데, 저놈들을 처치하면 그것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그렇게 파티원에게 신호를 한 뒤 리자드맨에게 달려들었건만.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됐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본인의 생각대로 리자드맨들은 공포에 떨어서인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승기를 잡아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적이 자신들보다 약하다는 것을 인지한 리자드맨은 서서히 힘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자신들의 파티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카강!
“커헉!”
강하게 들어온 찌르기 공격에 힘이 풀린 건지, 들고 있던 검이 손에서 벗어나 공중으로 날아갔다.
“키에엑!”
그것을 놓칠 리 없는 리자드맨은 빠른 속도로 도리를 향해 창을 꽂아 넣으려고 했다.
“크윽!”
도리도 마지막을 직감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그때.
캉!
창날이 살을 꿰뚫는 소리가 아닌, 철과 철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뭐지?’
의아함을 느끼며 살며시 눈을 뜨자,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등이 보였다.
“다, 당신은?”
건틀릿으로 창날을 막은 남자, 강석찬이 입을 열었다.
“일단, 이 녀석들부터 전부 처리하고 이야기하죠.”
“예, 예.”
“좋습니다.”
탁!
창날을 치운 석찬은 빠르게 리자드맨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직!
“케릭!”
쇳소리와 함께 맞은 복부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주저앉는 리자드맨.
그대로 쓰러진 녀석은 몸을 한두 번 부르르 떨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주, 죽었어?”
그렇다.
자신이 몇 분간 상대해도 꿈쩍도 안 하던 녀석을, 단 한 방에, 쓰러트린 것도 아니라 무려 죽인 것이다.
“동료분들도 위험하신 것 같은데, 도와드릴까요?”
“앗, 예,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석찬의 물음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도리는 빠른 속도로 리자드맨 셋을 학살하는 그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콱!
“키에엑!”
석찬의 양손에 각각 붙잡힌 리자드맨들이 발버둥을 쳐봤지만, 그저 발버둥일 뿐이었다.
“시끄럽다.”
쾅!
있는 힘껏 리자드맨의 얼굴을 서로 맞부딪치자, 섬뜩한 소리와 함께 녀석들의 몸이 축 처졌다.
툭.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는 동료들을 보며 마지막 남은 리자드맨이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키, 키에….”
“너에게 별다른 악감정은 없다만, 잘 가라.”
콰직.
마찬가지로 단 한 번의 주먹질에 움직임을 멈추는 리자드맨.
“…….”
너무나도 압도적인 그 광경에 도리와 그 파티원들은 할 말을 잊은 채 석찬을 바라보았다.
“괜찮으십니까?”
“예…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도리.
“괜찮습니다. 어찌 보면 제가 제대로 사냥을 못 해서 일어난 일인데요, 뭘.”
그 모습을 본 도리가 손사래를 쳤다.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다 저희가 약한 탓이죠. 올킬러 님께서는 아무런 잘못도 없으십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하네요.”
말을 하며 리자드맨의 사체를 바라보는 석찬.
‘어떡하지?’
아공간 주머니는 이미 꽉꽉 찬 상태.
그렇다고 어깨에 메고 가자니 네 마리는 그 부피가 상당히 컸다.
그때 도리가 몸을 살짝 움츠린 채 석찬에게 다가왔다.
“저, 혹시 사체를 담을 곳이 부족하시나요?”
“음, 네.”
“아, 그럼 잠시만요. 분명 여기….”
그의 대답에 도리의 표정이 살짝 밝아지며 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이건, 아공간 주머니?’
그렇다.
도리의 손에 있는 가죽 주머니는 조금 낡았긴 했지만 확실히 아공간 주머니였다.
“이걸 왜…?”
“이거에 사체 집어넣으셔서 가져가시죠.”
“예? 이거째로요?”
석찬의 되물음에 도리가 고개를 기웃거리며 반문했다.
“아공간 주머니가 꽉 차셨다면서요. 그래서 이거 쓰시라고…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그러니까….”
‘왜 굳이 아공간 주머니까지 주면서까지 사체를 넘기는 것인가?’
솔직히 적지 않게 놀랐다.
‘그래도 그냥 준다는데 뭐.’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의 말에 도리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경황이 없어서 통성명도 못 했네요. 저는 도리라고 합니다.”
“강석찬입니다.”
* * *
석찬과 도리가 화목하게 이야기하고 있던 와중, 이브는 부상을 입은 다섯 사람을 치료해주고 있었다.
“큐어.”
큐어(Cure).
힐과 더불어 가장 기초가 되는 초급 치유 마법이었지만, 초록 등급의 이브가 펼치는 만큼 그 위력은 초급 마법의 수준을 벗어나 있었다.
파아아-
“따뜻하다.”
“우와….”
순식간에 아무는 상처와 함께 온몸에서 돋아나는 활력.
같이 치료를 받던 힐러 파티원 또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정도 수준의 치유 마법이라니.’
어지간한 수준의 힐러는 그녀의 앞에 명함조차 못 내밀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이브가 펼친 마법의 수준은 굉장하다고 할 수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이브에게 치료를 받은 남자 둘은 저 멀리 서서 그녀를 흘끗흘끗 쳐다보았다.
“야, 봤냐? 겁나 예쁘다.”
“그러니까. 괜히 천사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야.”
그러던 와중, 한 여자 파티원이 무거운 표정으로 석찬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도리에게로 다가갔다.
“대장, 잠깐 나랑 얘기 좀 할 수 있어?”
“응…? 그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심각한 표정에 도리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순순히 그녀를 따라갔다.
“편하게 대화하시고 오세요.”
파티원과 대화하겠다는데 막을 수는 없는 일.
‘그냥 사체나 미리 담아놓자.’
그렇게 별생각 없이 사체를 담으려던 순간이었다.
우웅.
[흐음.]
건틀릿에서 빛이 나며 라우르의 음성이 들렸다.
‘이번엔 또 뭡니까?’
[쟤 뭔가 수상한데?]
‘누구요? 도리 씨요?’
[아니, 걔 말고 걔 데리고 간 여자애.]
‘그래요?’
확실히 표정이 굳어 있긴 했다.
[내가 저런 놈들 많이 봐와서 아는데, 백 프로 너한테는 안 좋은 걸 거다.]
진지한 라우르의 음성.
‘…한번 들어봐야 하나?’
[그러는 게 낫지 않겠냐?]
‘흐음.’
원래의 석찬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지만, 라우르의 말이나 대화 중인 두 사람의 표정으로 보니 꽤 심각한 것 같았다.
‘좋아. 한번….’
귀 안쪽에서부터 얕게 마력을 흘려보내자, 도리와 여자 파티원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야야, 뭐라 그러냐?]
‘조용히 해봐요, 지금 듣고 있잖아요.’
- 그러니까, 레일리 네 말은… 석찬 씨에게 리자드맨 사체를 주지 말라고?
‘그 여자의 이름이 레일리였나? 게다가.’
리자드맨 사체를 주지 말라?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석찬은 조금 더 자세히 둘의 대화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 누가 다 가지쟤? 내 말은 대충 한 마리 정도만 주고 나머지는 우리가 다 가지자는 거지.
[저놈 지금 뭐라는 거냐?]
레일리라는 여자의 말에 라우르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일단 계속 들어봅시다.’
석찬도 살짝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잠자코 듣기를 이어나갔다.
- 너 미쳤어? 우리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사체를 받아? 게다가 받아도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 염치가 없어도….
- 염치? 지금 우리가 염치 따질 때야? 생각해봐. 지금 길드 내에서 우리 처지가 어떤지. 이번마저도 실패한다면 3급 사냥꾼이 될 수도 있는 거 몰라?
-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우리 것도 아닌 걸 빼앗으려고 들어?
- 하, 대장은 너무 물러서 문제라니까. 가만히 보고 있어봐.
- 레, 레일리!
말을 멈추고 석찬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레일리.
[야, 야. 너한테 온다.]
‘아니까 조용히 있어 보라니까요, 좀.’
“저, 올킬러 님?”
입가에 환한 미소를 한껏 머금은 채 석찬의 앞에 나타난 레일리라는 여성.
‘일단 모르는 척해볼까?’
[뭘 떠봐? 그냥….]
‘하여간 도움이 안 되는군.’
[뭐, 인마?]
“예, 무슨 일이시죠?”
라우르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석찬은 싱긋 웃으며 레일리를 맞이했다.
“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무슨 부탁인가요?”
“올킬러 님이 잡으신 리자드맨의 사체들, 혹시 저희에게 넘겨주실 수 있으신가요?”
“네? 뭐라고요?”
“리자드맨 사체들, 넘겨주실 수 있으시냐고요.”
당찬 레일리의 대답에 석찬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가 할 부탁은 미리 알고 있었다만, 그가 놀란 점은 그게 아니었다.
‘이렇게 당당하다고?’
보통 이런 부탁을 해올 때는 숙이는 태도를 보이기 마련인데, 그녀에게서는 그런 점을 단 하나도 느낄 수 없었다.
[허, 저년 봐라.]
‘일단 계속 들어보죠,’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그야, 아무리 마무리를 올킬러 님이 지으셨다고 해도, 저희가 먼저 상대하고 있었고, 대미지도….”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라우르의 얼굴이 빠른 속도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저게 진짜 뒤질라고, 저딴 걸 이유라고 대?]
‘동의합니다.’
현재 레일리가 대고 있는 이유들은 전부 이도 저도 아닌 수준의 것들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만, 이 정도일 줄이야.’
레일리의 황당한 언변에 굳어지는 얼굴을 애써 펴며 석찬은 그녀의 말을 끝까지 경청했다.
“그래서, 이유는 그게 답니까?”
“네, 이 정도면 한 열 마리 정도 저희에게 주시는 걸로 합의를 보는 것이 어떨까요?”
[열 마리? 저런 사기꾼 새끼가. 야, 걍 주지….]
“열 마리는 너무 많은 것 같네요. 음… 일곱 마리 어떻습니까?”
이어지는 석찬의 말에 라우르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 너 미쳤냐? 설마 시체 주려는 건 아니지? 그리고 뭐? 일곱 마리?]
지금 석찬과 도리네 파티가 잡은 리자드맨은 총 20마리 남짓. 일곱 마리도 조금은 많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최대한 마찰 없이 끝내는 게 좋지 않습니까. 우리가 뭐,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 이런 곳에서 괜히 적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새꺄, 남자가 돼 가지고 자존심이 있지.]
‘자존심만 살짝 버리면 되는 일입니다.’
[아이고, 이거. 내 화신이 호구 새끼였네. 호구 새끼였어.]
‘호구가 아니라 최대한….’
석찬이 라우르가 대화를 하고 있는 와중.
레일리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뭐야? 정말 우리에게 저 사체들을 주는 거야?’
게다가 한 마리도 아니고 무려 일곱 마리씩이나 준단다.
‘완전 호구 새끼잖아, 저거?’
지금 그녀의 눈에 석찬은 호구 그 자체였다.
‘이거 잘하면 더 뜯어낼 수도 있는 거 아냐?’
그렇게 된다면 자신들의 실적도 오를 것이며, 입지도 어느 정도 회복될 것이었다.
‘좋아, 그러면 조금만 더….’
하지만 그때까지 그녀는 몰랐다.
‘협상을 해볼까나?’
지금 그녀가 하는 생각이 머지않은 미래에 그녀를 파멸로 몰고 갈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