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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잠재력 무한-34화 (34/200)

제34화

달빛이 유난히 아름다운 밤.

“커어….”

석찬은 세상 모르게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진현을 바라보며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을 되새겼다.

에브릭과 굴드의 구출 작전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후.

‘그래도 영주성에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순 없지!’

‘옳은 말이네, 에브릭.’

에브릭과 굴드가 챙긴 신선한 술과 고기, 그리고 석찬이 가지고 있던 리자드맨 사체까지.

많은 선물과 함께 영주성에 도착한 그들을 거하게 환영하는 차원에서 성대한 파티를 연 알렉산더.

그렇게 먹고 마시며 하하 호호 웃다가 지쳐서 방으로 들어온 것이 불과 10분 전.

‘피곤하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피로감 때문일까? 침대에 눕자마자 그대로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슬슬 자볼까?’

그때였다.

똑똑.

“누구세요?”

노크 소리에 문을 열자, 두 볼이 벌게진 알렉산더의 모습이 보였다.

“아, 알렉산더. 무슨 일이죠?”

뒷짐을 지고 있던 손에서 술병 하나를 꺼내 드는 알렉산더.

“나랑 같이 한잔하지 않겠나?”

“…그러죠.”

상당히 피곤한 상태기는 했지만, 알렉산더의 표정을 보니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기에, 석찬은 조용히 그를 따라 방을 나섰다.

저벅저벅.

한산한 복도를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니 문이 하나 나왔다.

“들어오게나.”

알렉산더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밤하늘이 훤히 보이는 알렉산더의 방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앉게.”

알렉산더의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앉자, 그가 준비되어 있던 잔에 술을 따라 건네주었다.

“받게.”

“감사합니다.”

한동안 말없이 술을 홀짝이던 두 사람.

먼저 입을 연 자는 석찬이었다.

“하실 말씀 있으시면 지금 하시죠.”

“…….”

알렉산더는 술잔에 반쯤 남아 있던 술을 전부 들이켠 뒤 입을 열었다.

“우선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해야겠군.”

“예?”

“1층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음에도 자객이 올 때까지 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게다가 사건 해결까지 자네가 해주었으니.”

“아닙니다. 다 제가 자진해서 한 건데요, 뭘.”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감사합니다, 하하.”

이후로 또다시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

‘겁나게 어색하네….’

그렇게 한 잔의 술을 더 마셨을 때였다.

“그리고 말인데.”

“예.”

“…아니네. 불러놓고 말하다 말다니, 원.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하실 말씀 없으시면, 이만 가 봐도 될까요?”

“그러게. 좋은 밤 보내게나.”

“알렉산더도 좋은 밤 되세요.”

조용히 알렉산더의 방문을 닫고 나온 석찬.

그때, 갑자기 라우르의 형상이 눈앞에 나타났다.

“우왁!”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목소리.

서둘러 입을 틀어막은 석찬은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예요, 갑자기?’

[뭐, 내가 나오고 싶어서 나오겠다는데.]

‘놀랐잖아요.’

[뭘 그 정도 가지고 놀라나? 허허, 그나저나 저 녀석. 날 감지한 거 같은데?]

‘예? 알렉산더가요?’

[그래.]

라우르를 알아채다니? 그게 무슨.

[마력이 없는 놈이라 무시하고 있었는데, 설마 날 감지할 줄이야.]

‘알렉산더.’

[어떻게 해야 하지? 저대로 두긴 조금 불안한데.]

라우르가 고민하던 그때였다.

벌컥.

방문이 덜컥 열리며 알렉산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까지 안 가고 뭐 하는….”

말을 하던 알렉산더의 시선이 공중에 떠 있는 라우르에게로 향했다.

“혹시나 했는데, 자네. 도대체 뭘 달고 온 겐가?”

[저 녀석, 날 볼 수도 있는 건가?]

라우르 또한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안 되겠다, 잠시 네 몸 좀 빌리자.]

‘예?’

그때였다.

띠링

[전 투신 라우르가 접신을 시도합니다.]

[거부할 수 없습니다.]

순간, 몸에서 의식이 뚝 떨어지는 느낌과 함께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이건?’

석찬, 정확히는 석찬의 몸에 들어온 라우르가 입을 열었다.

[어이, 꼬맹이 너. 여기 있을 놈이 아닌 거 같은데, 뭐냐?]

“자네, 석찬이 아니군. 옆에 붙어 있던 귀신인가?”

[귀신? 하, 이 몸을 감히 귀신 따위에 비교해?]

석찬의 몸에서 가공할 만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귀신이 아니면 뭔가? 네가 신이라도 된다는 것이냐?”

[알면 개기지 말지?]

“저렇게 입이 험한 신이라니, 거짓말이군.”

[…너 안 되겠다. 조금만 맞자.]

그 말에 석찬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에? 지금 싸운다고요?’

‘걱정 마, 저 녀석 신체 능력은 너보다 훨씬 뛰어나도 마력 없으면 너 못 이겨.’

‘그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라우르는 석찬의 말을 무시한 채 마력을 끌어올렸다.

“싸우려는 건가? 그럼 나도 봐주지 않는다.”

알렉산더에게서도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아니, 알렉산더, 당신은 또 왜 그걸 받아요!’

아무래도 술 때문에 상황 판단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일촉즉발의 상황.

먼저 주먹을 내민 건 알렉산더였다.

쾅!

그가 주먹을 뻗자 엄청난 풍압과 함께 그 너머에 있던 벽이 터져나갔다.

하지만 그걸 가만히 맞고 있을 라우르가 아니었다.

‘저 녀석, 힘이 발군인데?’

마력을 이용해 가볍게 공격을 회피한 라우르가 뒤로 빠지며 씩 웃었다.

[그럼 이제 내 차롄가?]

마력을 주먹에 축적하는 라우르.

[우선 가볍게….]

피슉.

엄청난 속도로 알렉산더의 뒤로 이동한 라우르.

[한 방.]

그가 엄청난 속도로 주먹을 휘둘렀다.

콰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자욱한 연기가 두 사람을 감쌌다.

“호오, 대단한데?”

라우르는 가볍게 자신의 주먹을 잡은 알렉산더를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알렉산더는 빨갛게 부은 손바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단하군, 그럼 나도….”

꽈드득-

그의 주먹에서 섬뜩한 마찰음이 들렸다.

피슉.

이내, 왼쪽 볼에서 언제 생겼는지 모를 상처에서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라우르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태연히 말을 이었다.

[흐음, 그 상태에서 더 속도를 올릴 수 있다라?]

“석찬이 녀석의 몸에 상처가 나게 할 순 없어서 힘 조절을 하고 있었다만, 지금 네 녀석 정도면 힘을 조금 더 낼 수 있을 것 같군.”

[호오? 그 말은 네가 전력을 내지 않고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당연한 거 아닌가?”

빠직.

그 말에 라우르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오호라, 그럼 네놈이 전력을 낼 수 있도록.]

엄청난 마력의 파동이 라우르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최선을 다해주마.]

“얼마든지.”

콰앙!

* * *

짹짹짹.

번쩍!

“크윽!”

새소리에 정신을 차린 석찬은 온몸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두 눈을 찌푸렸다.

1층에 있을 때 알렉산더와 싸우고 왔던 의무실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미라처럼 붕대로 감싸진 몸을 확인한 그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엄청났다.’

간밤에 일어났던 전투는 정말 엄청나단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일전에 싸웠을 때는 장난이었다는 듯, 그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엄청난 힘으로 석찬을 압박하는 알렉산더.

그리고 그 모든 공격을 피하며 그를 공격하는 라우르까지.

‘라우르가 그 정도였다니.’

그는 투신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만큼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마력 응용을 보여주며 압도적인 피지컬 차이를 극복했다.

그렇게 알렉산더에게 착실하게 대미지를 넣었다.

‘뭐, 그래도 알렉산더가 힘을 더 주자 지긴 했다만.’

역시 알렉산더는 알렉산더였다.

아무리 무한의 마력을 지니고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 석찬이더라도, 몸이 버틸 수 있는 마력의 한계치란 것이 있었다.

그걸 넘어서는 상대와 만나면 필히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난 우물 안 개구리였다.’

두 사람의 싸움을 직관하다 보니 저절로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만 같았다.

‘아니야,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어!’

석찬도 두 사람의 싸움을 그저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라우르의 마력 사용과 사용법을 두 눈 똑똑히 새기며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복기를 했으니 연습을 해봐야 하지만.’

지금의 몸 상태로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있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의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고개를 돌리자 몸 곳곳에 붕대를 감은 알렉산더와 이브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 치료 더 받아야 한다니까요?”

“에이, 괜찮다니까 그러… 오, 석찬이 자네! 깨어났는가?”

그의 말에 이브도 석찬을 바라보았다.

“오빠! 언제 일어났어요?”

“조금 전에.”

“뭐? 오빠?”

오빠라는 말에 알렉산더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이브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도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그게 하하.”

‘어떻게 말해야 하지?’

술 먹고 회까닥한 인간과 자존심 센 신 하나가 시비 붙어서 싸웠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한단 것인가.

게다가 알렉산더도 적당히 둘러대라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석찬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냥, 술 마시다 대련 이야기가 나와서 한다는 게… 그렇게 됐어.”

“정말요?”

“응.”

“맞다니까 그러네, 거참. 애비 말을 그렇게 못 믿어서야.”

“아버지가 제게 거짓말한 적이 한두 번이어야죠.”

“크흠.”

“어쨌든, 돌아온 지 하루도 안 돼서 싸우고, 다치고, 집도 부숴먹고, 둘 다 이게 뭐예요? 진짜.”

그렇게 수 분간 이어지는 잔소리.

“미안.”

“미안.”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손 이리 내봐요, 둘 다.”

석찬과 알렉산더의 손을 각각 붙잡은 이브.

그녀의 손에서 따스한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몇 분 후.

“휴, 일단 이 정도면 될 거 같고, 아버지도 여기서 좀 쉬고 계세요. 이번에는 좀 싸우지 말고요.”

“그, 그래.”

그렇게 작은 폭풍이 지나가고, 석찬이 누워 있는 침대 옆에 걸터앉은 알렉산더가 입을 열었다.

“크흠, 미안하게 됐어.”

“저도요.”

“그나저나 그… 귀신? 신? 그 녀석 뭐냐?”

‘어떻게 말해요?’

그 말에 잠자코 있던 라우르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걍 말해.]

‘그래도 괜찮아요?’

[어차피 들킨 거 계속 숨길 필요 없지.]

‘그럼, 말합니다?’

[말해.]

“신이요.”

“음, 그런가?”

“전혀 안 놀라시네요?”

“뭐, 그런 거 가지고 놀랄 거까지야.”

‘하긴, 알렉산더라면 알 수도 있었겠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근데 괜찮을까?’

석찬의 표정을 읽었는지 알렉산더가 씩 웃으며 말했다.

“참고로 어디 가서 말은 안 할 테니 걱정하지 말게나.”

보니까 이브나 다른 일행들은 석찬에게 붙은 신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것만 같았다.

‘아마 정체를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상황이겠지.’

“다행이네요. 그런데 어떻게 안 거예요? 저한테 신이 붙어 있는 걸.”

그의 물음에 알렉산더가 담담하게 답했다.

“내가 감각이 좀 남달라.”

실제로 한창 탑을 오르던 전성기 때도 자신의 감 덕분에 동료들을 위험에서 구출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걱정 마라. 나도 간신히 알아낸 거다. 다른 놈들은 아마 모를 거야.”

[맞아, 보통 놈들은 모르는 게 정상이다. 저놈이 이상한 거야.]

“그렇군요.”

하지만 만약에 만약을 대비해야 하는 법.

석찬은 조만간 라우르의 정체를 더 확실하게 감출 수 있는 법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잠시 쉬고 있을 때쯤, 갑자기 누군가가 의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는 알렉산더의 충실한 비서, 찰스였다.

“영주님!”

땀을 뻘뻘 흘리며 알렉산더에게 다가온 그가 초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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