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니 말대로 키라가 깽판 칠 때 막아줄 사람도 필요할 테니까, 내가 같이 있는 게 딱이겠어.”
하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냥 여행이 하고 싶은 눈치였다.
“너 그냥 여행이 하고 싶어서 그런 거지?”
그는 급히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난 호루스의 몸이 순간 움찔거리는 걸 놓치지 않았다.
‘아니긴. 맞구만! 에휴, 어쩌지?’
난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둘을 잠시 바라봤다.
분위기로 봤을 때 안 데려간다고 해도 억지로 따라올 기세다.
‘어쩔 수 없지. 안 데려간다고 해도 억지로라도 따라올 기세니 데려가는 수밖에…… 하지만 어차피 데려가야 된다면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돼!’
일단 키라에게 물었다.
“넌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가겠다는 거야?”
“그럼. 아무 깽판도 안 치고 따라갈게. 걱정하지마!”
“정말 아무 곳이나 다 가는 거지?”
“그렇다니까.”
“좋아. 그럼 몇 가지만 확실히 해준다면 같이 가는 걸로 할게.”
내 말에 키라가 무슨 말이라도 하라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돌아다니면서 얻게 되는 모든 소득은 내가 가질 거야. 어차피 너희한테 돈은 필요도 없잖아.”
“그거라면 문제 없지. 다른 건?”
“내가 뭘 하든 군말없이 도와야 돼. 그게 무슨 짓이건 말이야.”
“그것도 어렵지 않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는 게 유희의 목적이니까!”
난 호루스에게도 동의를 구했다.
그는 이미 내 생각을 읽어서 알고 있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나와 같이 가는 걸로 해. 대신 내가 한 말만 명심하면 돼. 알겠지?”
그들은 나와 함께 가게 된 것에 무척 기뻐했다.
이왕 같이 가게 된 거 제대로 굴려줄게. 그러다 보면 지겨워서라도 떨어지겠지.
계획은 별거 없다.
임시 전력이긴 하지만 저들이 함께 해준다면 세상에 다시 없을 막강한 전력이다.
그래서 신화급 던전에 보낼 생각이다.
현재 동료들을 보내놓기는 했지만 동료들이 보내온 메시지에 의하면 난이도가 극악이라 아직까지 첫 번째 보스한테도 도달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절대자인 저들 둘이 함께 한다면 세상에 못 깰 던전은 없을 것이다.
신화급 던전의 경우 클리어하면 보상 또한 어마어마할 것이기 때문에 전력 향상에 많은 보탬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도 계속 붙어 있다면 이번엔 유럽에 있는 최상급 던전을 동료들과 함께 돌게 할 생각이다.
유럽 던전 소유권을 받아 놓았지만 시간이 없어 사용을 못하고 있는데 이 기회에 사용해볼 생각이다.
상급 던전 이상은 클리어한 사람 중 한 명에게 귀속이 되기 때문에 나중에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다.
아직은 던전을 소유해도 이렇다 할 이득이 없다.
물론 초월 슈트 제작에 들어가는 광물을 캐서 팔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계속된 수익을 기대하긴 힘들다.
하지만 추후에는 세상이 안정화가 된다면 던전을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자원이 된다.
소설 속 미래에서는 그걸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훈련장으로 임대하기도 했다.
활용하고자 하면 큰 수익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사이 마인은 어딘가로 사라졌고 리치킹도 인사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우리도 더는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즉시 울산에 있는 신화급 던전인 ‘신들의 만찬’으로 향했다.
마침 아침이었기 때문에 동료들은 아직 던전에 들어가지 않고 진입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난 그들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고 키라와 호루스를 소개했다.
동료들은 처음 보는 절대자를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뿐이지 시간이 조금만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편하게 키라와 호루스를 대했다.
키라에게는 누나라고 했고 호루스와는 친구처럼 말을 놓고 편하게 대했다.
키라와 호루스 역시 제대로 유희를 즐기기로 했는지 그런 그들의 태도를 오히려 반겼다.
던전 진행 역시 키라와 호루스가 있자 너무나 수월하게 진행이 됐다.
달려드는 적들은 키라가 광역 마법으로 순식간에 없애버렸고, 호루스는 마법이 통하지 않는 적만 상대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마지막 보스들이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왜 그 던전의 이름이 ‘신들의 만찬’인지를 알 수 있었다.
마지막 보스 방은 던전의 이름 그대로 거대한 식탁이었다.
그리고 그 식탁에 여섯 명의 신들이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러다 난입한 우리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 중에는 최상급 던전인 ‘익시온의 무덤’에서 본 적 있는 제우스와 헤라도 함께 있었다.
제우스는 우릴 알아보고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지만 바로 공격하진 않았다.
그는 내 옆에 있는 키라와 호루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대들은 왜 저 버러지 같은 놈들과 함께 온 것인가! 이곳은 그대들에게 어울리는 곳이 아니다.]
그 말을 들은 키라가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오랜만이네. 이름이 제우스였던가? 너야말로 여기서 뭐하는 거야?”
키라가 제우스를 아는 듯하자 난 깜짝 놀라서 물었다.
“키라, 너 제우스를 알고 있었던 거야?”
그러자 키라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예전에 말살자가 차원을 통합하려 할 때 제우스도 자신의 부하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넘어왔었어. 그때 몇 번 본 적이 있지.”
“그래?”
난 새삼스런 눈으로 제우스를 다시 바라봤다.
제우스는 그런 난 거들떠보지도 않고 키라를 보고 물었다.
[그대들은 정녕 나의 유희를 방해할 작정인가?]
그 말에 키라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너도 유희 중이었구나. 근데 너 말살자가 부활한 건 알고 있어?”
[뭐? 말살자가 부활했다고?]
그는 키라의 말에 깜짝 놀라서는 반문했다.
“역시 몰랐나보네. 말살자가 부활했어.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이 이곳으로 오려하고 있지. 근데도 유희를 즐길 정신이 있어?”
하지만 그는 키라의 말을 그대로 믿지는 않았다.
[근데 그런 상황에 그대들은 유희를 한다고? 그걸 날 더러 믿으란 말인가?]
제우스는 날 가리키며 말했다.
“아아. 쟤 때문에 그러는 거야? 너 힘이 많이 줄어있는 걸 보니 뭔가 제약을 받고 여기에 있는 거 같은데…… 그래도 저게 안 느껴져?”
[뭘 말하는 거지?]
“얘 몸 안에 있는 거 말이야.”
[몸 안……?]
의아한 눈으로 한동안 날 보던 그는 갑자기 놀란 눈으로 날 보며 말했다.
[너…… 말살자 조각의 소유자구나!]
“그걸 이제 본 거야? 너도 참 둔하다. 이제 내가 왜 얘랑 같이 다니는지 알겠지?”
그는 잠시 나와 키라를 번갈아 보다가 뭔가 결심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 말대로 말살자가 부활했다면 더 이상 여기서 유희나 즐기고 있을 여유는 없겠군.]
“그럼 돌아가는 거야?”
[돌아가겠지만 바로 돌아갈 수는 없다.]
“바로 돌아갈 수 없다고? 왜?”
그러다 키라는 뭔가를 눈치챘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너희 계약에 묶여 있구나!”
[역시 그대는 볼 수 있나보군. 그래. 우린 이 세상에 나오는 대가로 어떤 존재와 계약을 맺었지.]
“어떤 존재? 그게 누군데?”
난 얼른 제우스에게 물었다.
[나도 처음 보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가 나보다 한 차원 높은 존재라는 건 알겠더군. 마치 말살자처럼 말이지.]
“말살자처럼 한 차원 높은 존재라고? 그런 존재가 있다고……?”
그러다 머릿속에 말살자와 같은 최초의 생명체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혹시 그들인가……?
하지만 무엇하나 확실하지 않았다.
“그 존재와 무슨 계약을 한 건데?”
그는 날 힐끔 쳐다보고는 키라를 향해 말했다.
마치 나랑은 말을 섞기 싫은 듯 보였다.
예전 헤라와 있었던 일 때문인가? 보기보다 쪼잔하네!
[그 존재는 지루해 하는 우리와 계약을 통해 이곳에서 유희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던전을 들어오는 이들을 상대하고 그들을 막아내면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졌지.]
“보상이라고? 어떤 보상인데?”
[너희가 우릴 죽이면 아이템을 얻듯이 우리도 너흴 막으면 다양한 보상을 받았지. 그 중 가장 좋은 건 바로 이곳에서의 자유시간이다.]
“이곳에서의 자유라고? 그럼 너희가 여길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거야?”
제우스는 여전히 키라를 쳐다보며 내 질문에 대답했다.
[얼마나 치열한 전투였냐에 따라 또는 얼마나 재밌게 전투를 진행했냐에 따라 자유 시간이 달라지지. 그리고 자유시간이 주어진 우리는 밖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물론 힘에 제약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난 듣도보도 못한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럼 다른 던전 안의 몬스터들도 똑같은 조건인 거야?”
[그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생겨나는 던전들은 어떤 식으로든 계약을 맺고 있겠지.]
“근데 왜 그런 얘기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거지? 지금 우리가 있는 세상엔 엄청나게 많은 던전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한 번쯤은 새어나올 법한데 말이야.”
[그건 제약이 있기 때문이지. 이런 이야기를 발설하는 순간 우리 존재는 세상에서 지워진다고 했다.]
난 깜짝 놀라며 말했다.
“존재가 지워진다고? 근데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야?”
내 말에 옆에 있던 키라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걱정마. 내가 지금 절대 공간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중이니까.”
“절대 공간 마법? 그건 또 뭐야?”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공간을 내가 만들었어. 이 안에선 어떤 존재도 여길 훔쳐볼 수 없어. 그게 말살자라 해도 말이지.”
“그런 것도 할 수 있었어?”
“호호호호. 당연하지. 대신 시전 범위가 워낙 좁고 10분을 넘길 수 없다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그래서 비밀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던 거구나?”
그는 내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 시선을 주지는 않았다.
“그럼 그 계약은 어떻게 파기할 수 있는데? 그냥 파기하면 되는 거야?”
[계약 파기는 우리를 이기면 된다. 한 번 클리어가 되면 우린 선택을 해야 하지. 이곳에 남을지, 아님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갈지를 말이야. 그때 돌아가는 걸 선택하면 된다. 대신 다신 이곳에 올 수 없겠지만 말이야.]
말을 하는 그의 눈에는 아쉬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
“왜? 아쉬워?”
[아쉽지. 이곳은 우리가 있는 곳과 달리 무척 아름다운 곳이다. 그래서 계속 돌아오고 싶었지. 그때 마침 그 존재가 제안을 해서 돌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말살자가 부활한 게 사실이라면 돌아가서 준비해야겠지.]
“그렇게 돌아오고 싶다면 나중에 너희 차원과 게이트를 열어줄게.”
그는 이번엔 깜짝 놀라며 날 돌아보고 반문했다.
[뭐라고? 게이트를 열어준다고? 그게 가능한가?]
그 질문에는 나 대신 키라가 대답했다.
“얘가 가진 말살자의 능력이 차원을 여는 거야. 그러니까 여기로 돌아오고 싶으면 얘한테 잘 보이라고.”
[그게 정말인가?]
제우스는 기대감으로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대신 내가 게이트를 열더라도 넘어와선 조용히 지내다 돌아가야 돼. 사고치면 다신 게이트 안 열어줄 거야. 알겠지?”
[그거라면 걱정마라.]
제우스는 기쁨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아이 같은 그를 보고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여길 클리어하기만 하면 되겠네. 그치?”
[그렇다. 그리고 우리가 이 안에서 한 대화를 그 존재가 눈치 채지 못하게 하려면 최대한 자연스럽게 싸워야 한다. 할 수 있겠지?]
“그거야 어렵지 않지. 그럼 시작해볼까!”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