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마인 세력의 군사도 신기노인을 알고 있다고?
“대체 어떻게 그가 신기노인을 알고 있는 거지?”
“자세한 건 나도 몰라. 내게도 모든 걸 이야기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손을 잡았다고? 뭘 생각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하지만 그는 내 목적을 이뤄줄 만한 능력을 가진 자야. 그와 몇 마디 하자마자 그런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지.”
난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이거, 이거 사기 당하기 딱 좋은 성격이구만. 그렇게 함부로 누굴 믿고 그러면 안돼.”
하지만 그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인간은 이해 못하겠지. 하지만 난 너희가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존재. 그런 것쯤은 몇마디만 나눠봐도 바로 알 수 있지.”
에휴. 말이 안 통하는구나.
난 더 이상 열 내지 않고 그 이후의 일에 대해 물었다.
“그래서 군사를 만난 다음 어떻게 됐는데?”
“그 후론 군사의 계획대로 움직였지.”
“그래서 그 군사 말대로 신기 노인을 다시 만났어?”
마인은 고개를 저었다.
“못 만났지. 군사는 아무래도 지금 이 곳엔 없는 것 같다며 그를 찾으려면 시간이 더 걸릴 거라고 하더군. 그동안 자기를 좀 도와달라고 했어. 어차피 나도 딱히 할 일은 없었기 때문에 그를 돕기로 했지.”
“그렇게 이종족들에 대한 정복 전쟁이 시작 된거야?”
“그렇지. 하지만 그건 모두 군사가 벌인 일이야. 난 가끔 군사가 지정해주는 이와 싸우거나 그게 아니면 몇 가지 일을 처리해주는 정도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수련만 하고 있지.”
내 예상과 달리 마인은 너무 순진했다.
아니, 순진하다 못해 멍청했다.
그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날 보며 말했다.
“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내가 군사에게 이용당했다고 생각하겠지?”
“그럼 아니야?”
그는 고개를 저었다.
“맞아. 난 군사에게 이용당하고 있지. 하지만 나 역시 군사를 이용하고 있으니 문제 될 건 없어.”
“너도 이용하고 있다고?”
“그래. 나도 나름대로 군사를 이용하고 있지. 그가 가진 정보력은 어마어마하거든. 만약 신기노인이 나타난다면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하고 정확한 정보조직을 거느리고 있지.”
그의 말을 들은 난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뛰어난 정보조직은 얼마든지 있는데 대체 얼마나 뛰어나길래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물론 뛰어난 정보조직은 얼마든지 있지. 하지만 한 사람에 의해 수천 년을 넘게 관리되어 온 정보조직이 존재할까? 아마 없을 거야.”
난 그의 말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 말은 군사가 널 만나기 전부터 이미 정보조직을 가지고 있었단 거야?”
“그래서 내가 그와 함께 하기로 한 거야.”
저 말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일이다.
정보조직에서 정보를 얻는 방법은 직접 침투해 정보를 캐내거나, 이미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듣는 방법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로는 보안이 철저한 곳은 뚫기 어렵다.
하지만 그 시간이 수백 년, 수천 년에 이른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처음엔 정보를 얻고자 하는 곳의 알바로 시작했다가 오랜 시간에 걸쳐 그곳에 녹아드는 것이다.
그가 실패해도, 그의 자손들이 계속 그 주위를 맴돌며 서서히 흡수돼서 결국엔 완벽히 그곳의 정보를 가져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정보 조직을 운영했다면 이 세상에 모르는 정보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거야. 그래서 십이지신들이 그렇게 쉽게 이간질하고 활동할 수 있었던 거구나!’
그제야 십이지신들이 여러 집단들 깊숙이 침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근데 그런 군사도 결국 천의문을 찾지는 못했나보네.”
“3대 계승자가 있다는 건 알아냈지만 그 후론 계승자가 없다고 들었는데, 오늘 보니 아니군. 군사가 모르는 정보도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야.”
“근데 이런 얘기들을 나한테 하는 이유가 뭐지?”
“천의문 정식 계승자인 너와 싸우면서 이제는 희미해진 신기노인의 실력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지.”
“그래서?”
“지금의 나는 확실히 예전의 신기노인보다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말하는 건 아마도 신기노인이 플뤼톤에 의해 지옥의 콜로세움으로 끌려가기 전인 것 같았다.
신기노인이 남긴 책자에 보면, 신기노인은 그곳에서 비약적인 실력 향상을 이루고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왔다.
그러니 혹시라도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그의 실력은 예전 마인과 싸웠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 있을지도 모른다.
‘근데 이상하단 말이야. 분명 신기노인이 남긴 책자에는 플뤼톤에게 패해서 그가 있는 지옥으로 끌려갔다고 했는데 플뤼톤은 어떻게 여길 올 수 있었던 거지? 그 당시는 차원의 벽이 더 두꺼워서 혼자서 뚫고 들어오진 못했을 텐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그 문제는 나중에 플뤼톤을 만나면 물어보지 뭐.
그리곤 마인에게 말했다.
“니가 그 오랜 시간 신기노인을 찾았다고 하니, 내가 신기노인에 대한 정보 하나 알려줄까?”
그는 신기노인에 대한 정보라는 말에 눈을 반짝거렸다.
“신기노인에 대해 아는 정보가 있다고? 그게 정말이야?” “신기노인은 지옥에 머물렀어.”
“지옥이라고? 인간들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그 지옥 말이야?”
“그래. 그 지옥. 정확히는 다른 차원이라는 게 옳은 표현이겠지. 어쨌든 신기노인은 플뤼톤과 함께 지옥으로 내려갔어. 그리고 거기서 어마어마한 수련을 쌓고 강해졌지.”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지옥…… 지옥이라…… 역시. 그래서 여기선 찾을 수 없었던 거야! 하하하, 그런 거였어.”
그는 신기노인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것만으로도 뛸 듯이 기뻐했다.
“좋은 정보를 줬으니 나도 정보를 하나 알려주지.”
“뭔데?”
“군사가 조만간 인간 세상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할거야.”
“전쟁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거야?!”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전쟁이라 부를 수도 없을 거야. 이미 세상은 그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있으니까. 나한테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선 이야기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론 모르지만 대비는 해두라고.”
“넌 어떻게 할 생각인데?”
“나? 난 이제 군사와 연을 끊고 수련에 집중할 생각이야. 2-3주 후에 플뤼톤이란 놈이 이곳으로 온다며? 그럼 그때 신기노인을 만날 수도 있으니 말이야.”
“근데 굳이 그렇게 신기노인한테 집착할 필요가 있어? 예전에야 신기노인보다 강한 상대가 없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은 절대자들이 많잖아!”
허나 그는 단호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 그를 찾는 걸 포기한다면 내 3천 년의 삶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어!”
단호한 그의 모습에 난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그거야 니가 알아서 할 일이니 더는 간섭하지 않을게. 그럼 이제부터 난 널 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거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니 자유지. 가기 전에 한 가지만 더 알려줄게. 나도 얼마 전에 안 사실인데, 군사 뒤에서 그에게 지시하는 누군가가 있어.”
그는 류호와 똑같은 소릴 했다.
“확실한 거야?”
마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 군사에게 지시를 내리는 누군가가 있어! 워낙 은밀하기 때문에 나도 얼마 전에 눈치 챘지만 확실한 사실이야.”
말을 마친 그는 생각에 잠겨있는 날 두고 리치킹과 함께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대충 이제 전쟁에선 손을 떼겠다는 식으로 말하는 듯 했다.
흠. 마인이 없는 마인 세력이라……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지 기대가 되는걸!
그때 호루스와 키라가 동시에 내게 다가왔다.
그들은 마인과 내가 나눈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는지 지루해보이진 않았다.
다가온 그들 중 호루스가 먼저 물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키라 역시 그게 궁금했던지 눈을 반짝이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지금까지처럼 내 맘대로 해야지.”
“그게 다야? 좀 더 구체적인 계획 없어?”
키라가 더욱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그게 왜 그렇게 궁금하실까? 아까는 지금까지처럼 내 맘대로 하라며?”
난 톡쏘듯 키라에게 반문했다.
하지만 키라는 전혀 개의치 않으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궁금한 거지. 넌 말살자를 죽이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무척 중요한 사람이니까! 호호호.”
한동안 웃던 그녀는 갑자기 웃음을 딱 그치고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봤다.
“그래서 말인데…….”
난 왠지 불안한 마음에 일단 거절부터 했다.
“뭔지 모르지만 안돼!”
“내가 무슨 말 할지 알고 그러는 거야?”
“그냥 안돼. 분명 말도 안되는 부탁을 할 거잖아.”
“그런 거 아니거든.”
갑자기 소녀처럼 말하는 키라를 보고서 난 눈살을 찌푸렸다.
“좋아. 일단 들어나 보지. 뭔데?”
“말살자랑 만나기 전까지 당분간 너랑 같이…….”
“안돼! 절대 안돼!”
난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중간에 딱 잘라 거절했다.
“왜 안된다는 거야? 내가 같이 있으면 말살자를 만났을 때 위험을 훨씬 줄일 수 있을 텐데!”
“그냥 너랑 같이 있는 게 부담스러워! 그리고 너랑 같이 있으면 말살자가 함정인 줄 알고 다가오지도 않겠지. 말살자가 무슨 병신이야?!”
“내가 힘을 숨기고 있을 거라 괜찮아, 내 뛰어난 마법으로 완벽히 힘을 숨길 수 있거든.”
하지만 난 넘어가지 않았다.
난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진짜 이유를 말해봐. 나랑 함께 가려는 이유가 뭐야?”
그녀는 내 말에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성에만 있으니까 너무 지겨워. 그래서 유희라도 해보려구…….”
“안돼!”
그딴 이유로 지금 나랑 같이 가겠다는 거야?
키라랑 같이 다니면 저 성격으로 봤을 때 온갖 문제를 다 일으킬게 뻔하다.
그러면 쓸데없는 주목을 받거나 사건에 휩쓸릴 수 있다.
그럼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키라는 물러설 생각이 없는지 빽하고 소릴 질렀다.
“이건 너한테도 책임이 있다구. 원래는 더 자야 되는데 너 때문에 일찍 일어난 거잖아. 그러니까 니가 책임져야 돼!”
“어휴…… 근데, 그전에 너 말투나 행동은 왜 그런 거야?”
“아, 이거? 어때? 맘에 들어? 요즘 젊은 한국 여자들 스타일을 따라해본 건데.”
“토나오니까 그만해라.”
“아잉~. 한 번만 같이 가자. 나 유희에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니까. 니 말 잘 듣고 문제도 안 일으킬 테니까 같이 좀 가자. 응?”
하지만 난 계속 거절했다.
분명 그녀가 일찍 일어난 건 나 때문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그녀와 함께 하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녀가 깽판을 친다면 나 혼자선 그걸 막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때 내 생각을 읽었는지 호루스가 나섰다.
“그런 이유라면 나도 같이 갈게.”
“뭐?! 너까지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