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력천재 미대생-83화 (83/203)

■ 83. 여유 □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했다.

팀 유나는 긴급회의를 시작했다.

첫 번째 안건은 자체 생산.

우리의 자체 생산은 안전제일 주의 노선을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방송의 위력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조금 더 욕심내도 괜찮지 않을까?

[ 아마 일주일 내로 영 아트 코리아의 정식 홈페이지가 오픈할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의 인터뷰가 홈페이지에도 정식으로 실리게 될 거예요. ]

김수희 작가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내가 입을 열었다.

"기모 후드 티가 적당하지 않을까요? 기본 디자인, 원 사이즈로 가면 안전할 거예요."

박시한 느낌의 후드 티는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

자체 생산으로 돌릴 경우 품질도 보증된다.

다만 인기 상품인 만큼 다른 도매상에서도 워낙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자체생산의 메리트가 없었다.

하지만 방송을 탄다면?

괜찮은 품질의 자체 생산 의류를 추가해두면 사이트의 볼륨도 높아지고, 관련 상품의 매출도 크게 증가할 것이다.

"찬성이야. 기본 디자인으로 가면, 생산 일정도 최대한 당길 수 있을 거야. 후드 티라면 다른 옷과 코디하기도 무난하고."

정화 선배를 비롯해 유나도 찬성.

"이 참에 후드 티 가슴에 과감하게 '하이 유나'를 새겨버리는 건 어때?"

수진 선배의 저돌적인 의견.

"하하, 그건 무리예요. 그런데 우리만의 특색 있는 로고나 그림을 넣는 건 괜찮을 것 같아요. 너무 흔한 디자인이니까, 포인트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같이 생각해 봐요."

이건 유나의 의견.

해야 할 일이 분명해서, 회의는 재빨리 끝났다.

우리는 예산과 일정을 검토하고 곧바로 오늘 밤부터 후드 티 자체 생산에 착수하기로 했다.

그리고 정화 선배가 빙그레 웃으며 김태민을 쳐다봤다.

"그나저나 태민이 반응도 괜찮던데, 태민이를 마케팅에 사용하면 어떨까?"

"찬성이야. 아주 반응이 뜨겁던데. 아예 후드 티 가슴에 디자이너 김태민의 얼굴을 새기면 어떨까?"

"누나들,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원래 김태민은 조금 다가서기 힘든 이미지였다.

그래서 1학기 때, 1학년 여학생들은 김태민과 친해지고 싶으면서도 쉽게 말 걸지 못했었다.

하지만 몇 달 같이 지내자, 수진, 정화 선배는 김태민의 속성을 간파해버렸다.

김태민은 세상에서 놀려먹기 제일 좋은 상대였다.

그나마 나와 유나는 나이도 같고, 또 그림 실력을 알기에 자제하는 편.

하지만 정화, 수진 선배는 거침이 없었다.

"태민아, 옷 포장 하면서 한 올씩 네 머리카락을 넣어두는 건 어떨까?"

"10만원이상 구매고객에게는 디자이너 김태민이 직접 감사 전화를 거는 건?"

김태민은 울상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도와줄 생각은 전혀 없다.

자식. 그게 행복인 줄도 모르고.

'김태민, 네가 공기가 되어버린 내 심정을 알아?'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직접 동대문을 찾아가 은성사에 도움을 요청했다.

먼저 레깅스.

은성사 사장님은 내게 5000장의 레깅스를 할당했다.

그리고 내년 초까지 전부 판매하면 성공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아직 가을인데, 3000장 조금 넘는 레깅스가 판매되었다.

"품질이 좋아서 그런지, 한 장 샀던 고객들이 두세 장씩 추가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특히 C마켓에서 반응이 좋았고요."

그래서 우리는 조금씩 추가 수입 여부를 의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송이란 이슈가 생긴 것이다.

"그럼 내가 이번 달 내로 다시 중국에 가서 레깅스를 추가로 주문할게. 그리고 다른 기본 상품들도 한 번 알아볼게."

은성사와 우리는 동맹 관계.

방송은 아직 구체적인 기회는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 사람 좋던 은성사 사장은 돈의 냄새를 맡았는지, 기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반응을 보자, 나도 조금 긴장이 들었다.

'처음엔 굳이 방송에 나가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었는데.'

그런데 댓글과 회원 가입이 죽죽 늘자, 이제는 방송에 나가 최대한 버텨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아, 마침 있었네요."

하이 유나의 근무 시간은 제각각이라 사무실에 내가 없을 때도 많았다.

사무실에 들른 승희씨는 손에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

"이건, 하이 유나 우편물인데, 우리 주소가 적혀 있었나 봐요. 우리한테 왔더라고요."

보통은 내가 원 디자인의 사무실로 가는데, 오늘은 승희씨가 지나는 길에 들른 모양이었다.

원 디자인의 직원은 이제 9명.

원 부동산과 원 디자인을 합친 숫자였다.

그리고 승희씨가 두 팀을 총괄하고 있었다.

크리스털 시네마의 홈페이지를 마무리한 후 나는 이제 직접 디자인을 하지는 않고, 재무적인 업무나 회의 정도만 참여하고 있었다.

원 디자인은 순조로와서 든든한 캐시 카우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현금 보유량도 크게 늘었고, 하이 유나를 널널하게 운영할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이 되어주고 있었다.

'지금은 원 디자인 쪽에서 순익이 훨씬 크지만.'

그래도 조만간 하이 유나의 매출과 규모가 더 커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튼.

나는 승희씨가 가져온 봉투를 살펴봤다.

무슨 고지서의 종류일 줄 알았는데, 손글씨가 적힌 편지였다.

'푸른 하늘 공부방?'

어딘지 알 것 같았다.

의류 쇼핑몰과 동대문 도매상들은 세금에 민감하다.

그래서 소득 공제를 위해 시즌이 바뀔 때 남아있는 여름옷들을 택배로 근처의 공부방에 기부했다.

공부방이라고 해서 보습학원은 아니고, 저소득 계층의 학생들의 학업을 도와주는 자선 단체였다.

한 번도 가본 적은 없고, 그냥 검색을 통해 알아낸 곳이었다.

'택배를 보내기 전에 전화를 걸어서 기부 증빙을 끊어줄 수 있는지 물어본 게 전부였었지. 그런데 편지라니.'

봉투 안에는 손글씨 편지가 세 통 들어 있었다.

중학생이 보낸 편지 한 통.

초등학생이 보낸 편지 두 통.

'이런.'

보통 기부를 하고나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감사 편지를 받자 오히려 살짝 찝찝했다.

제대로 된 기부도 아니었고, 절세를 위한 기계적인 절차였을 뿐이었다.

게다가 내가 보낸 옷들은 시즌이 지난 재고였다.

심지어 아동복도 아니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감사편지라니.

"뭐야?"

유나가 다가와 내 손에 들린 편지들을 건네받았다.

그리고는 내 표정을 살폈다.

내 기분이 바로 드러났는지, 유나가 말했다.

"그럼 한 번 가볼래? 별로 멀지도 않으니까."

"그럴까?"

그리고 뒤에서 기웃대던 김태민까지.

말이 나온 김에 우리는 차를 끌고 공부방으로 출발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주차할 곳도 변변치 않은 허름한 골목.

낡은 상가의 3층 건물이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20분 거리.

일부러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을 검색해 옷을 보냈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가까웠다.

공부방의 문을 열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 세 명과 대학생으로 보이는 어른 두 명이 있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 그냥 어떤 곳인지 알고 싶어서요."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편지를 건넸다.

"아, 그 분들이셨구나."

그리고 두 명의 대학생은 공부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줬다.

"학교 마치고 저녁까지, 아이들이 공부를 배우거나 같이 시간을 보내는 곳이에요. 아이들은 주로 저소득층이나 다문화 가정, 편부모 가정 출신이에요. 부모님들이 일하는 시간에 여기서 맡아주는 거죠. 아, 그리고 저도 한국대 생이에요. 여기는 한국대랑 가까워서 한국대 생도 가끔 와요."

유나와 나, 김태민은 공부방을 둘러봤다.

삐걱이는 책상에, 구석에는 시끄러운 냉장고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여긴 괜찮은 편이예요. 기부도 종종 들어오고, 또 대학생 자원 봉사자도 자주 오고."

"계절 지난 옷을 보냈는데, 감사 편지까지 받을 줄 몰랐거든요. 그래서 와보고 싶었습니다."

"아니에요. 그 옷들 예뻐서 인기 많았어요. 그리고 새 옷이잖아요. 사춘기 아이들도 있는데 서로 갖겠다고 난리였어요."

"다행이네요."

"앞으로도 남는 옷들 있으면 언제든 보내주세요. 여기서는 요긴하게 쓰이니까요. 그리고 혹시."

"혹시요?"

"자원 봉사 할 생각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주세요. 제가 봉사 활동 점수 받는 방법 자세히 가르쳐드릴게요. 요즘은 대학생들도 너무 바쁘니까, 사람들이 많이 줄었거든요."

"그럴게요."

대답은 했지만, 우리도 바쁜 사람들.

하지만 이 곳에 직접 와본 것은 정말 잘 한 것 같았다.

'예술은 결국 사람을 다루는 일이니까.'

어쩌면 철학이나 미학에 대해 고민하는 것보다 주위를 돌아보는 게 더 중요한 일일 지도 몰랐다.

괜찮은 방문이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우릴 보고 낯을 가렸지만, 우리가 나갈 땐 배웅까지 해줬다.

차에 탈 때까지, 유나와 김태민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나야 닳고 닳은 중년 아재.

감정에 내성이 강하다.

하지만 유나와 김태민은 너무 물렀다.

특히 유나는 나 때문에 와보자고 해놓고는 오히려 자기가 타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차를 출발했다.

"그런데 있잖아. 나 말이야."

조수석에 앉은 유나가 말했다.

"응?"

그리고 유나는 네비게이션에 글자를 검색했다.

"이리로 가줘."

유나가 입력한 주소는 전자 대리점이었다.

"거긴 왜?"

"가보면 알아."

잠시 후.

차를 세우자마자, 유나는 대리점 안으로 뛰어갔고, 일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유나는 적당한 크기의 냉장고 하나를 지목했고, 자기의 체크카드를 꺼내서 내밀었다.

"48만원, 결제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게서 편지를 받아, 배달 주소를 적었다.

"너 괜찮아?"

48만원이면 유나에게는 분명 큰돈일 것이다.

"그게, 나 그림 팔아서 삼백만원 생겼잖아. 이백은 엄마 드리고, 백은 순전히 날 위해서 쓸 생각이었거든. 내가 처음으로 그림을 팔아서 번 돈이잖아. 그럼 어떻게 썼는지 평생 기억날 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이렇게 쓰면 꽤 괜찮은 것 같아. 남은 돈도 홀가분하게 쓸 수 있고. 그러니까 이건 전부 날 위한 선택이야."

유나가 멋쩍어하며 대답했다.

좀 멋있기도 하고, 아깝기도 하고.

나라면 소득 공제도 알아보고, 최저가 검색도 해봤을 텐데.

아무튼.

야무진 유나에게도 예술가의 피가 흐르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충동적이고 화끈하다니.

좀 귀엽고 근사했다.

"그럼 냉장고 안은 내가 채울게."

김태민은 우리를 데리고 근처의 대형 슈퍼로 갔다.

입구에 '3만원이상 무료 배달'이라고 크게 적혀 있었다.

김태민은 나와 유나에게 바구니를 하나씩 쥐어주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걸 담으라고 했다.

셋이 그렇게 맘껏 담았더니 모두 7만원.

"돈 모아야 하는데, 그래도 쓸 때는 써야지."

그렇게 말하며 우리 중 가장 월급은 적지만, 사실은 제일 부자인 김태민이 7만원을 계산했다.

'그나저나 이 녀석은 어디 쓰려고 돈을 모아야 하는 걸까?'

살짝 궁금하긴 했지만, 부자도 부자 나름의 고민이 있을 테니까.

어쨌든 나는 두 친구가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겨우 55만원에 이렇게 하루가 달라지는데.'

만약 3억이 생긴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상금에 못지않은 다른 기회들까지 생긴다면?

예를 들어 쇼핑몰 대박 같은.

'그런데 회귀자에 그림 천재까지, 그리고 초미녀 군단까지 있으면 우승을 노려봐도 되는 거 아닌가?'

갑자기 강렬하게 영 아트에서 우승하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 * *

다음 날.

저녁 차로 포항에 내려갔다.

어머니께 드릴 소소한 선물도 있고, 그림을 판 자랑도 해야 했다.

그리고 영 아트가 시작되면 한동안 바빠질지도 모르니까, 미리 포항에 다녀와야 했다.

감자탕집 주방 일을 관두신 어머니는 얼굴이 훨씬 좋아보였다.

"엄마, 이거 받아요."

내가 그린 포스터.

도예 시간에 만든 머그컵은 아직 재벌 구이가 남았다.

어머니는 그림을 보고 잠시 멍하니 계셨다.

"신기하다."

"뭐가요?"

"집에 그림을 걸어두는 일이 아주 부잣집 사람들한테만 생기는 일인 줄 알았거든. 내 아들이 나를 그려주는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네."

"우리도 부자가 될 거예요."

"아니야. 나는 벌써 부자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벽에 걸린 달력을 떼어내고는 내 그림을 거셨다.

"일단 여기 걸자."

그리고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나 일 구했어."

"네?"

어머니를 겨우 설득해서 힘든 감자탕집을 그만두게 했는데, 벌써 새 일을 구하다니.

"벌써요? 무슨 일이요? 좀 더 느긋하게 구하지 그랬어요?"

"일하던 사람이 너무 쉬면 병 생겨. 계속 일해야지. 동네 백반집이야."

식당을 그만두고 또 식당이라니.

"일을 구해도 왜 또 그런 일을 구해요?"

"아니야. 점심이랑 저녁 장사만 해서 8시간 밖에 일하지 않아. 그래서 할만 해. 사장 언니한테 반찬 만드는 것도 배우고 있고. 재미있어."

내가 나무라듯 이야기하자, 어머니가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못 말리는 분이었다.

"웃긴 거 말해줄까?"

"뭔데요?"

"예전에 감자탕집에서 일할 땐, 사람들 마주치는 게 자신 없었거든. 그래서 내가 주방 설거지 하겠다고 말한 거고. 그런데 백반집에서는 내가 홀서빙 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그래서 왜 그런가 내가 생각해봤거든?"

"왜 그런데요?"

"아들이 한국대라서 그런 것 같아. 든든한 아들이 있으니까, 나까지 당당해지는 것 같아."

"으, 뭐예요. 그게."

그런데 어머니가 정말 밝아지신 것 같았다.

피곤에 찌든 모습도 사라지고, 오글거리지만 농담도 하시고.

견디기 힘들만큼 재미없는 농담이었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계속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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