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143화 (144/287)

< 플러스? 마이너스? (1) >

-딱!!

성민의 마지막 시범 경기 3회 말.

보스턴의 이루수이자 1번 타자인 제롬 스튜버츠가 뚝 떨어지는 커브를 두들겼다.

-하아, 저 녀석은 진짜 다 좋은데 저것만 좀 어떻게 안 되나?

‘세상에 모든 게 다 되는 선수가 어딨습니까.’

-많았지. 데릭 지터, 배리 본즈, A로드, 켄 그리피 주니어, 치퍼 존스, 강진호, 앨버트 푸홀스, 마이크 트라웃 등등. 뭐, 애초에 그 치들이야 워낙 특별한 녀석들이니 그렇다 치고. 누가 그런 대단한 걸 바래? 다저스에 있던 마르타 블랑코 만큼만 해줘도 괜찮잖아.

‘영감님, 마르타 블랑코면 엄청 대단한 거 맞거든요? 녀석도 지금까지 올스타만 세 번을 했고, 물론 가능성은 낮지만 지금과 같은 폼 유지하면서 한 4, 5년. 그리고 연착륙 잘하는 거로 한 5년 정도 커리어 이어가면 어찌어찌 명전도 가능할 녀석이거든요.’

-젠장, 다저스에서는 그런 녀석이 발이 치일 정도로 많았는데.

‘발이 치일 정도는 아니었죠. 그래도 다저스에서 열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는 선수인데요.’

-선수단이 25명인데 열 손가락이면 발에 치이는 수준이지.

필 니크로가 20홈런을 기대 가능한 호타준족의 리드오프 마르타 블랑코를 그리워했다.

[타구!! 유격수 정면!! 유격수 잡아 2루에!!]

“아웃!!”

[이루수는 그대로 다시 일루로!!]

“아웃!!!”

[깔끔한 더블 플레이!! 이닝 종료됩니다.]

이루수로 제롬 스튜버츠는 아주 훌륭한 선수였다. 발 빠르고, 타구 판단 괜찮고 글러브질도 준수하다. 어깨가 조금 약한 것이 흠이지만 이루수인 이상 그건 큰 약점이 될 수 없다.

타자로서의 제롬 스튜버츠도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다. 발 빠르고, 컨택 하나는 팀에서도 으뜸간다. 주자 없는 상황에서 선두 타자로서는 매우 훌륭하다. 내야 안타 비율을 보면 리그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주자가 루상에 있을 때는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파워도 약한 주제에 이 녀석 배드볼 히터다. 다행히 지금처럼 병살타가 나오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왜냐하면, 본인 발은 빠르니까. 그냥 선행 주자를 죽이고 본인만 살아남는다. 일종의 땅볼 머신인 셈이다.

‘애초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하시는 겁니다. 마르타면 어지간한 팀에 가면 중심 선수가 될만한 녀석이에요. 게다가 녀석은 제롬보다 다섯 살이나 많잖아요. 신체적으로 경험적으로 한참 절정기에 오른 나이죠. 제롬도 그 나이 되면 지금보다 좋아질 겁니다.’

-젠장, 매튜 쿠퍼도 그렇고, 이 녀석도 그렇고. 죄다 몇 년만 지나면 괜찮아질 녀석이라는 희망고문 뿐이로군. 부디 그 유망주가 유亡주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영감님은 한국 인터넷 좀 끊으세요. 아니 대체 어디서 그런 건 보고 오는 거래?’

성민이 필 니크로를 타박하며 글러브를 챙겨 들었다.

마흔여덟 살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뛰었고, 죽는 그 순간까지 야구를 손에 놓지 않았던 귀신의 계획표 그대로 움직인 몸이다. 심지어 그 귀신은 몸 속 깊숙한 곳까지 꿰뚫어 보는 눈까지 가진 귀신이다. 스프링 트레이닝을 통해 찬찬히 끌어올린 몸의 상태는 이제 슬슬 최상을 향해가고 있었다.

성민은 너클볼 투수다.

하지만 일반적인 너클볼 투수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존재한다. 보통은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투수가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것이 너클볼이다. 하지만 성민의 경우는 너클볼을 던진 지 3년 차가 돼가는 지금도 최고 93마일짜리 속구를 던진다.

보통 저만한 속구를 던질 기량이 남아있다면 너클볼같이 불안한 공을 던지는 일은 없다. 이건 과거 사이 영을 탔던 너클볼 투수인 R.A디키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너라고 해도 평생 이렇게 빠른 공을 쌩쌩 던질 수는 없어. 실제로 평속은 조금씩 떨어지고 있고 말이야.

성민도 이제 만으로 31세. 한국 나이로 33세다.

육체적인 절정기는 이미 지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네 속구 평속이 88마일 이상으로 유지되는 때까지야.

‘그러면 앞으로 2, 3년은 더 유지할 수 있겠네요.’

-그거야 너 혼자 할 때 이야기고. 내가 보기엔 4, 5년은 더 가능해. 게다가 뭐 평속이 줄어들면 또 그 나름대로 방법이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과 같은 스타일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이는 순간은 바로 지금이라 뭐 그런 소리잖아요.’

-그래.

‘게다가 어찌 됐건 많이 만나면 만날수록 불리한 건 투수고. 무려 15년 만의 너클볼 투수. 뭐 작년에도 뛰긴 했지만, 거긴 내셔널 리그였고. 생소함이라는 무기가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시점도 올해라는 소리고요.’

-그렇지.

성민이 보스턴을 선택한 것은 돈도 돈이지만, 결국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필 니크로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세계에 우뚝 서는 투수.

그것을 위해 성민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심지어 그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부분은 필 니크로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부분들이었다.

야구 선수가 야구만 잘하면 되지. 라고 생각했던 게 잘못이었나? 하고 통렬한 반성을 할 만큼 설득력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떠나서.

마이클 조던이 농구보다 유명할 수 있었고, 타이거 우즈가 골프보다 유명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들이 그 분야에서 압도적인 시대의 지배자였기 때문이다.

-결국은 시대의 지배자가 되어야 해. 물론 네 이야기처럼 그것만으로는 힘들겠지만.

‘그렇죠. 야구로 월드 클래스가 되려면 고작 그것만으로는 힘들죠. 솔직히 빅맥 이후로도 시대의 지배자라고 할 만한 선수들은 있었잖아요. 당장 마이크 트라웃만 하더라도 윌리 메이스, 미키 맨틀과 함께 역대 최고의 중견수로 오락가락하는데도 딱 거기까지였잖아요. 야구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름 정도는 들어본 선수.’

프로야구의 역사는 길다.

그 기나긴 역사는 수많은 기록을 쌓아 올렸다. 전설적이라는 단어가 붙을 만한 선수는 많았다. 최고의 스포츠 스타로 군림하며 당시 몇 되지 않던 전국구 신문에 매일같이 이름을 올렸던 선수들 역시 널렸다.

하지만 그 긴 역사 속에서 마이클 조던처럼, 타이거 우즈처럼 종목 그 자체보다 유명하다는 말을 붙일 수 있었던 남자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베이브 루스

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사나이.

‘뭐 어찌 됐건 충분조건은 아니더라도 필요조건인 건 확실하죠. 일단 시작은 메이저 최고의 투수부터 가보죠.’

-그게 일단 시작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가능성으로 따졌을 때 마린스 우승만 하겠습니까? 우린 이미 기적을 일으켰어요. 두 번째는 원래 첫 번째보단 쉬운 법이죠.’

-하긴,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또 쉬워 보이기는 하는군.

그들의 목표는 단순한 사이 영 컨텐더가 아니었다.

성민과 필 니크로가 목표로 하는 것은 사이 영. 그것도 이왕이면 압도적인 1위다. 물론 압도적인 1위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행운의 문제이긴 했다. 세상에는 대단한 투수가 많고 딱 1년 미쳐 날뛰는 거로 한정을 짓는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도 종종 나오는 법이다.

마운드에 성민이 섰다.

초구.

몸쪽 깊숙하게 찔러넣는 빠른 공.

-딱!!

타자의 방망이가 성민의 공을 두들겼다. 내야 관중석 깊숙한 곳까지 뻗어나가는 타구. 스프링 트레이닝 막판, 한 팀의 중심타자다. 확실히 배트에 힘이 있다.

두 번째.

61.9마일의 느린 너클볼.

-딱!!

스윗 스팟을 벗어났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방망이를 끌어당기는 힘이 떨어지지 않는다. 반쯤 억지로 당긴 타구가 삼루 쪽 파울라인을 따라 구른다.

삼루수인 매튜 쿠퍼가 공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가 글러브를 내밀어 공을 잡으려는 찰나

스핀이 걸린 공이 바닥을 튕겨 파울라인 밖으로 벗어났다. 자신도 모르게 공을 따라가려는 글러브를 놀라운 인내력으로 참아냈다.

‘휴.’

만약 저 공을 굳이 잡았다면 사람들에게 어떤 욕을 들었을지를 생각하니 아찔하다. 성민이 그를 향해 엄지를 치켜주었다.

-야 이게 엄지를 들어 줄 일이냐?

‘결과는 좋잖아요.’

-애초에 저 공을 잡으려 들긴 왜 잡으려 들어.

‘에이, 저게 불규칙하게 튕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생각이 있는 삼루수라면 어차피 1루에서 못 잡을 게 결정된 상황에서 라인 근처에서 튕기는 그 잠깐은 지켜봤겠지. 저렇게 허둥지둥 굴지 않고 말이야. 주자가 2루까지 뛸 수 있는 타구도 아니었잖아.

‘영감님은 얘들한테 너무 많은 걸 바란다니까요. 어차피 욕은 관중들이 다 해줄 겁니다. 게다가 저런 녀석일수록 자기 실수는 스스로 더 잘 알고요. 이럴 때는 그냥 응원을 해주는 거로 충분해요.’

타자가 다시 타석으로 돌아왔다.

세 번째.

73.4마일. 빠른 너클볼. 전력을 다한 공이 날았다.

‘좋았어!!’

손끝의 느낌이 좋다. 이것이야말로 이번 시즌 필 니크로와 성민이 좋은 성적을 자신하는 이유였다. 10번을 던지면 1, 2번 나올까 말까 하던 회전수 2회 이하의 잘 던진 너클볼이 거의 절반 가까운 확률로 나온다.

0.2초의 시간.

타자의 마음이 흔들렸다. 너클볼 자체도 힘든 공이다.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힘든 점은 과연 이 공이 60마일대의 느린 너클볼인지, 아니면 74마일의 빠른 너클볼인지 구분하기 매우 힘들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휘둘러야 할지 알기 힘든 공이 타이밍까지 모호하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한 팀의 중심타선이라고 할만한 타자가 방망이를 헛돌렸다. 마운드의 성민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확실히 포수가 안정이 돼서 그런지, 네 피칭도 더 안정감이 있군.

‘다저스에 마이크 올리버도 혁준이랑 비교해서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던지면 빠질지 모른다는 압박감이 있는 거랑 없는 건 확실히 다르긴 하네요.’

-그게 바로 너클볼 투수들이 좋은 포수를 찾고, 포수에 따라 성적 차이가 휙휙 바뀌는 이유지.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게 무시할만한 요소가 아니니까 말이야.

야수들의 수비가 다저스 시절과 비교해 말할 수 없을 만큼 떨어졌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거의 마린스급, 과장을 빼고 담백하게 말해도 메이저의 마린스라고 해도 거짓말이 아닌 수준이다.

하지만 수비가 약해진 만큼 성민의 피칭이 더 좋아졌다. 게다가 포수의 역량만 따지자면 마이크 올리버와 에두아르도 크루즈는 비교하는 것이 미안한 수준이다. 특히 타석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치가 아예 다르다.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플러스마이너스 제로인 셈이죠.’

-그 두 가지가 플러스마이너스 제로라고? 후우.

필 니크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앞으로 펼쳐질 험난한 1년이 눈앞에 그려진다.

마린스에서 1년, 그리고 다저스에서 다시 1년.

-부디 그냥 마이너스가 너무 크지만 않아도 소원이 없겠구나.

5이닝 7삼진 2실점 1자책. 그리고 3에러.

마지막 시범 경기를 끝으로 성민의 2034시즌이 시작됐다.

< 플러스? 마이너스? (1)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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