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 BEcause(2)
멤버들은 자기 침대를 찾아갈 기력도 없는 듯, 가장 가까운 침대에 구겨지듯 드러누웠다.
병실 안의 사람들은 멤버들이 모두 고른 숨소리를 낼 때까지 숨 쉬는 것까지 조심하며 가만히 지켜봤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든 것 같았다.
“얼마나 놀랐으면 지들이 놀란 것도 몰라.”
“얘네 옮겨놔야 하지 않을까요?”
조그만 병원 침대에 두 명씩 낑겨 누워있는 모습이 무척 안쓰러워 보였다.
그 와중에 제일 작은 지환이는 경환에게 깔린 듯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눈에 보이는 침대에 아무렇게나 누운 걸 테지만, 지켜보는 쪽의 느낌은 달랐다.
무서워서 홀로 눕는 것조차 겁나서, 그래서 같이 누운 건 아닐까.
소현은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종범을 말렸다.
“일단 좀 자게 두자.”
이제 막 잠이 든 애들이니 지금 건드리면 깰 것 같았다.
“소현 팀, 기자들 대응은?”
“시한 씨가 폼 짜고 있을 거예요. 가이드 라인은 이전 최태성 사건을 참고하라고 했어요.”
“잘했어요. 완성되는 대로 메일로 바로 보내라고 해주세요.”
소현과 정윤은 멤버들이 잠든 걸 확인하자마자 후처리를 위해 소곤거리며 병실을 나서려 했다.
“실장님, 이걸로 갈아신고 가세요.”
“아, 고마워요.”
우진은 언제 챙겼는지 정윤에게 굽이 낮은 로퍼 한 켤레를 내밀었다.
“운전할 때 불편하다고 한 켤레 차에 두셨던 겁니다.”
“…진짜 우진 매니저가 최고야.”
“그동안 실장님이 얼마나 괴롭혔으면 이래요.”
“내가 뭘.”
소현과 정윤은 평소보다 더 티격태격하며 병실을 나섰다.
얼마나 놀랐던 건지 둘 다 걸음 중간중간 비틀거렸다.
“아저씨, 여기 계속 있어도 괜찮아요?”
“왜, 나랑 있는 게 싫어?”
“누가 싫대요.”
가영은 멍하니 멤버들만 보고 있던 박정균 대표를 툭하고 건드렸다.
박 대표는 파르르 몸을 떨어놓고 언제 놀랐냐는 듯 표정을 가다듬었다.
우진과 종범은 차마 그 꼴을 보고 있을 수 없었던지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고.
“왜!”
“쉿! 애들 깨요.”
미묘한 표정의 새벽 멤버들에게 벌컥 성질을 내던 정균은 되려 혼이 났다.
“큼, 그나저나 둘 다 치료는 받은 건가요?”
정윤이나 소현, 그리고 새벽 멤버들과 있을 때면, 자신의 권위가 자꾸 땅에 떨어지는 것 같아 정균은 조금 슬펐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것들이 아니기에 애써 마음을 다잡고 우진과 종범을 불렀다.
오늘 언래블 멤버들만큼 놀라고 큰일 날 뻔했던 건 이 두 매니저였으니까.
박 대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둘의 몸을 살폈다.
“네. 저희는 괜찮습니다, 대표님.”
“어이구, 괜찮기는.”
우진은 자꾸 태클 거는 가영 때문에 곤란한 듯 웃으면서도 자세를 바로 했다.
가영은 우진이 고지식한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듯 혀를 찼다.
오늘 겉으로 드러난 상처만 따지면 가장 크게 다친 사람이 이 둘이다.
불과 가까이 있었던 탓에 피부가 달아오르고 물집이 올라와 치료받았다.
“흉지지 않게 조심해서 관리하고. 다 나을 때까지 꼭 병원 다녀요.”
“네. 조심하겠습니다.”
정균은 멤버들과 매니저 둘을 바라보다 크게 한숨을 쉬고 가영을 끌고 병실 밖으로 향했다.
자신이 있으면 더 편히 쉬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다시 조용해진 병실.
키스는 색색거리며 잠든 멤버들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단순한 테러가 아니었다.
범인은 언래블을 노리고 접근했고, 미리 불을 낼 준비를 했다.
정확한 내용은 경찰의 조사 결과를 기다려야 할 테지만, 우진과 종범에게 대강의 내용은 들었다.
현장에서 바로 붙잡힌 범인은 처음 접근했을 때는 멀쩡해 보였다고 했다.
우진과 멤버들에게 말도 또박또박했고.
하지만 범행 직후 기절하더니, 경찰에게 인도된 후부터는 실성한 것처럼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게 죄다 무슨 영문인지.
두 매니저는 간호사의 부름에 병실 밖으로 나갔고, 세비는 혼란스러워하는 키스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언래블 멤버들도 무척 아끼지만, 세비에게는 그래도 윤혁이 더 소중하다.
“윤혁아.”
“…….”
“김윤혁.”
“어? 어.”
어딘가 넋을 빼놓고 있는 키스가 못내 걱정되었던 세비는 조심스럽게 동생의 어깨를 쥐었다.
“너도 좀 쉬어. 지금 너무 놀란 것 같아, 너.”
“아….”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광경이긴 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불길과 검은 그을음, 메케한 연기, 그리고 다가갈 수 없는 곳에 갇힌 아이들.
한순간에 일상이 산산이 조각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키스에게는 무척 생소한 것이다.
물론 세비에게도.
“병실은 내가 지킬 테니까 너도 가서 눈 좀 붙여. 어제도 잘 못 잤잖아.”
“아냐. 그냥 좀 놀라서 그래.”
아마 한동안은 안팎으로 시끄러울 테니 원하든 원치 않든 쉬어야 했다.
하지만 세비도, 키스도 지금은 아이들의 무사한 모습을 두 눈에 담아두고 싶은 듯했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아직도 아이들이 불구덩이 속에 있는 것 같아서.
일상이라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사무치게 알아버린 그들은 오래도록 잠든 아이들을 바라봤다.
모두에게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하루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 * *
포잉은 침대 끝에 웅크리고 잠든 지환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왜 저렇게 청승맞게 자는 거야.’
경환을 피해 침대 구석으로 도망친 것 같았지만, 병원 침대가 커봐야 거기서 거기다.
포잉은 지환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릴 때마다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다.
늘 어리기만 했던 계약자는 끝까지 포잉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포잉도 계약자와의 약속을 지켜냈다.
‘기특하지.’
‘그러네요. 누구 계약잔지 기특해 죽겠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병실 끝.
여전히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포포가 품에 포잉을 안고 토닥였다.
‘이제 다 끝난 거죠?’
‘그래. 다 끝났다. 뒤처리는 다른 놈들 몫이니 넌 계약자 옆에 있으면 되겠구나.’
포포는 가만히 웃으며 작은 포잉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기특했다.
저 인간 아이들도, 포잉도.
특히나 계약자와 포잉은 두려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향한 신뢰를 보여주었다.
포포가 오래전에 겪었던 어느 날의 기억처럼.
‘…괜찮아요?’
‘음?’
포잉은 내심 포포가 걱정됐다.
그 유리라는 요정을 무척 아꼈다고 들었으니까.
여자도 유리도 모두 작은 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불태웠다.
아직 유리라는 요정의 혼은 많은 조각이 남아있지만, 가장 중심이 되던 혼은 소멸했다.
남은 조각들을 전부 모아도 본래의 혼이 될 수 없었다.
포포는 힐끔거리며 자신의 안색을 살피는 포잉의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사고치고, 바락바락 대들기나 했던 작은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컸는지.
‘진즉에 이렇게 해야 했는지도 모르겠구나.’
‘궁상떨지 말고요. 가뜩이나 늙었는데 여기서 궁상까지 떨면 추해요.’
저 고약한 주둥이는 오늘도 거침없이 쫑알거렸다.
감동할 틈을 주지 않는다며 속으로 투덜거린 포포는 사건 전보다 조금 더 자란 포잉을 바라보았다.
이례적으로 빠른 각성이긴 했다.
아주 간혹, 어린 요정들이 중급 요정 시험이 끝마치기 전 각성하기도 했다.
애당초 중급 시험은 요정들이 지성체의 감정과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고 해당 요정의 마음가짐을 보는 것.
포잉은 계약자를 통해 이미 반쯤 각성한 상태였고, 이번 일로 흔들리던 작은 마음이 단단해졌다.
‘저 저기 내려줘요.’
‘하다 하다 이제는 심부름도 시키는 게냐?’
‘저 내려주고 영감님은 빨리 가요.’
‘고얀 놈. 이래서 인간들이 자식새끼는 키워봤자 소용없다고 하는구먼.’
‘포포 님이 낳은 거 아니잖아요. 저 정도면 훌륭하게 자랐거든요?’
포포는 으스대는 포잉의 이마에 꿀밤을 놓고는 베개 끄트머리, 지환의 곁에 내려놓았다.
좁은 공간에 자기 몸을 욱여넣은 포잉은 익숙하다는 듯 금방 지환의 품에 쏙 들어갔다.
‘간다. 계약자 상태 확인하고 되도록 이른 시일 내로 한번 오너라.’
‘넹. 봐서요.’
‘저저, 한 번을 곱게 답하면 큰일 나는 줄 알지!’
‘안녕히 가세요.’
마치 토사구팽이라도 당한 듯한 심정에 포포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포잉은 고개를 빼꼼 내밀어 지환과 이마를 맞댔다.
혹시라도 지환이 악몽을 꾸고 있다면 꺼내줄 생각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한번 확인하긴 할 테지만, 어쨌든 포잉에게는 지환이 최우선이니까.
‘내가 널 지켰다, 계약자야. 나는 약속은 지키는 요정님임.’
이미 잠든 지환에게는 들리지 않을 테지만, 포잉은 속닥거렸다.
깨어있을 때는 이런 말 하기 낯부끄러웠으니까.
천천히 눈을 감는 포잉의 몸에서 파릇한 새싹 같은 연둣빛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전이라면 직접 접촉해야 기운을 밀어 넣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대상을 알기만 하면 가능하다.
이렇게 한 번에 많이 꺼내쓰면 지치겠지만, 어차피 포잉은 지환 곁에서 잠들 테니 괜찮다.
병실을 가득 채울 것처럼 넘실거리던 푸릇한 기운이 멤버들과 병실에 있던 일행을 감쌌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몽글몽글한 비눗방울처럼 방울방울 떠오른 기운이 병실에 없는 이들을 찾아갔다.
그들의 머리 위에서 톡 하고 터진 방울은 희미한 빛을 뿌리며 몸을 감쌌다.
“음?”
“왜요?”
“아니, 뭔가 갑자기 덜 피곤해진 것 같아서.”
정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기 어깨를 주물렀다.
“홍삼 챙겨 드시더니 덕을 좀 보나 봐요?”
“그런가?”
마주 보며 피식거리던 둘은 이번 일이 ‘각얼음’과 연관이 있음을 안다.
종범과 지인을 통해 자잘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여태까지는 큰 문제 없이 대응할 수 있었지만, 이번 일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제 끝난 거겠지?”
“아까 종범 매니저한테 슬쩍 물어봤는데 그런 것 같대요. 사고 직후에 집에서 전화 왔다고 하더라고요.”
“후, 진짜 마지막까지 요란하네.”
아이들이 눈을 뜨면 경찰들에게 진술해야 할 거고, 병원과 이번 방화 사건 관련해 나눠야 할 이야기가 많다.
“결국 불에서 시작해서 불로 끝났으니 대표님 점괘가 맞은 셈인가요?”
“그런 말, 절대 대표님 앞에서 하지 마. 안 그래도 뭐만 하면 자꾸 점집 가려고 해서 말리는 것도 일이야.”
정윤은 끔찍한 소리 하지 말라며 진저리쳤다.
점집에서도 오지 말라고 했다면서 왜 자꾸 가려고 드는지.
병원 복도에 있는 의자에 쭈그려 앉은 둘은 피곤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지만, 아까보다는 표정이 나아졌다.
가벼운 상처를 입은 사람은 있어도 심각한 환자는 없었다.
이번 사건 때문에 다른 환자들이 잘못됐다면, 정말 힘들어졌을 것.
멤버들이 있던 층에는 언래블과 새벽 외에는 다른 환자들이 없었던 것이 가장 다행이었다.
불이 다른 병실로 번지지 않은 것도 천운이었고.
“휴…. 저는 애들이 경찰 조사에 답변할 내용 정리할게요.”
“그래요, 그럼 난 병원장 만나러 가볼게.”
아이들이 눈뜨기 전까지 최대한 정리해야 했다.
그래야 그 순해 빠진 아이들이 안심할 테니까.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것들인 고작 이런 것뿐이었다.
* * *
- 뭐지?
눈을 몇 번 깜박여 봤지만, 여전히 나는 새카만 어둠 속에 둥둥 떠 있었다.
- 아, 또 꿈인가?
이상한 꿈을 종종 꿨다.
콘서트 하다 좀비 아포칼립스 세상이 와서 싸우기도 하고, 탕수육 때문에 싸우는 꿈도 꾸고.
가끔은 의미를 알기 힘든 꿈이나 멜로디가 들리는 꿈도 있었다.
오늘은 아마도 의미를 알 수 없는 꿈인듯했다.
양손을 앞으로 내밀어 봤지만, 희미한 윤곽만 보일 뿐, 제대로 보이진 않았다.
- 음, 내가 뭘 해야 하는 거지?
꿈에서 정신을 차린다는 것도 이상했지만, 정신이 든 시점부터 한참 동안 그냥 온통 까만색이었다.
어딘지 모르지만 드러누워 있는 덕분에 몸은 편했다.
- 졸린데….
눈만 끔뻑거리고 있자니, 점점 나른해졌다.
꿈속에서도 잘 수 있는 건지 궁금했지만, 어쩐지 잠들면 안 될 것 같아 애써 참았다.
그렇게 힘겹게 졸음과 싸우던 그때.
저 멀리에서 아주 희미한 빛이 일렁였다.
온통 까만 곳이었기에 더 눈에 확 들어왔다.
- 저기로 가면 되나?
멍하니 있다가는 잠들 것 같기에 그쪽을 향해 허우적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내 몸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고, 바닥인지 허공인지도 가늠되지 않아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간신히 빛이 보이는 근처까지 가지 그곳에는 촛불 하나와 분홍빛 책 한 권이 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