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6. 어쩌나(1)
“요새 이상하게 시선 느껴지지 않아?”
“너도 느꼈어?”
“어. 사생 애들은 아닌 것 같은데.”
새벽은 사생이 없다.
아니, 드러나는 사생이 없게 만들었다.
대중의 시선에 크게 신경 쓰는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사생을 마주했던 새벽의 대처는 강경했다.
일부는 갱생되어 순수한 팬으로 돌아갔고, 나머지는 전부 고소장을 받아야 했다.
일말의 선처 없는 강경 대응.
그 외에 보통 팬들에게는 스스럼없이 장난치고 잘 대해줬기에, 스토커처럼 따라다녀 봤자 얻을 게 없었다.
팬덤은 가수 따라간다고, 가영과 키스 성격을 닮아버린 팬덤에서도 사생 혐오가 심했고.
특히나 공연 위주의 밴드라 그 성향은 더 두드러졌다.
“이상하네….”
지인의 연습실에 놀러 갔다 온 가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 와서 이렇게 티 나게 쫓아다니는 사생은 없을 텐데.
가영뿐만 아니라 세비와 키스도 최근 따라붙는 시선에 예민해졌다.
본디 그들은 타인의 시선에 예민했다.
그렇다고 신경 쓰지는 않지만.
“솔직히 말해봐, 형. 어디 가서 우리 몰래 사고 쳤어?”
“나?”
“그럼 너 말고 여기에 누가 사고를 쳐.”
키스치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가영에게 물었지만, 가영은 버럭 화를 냈다.
“야!”
“왜.”
“내가 어디 몰래 사고치고 올 인간이냐! 그냥 앞에서 치지.”
“그건 그렇지.”
둘의 헛소리를 듣고 있어야 했던 세비는 그냥 둘 다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진지하게 헛소리하는 가영이나 거기에 수긍하는 키스나.
두통이 이는 듯 머리를 부여잡고 있던 세비가 조용히 말했다.
“둘 다 입 다물어봐. 머리 아파 죽겠으니까.”
세비가 화를 내면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웠기에 둘 다 금방 얌전해졌다.
“경호 인력 구할 거야?”
“굳이?”
“그럼 시선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찾아내야지.”
찾아내서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기가 불리할 만한 일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 가영의 성미를 누구보다 세비가 잘 안다.
“다진이는?”
“어? 그러고 보니까 얘 어디 갔어?”
“전화해봐.”
다진의 제대 후, 본격적으로 활동한다고 준비는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영혼인 다진은 연습은 꼬박꼬박 오면서도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는지 바빴다.
뚱한 얼굴로 휴대폰을 들어 다진에게 전화한 가영의 고개가 기울었다.
“안 받는데?”
“연습 시간에는 늦은 적 없는데.”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다진은 평소에는 언제 왔다가 언제 갔는지 모를 만큼 잘 사라졌지만, 일에는 철저했다.
그만큼 연습 시간에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었고.
그런 그가 보이지 않자, 세비는 걱정스러웠다.
“얘는 어딜 간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기가 무섭게 연습실 문이 벌컥 열렸고, 어딘가 짜증이 가득 묻어나는 얼굴의 다진이 들어왔다.
“뭐야, 왜 전화 안 받아.”
“무슨 일 있었어?”
키스와 세비의 말에 대꾸도 없이 가까이 다가와 털썩 앉은 다진.
“아, 진짜 너희 뭘 하고 다닌 거야?”
“우리? 왜?”
“웬 미친놈이 갑자기 달려들어서 도망친다고 진 다 뺐잖아.”
“달려들었다고?”
그제야 세비는 다진의 몰골이 평소보다 후줄근하다는 걸 눈치챘다.
다진은 전날 지인들과 술을 퍼먹느라 평소보다 조금 늦잠을 잤다고 했다.
이 부분을 들은 세비는 일단 다진의 등짝을 후려쳤다.
술 좀 작작 먹으라고.
욱신거리는 등을 부여잡고 끙끙거리던 다진은 어서 이어서 말하라는 키스의 압박에 한숨을 내쉬며 설명했다.
회사 근처에 있는 지인의 집에서 잠들었던 터라 후다닥 뛰었다고 했다.
택시를 타기보단 뛰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면서.
가로지르는 골목을 요리조리 뚫고 회사에 거의 다 왔을 때.
뒤에서 ‘반다진 씨’하고 부르는 목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고 했다.
반다진 맞냐는 말에 또 기잔가 싶어 아니라고 손을 휘휘 저으며 다시 길을 가려던 그때.
자기를 불렀던 사람이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고, 작정한 듯 으슥한 골목 쪽으로 밀어붙였다고 설명을 이어갔다.
그 와중에 상대 손에 무기가 없다는 걸 확인한 다진은 상대방을 밀치고 재빨리 회사 쪽 대로로 뛰어왔다는 말로 설명을 끝냈다.
“살다 살다 갑자기 그렇게 대놓고 시비 거는 새끼는 처음 봤다, 진짜.”
“신고는?”
“신고할 틈이 어딨어. 그냥 냅다 달렸구만.”
심각한 얼굴을 한 세비는 최근 멤버들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안 되겠어. 경호 인력 부르자.”
“우리끼리도 대충 커버할 수 있잖아.”
“미친놈아, 너는 공인이란다.”
“공인이면 누가 때려도 그냥 맞아야 하냐?”
“네가 때리거나 맞을 필요 없이 개인 경호를 부르면 되지. 뭐 하러 사서 고생해.”
가영도 키스도 세비도 어지간한 상대라면 제압할 자신이 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해왔기에 어설픈 사람보다는 나으니까.
하지만 다진은 그런 쪽으로는 영 젬병이었다.
몸 쓰는 건 어떻게 된 게 제대로 하는 게 없으니까.
게다가 직접 주먹다짐하는 건 여러모로 좋지 못하다.
이미 생각 정리를 끝낸 세비는 단호하게 가영의 반발을 막아섰다.
“무엇보다 안전한 게 최고야. 안돼. 너희 한동안 어디 가지 말고 숙소랑 회사만 오가. 반다진, 너도 우리랑 같이 숙소로 가고.”
“아, 왜. 나 그냥 집에 갈래.”
다진은 질색하며 세비를 바라봤지만, 세비의 미소가 점점 진해지자 금방 얌전해졌다.
화난 세비는 누구보다 무서웠으니까.
“신고는?”
“일단 해두긴 할 건데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네.”
데뷔 초, 사생들에게 시달릴 때도 경찰에 신고했지만 크게 도움을 받지 못했다.
덕분에 멤버들 사이에서 공권력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을 뚫을 기세였다.
“대표님이랑 얘기 좀 하고 올게.”
길게 한숨을 내쉰 세비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멤버들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있어. 괜히 쫓아와서 일 크게 만들지 말고.”
“그래도 내가 당사잔데 나도 같이 가는 게 낫지 않아?”
“그럼 다진이만 따라와.”
애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들다고 생각한 세비는, 금방 회복해서 낄낄거리는 다진을 보며 한숨 쉬었다.
회복이 빨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저 정신머리로 세상을 용케 잘 살아 있다고 해야 할지.
세비는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애써 꾹꾹 눌렀다.
이건, 일이다. 일.
* * *
포잉은 지환과 언래블의 안전이 어느 정도 확보된 후, 타락한 요정의 뒤를 캐고 있었다.
여진우가 사고당했던 곳을 찾아보았고, 새벽의 뒤를 쫓았다.
지환은 멤버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마음의 짐을 덜었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해코지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전부 떨쳐내지 못한 듯했다.
그것조차 지환이기에 포잉은 이해했다.
지환과 함께 하면서 어설픈 자신의 잣대로 상대방을 재려 했던 과거에 비해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제 포잉은 지환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지환은 전생의 기억 때문에 자신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조차 잘 모른다.
그나마 지금 삶을 살면서 새로운 사람들의 애정 속에서 파릇하게 싹을 틔우고 있을 뿐.
다만, 그만큼 지인들의 사건·사고에 많이 좌우됐다.
마음 쓰는 것은 기특하고 장한 일이나, 그 책임이 저에게 있다고 속을 썩이는 건 슬픈 일이다.
포잉은 장로들과 포포를 통해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그 덕분에 타락한 요정이 누군지, 어떻게 처벌받았던 것인지 대부분 안다.
포포가 오래도록 괴로워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 인간의 이기심으로 너무 많은 존재가 고통받고 있었다.
포포는 포잉에게도 고맙고 소중한 존재다.
포잉이 아주 어린 요정일 때부터 그를 지키고자 동서분주한 포포를 기억한다.
요정계의 숲을 헤집어놔서 엉망이 됐을 때도, 수업을 땡땡이치고 놀러 다녔을 때도.
늘 포포가 다른 요정들을 다독였다.
그만큼 포포에게 몰아서 혼나긴 했지만.
“이상하단 말이지.”
포잉은 직접 개입할 수는 없기에 최대한 여러 정보를 모아 장로들에게 넘겼다.
포잉에게 허락된 건 계약자에게 직접 해를 끼친 존재에 대한 대응이지, 그 주변은 포함되지 않는다.
공정한 때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만일 소원 요정과 계약한 계약자를 해치기 위해, 그 주변에 해를 끼치는 것이 있다면 장로나 상급 요정이 처리해야 했다.
그것도 인간들의 이익을 위한 다툼엔 끼어들 수 없다.
이번 일처럼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렇기에 포잉이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흔적을 쫓고, 보고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여진우와 새벽 사건 모두 다른 존재의 개입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는 건 전부 사람이 한 짓이라는 뜻.
포잉은 타락한 요정을 만나면 직접 대응하기 위해 늘 기감을 예민한 상태로 유지했다.
직접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지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요정의 흔적은 경환의 꿈을 끝으로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구나.”
포잉은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지환이 아름답다고 칭찬했던 눈동자에서는 냉기가 흘러나왔고, 꼬리는 빳빳하게 섰다.
소원 요정의 강함은 형상의 크기에서 나오지 않는다.
장로 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은 새하얀 고슴도치 모습을 한 장로였다.
포포조차 그 장로 앞에서는 얌전했으니까.
게다가 여우 모습을 한 히노도 포포보다 강했다.
지환은 포잉이 작아서 약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지만, 포잉은 동기 중에서도 특출나게 강한 편이다.
타락해서 형태도 제대로 유지 못 하는 요정이라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쯧.”
하지만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포잉이 직접 손댈 수 없으니까.
타락한 요정의 꼬리라도 잡으면 당장 쫓아가 물어뜯을 작정이었지만, 이러면 포잉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바닥을 꼬리로 탕탕 내리치던 포잉.
그때, 포잉 앞에 히노가 나타났다.
“아가, 잠시 나와 가야겠구나.”
“네? 무슨 일 있어요?”
“흐음, 큰일은 아니니 안심하거라. 너도 알아야겠다 싶어서 부른 거니까.”
히노는 언제나처럼 느긋해 보였고, 상냥하게 웃고 있었다.
포잉이 고개를 끄덕이자 히노는 포잉의 머리에 앞발을 얹었고, 그 순간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고급 대형 주택의 형태를 한 집은 그 대문에서부터 불길한 기운을 뿜어댔다.
“여긴?”
“그 인간이 살던 곳이라더구나.”
느긋한 히노의 발언과 달리 포잉은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은 평범한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내가 한차례 정리했으니 괜찮다, 아가.”
“정리한 게 이런 상태라고요?”
다른 말 없이 털이 바짝 선 포잉을 한차례 다독인 히노는 망설임 없이 대문을 통과했다.
그렇게 들어선 집안은 고요했다.
이런 저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리인조차 없었다.
생기라고는 한 줌도 느껴지지 않는 공간.
적당히 호화롭게 꾸며진 거실을 지나 이 층으로 훌쩍 뛰어 올라간 포잉은 속이 역해졌다.
그만큼 이 집안에 감도는 기운들은 음산했다.
“나중에 한번 우리가 손볼 생각이긴 하지만, 오래 있어 좋은 곳은 아니지.”
“도대체 그 여자는 여기서 뭘 한 거예요?”
평범한 인간은 이 집에 들어서지도 못할 테고, 들어온다 쳐도 오래 버티지 못할 곳이었다.
포잉은 그 여자가 이전에 저지른 죄는 알지만, 이번 생의 죄를 다 알지 못했다.
돈을 뿌려 사람을 사고 지환의 주변을 파먹어가고 있다는 것만 안다.
어떤 무식한 짓을 저지르면 집이 이 지경인가 싶어 당혹스러워하는 포잉.
히노는 그 모습에 씁쓸히 웃으며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여자는 우리가 조각낸 유리의 혼 조각을 찾아다닌 모양이더구나. 기어코 조각을 찾으면 혼을 뽑아내 본체와 합쳤고.”
“뽑아냈다고요?”
포잉은 히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다.
무언가로 환생해 살아가고 있는, 아무것도 모르는 조각난 혼을 현재 육체에서 뽑아낸다는 것.
당연히 육신에서 혼이 빠져나가면 그 육신은 죽는다.
“108조각.”
“네?”
“우리가 조각낸 유리의 혼 조각이니라.”
“설마 그걸 다…?”
“확인된 것만 53조각이니, 적어도 그만큼이라는 게지.”
소원 요정이었던 혼이었기에 제일 작은 미물로는 태어나지 않는다.
업을 씻어야 하니 적어도 동물이나 사람이다.
“명계에서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하더구나. 혼을 담을 구슬도 준비되었다.”
“예상보다 더 지독하네요….”
지난했던 사건이 이제 곧 처리된다는 사실은 무척 다행이지만, 포잉의 마음은 더 심란해졌다.
“이 집 지하에는 제단까지 꾸려놨더구나.”
히노는 이치카가 어떻게 혼을 뽑고, 유리의 본체에 이어 붙였는지 이 집에 와서 전부 파악했다.
“네가 이곳으로 너를 데리고 온 것은….”
히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극단적인 관계의 끝에 이런 비참하고 참담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포잉은 히노의 말에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