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413)화 (413/456)

413. 괜찮아도 괜찮아(3)

[전 이번에 촬영하면서 환이가 어쩌면 초능력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언래블 스토리 미션이 업로드되자마자 솜뭉치들은 버릇처럼 바로 영상을 눌렀다.

평소와 다른 전개 방식에 머리 위에 물음표를 떠 올린 솜뭉치들.

화면에는 어딘가 초췌해 보이는, 하지만 눈을 똘망똘망하게 빛내는 찬이가 있었다.

[어떻게 그걸 다 알아맞히는지 진짜 신기해요.]

찬이가 지환에 대해 무어라 짱알거리다 다음은 경환으로 넘어갔다.

[평소에도 저희 말을 되게 잘 알아듣는 편이긴 한데, 이번에는 정말 신기했어요. 역시 내 동생 최고다.]

경환의 얼굴에도 이상한 뿌듯함과 신기함이 함께 어려있었다.

그렇게 멤버들이 한 명씩 지나가면서 지환의 신기했던 모습을 하나씩 읊었고, 마지막으로 하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작진이 ‘지환 군이 이번에 큰 활약을 했죠?’ 하고 묻자, 하준은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어찌나 상큼하고 유쾌하게 웃던지 보는 솜뭉치들도 같이 웃고 있었다.

청량한 미소 하면 역시 민하준이지 하면서.

[아, 다시 생각해도 너무 어이없고 신기해서 웃어버렸네요. 네, 지환이가 정말, 음. 대단했죠.]

어딘가 아련한 얼굴로 장면을 떠올리는 듯 허공을 잠시 바라보던 하준.

다시 카메라를 응시하며 싱긋 웃었다.

[솜뭉치들도 보면 신기할 거예요. 기대해도 좋아요.]

그렇게 인터뷰 영상이 지나가고 본 영상이 시작되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스튜디오 안에 일렬로 예쁘게 앉아있는 언래블.

오늘은 개구쟁이 콘셉트인지 다들 알록달록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힘찬과 세빈이는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세빈이는 조금 부끄러웠던 건지 자꾸 다리를 만졌다.

경환이 슬쩍 세빈이 다리를 툭 치니까 파드득 놀란 세빈이 기어코 경환의 등짝을 때렸다.

[얘들아, 인사하고 시작해야지]

[네엥….]

[네!]

다정한 하준의 목소리에 부산스럽던 멤버들이 자세를 가다듬고 앉았다.

품에 쿠션을 끌어안고 있던 지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좌우에 있는 경환과 세빈을 챙겼다.

옷매무새를 정돈해주고 무어라 귀에 속닥거리자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왜 셋이서 귓속말해요? 나 서운해, 따돌리는 거야?]

힘찬이 그런 모습에 불퉁하게 투덜거리자 세빈이 혀를 날름거렸다.

[메롱이네요]

[유치해. 메롱이 뭐냐, 메롱이]

[응, 난 유치해도 되요. 아직 17살이라]

당당하게 유치하겠노라 말하는 막내의 모습을 힘찬은 기막히다는 듯 바라보다 영빈을 붙들고 징징거렸다.

[둘째 형, 막내가 놀려! 괴롭힌다고! 혼내줘!]

[제발 얌전히 있어, 촬영 중이잖아.]

영빈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찬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 난장판을 앞에 두고도 하준은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 웃었다.

이런 풍경이 이제는 모두에게 익숙했다.

가끔 방송에 출연할 때는 얌전히 있던 멤버들이 이렇게 자체 콘텐츠에서는 자유분방해서 더 좋았다.

한결 편안해 보이는 언래블의 모습에 팬들이 자체 콘텐츠를 더 좋아하기도 했고.

[자, 저기 소란은 그냥 무시하세요. 이제는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냥 배경 같은 거죠.]

[조용한 힘찬이가 더 적응 안 되죠.]

하준과 지환은 서로 말에 수긍하며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투덜거리던 힘찬은 그사이 마음이 풀린 건지 영빈과 무언가 속닥거리며 히히 웃고 있었다.

어느 집 똥강아지가 저렇게 휙휙 바뀌냐며 솜뭉치들도 피식거리며 웃었다.

저렇게 장난기 넘치는 애들이 무대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연습할 때는 어떤 모습인지 너무 잘 알았다.

가끔 올라오는 연습 영상은 단순한 안무 영상과 달랐다.

그 10분가량의 영상은 실제로 언래블의 연습 장면을 촬영한 것이라 했다.

영상 속 언래블은 짧은 구간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손끝, 발 위치, 시선 처리, 웨이브 등 온갖 동작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땀을 뚝뚝 흘리면서도 진지한 얼굴로 연습하는 모습.

그러다 곡이 끝나면 그대로 무너지듯 자리에 주저앉아 헉헉거리는 멤버들.

그 짧은 틈에도 연습 힘들다고 투덜거리기보다는 너무 못하는 모습을 팬들이 보는 건 부끄럽다 했다.

조금 더 잘하게 되면 찍자고 촬영팀에 조르는 모습도 있었다.

어느 날 막내는 조용히 카메라 쪽으로 와서 지금은 연습이 부족해서 덜 예쁘다고 나중에 꼭 완성 무대를 봐달라고 속삭였다.

솜뭉치들 보기에는 지금도 이렇게나 훌륭한데 언래블 눈에는 마냥 어설프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남의 연습 영상이었다면 10분 동안 이런 걸 보고 있을 리 없건만.

[그래서 오늘은 뭘 하기 위해 모인 거예요?]

[또 이상한 거 하는 거 아니죠?]

낭랑한 막내 목소리에 찬이가 의심 섞인 목소리로 질문을 더 했다.

그동안 제작진에게 당한 게 워낙 많았던 터라 언래블은 제작진을 믿지 않는 것.

[저희는 언제나 언래블이 즐거울 수 있는 게임을 드렸잖아요.]

[저희보다 제작진과 솜뭉치들이 즐거웠던 것 같은데요….]

영빈이 한숨 같은 목소리로 말하자,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은 다음 게임을 위한 가벼운 몸풀기 게임을 할 겁니다. 이번 게임에서 점수를 많이 받은 팀이 당연히 유리할 거고요.]

[도대체 또 뭘 하려고 이러시는 거예요….]

제작진이 무척 신난 게 목소리만으로도 느껴졌다.

그 모습에 불안감을 느낀 지환이 물었지만, 제작진은 모른 척 설명을 이었다.

지환이 환장하겠다는 얼굴로 가슴을 두드리자 경환이 그런 지환의 등을 토닥였다.

어차피 이러는 거 하루 이틀 아니니 포기하면 편하다면서.

시종일관 홀로 태연한 경환과 웃고 있는 하준.

그 둘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한 팀 안에서도 이렇게 다들 성격이 달라서 반응도 다양했다.

이어진 설명에 따르면 오늘의 게임은 흔히들 알고 있는 ‘고요 속의 외침’ 같은 게임이었다.

주어진 단어를 순서대로 전달하다 마지막 주자가 맞추면 정답으로 인정되는 그 게임.

첫 번째 몸풀기로는 이만한 게임도 없다는 제작진의 목소리에 지환이 또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 가위바위보로 팀을 나누더니 팀끼리 나란히 서서는 신경전을 벌였다.

이번 팀명은 앨범에서 따왔다며 보름달과 그믐달이 되었다.

그믐달 팀은 우리가 그믐달이니 당연히 솜뭉치들은 자신들을 응원할 거라 의기양양했다.

한편 보름달 팀은 지환이 자기 팀이니 자기들이 이길 거라며 어깨를 쭉 폈다.

지환은 운이 좋은 편인지 여태까지 지환과 한 팀이 된 곳은 대부분 게임을 이겼다.

언래블이 행운의 토템이니, 걱정 인형이니 하는 말이 아예 빈말은 아닌 듯했다.

중간에 낀 지환만 내가 다 부끄러우니 제발 조용히 하라고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길고 곧은 양손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멤버들은 그렇게 열심히 먹이더니 자기는 안 먹는 걸까?

얼굴은 또 왜 저렇게 작은지.

이윽고 제작진이 제시어가 적힌 스케치북을 그믐달 팀의 주장인 영빈에게 내밀었다.

헤드폰을 쓴 멤버들은 흘러나오는 노래가 흥겨웠는지 몸을 움찔거렸다.

한구석에 쪼르륵 앉아 그 모습을 구경하는 보름달 팀원들은 혀를 찼다.

[저렇게 집중을 못 한다니까.]

[흉하다, 흉해.]

무슨 노래길래 저렇게 자꾸 움찔거리나 싶은지 궁금한 눈치였다.

영빈이 힘껏 외쳐도 자꾸 엉뚱한 단어를 말하는 힘찬.

그 와중에 힘찬의 밝은 얼굴에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하는 영빈.

긴장한 눈으로 힘찬을 바라보던 세빈은 유심히 힘찬의 입 모양을 봤다.

[기러기!]

[거머리?]

영빈이 처음 말한 단어는 귀마개였는데 어쩌다 거머리가 되었을까.

그 광경을 지켜보는 보름달 팀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정도로 흐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당당한 힘찬의 태도에 몇 번이나 되묻던 세빈이는 결국 거머리를 외쳤다.

외치면서도 거머리를 상상한 건지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 상황이 반복되면서 결국 그믐달 팀은 하나도 맞추지 못했다.

게임이 끝나고 헤드폰을 벗은 세빈은 도대체 정답이 뭐냐고 영빈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단어를 확인하더니 힘찬의 어깨를 팍팍 때리며 외쳤다.

[다 틀렸잖아! 왜 귀마개가 거머리가 되는데!]

[아, 아파! 거머리라고 안 했어! 기러기라고 했어!]

[그나마 비슷한 게 부채였네. 그건 그래도 부추라고 했잖아….]

그 와중에도 영빈은 막내들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그렇게 자기들끼리 환장하고 있는 그믐달 팀에 다가간 보름달 팀은 여유만만한 얼굴이었다.

[잘 봤다, 니들 꼬라지.]

[도대체 무슨 노래가 나왔길래 자꾸 멈칫거렸어?]

경환은 어깨를 쫙 펴고 막내들을 놀려대느라 바빴고, 하준은 노래를 물었다.

노래 이야기가 나오자 투덕거리던 그믐달 팀 모두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제작진 진짜 못됐어….]

[수능 금지곡이랑 우리 노래랑 섞어놨더라.]

[아….]

그 순간 모든 멤버의 얼굴이 숙연해졌다.

잠결에도 출 정도로 연습하는 자기들 곡은 머리가 기억하는 게 아니라 몸이 기억한다.

그렇게 해야 노래만 들어도 자동 반사처럼 춤이 튀어나오는 경지에 다다를 수 있으니까.

노래의 정체를 알게 된 보름달 팀은 금방 태연한 얼굴을 했다.

[뭐, 오늘은 춤을 맞추는 게임은 아니니까.]

[너희 팀을 보고 느꼈어. 이건 순서가 중요해.]

[해봐, 그렇게 쉽지 않다니까?]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씩씩하게 자리에 선 보름달 팀.

첫 번째는 경환이었고 두 번째가 하준, 마지막이 지환이었다.

[쟤네 못 맞추게 방해하자!]

[페어플레이 정신 몰라요? 도대체 형이 돼서 동생 앞에서 부끄러운 줄을 몰라.]

[야, 이기는 게 중요하지. 이거 이겨야 다음 본게임에서 더 유리하댔잖아.]

어딘지 모르게 불안함을 느낀 힘찬은 슬그머니 일어나려다 세빈에게 한 소리 들었다.

제시어는 그믐달 팀과 마찬가지로 세 개의 단어였다.

하지만 진행되는 모습은 두 팀이 사뭇 달랐으니….

[주머니!]

경환의 목소리가 그렇게 클 수 있다는 걸 멤버들은 그날 처음 알았다.

우렁찬 목소리가 콘서트 때 마이크 들고 외치는 것처럼 쩌렁쩌렁 울렸다.

[쟤는 저런 성량을 숨기고 있었다고?]

[숨겼다기보다 그냥 힘껏 내지른 거 같은데?]

영빈이 중얼거리자, 힘찬이 경환을 가리켰다.

경환은 얼굴이 붉어지고 목에 핏줄이 올라올 정도로 있는 힘껏 외치고 있었다.

[우리도 열심히 했는데 쟤가 저러니까 우리가 대충 한 것 같잖아….]

영빈이 한숨 섞인 걱정을 늘어놓자 세빈은 영빈을 토닥이며 힘찬의 옆구리를 비틀었다.

[이게 다 혼자 자신만만했던 찬이 형 때문이니까 괜찮아, 형.]

[그냥 다 나 때문이야?]

[응. 형, 너 때문이야.]

새침하게 말하는 세빈과 입을 댓 발 내밀고 부루퉁해진 힘찬.

영빈은 둘을 달래기 바빴고, 보름달 팀은 자기들끼리 외치느라 바빴다.

[주머니…?]

자신 없다는 듯 지환에게 말하는 하준.

고개를 갸웃거리다 또박또박 한자씩 말해나갔다.

그런 하준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환이 담담한 얼굴로 답을 읊었다.

[주머니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굳은 그믐달 팀.

[?]

[저걸 맞춘다고?]

[제작진 혹시 쟤네는 노래 볼륨 낮춘 거 아니에요?]

제작진도 당황한 듯 아니라며 열심히 엑스자를 그렸다.

똑같은 볼륨, 똑같은 랜덤 플레이리스트인데 저걸 맞추네?

경환이 열심히 외쳐서 하준이 잘 들었다면 거기까지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로 하준도 긴가민가한 얼굴로 ‘주머니’라고 외쳤으니까.

하지만 지환은 몇 번 듣지도 않고 그저 뚫어져라 하준을 바라보다 답을 맞혔다.

그리고 게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으니.

지환은 게임 내내 주어진 제시어를 모두 맞히고 말았다.

심지어 중간에 하준이 잘못된 단어를 말했음에도.

그렇게 게임이 끝나고 신기했던 제작진과 멤버들이 지환을 둘러싸고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그게 들렸어?]

[그냥 준이 형 얼굴 보고 알았어요.]

이게 왜 신기하냐는 듯 되려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지환을 보고 모두가 더 의문에 빠졌다.

멤버들이 지환을 혼자 두고 몇 가지 단어를 더 시도해 보았지만, 지환은 그마저도 남김 없이 맞췄다.

[그러고 보면 쟤는 평소에도 찬이 말도 다 해석하잖아.]

[그러게? 뭔 소린지 우리끼리 못 알아들어도 환이는 다 알아먹잖아.]

[하긴. 지환이면 그럴 만하네.]

[왜 이야기가 그렇게 돼요?]

어느 순간 이해한 멤버들과 홀로 이해하지 못한 지환.

영상을 흥미진진한 얼굴로 지켜보던 솜뭉치들도 멤버들의 이야기를 듣고 왜인지 모르지만 수긍했다.

그리고 그날 그 영상의 베스트 댓글은 이 글이었다.

- 그러고 보면 아기 옹알이도 엄마는 다 알아듣잖아. 우리 작은환, 엄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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