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82)화 (382/456)

382. 가자(6)

‘괜찮겠음?’

‘응. 뭐, 스킬 안 쓰기로 맹세한 것도 아니고.’

일부러 약속 시각보다 먼저 가게에 왔다.

휴이의 평소 표정은 어떨까 싶기도 했고, 일상의 풍경도 보고 싶었고.

포잉은 휴이에게 스킬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조금 후 일행이 오면 주문하겠다고 직원분께 말씀드리고 느긋한 마음으로 포잉을 쓰다듬었다.

스킬은 종종 쓰고 있었지만, 포잉은 여전히 내가 못 미더운 모양이었다.

나보고 매일 언제 크냐고 푸념하는 귀여운 우리 포잉.

그럴 때마다 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과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싸운다.

마지막 날까지 함께 할 거라고는 했지만, 다 커버리면 포잉이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늘 남아있다.

작고 소중한 보호자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여전히 어리광부리고 싶은 마음.

뚱한 포잉의 표정이 귀여워 웃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왔다.’

나보다 조금 더 크고, 어깨가 약간 굽은 익숙한 모습이 가게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스크에 얼굴 대부분이 가려졌지만 어두운 분위기는 충분히 느껴졌다.

무슨 걱정이 저리 많은지 몇 걸음에 한 번씩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크게 숨을 내쉬는 모습이 누가 봐도 고민 많은 사람이었다.

“쯧…. 늙겠다, 늙겠어.”

저렇게 세상 근심 걱정 다 떠안은 사람처럼 굴다가도 들어와서는 또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을 두드리는 무거운 걸음이 들렸다.

머릿속으로 평소 휴이의 걸음이 떠올라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반겨주었다.

눈이 마주치자 천천히 번지는 미소.

휴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척.

그렇게 소소하게 일상을 이야기하며 음식을 주문하고 식사를 이어갔다.

하지만 휴이는 숙소에서의 일이나 멤버들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진작에 리우 형이 뭘 했고, 레노와 자인이 어떤 사고를 쳤는지 이야기했을 텐데.

리우 형이 왜 자신에게 부탁했는지 직접 얼굴을 마주하니 알 것 같았다.

숨기려 하지 않았다.

부탁받은 것도, 내가 그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도.

어설프게 감추려다 반발심만 더 커질 것 같아 그냥 솔직하게 툭툭 말을 꺼냈다.

그렇다고 다 털어놓으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가끔은 말해보라고 닦달하는 것보다 그냥 말하고 싶어지게 두는 게 낫다는 걸 영빈 형을 통해 배웠다.

준이 형은 잘못한 건 다 털어놔야 할 것 같은 분위기고, 영빈 형은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려 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나는 맏형들에게 두 가지를 모두 배운 훌륭한 제자였다.

게다가 왜 묻지 않냐는 휴이 얼굴은 이미 울상이었기에 더 두드리지 않기로 했다.

그저 너와 밥 한 끼 먹고 싶었다는 내 말에 눈가가 촉촉해진 휴이.

휴지를 밀어줘야 하나 장소를 옮기자고 해야 하나 고민하던 사이, 휴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건 좀 그렇지? 나가자.”

“그래.”

별다른 말 없이 휴이의 등을 쫓아 걸었고, 우리는 편의점에서 탄산수를 사 들고 계속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인적이 드문 외딴 산길에 놓인 벤치에 도착하자 당장 드러눕고 싶어졌다.

“아이고, 밥 먹자 그랬더니 등산을 시키네.”

“넌 진짜 너무 운동 부족 아냐?”

“시끄러, 인마….”

지친 내가 벤치에 허물어지듯 드러눕자, 멀쩡한 얼굴을 한 휴이가 비웃어댔다.

“머리가 복잡하면 한 번씩 여기 와.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고, 뭔가 남들은 모르는 아지트 같다고 해야 하나.”

걷어찰 기운도 없었기에 의자에 기대 숨을 고르며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우리가 너희 되게 좋아하는 거 알지?”

“모르겠냐?”

휴이 목소리가 조금 떨렸던 것 같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면서도 여전히 자기 팀을 생각하는 휴이.

무의식중에도 ‘내가’가 아니라 ‘우리’라고 말하는 저 순둥이가 왜 저렇게 된 걸까.

‘너의 목소리가 들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되도록 쓰고 싶지 않았던 스킬.

하지만 오늘은 사용하기로 처음부터 마음먹고 왔다.

“실장님이 너희에 관해서 자주 물었었어.”

“응.”

“자꾸 너희 평소 일상을 캐묻더라고.”

[그런 새끼가 실장이라고….]

겉으로는 최대한 덤덤하게 본인 회사의 실장이 자신들을 압박했다고 말하는 휴이.

하지만 그 실장이라는 사람에 대한 분노가 어지간히 컸던지 온갖 욕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예쁜 말 고운 말 쓰라고 그동안 잔소리를 좀 했더니 이렇게 밖으로 나오는 말과 속의 말이 달랐다.

내 참, 이런 깜찍한 자식이 있나.

“진짜 그냥 일상 얘기만 했는데 점점 노골적으로 너희 속사정을 묻더라고.”

미간을 찌푸린 채 못난 어른에 대한 분노를 가슴에 꾹꾹 눌러 담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리우 형이 철벽 치긴 했어. 레노나 자인이도 나랑 형이 단속했고.”

“고생했네. 잔소리 심했을 텐데.”

[미안해….]

휴이는 어른들의 사정에 휘둘려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지쳐있는 듯했다.

아까까지는 마주 보고 실실 웃던 놈이 지금은 눈도 못 마주치고 있는 게 어찌나 안쓰럽던지.

“어딜 가도 너희랑 비교하더라. 라이벌이니, 누가 이기니….”

[지랄 맞아서 진짜]

우리는 늘 평가받는 자리에 서야 했고, 사람들의 시선과 대화 사이를 둥둥 떠다녀야 했다.

웃으면서 칼을 찔러넣는 사람을 걸러내는 능력을 길러야 하고, 재빨리 도망치는 능력도 필요했다.

그저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과도 매일 매일 경쟁해야 한다.

언래블도, DCL도 그런 경쟁 끝에 데뷔한 사람들이니까.

사람이 사람으로 안 보이고 신경 줄이 닳아 없어지는 날들.

일 년이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는 빛보다 빠르게 흘렀고, 누구에게는 진창에 빠진 것처럼 느리게 흘렀다.

나에게는 전자였고, 휴이에게는 후자였던 모양이었다.

“레노랑 자인이는 너무 어리고 리우 형은 늘 혼자 다 짊어지려고 하고. 그걸 지켜보고 있는 게 너무 답답해.”

한숨처럼 가느다란 목소리가 가슴 깊이 꾹꾹 눌러놓느라 돌처럼 굳어버린 마음을 꺼내고 있었다.

“뭐라도 해보려고 마음먹으면 뭐하냐?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훨씬 많은데.”

[부러워. 우리도 ON 엔터에서 데뷔했다면….]

나는 별다른 대꾸 없이 그저 마음속 돌덩어리를 끄집어내는 휴이를 지켜봤다.

가끔은 그냥 누가 들어만 줘도 마음이 덜 무거워지니까.

아까까진 햇볕이 뜨거웠는데, 그늘 덕분에 다가오는 바람이 제법 시원했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조금씩 보이는 장난감 같은 건물들.

나무 그날 아래 두 번째 19살을 보내는 나와 처음 19살이 된 휴이가 있었다.

나는 너무 느려서 두 번째 생을 살면서 간신히 자라고 있었고, 휴이는 너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다.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던 휴이의 목소리가 멈추고, 어색하지 않은 침묵이 자리했다.

미지근해진 탄산수병을 손안에서 굴리는 휴이는 조금 후련해 보이기도 했고, 후회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진짜, 못났다. 나]

그런 모습을 빠짐없이 지켜보던 나는 우리 애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늘 투덜거리면서도 걱정을 숨기지 못하는 누나, 우진 형, 소현 팀장님, 정윤 실장님.

늘 의지할 수 있게 품을 내주는 새벽 형들, 진우 형.

많은 가르침으로 나를 채워주고 있는 트레이너 쌤들, 에단 쌤, 미연 선생님, 진성 형님.

가끔은 가볍게, 가끔은 즐겁게 해주는 골든 아워 형들과 멜트 등.

이제는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곁에 있었다.

그걸 나도 제대로 깨닫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애들은 생각보다 빨리 큰대.”

“…?”

그제야 휴이 시선이 내게 다가왔다.

마냥 내가 지켜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멤버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조금씩 나를 채워온 온기를 떼어내어 말로 빚었다.

“난 내가 우리 멤버들을 지킨다고 생각했었어.”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 그지없는 말도 안 되는 생각들.

하지만 그때는 정말 내가 지키고 있는 줄 알았다.

“찬이는 너무 기운차서 말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됐고, 세빈이는 너무 아가라서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

네가 레노와 자인을 걱정하는 것처럼.

고개를 돌려 휴이를 바라보니 정처 없이 흔들리는 눈동자가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슬그머니 웃었다.

“경환 형이랑 영빈 형은 워낙 말을 잘 안 하잖아. 그러니까 오해 사기 쉽고. 준이 형은 사방으로 불려 다니느라 바쁘고. 그 와중에 곡도 써야 하고.”

순하게 눈을 끔뻑거리던 휴이가 쓰디쓴 에스프레소라도 삼킨 것 같은 얼굴을 했다.

그 표정을 본 나는 스킬을 껐다.

“내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래야 살아남을 것 같아서 좀 까불었어.”

조곤조곤 부드럽게 이야기하다 그냥 웃어버렸다.

“그랬는데 어땠냐? 나 때문에 우리 팀은 남들이 평생 겪을 사건·사고를 일 년 사이에 다 겪었어.”

“야, 그게 왜 너 때문이야.”

“나 때문 맞아. 내가 너무 앞뒤 모르고 까불어서 그런 거야.”

“아, 진짜! 왜 말이 또 그렇게 되냐.”

웃으며 털어놓는 속마음에 휴이는 안절부절못하며 내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휴이 손을 다른 손으로 잡아줬다.

“나 때문에 멤버들이 싸워야 했고, 상처받고, 늘 걱정을 안고 산다고 그렇게 생각했었어.”

“…?”

갑자기 단호하게 바뀐 내 목소리에 휴이 눈이 두 배는 더 커졌다.

“근데 봐봐. 너네도 우리랑 똑같잖아. 너희 팀엔 내가 없는데도.”

“응?”

“그러니까 너나 나나 삽질한 거야.”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만 끔벅거리는 휴이 손을 놔주고는 어깨를 잡았다.

“레노랑 자인이가 진짜 모를 것 같아? 리우 형이 버거운지 직접 물어봤어? 당사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

굳이 내 일까지 끄집어내서 휴이의 마음을 흔들어놓긴 했지만, 어차피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거였다.

“우리가 뭐라고 다른 사람들 마음을 재단해. 네가 팀을 위해 한다고 한 것들이 레노나 자인이한테 상처 줄 수도 있는 거야.”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입 밖으로 차마 꺼내지 못한 말까지 다 들은 듯한 얼굴을 한 휴이가 얼굴을 감싸 쥐었다.

내가 먼저 겪었던 문제들을 조금은 과격한 방식으로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저런 상태에서는 어지간해서는 남의 이야기가 안 들리거든.

상황이 다른데도 나와 휴이가 선택한 행동들은 비슷했다.

마른세수하며 한숨을 내쉬던 휴이는 입술만 뻐끔거리다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다행이야. 너는 나처럼 쪽팔리지 않을 수 있게 다 알려주는 친구가 있다는 게.”

“그걸 말이라고….”

천성이 착해빠진, 약지 못한 이놈이 혼자서 얼마나 머리를 쥐어뜯었을지 뻔했다.

부정적인 생각은 늘 빠르게 뿌리를 내리고, 잡초처럼 순식간에 자란다.

그렇게 가슴에 뿌리를 내리고 머릿속 가득 찼을 아프기만 한 생각들.

그것들은 워낙 지독해서 혼자 뜯어내기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그러니 이렇게 한 손 거들어줄 수밖에.

“형한테 가서 사과해.”

“형이 말했어?”

“뭘?”

“싸운 거.”

“아니.”

툭 하고 찔러보니 활어처럼 파닥파닥 잘도 낚여오는 모습에 낄낄대며 웃었다.

불에 덴 듯 펄쩍 뛰며 어떻게 알았냐고 멱살을 붙들고 흔들어대는 모습에 더 신나게 웃어줬다.

“니가 아까 먼저 말했잖아. 왜 안 물어보냐고.”

“아, 진짜!”

부끄러움과 억울함이 뒤섞인 얼굴이 이제야 제 나이처럼 보여서 더 신나게 웃을 수 있었다.

휴이도 이제는 알게 됐으리라.

굳이 어른인 척할 필요도 없고, 빨리 어른이 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야, 다음에는 한우로 사라.”

“넌 먼저 입을 열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

“어차피 밥 또 사려고 했잖아.”

“그 말만 안 했어도 한우를 사줬을 거야.”

고맙다는 말이 낯간지러울 19세를 위해 선심 썼건만, 그마저도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야, 김정우.”

“아, 왜 이름 불러.”

“앞으로 잘해라.”

“꺼져!”

처음으로 불러본 휴이 본명.

붉어진 얼굴로 하지 말라고 버럭거리는 놈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도 종종 놀려먹어야겠다 싶었다.

“찬이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참, 손이 많이 가.”

휴이를 놀려대는 내 모습이 못마땅했던지 포잉이 기어코 한마디 보탰다.

‘너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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