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76)화 (376/456)

376. 중독(Overdose)(4)

경우는 ‘공지환’이라는 사람에 대해 대중들이 아는 만큼 알았다.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조금 더.

여러 소란과 소문의 주인공이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경우의 아내는 예능국 PD.

들려오는 이야기의 질이 달랐다.

새로운 프로그램 편성으로 출연진을 놓고 고민하던 아내의 입에서 들었던 이름이라 경우는 지환을 잊지 않았다.

진성에게 함께 저녁을 먹자고 권했지만, 형수님에게 눈총받기 싫다며 도망갔다.

“짝꿍님, 저 왔어요.”

“오셨어요?”

경우는 밖에서의 카리스마 있는 배우 이미지는 내다 버리고 사랑하는 아내를 찾았다.

“어땠어요? 재밌었어요?”

“응. 애들이 워낙 착해서. 아, 그 언래블 애들도 왔어요.”

경우와 아내인 주희는 방송가에서 워낙 유명한 부부였다.

둘 다 각자의 영역에서 사람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 둘이 어쩌다 눈이 맞아 남몰래 비밀연애까지 하더니 결국 결혼에 골인.

경우는 남들 눈에는 어떻게 보이든 간에 자신보다 작고 귀여운 아내가 소중해서 어쩔 줄 몰랐다.

주희도 배우 이경우가 아닌 사람 이경우가 얼마나 근사하고 귀여운지 홀딱 빠져있었고.

나이 차가 있는 둘은 서로를 늘 존중하자는 의미로 처음 연애하던 때부터 지금껏 말을 조심히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 짝꿍이 궁금해하던 애들이라 살펴봤는데, 소문보다 더 괜찮은 거 같아요.”

“정말요? 안 그래도 한번 요청 넣어볼까 했는데.”

기쁜 듯 눈동자를 반짝이는 아내를 바라본 경우는 진성에게 말을 해두길 잘했다는 생각에 뿌듯해졌다.

주희는 주희대로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자기 말에 신경 써주는 경우에게 무척 고마웠다.

“짝꿍이 좋아하는 김치찌개 끓여놨어요. 씻고 와요, 밥 먹으면서 이야기해요, 우리.”

활짝 웃는 아내의 이마에 입 맞춘 경우는 기쁜 마음으로 씻으러 들어갔다.

촬영 내내 괴롭혔던 생선회에 대한 생각은 이미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씻는 내내 그는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우가 지환의 이름을 꺼내자, 진성은 긴장한 기색을 비쳤다.

늘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동생의 색다른 모습에 장난쳐볼까 했던 경우는 마음을 접었다.

괜히 장난쳤다가 이 고지식한 동생이 삐지기라도 하면 뒷수습이 곤란했다.

경우는 솔직하게 아내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진성에게 전했다.

새로운 작품을 기획 중이라는 말과 함께 신선한 마스크로 언래블을 생각하더라는 말.

회사의 가드가 심하기로 유명해서 고민하던데, 혹시 괜찮으면 고려는 한번 해달라는 말이었다.

진성의 짙은 눈썹이 고민하느라 살짝 꿈틀거렸다.

고민하는 진성의 모습을 본 경우는 그 애들이 정말 괜찮은 애들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진성은 곁을 안 주는 만큼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은 후에는 자신이 줄 수 있는 걸 다 퍼줄 것처럼 구는 사람이니까.

꽤 오래 알고 지내왔고 친하게 지낸 동생이 짧게라도 고민한다는 게 경우는 괜히 더 기분 좋아졌다.

“그 정도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형님.”

“어떤 면에서?”

“지환이한테 들은 대로면 언래블이 곧 새 앨범 준비 들어갈 것 같아서요. 그리고 지환이야 가깝게 지내고 있지만, 다른 애들은 잘 모르거든요. 저보다 진우가 더 친해요.”

이 고지식한 동생은 늘 바른대로만 말한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기도 했고.

“괜찮아, 그냥 출연 프로그램 고려할 때 한 번 더 생각해주는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아내에 관해서도 잘 아는 진성이라 조금 주저했던 것도 없지는 않으리라.

사랑스러운 경우의 짝꿍은 일에서는 매우 엄격한 사람이라는 걸 경우도 모르지 않았다.

그런 똑 부러지는 당당함이 무척 매력적인 사람이니까.

그리고 근거 없는 예감이지만, 경환과 지환뿐만 아니라 언래블 멤버들 모두 아내가 무척 좋아할 것 같았다.

자신이 경환과 지환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것처럼.

“다 씻었어요?”

“아, 금방 나갈게요.”

주방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경우는 다른 생각은 잠시 털어냈다.

일 생각은 잠시 미뤄둬야 할 시간이었다.

* * *

가영은 콧노래를 부르며 마우스를 딸깍거렸다.

지환이 그렇게 질색하고 두 번 다시 들어오기 싫다던 그 작업실.

어두운 조명 아래 히죽거리며 마우스를 움직이는 가영의 얼굴에는 광기를 닮은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아, 진짜.”

잠시 마우스를 놓은 가영은 팔다리를 쭉 펴며 기지개를 켰다.

구부정했던 몸이 곧게 펴지며, 늘씬한 팔다리가 하느작거렸다.

“우리 병아리들은 너무 인기 좋은 게 문제라니까.”

처음 봤을 때부터 침 발라놓은 애들이었는데 점점 눈독 들이는 사람이 늘었다.

역시 가영의 눈에 재밌는 것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다르게 보였나 보다.

가영은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자기 일은 알아서 할 것.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책임질 것.

가영의 집안은 이 두 가지로 돌아가는 집이었다.

아주 살가운 가족들은 아니었지만, 가영은 이 정도가 딱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만큼 가영은 모든 일에 있어 책임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굴었다.

학창 시절에는 정도가 더 심했지만, 다행히 세율, 그러니까 세비가 늘 목줄을 잡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동네 친구인 터라 가영에게 벗어나지 못한 세율.

지금도 종종 세율은 어릴 때 이사하자고 부모님을 졸랐어야 한다고 신세 한탄을 했다.

윤혁도 비슷한 케이스였다.

촉이 좋은 윤혁은 가영과 가까이 있는 게 이롭지 못하다는 걸 눈치채자마자 빠르게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윤혁은 세율을 무척 잘 따르는 착한 동생이었다.

그리고 가영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세율을 통해 윤혁을 붙잡았다.

덕분에 지금까지 가영의 손아귀에서 괴로워하고 있었고.

원래 둘 다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처음이 어려웠지, 그 후로는 착착 잘 진행되었다.

가영은 어릴 때부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쳤다.

처음 음악에 도전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세율과 윤혁, 이제는 새벽의 세비와 키스가 된 그 둘의 불행은 가영의 음악적 재능이 무척 뛰어나다는 데 있었다.

멱살을 잡고, 주먹질하고 싸우다가도 욕을 하면서도 돌아보게 할 만큼 가영의 음악은 윤혁의 취향이었다.

그렇게 우당탕거리며 ‘새벽’이라는 그룹이 만들어지고 여태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지내왔다.

워낙 괴짜들이 넘치는 동네라 그런지 가영의 또라이 기질까지 매력으로 쳐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에너지음료를 한 캔 다 비운 가영은 빈 캔을 쓰레기통에 던지며 건반을 무성의하게 두드렸다.

뚱땅거리는 소리와 함께 의미 없는 흥얼거림.

그러면서 처음 병아리들을 만났던 시간을 떠올렸다.

지금에 비하면 마냥 앳되기만 하던 애들의 호기심 반 걱정 반의 눈동자가 선명했다.

그중에 유독 빛나던 작은 애가 있었다.

처음에는 우물쭈물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더니 금방 전구를 켠 것처럼 얼굴에 빛이 났다.

곡을 준 건 순전히 충동이었다.

은혜도 갚을 겸, 재밌어 보이는 일이라 툭 던진 거였는데 생각보다 곡이 잘 나왔다.

그걸 또 넙죽 잘 받아먹는 애들이 신기하기도 했고.

무서워하고 경계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톡톡 건드리면 파드득 즉각 반응이 쫓아왔다.

그 와중에 음악 얘기를 나눌 때면 무서워하던 건 어디 가고 6명 모두 반짝거렸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싶었는데 어느새 그 병아리들한테 물들어버렸다.

가영뿐만 아니라 세율도, 윤혁도 그 조그만 병아리들이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훤했다.

자신들은 아닌 척했지만, 가영이 그들을 하루이틀 본 것도 아니고.

의미 없는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최근 1년의 추억을 뒤적거렸다.

금방 넘어질까 싶어 지켜보면 기어코 제자리를 찾아가는 오뚜기.

솜사탕처럼 달콤하기에 거친 비바람에 녹거나 날아가 버리면 어쩌나 했더니 유리 상자 안으로 잘 도망갔다.

본능적으로 피아를 구분하고 선 안과 밖을 구분 지으며 살던 가영에겐 지나치게 자극적인 동생들이었다.

자꾸 호기심을 자극하니 톡톡 건드릴 수밖에 없게 생겼다.

어떻게 하나같이 그렇게 재밌는 애들만 모였는지.

그런 구성으로 사람을 모은 소현 팀장이 대단해 보였다.

가영의 인생에서 이렇게 재밌는 건 음악, 새벽 멤버들 다음으로 세 번째였다.

여진우는 윤혁이 데려왔고 세율이 마음에 들어 해서 그럭저럭 가까워졌다.

애당초 가영은 배우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연기에 능한 사람은 속을 알아내는 게 번거롭고 귀찮다.

희극 배우든 정극 배우든 둘 다 마찬가지로 곁에 두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여진우는 몇 번이나 가영의 테스트를 통과했기에 지금은 좋은 쪽에 속했다.

“일단 진우는 괴롭히는 맛이 있으니까.”

짓궂게 굴 때마다 곤란해하면서도 거짓말은 하지 않기도 했고.

늘 자신에게는 퉁명스럽게 툴툴거리는 윤혁이 진우에게는 듬직한 척하는 것도 귀엽다.

특히나 윤혁이나 진우가 언래블 애들 앞에서 얌전을 떨 때면 그렇게 놀려주고 싶어진다.

“가영아.”

“응?”

좁은 경계 안의 사람들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던 가영은 세율의 부름에 의자를 빙그르르 돌려 앉았다.

단정하고 깊은 눈에 희미한 근심이 보였다.

“뭔데? 무슨 일 있어?”

대외적인 이미지를 담당하고 있는 세율은 제멋대로인 가영과 매사 시큰둥한 윤혁 때문에 늘 걱정을 달고 살았다.

곡 작업 중에는 좀처럼 방해하지 않는 세율.

그런 그가 찾아온 게 걱정되어 바라보자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의자를 당겨 앉았다.

“윤혁이가 뭘 끄적거리길래 뭐하냐고 물었더니 비밀이라고 숨기더라.”

“아, 그 조별 과제? 그거 때문인가 보지. 걔가 은근히 그런 데는 예민하잖아.”

세율의 걱정은 윤혁 때문인 듯했다.

조별 과제처럼 사람을 나눠서 무대를 만들어보라던 그저 그런 프로그램.

그것도 시작은 가영이 불을 지르면서 시작했지만, 되려 윤혁이 불타오르는 중이다.

집중하기 시작하면 옆에서 폭탄이 터져도 자기 일을 해야 하는 윤혁이니 세율은 걱정하는 것 같았다.

저러기 시작하면 밥도 잘 안 챙기고 잠도 잘 안 자니까.

워낙 어릴 때부터 옆에 끼고 살아서 그런지 세율은 아직도 윤혁을 처음 본 그 나이의 어린애처럼 여겼다.

남들이 보면 웃을 일이지만, 가영은 세율이 윤혁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기에 적당히 다독였다.

남들은 잘 모르는 새벽의 실제 모습.

대외적으로는 가영과 다진이 미친 듯이 사고를 치면, 키스가 욕을 하며 멱살을 잡고 세비가 뒷정리한다.

그러다 보니 모르는 사람들은 세비가 굉장히 철두철미하고 엄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세율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말랑하고 잔걱정을 달고 사는 성격이다.

멤버들 중에 가장 감수성이 풍부한 성격이기도 했고.

다만, 주변에 하도 제정신 아닌 것들이 득실대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인해졌달까.

자신도 그렇고 다진도 그렇고 따지면 윤혁도 정상은 아닌데.

아니, 어쩌면 그런 놈들 사이에서 한결같은 세율이 가장 강한 사람인지도 모를 일이다.

보이는 것과 실제 성격이 일치하는 건 윤혁이랑 다진 정도일까.

“아, 다진이가 자기 나오는 날 병아리들이랑 밥 먹고 싶다더라.”

“그건 또 뭔.”

세율은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다진이 심심하다고 세율에게 편지를 보낸 모양이었다.

가영은 자신과는 다른 방향으로 자유로운 영혼인 다진의 뜬금없는 행동에 픽 웃었다.

“메뉴는 꼭 한우 꽃등심으로 해달래.”

“지가 사는 것도 아니면서, 그 새끼는 행군하면서 염치도 두고 왔대?”

“반다진은 원래 그런 거 없었어.”

담담하게 다진을 평가하는 둘의 혀는 매서웠다.

한참을 다진의 미친 짓 리스트로 쑥덕거리던 가영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아, 병아리들 보고 싶다! 가자!”

“뭐?”

“반다진 생각했더니 기분이 별로야. 힐링해야겠어.”

“걔네 스케줄은 알아?”

키보드 옆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핸드폰을 쥔 가영은 지환이 불길하다 표현했던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지금부터 알아보면 되지! 김윤혁! 뭐하냐! 나와!”

생각과 동시에 움직이던 가영은 윤혁을 부르며 소리를 질러댔다.

분명 윤혁은 방해받아서 크게 짜증을 낼 테고 달래는 건 세율의 몫이었다.

“하, 저 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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