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68)화 (368/456)

368. 꿈꾸는 마음으로(6)

섬에서의 이틀은 나쁘지 않았다.

매번 밥 준비하는 게 전쟁 같았지만, 사람은 적응하는 생물이라고 금방 적응했다.

농사 안 짓는 게 어딘가 하는 그런 마음을 먹는 순간 아차 했다.

이렇게 적응해버리면 안 되잖아!

‘너는 쓸데없는 것까지 적응을 잘하는 게 문제다, 이 계약자 놈아.’

‘…아니, 그래도 마냥 힘들다고 징징댈 수는 없잖아.’

‘앓느니 죽지.’

한숨을 푹 내쉬는 포잉의 표현에 할 말을 잃었다.

어쩐지 포잉이 나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것 같은데.

하지만 포잉은 이 섬이 마음에 드는 듯했다.

물에 젖는 건 싫어하면서 뜨끈한 욕조에 몸 담그는 건 좋아하는 이상한 포잉.

바닷물이 몸에 닿는 건 싫지만, 이런 평화로운 풍경을 보는 건 좋다고 했다.

나중에 내가 나이 먹으면 경치 좋고 배달도 잘 되는 곳으로 집을 지어서 같이 살자고 했다.

그때 포잉은….

‘그런 위치에는 이미 비싼 집들이 가득할 텐데 가능하겠음?’

어느새 한국의 부동산 상황까지 알아버렸다.

더군다나 내가 운전하는 건 못 미덥다며 나중에 면허 딸 거라는 내 말을 잘랐다.

아니, 왜…?

불퉁한 얼굴로 깍둑썰기한 무를 통에 담았다.

“환아, 이거 된 거야?”

“볼게요!”

그나마 바다가 잠잠해졌다며 경우 선배님이 경환 형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아침에는 허탕 쳤으니 점심때는 뭐라도 해야 한다며 벼르던 선배님.

경환 형이 행운의 토템이니 곁에 있어야 한다며 낚싯대와 경환 형을 챙겨서 가버렸다.

어어? 하다 그대로 끌려가는 경환 형은 어느새 해탈한 얼굴로 내게 손을 흔들었다.

우리 형,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서 다행이다….

아침을 먹으며 고민했던 점심은 수제비와 부침개.

뜨끈하고 쫄깃한 수제비가 먹고 싶다는 오수 형님의 말에 다들 솔깃한 것.

경환 형의 남아도는 힘을 반죽하는 데 쓰게 했더니 쫄깃쫄깃하고 탄성 좋은 반죽이 완성됐다.

반죽을 두고 우리 막내 볼따구 같다고 얼마나 열심히 주물렀던지.

세빈이가 뺨을 잡아당기면 복수하기 시작하자, 나를 제외한 멤버들은 쉽사리 뺨을 만지지 못했다.

우리 착한 막내는 내가 조물딱거리는 건 한숨을 푹 쉬며 내주었다.

“멤버들 생각해?”

“네? 어떻게 아셨어요?”

준비하던 깍두기 양념을 놓고 진성 형님이 만들고 있던 밀가루 풀을 보며 되물었다.

“언래블 얘기할 때마다 너 표정이 아주 볼만해져.”

“큼, 그냥 걱정돼서 그러죠. 이건 식혀야 하니까 뺄게요.”

능글거리며 놀리는 진성 형님을 애써 무시하며 밀가루 풀을 옮길 냄비를 찾기 위해 주방으로 도망갔다.

등 뒤에서 진성 형님, 오수 형님뿐만 아니라 다른 스태프들의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못 들은 척했다.

아니라고 해봤자 들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여기에 부어주세요.”

“그냥 내려놔. 혹시라도 튀면 어떡하냐, 이거 엄청 뜨거운데.”

“그럼 솥 같이 잡을까요?”

“아냐, 형이 할게.”

깍두기는 경우 선배님이 먹고 싶다고 말을 꺼내서 시작하게 됐다.

아삭아삭한 깍두기 있으면 좋겠다고.

그런 경우 선배님 옆에서 오수 형님과 진성 형님은 파김치를 얘기하셨고.

제작진에게 달라는 듯 말을 꺼낸 거지만, 그들이 줄 리 없었다.

텃밭에 쪽파가 있는 걸 보면 직접 하라는 뜻인 것 같았거든.

배추김치는 다행히 제작진이 준비해 주었다고 했다.

이 사람 중에 김치를 담글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예상은 했다고.

“넌 도대체 언제 이런 걸 다 배웠어?”

“그냥 레시피 찾아보면 다 쓰여 있잖아요. 그대로 하면 되던데요?”

숙소에서 김치를 담가본 적은 없지만, 전생에는 엄마를 도와 몇 번 해봤다.

레시피 찾아보는 정도는 제작진도 용인해주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 뭐라도 해 보기로 한 것.

“지환아, 쪽파 다 된 거 같은데?”

“네! 금방 갈게요!”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한 기분이었다.

형님들이 도와주고 있으니 그나마 이렇게 뭐라도 해 볼 수 있었다.

쪽파를 까고 액젓에 절여놓는 건 오수 형님이 도와주셨다.

깍두기랑 파김치를 담가보자고 했을 때 두 눈이 휘둥그레졌던 형님들.

전날부터 내가 요리할 때마다 반짝거리던 두 눈이 이제는 빛이 날 것처럼 번쩍거렸다.

뭐든지 시켜만 달라는 형님들의 기대가 부담스러웠지만, 이왕 판이 깔린 거 무조건 잘해야 했다.

믹서기를 쓸 수 있게 해줘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나마 양념장 만드는 게 한결 수월했다.

“이야, 이거에다 수제비 먹으면 진짜 죽이겠다.”

“쪽파는 절여서 바로 먹어도 될 것 같은데 깍두기는 좀 익어야 맛있을 거예요.”

고무장갑을 끼고 양념을 버무리던 내 곁으로 두 형님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양념 옷을 예쁘게 입은 쪽파를 하나씩 형님들 입에 넣어주자 두 분 다 진지한 얼굴로 음미했다.

“어지간히 파는 것보다 낫네. 진짜 너 요리 배운 적 없어?”

“네. 그냥 여기저기 보고 그대로 했죠.”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오수 형님.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진성 형님이 으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야, 지환이가 잘했는데 왜 니 어깨가 하늘을 찌르냐?”

“제 동생이니까 그렇죠.”

“내 동생도 되거든?”

이 사람들은 한시라도 가만있으면 큰일 나는 병이라도 있는 건가….

오디오가 비면 안 되는 건 알지만, 유치한 투닥거림을 보다 못한 내가 깍두기를 하나씩 입에 물렸다.

“이것도 좋은데? 수제비랑 딱이네.”

“아까 절일 때 설탕 넣더니 그래서 무가 더 맛있나?”

내가 뭔가를 할 때마다 주변을 기웃거리며 이게 뭐고 왜 이걸 하는지 묻는 형님들.

그때마다 아는 한도 내에서 설명해드렸다.

나중에 이게 최종본에 들어갈지, 자막은 어떻게 들어갈지 모르겠지만 나쁘진 않을 듯했다.

그때, PD님이 슬그머니 옆으로 왔다.

“PD님도 한번 드셔보실래요?”

“맛만 조금 볼까 하고….”

“어허, 우리 귀한 식량을!”

오수 형님은 그동안 제작진에게 시달린 게 있어서 그런지 툴툴거렸다.

모른 척하는 PD님 입에 파김치를 넣어드렸더니, 눈이 번쩍 뜨였다.

“역시 지환 씨는 우리 프로그램에 딱 맞는 인재야.”

“그렇지? 얘를 섭외했어야지. 이렇게 밥 못하는 인간들만 불러놓으면 어떡해!”

언제 툴툴거렸냐는 듯 PD님 말에 맞장구치던 오수 형님은 육수 내야 하지 않냐며 불을 피울 준비 했다.

그동안 부지런히 움직였더니 벌써 배가 고픈 것 같다면서.

“밥도 조금 할까요? 이거는 수제비보다 밥이랑 먹어야 하는데.”

“조금만 하자. 수제비에 말아 먹어도 맛있잖아.”

두 형님은 금세 주거니 받거니 하며 화구 앞에 한 명, 설거짓거리 앞에 한 명 자리를 잡았다.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어허, 밥하는 귀한 손은 이런 거 하는 거 아니라고 했지.”

오수 형님이 근엄한 얼굴로 수돗가에서 나를 쫓아냈다.

“아니, 그래도….”

“넌 육수 낼 준비해야지, 지환아.”

아무리 그래도 나보다 나이 많은 형들이 고생하는 건 좁쌀만큼 남은 양심이 콕콕 찔렸다.

오수 형님보다 진성 형님이 불을 더 잘 지핀다는 이유로 오수 형님이 수돗가에 앉았다.

“그럼 옆에서 헹구는 거 도와드릴게요.”

“아이구, 너는 애가 어떻게 한시를 안 쉬냐.”

말은 그렇게 하셔도 옆에 쪼그려 앉으니 좋아하시는 게 눈에 보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육수 낼 재료를 넣고 설거지를 돕고.

평화로운 보통의 시간이라 나도 모르게 자꾸 헤프게 웃었다.

우리 애들을 만나는 건 하루 미뤄졌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지환아, 이거 끓는다!”

“네! 갈게요!”

아, 그렇지만 왜 육지에 있을 때랑 비슷한 느낌이 들지….

사방에서 내 이름을 불러대서 그런 걸까?

* * *

경환과 지환이 섬에서 건강한 노동을 하고, 하준과 영빈, 힘찬, 세빈이 연습에 땀을 쏟던 그때.

솜뭉치들은 콘서트 비하인드 영상을 보며 흘러넘치는 덕심을 주체못하고 있었다.

- 이번콘 딥디 내주겠지?

딥디 안 내주면 무슨 무슨 법 위반임. 암튼 그럼.

그러니까 정균찡, 딥디 내놔ㅠㅠㅠㅠ

ㄴ ㅋㅋㅋ암튼 맞음 그러니까 디비디 줘라ㅠㅠㅠ

ㄴ 내 지갑을 가져가라고!! ㅠㅠㅠㅠ 아 콘때 생각하니까 또 심장 뜀

ㄴ 애들 붕대 풀어헤치던 거 진짜 ㄹㅈㄷ. 울 애들 병아리 아니다ㅠㅠㅠ

많은 팬은 콘서트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열심히 궁리한 느낌이 폴폴 나는 콘서트.

콘셉트에 충실하게 분위기를 만들었고, SNS에 올라온 여러 증거물이 덕후들 심장을 쥐고 흔들었다.

콘서트장 여기저기 숨겨서 붙어있던 혁명군 전단과 그와 비교되게 보란 듯 붙어있던 수배 전단.

가사를 그대로 풀어내듯 무대 위에 흩어져 내리던 붉은 종잇조각들.

붉은 꽃잎 위에 떨어진 너를 잊지 않겠다던 가사처럼, 언래블은 종잇조각들 위로 뛰어내렸다.

혁명군은 체구가 작은 이들로 채워져 있었다.

어린아이와 청소년, 이제 막 성인이 된 듯한 연령대의 사람들.

반면, 흰색 로브를 입었던 자들이나 적으로 보이는 이들은 전부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를테면 억압하는 기성세대와 그에 거부하는 새로운 시대의 싸움.

그들이 등장할 때 울렸던 경건한 멜로디와 하얀 로브가 그들이 진실인 것처럼 표현했던 것도 하나의 장치였다.

무대를 파고 파도 콘서트 하나에서 고구마 줄기처럼 얽혀나오는 떡밥들이 무시무시했다.

더불어 공연을 촬영하던 카메라가 여러 대였던 걸 보며 차후 DVD 발매를 점치기도 했다.

- 애들 위치가 회사에서도 확고해졌다고 생각한 이유

울 애들 자기 영역이 넓어진 것 같아. 이번 비하인드 보면서 확신함.

회의에 참여하는 게 끝이 아니라, 여기 보면 무대 옵션이랑 구성에 의견을 내고 있음.

(언래블 비하인드 - 06:21)

요기 보이는 서류에 견적서 내용이 살짝 나와. 모자이크돼서 잘 안 보이는데 이걸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빈이가 들고 있음.

그거 들고 세빈이랑 다른 애들이랑 막 의견 나누면서 종이에 체크하잖아?

그리고 이것도 봐죠!!

(언래블 비하인드 - 07:11)

경환이가 들고 있는 거 그 콘서트장에 붙었던 지명수배전단 초안인 거 같아!!

지환이가 들고 있는 건 그럼 그 혁명군 전단이겠지?

우리 애들이 이거 아이디어 냈나 봐 ㅠㅠ

우리 애들 천재만재야….

미친ㅠㅠ 이런 애들이 우리 애다 ㅠㅠ

ㄴ 아닠ㅋㅋㅋ너는 언제 이걸 다 찾아본 거야! 역시 나노 단위로 핥는 솜뭉치들

ㄴ 진짜 비하인드 혜자인 게 연습하는 것만 쪼금 보여주는 게 아니라 콘서트가 어떻게 준비된 건지 시리즈로 차근차근 보여준 거 ㅠ

ㄴ ㅇㅈ 애들이 뭐 했는지, 어떻게 준비했는지 너무 잘 보여서 진짜 미치겠음…ㅠ 난 왜 그걸 못 갔냐ㅠㅠㅠ

이후 공개된 비하인드 스토리에는 멤버들이 어떤 모습으로 콘서트 준비를 해나갔는지가 담겨 있었다.

가뜩이나 힘 있고 절도 있는 댄스로 한곡, 한곡 춤추는 게 어렵다고 했었다.

그런 곡을 연달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던지.

그뿐만 아니라 멤버들의 개인 무대를 보고 싶다는 요청도 빗발쳤다.

팬들도 DVD를 발매할 예정이라면 쉽게 풀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았다.

판매 이후에나 풀릴지도 모를 일.

하지만 콘서트에 가지 못한 팬들도, 갔던 팬들도 애타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시 보고 싶은데 볼 방법이 없으니 답답한 것.

일부 팬들이 몰래 촬영했던 영상이 위캠과 SNS에 일부 올라가기도 했다.

소속사에서도 열심히 촬영을 금지한다고 해도 모든 사람을 잡기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다.

카메라를 분해해 몸 안에 숨겨가는 걸 가드들이 잡아내기도 어려웠고.

해서 ON 엔터는 지나치게 긴 영상은 모두 제재했지만, 짧은 영상은 두기로 했다.

그걸 모두 막기에는 여력이 부족했고, 저런 영상이 신규 팬 유입에 도움이 될 때도 있었으니까.

콘서트 관련 이야기로 바쁜 팬들을 모니터링하던 시한과 도연은 콧잔등을 긁으며 서로를 바라봤다.

“DVD 나오겠지?”

“나올걸? 실장님이 추진하는 것 같던데.”

“다행히 반응도 긍정적이네.”

“에휴, 애들 많이 크긴 했다.”

애타 하는 팬들에게 차마 해줄 수 없는 내부 이야기.

섬에서 구르고 있을 지환과 경환을 떠올린 소현은 피식 웃었다.

“우리 애들은 진짜 자기들이 알아서 일을 물어온다니까.”

“내 말이. 기특해 죽겠어.”

이윽고 사무실에는 다시 마우스 딸깍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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