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51)화 (351/456)

351. Chained Up(1)

포잉은 지환이 지극히 인간답다는 걸 알았다.

죄책감에 약했고, 정에 약했고, 목적을 찾아 방황했다.

인간은 종종 자기 삶에 지나친 이름을 붙이려 한다는 것은 포잉도 배웠다.

하지만 글로 배운 것과 실제로 겪는 것도 또 달랐다.

포잉은 지환을 보호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인간들을 만났다.

감정에 휘둘리는 경우, 금전에 빠져 허우적대는 경우, 오로지 자기 보신이 전부인 경우 등.

지금의 세상, 아니 정확히는 지환이 살아가는 지역은 전쟁의 참혹함이 없었다.

그렇기에 더 많은 욕망이 숨 쉴 때마다 흘러나오고, 가장 귀중한 것이 목숨이라는 걸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자신의 목숨이 언제까지나 안전할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

그러나 자신의 계약자는 죽음을 경험했고, 그것이 얼마나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것인지 알았다.

포잉은 지환이 그런 걱정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이래서 현장을 경험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던 건가.’

포잉은 작게 혀를 차며 털을 골랐다.

워낙 말랑말랑하고 병아리처럼 빽빽거리며 돌아다니는 계약자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 것.

지환이 여러 일을 겪으며 성장해나가고 단단해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주변에서 끊임없이 지환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퍼부어주고 있었다.

그러니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있을 것이라고 낙관한 포잉의 잘못이었다.

생각해보면 지환은 전생에서도 가족에게는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저 본인이 너무 생각이 많고 여린 성격이라 자신을 꽁꽁 싸매버린 것일 뿐, 애정이 아주 부족한 자는 아니었다.

포잉은 앞으로 지환이 더 곧고 튼튼하게 자라도록 그 속내를 더 잘 파악하고 다독여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흐으으….”

이미 반쯤은 정신을 놓아버린 공정한이 침대에 묶인 채 움찔거리며 이상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쯧.’

포잉이 한 일은 간단한 조치였고, 실제로 지환의 아비를 불러온 것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본인의 심지가 굳건한 이였다면 이런 꼴이 되지 않았을 터.

공정한은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기보다 도피를 택했고, 자신이 만든 공포에 매몰되어버렸다.

본인이 진심으로 뉘우쳤다면, 저절로 포잉이 걸어두었던 환청이나 환각은 사라졌을 것.

‘혈육을 외면할 정도로 돈에 미친 놈이면서 자신에 대한 확신도 없는 놈이었네.’

차라리 공정한이 그저 마냥 악했다면, 그래서 진심으로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공정한은 차라리 더 빨리 환각과 환청에서 벗어났을 터.

‘앞으로 이 인간은 신경꺼도 되겠네.’

완전히 자기 자신을 놓아버린 인간에게 시간을 쏟기엔 포잉이 너무 바빴다.

계약자도 쫓아다녀야 했고 아직 주영욱도 지켜봐야 했다.

그나마 이경주 작가는 감옥에 갔으니 한시름 덜었다.

주영욱도 머지않아 자기 무덤을 파고 들어가 누울 것 같으니 그때가 되면 포잉도 조금 여유가 생기겠지.

포포에게 이번 일로 여러 가르침을 받았다.

조만간 감사 인사를 하러 가야겠다.

시간이 좀 남으면 옥사도 보고.

포잉은 상급 요정들이 왜 그렇게 틈만 나면 요정계로 돌아오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 집에서 느끼는 휴식이 그리운 것이겠지.

하지만 아직은 계약자에게 조금 더 신경 써야 하는 시기라는 걸 알기에 포잉은 다시 바쁘게 발을 옮겼다.

어디서 또 사고나 치고 있는 건 아닌지 포잉의 얼굴에는 근심이 사라질 줄 몰랐다.

에드라는 인간 일도 그랬다.

자기 몸도 못 지키는 인간이 왜 다른 집 자식을 신경 쓰는지.

포잉은 계약자와 지내면서 인간들의 말이 굉장히 절묘하다는 걸 느꼈다.

요정인 자신이 이러다 늙는다는 말에 공감하는 날이 올 거라는 걸 누가 알았을까.

* * *

“오늘이지?”

“응. 라디오 꼭 들으라고 하던데, 가영 형이.”

“준이 형 괜찮을까.”

우리는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숙소에 돌아가지 못하고 연습실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콘서트 직전까지는 아무래도 이 생활이 지속될 것 같았다.

영화 촬영도 내 분량은 끝났으니 한동안은 연습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만간 ‘낭만가객’의 촬영과 광고 촬영이 있지만, 그 외의 외부 스케줄은 대부분 조정되었다.

첫 콘서트인 만큼 최대한 다 쏟아붓자는 것이 회사와 멤버들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꼭 들어야 할 라디오가 있기에 시간 맞춰 연습을 끝내고 전부 한자리에 모였다.

오늘, 새벽 형들이 드디어 푸른 음악 노트에 출연한다.

준이 형은 그 방송에는 출연하지 않기 위해 애썼지만, 작가님의 마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가 저 자리에 불려 나간 게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야.”

“하준 형한테는 미안하지만 진짜 우리 나갔다가는 새우 등 터져….”

이번만은 모두 같은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빈 형조차 고개를 끄덕일 정도면 말 다 했지.

사건의 시작은 사소했지만, 어쩌다 보니 이렇게까지 흘러버렸다.

“근데 우리 형 그룹인데 왜 우리 의견은 없어?”

“넌 저 사이에서 말할 자신 있어?”

“하준 형이 우리 대표해서 끌려갔잖아.”

찬이가 의외로 날카롭고 쓸모있는 질문을 제시했지만, 멤버들의 반응은 과격했다.

혹시라도 형들 앞에서 그런 말 했다가는 진짜로 전쟁이었다.

경환 형은 그대로 굴러가 찬이를 깔고 누웠고, 세빈이는 찬이를 혼냈다.

슬며시 고개를 돌려 영빈 형을 바라봤지만, 형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래, 형 말처럼 저기 괜히 끼어드느니 쉬는 게 낫지.

막내 라인이 투닥거리는 사이 하겸 형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늘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저 사람이랑 내가 아는 그 ‘하겸’이 동일 인물이라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찬이를 깔고 누웠던 경환 형도, 옆에서 타박하던 세빈이도, 하다못해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던 찬이도.

우리 모두가 흘러나오는 하겸 형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이미 같이 라디오를 해봤던 덕분일까?

하겸 형이 어떤 얼굴로 멘트를 읊고 있을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 드디어 그분들을 모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저만큼이나 기다렸을 그 이름. 새벽 분들입니다!

“왠지 하겸 형 이 악물고 말했을 것 같다.”

“인정. 완전 사악하게 웃고 있겠지?”

“준이 형은 쭈글쭈글해져서 오겠다….”

슬금슬금 기어 온 멤버들이 노트북 주변에 모여들었다.

핸드폰으로 켜둘까 하다 보이는 라디오라는 말에 노트북을 들고 왔다.

아니나 다를까 하겸 형은 평소보다 의상에 힘을 준 데다 메이크업도 유난히 화사했다.

뭐야, 형 우리랑 할 때는 그렇게 안 입었잖아요.

“새벽 형들도 옷이 남달라. 와, 이거 팝콘각인데 진짜.”

찬이는 여전히 짜부라진 상태로 연습실 바닥에 들러붙어 있었다.

보기 흉한 꼴로 중얼거렸지만, 그 말은 틀린 게 없었다.

- 드디어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네요. 안녕하세요, 새벽의 한가영입니다!

- 반가워요, 새벽 세비입니다.

- 안녕하세요, 키스입니다.

어떻게 인사하는 것도 딱 자기 같은지.

새벽 형들은 유유자적한 얼굴로 매끄러운 인사를 했다.

다행히 바로 싸움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새 앨범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이 먼저였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분위기에 하준 형의 얼굴에 안도감이 서리던 그때.

- 그러고 보면 타이틀곡 ‘유성우’ 가사를 저희 병아리가 써줬다고요

- 저희 지환이가 써줬죠. 평소에도 워낙 자주 음악 이야기를 나누니까요.

- 아~ 역시 비즈니스로 얽힌 관계네요.

예고도 없이 갑자기 전쟁이 발발했다.

아니, 선전포고 같은 거 모르냐고요!

왜 이렇게 갑자기 훅 들어오는데….

늘 우리를 귀엽다 귀엽다 해주셨던 작가님에 대한 원망이 차올랐다.

멤버들의 시선이 내게 몰렸고 나는 억울하다는 얼굴로 영빈 형을 쳐다봤다.

“어쩌겠어. 병아리 쪽은 이제 그만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말하는 영빈 형의 얼굴에도 착잡함이 서려 있었다.

실시간 채팅창을 살짝 봤더니 다들 신나게 웃고 있었다.

간간이 하준 형의 표정을 가지고 신나 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솜뭉치세요?

준이 형은 어째서인지 나라 잃은 얼굴로 두 형을 바라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뭐, 저희는 워낙 언래블 데뷔 초부터 같이 해서 이제는 한 식구 같아요.

- 그러고 보면 언래블 멤버들이 제일 처음 출연한 게 저희 라디오였죠?

- 네. 그때 멤버들이 진짜 좋아서 방방 뛰었어요. 와서도 워낙 살뜰하게 챙겨주셔서 감동하고.

화살이 돌아간 하준 형은 다행히 평소처럼 웃으며 멘트를 마무리했다.

- 워낙 언래블이 잘했죠. 진짜 놀랐어요. 이 친구들이 정말 이제 데뷔한 친구들인가 싶어서. 그 인연으로 하준 씨도 저희랑 같이 있잖아요.

그러면서 슬그머니 새벽을 바라보며 얄미운 미소를 짓는 하겸 형.

자신은 이렇게 하준 형과 자주 어울린다고 새벽에게 은근히 자랑하는 게 눈에 훤했다.

아무래도 저 인간들이 그동안 심심했나 보다.

왜 이런 거로 자기들끼리 이러고 있는 거야….

- 저희도 가영이가 데뷔곡을 써준 인연으로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어요. 평소 사석에서 워낙 자주 만나서 방송에서 만나니까 조금 이상하네요.

바로 반격한 건 의외로 가영 형이 아니라 세비 형이었다.

세비 형은 늘 우리에게는 다정다감한 형님이었던 터라 저런 돌려 까기는 낯설었다.

“치킨이 필요하다, 진짜로.”

“치킨이 안 되면 콜라라도….”

멤버들은 자기들 이야기라는 것도 잊고 흥미진진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여러분, 저 대화의 중심이 우립니다. 우리라고요….”

“괜찮아. 하준 형이 잘 대처해줄 거야.”

“그렇게 책임을 떠넘긴다고?”

사실 형들이 반 장난으로 시작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걱정이 안 될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양쪽 팬덤에서 감정이 상하면 여러모로 곤란했다.

여태까지는 워낙 우리를 아끼는 제스처를 보여서 양쪽 팬덤에서도 우리를 좋게 봐주고 있었다.

소속사는 다르지만, 막냇동생이 생긴 듯한 그런 느낌으로 봐주셨달까.

작가님이 작정한 건지 멘트들이 좀 많이 왔다 갔다 하기도 했고.

슬쩍 확인한 채팅창에도 몇 명씩 과격한 멘트를 남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빠르게 차단되기도 했고, 팬덤 분들도 눈치 챙기라고 뭐라고 하셔서 다행이었지만.

- 1:3은 아무래도 불공평한 듯해서 저는 지원군을 부르겠습니다!

투덜거리던 하겸 형은 전화 찬스를 쓰겠다며 요청했다.

- 안녕하세요, 골든아워 단우입니다.

- 아니, 왜 단우 불렀어요! PD님!

골든아워 막내 단우 형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하겸 형은 당황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내용인 듯했다.

“이야… 이렇게 다시 한번 제작진은 절대 믿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네.”

“우리는 절대 제작진 믿지 말자.”

나긋나긋하고 생기 넘치는 단우 형의 목소리가 하겸 형에게는 지옥에서 부르는 소리로 들렸나 보다.

보이는 라디오라는 걸 새삼 깨달은 하겸 형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 내가 진짜 매번 이렇게 뒤통수 맞고 다녀요. 여러분, 저 불쌍하죠?

-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좀. 다들 안녕하세요, 못난 저희 형 때문에 다들 고생 많습니다.

자기 편을 부른다고 전화 연결을 했는데 어째서인지 상황은 1:4가 된 듯했다.

하겸 형은 오늘 자신 몰카 하는 날이었냐며 한탄했다.

- 그런데 결국 당사자 말을 들어보는 게 가장 빠르지 않나요?

몇 마디 이야기가 더 이어졌고, 단우 형은 준이 형에게 폭탄을 넘기고 사라졌다.

그 한마디와 함께 웃고 있던 준이 형이 얼어버렸다.

“아….”

“저게 다 지 팔자지, 뭐.”

경환 형의 탄식이 이어졌고, 영빈 형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영빈 형은 준이 형에게는 늘 단호했지, 그럼.

- 우리가 아무리 투닥거려도 역시 당사자 마음이 가장 중요하죠. 어때요, 우리 휴전하는 거?

- 그럴까요? 휴전하고 당사자 생각을 들어보죠.

방금까지 한참 이러쿵저러쿵했던 형님들이 갑자기 손을 잡았다.

- 언래블을 대표해서 리더인 하준 씨 의견을 말해주세요.

- 저희는 하준 씨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양쪽에서 쉬지 않고 하준 형을 달달 볶았고, 마른세수하던 하준 형이 처연한 얼굴로 답했다.

- 형님들,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그 한마디에 라디오를 듣던 우리도, 채팅창도, 현장의 형님들도 터져 나온 웃음을 참지 못했다.

세상 억울한 얼굴의 준이 형이라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