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47)화 (347/456)

347. 너나 해(2)

“환이는 우리가 아는 거 모르져?”

“응. 모를걸.”

스트레칭으로 뻐근한 몸을 풀던 찬이 질문에 하준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지환이 에드를 무척 신경 쓰여 한다는 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알았다.

멜트 형님들과 골든 아워 형님들이 하준에게 따로 연락할 만큼.

누가 봐도 안절부절못해서 가서 말 걸고 싶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당사자만 모르다니.

하준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형님들은 하나같이 걔는 그렇게 착해빠져서 어떡하냐고 혀를 찼다.

착한 건지, 둔한 건지, 바보 같은 건지.

나이보다 더 어려 보이는 에드의 겉모습과는 별개로 그는 우리보다 더 오래 이쪽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그만큼 경험도 더 많을 텐데 지환이는 그 꼴을 가만 보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우리 눈치를 보는 게 애잔해서 모르는 척해줬더니 기어코 쪼르르 나가서 그 인간을 만난다고.

소현 팀장님이 멤버들을 불러 모아 이야기했을 때 힘찬과 경환의 눈초리가 사나워지는 게 한눈에 보였다.

팀장님은 지환이 혼자 무언가 해보려고 하는 듯하니 지켜보자고 했지만, 둘은 못마땅한 듯했다.

그건 둘만 그런 건 아니었지만.

“괜히 꼬리 달고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꼬리라니, 그래도 선배잖아.”

“선배가 선배다워야 선배죠.”

투덜거리는 찬이를 영빈이 넌지시 말렸지만, 경환의 대꾸에 모두 수긍했다.

주변에 훌륭한 선배님들이 워낙 많았다.

당장 같은 회사 소속 배우분들도 배울 점이 무궁무진했다.

종종 여진우도 찾아와 어울리다 갈 정도였다.

배우뿐만 아니라 직속 선배인 하연수는 선배의 정석 같았다.

처음 연습생 시절부터 언래블 멤버들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 시상식에 갔을 때는 먼저 가서 멤버들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였고.

그 외에 새벽이나 골든아워도 두말할 것 없었고.

점점 많은 사람을 겪으며 멤버들이 느낀 것은, 자신들이 운이 좋았다는 것이었다.

사건·사고가 많은 건 그렇다 쳐도 주변에 이렇게 좋은 사람이 많이 있는 건 천금을 줘도 얻을 수 없는 행운이었다.

회사가 팬들 사이에서 유니콘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아티스트 친화적이라는 것도 한몫했지만.

그런 사람들만 보고 자라다 보니 언래블은 눈이 높아졌다.

자기 몫을 한다는 것에 대한 기준뿐만 아니라 앞으로 자신들은 어떤 선배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던 힘찬까지 앞으로의 행동에 고심할 정도로 다들 점점 더 먼 곳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에드의 치기 어린 말투나 행동은 가장 어린, 이제 막 17살이 된 세빈이 보기에도 이해가 안 됐다.

“아무튼 환이가 스스로 어떻게 해보려는 거니까 우린 되도록 입 다물고 있자.”

“그러다 또 애 쓰러지면 어떡해요?”

“그러진 않을 거야. 환이는 다른 사람한테는 은근히 선 긋고 행동하니까.”

하준의 말에 다른 멤버들도 수긍했다.

오죽하면 자기 입으로도 솜뭉치 1호라고 할까.

지환은 언래블을 몹시 아꼈다.

그룹이 만들어가는 모든 것에 자신을 갈아 넣을 정도로 좋아했다.

그게 조금 지나치다 싶었을 때, 하준이 시기적절하게 브레이크를 걸었고.

언래블이라는, 모두가 함께하는 그룹도 중요했지만, 그 안에 개개인을 잊지 말라는 것.

이전 힘찬과의 다툼 후 지환은 그 부분을 많이 고민하는 듯했다.

얼마 후 멤버들에게 자기 행동을 사과하기도 했고, 앞으로도 많이 알려달라고 했었다.

“이놈 자식 오기만 해.”

“티 내지 말라니까.”

이해는 해도 자신들 외에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지환이 못마땅했는지 힘찬은 투덜거림을 멈추지 못했다.

“연습으로 갈굴 거예요!”

“음, 그럼 난 노래 연습하자고 끌고 갈까?”

“우린 프로듀싱으로 해볼까.”

“형, 춤 나랑 같이해!”

이해하는 것과 그걸 받아들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던 터라 멤버들은 심기가 불편했다.

모른 척하기로 합의했지만, 자신들과 콘서트를 내버려 두고 외부로 시선을 돌린 것에 대한 응징은 별개였다.

지환의 처지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에드와 대화를 나누던 지환은 갑자기 드는 오한에 어리둥절했지만, 알 길이 없는 오한이었다.

* * *

숙소로 돌아온 에드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지환과의 대화를 복기했다.

이야기 나눴던 내용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였다.

곧 형들이 들어올 테니 자신도 각오를 다져야 했다.

처음에는 형들의 분노가 조금 가라앉길 기다렸다.

그 후 대화를 시도해볼 생각이었던 것.

하지만 그런 에드의 행동은 되려 형들의 분노를 샀다.

당장 사과하고 처신을 조심하길 바랐던 멤버들은 에드가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만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대화를 나누지 않아 벌어진 오해였지만, 회사의 중재조차 없었던 터라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갔다.

뒤늦게 형들의 분노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때부터 에드는 눈치를 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전까지는 팀 내에 다툼이 있어도 늘 형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물어봐 줬다.

그럴수록 후회는 깊어졌지만, 방법을 몰랐다.

팀 내에선 막내라고 예쁨만 받았고, 골든아워도 나이 차 나는 에드를 귀엽게만 봐줬다.

회사에서는 멜트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입바른 말만 하고 어지간한 건 다 들어주었다.

좁디좁은 세상 속에서 살던 에드는 이번 일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회사는 결국 캐시카우로서의 에드를 원할 뿐, ‘박화영’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외에 자잘했던 인맥도 소문을 듣고 대부분 연락을 끊었다.

그나마 연락이 오는 몇 명은 에드 속만 뒤집고 있었다.

우울한 마음에 잠겨 들수록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다 같이 밥 먹는 순간조차 마음이 불편해서 피하기 시작했더니 점점 식욕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가뜩이나 안 좋았던 위장기능이 망가졌고, 서러움이 몰려왔다.

이전까지는 아픈 기미만 보여도 형들이 달려와 병원에 가라고 닦달했는데.

‘Origin’ 마지막 분량 촬영 때, 지환의 안색을 살피던 형들을 바라본 에드는 발밑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자신의 몫을 지환이 모두 뺏어간 것 같아 그에 대한 원망도 커져만 갔다.

바짝 말라가면서 점점 극단적인 생각에 몰리던 그때, 지환이 만나자고 한 것.

하지만 에드는 최대한 자신을 붙들었다.

더는 팀에 피해를 줄 수 없다는 생각이 에드의 이성을 깨워준 것.

삐딱했던 마음을 겨우 다잡고 만난 지환에게 좋게 말이 나가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처음에는 하준이라는 멤버가 얄미웠지만, 이제는 지환이 훨씬 부러웠으니까.

적어도 지환보다는 에드가 형이었고 선배였다.

그 선이라도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지환이 자신보다 어리다는 건 잊었다.

형들한테 혼날 때랑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말로 두들겨 맞는다는 게 어떤 건지 지환과의 대화에서 뼈저리게 느낀 에드.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멍한 눈으로 지환이 말하는 경험담에 빠져들었다.

지환의 이야기 속 과거의 모습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사람이었다.

낯을 가린다는 이야기야 들었지만, 그 정도였다고?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본 것 같았다.

에드도 멤버들이나 골든 아워 앞에서야 마냥 애처럼 굴었지만, 그래도 연차가 있었다.

그동안 많은 그룹을 봤고, 회사도 아이돌에 미친 회사였기에 무수한 연습생을 봤다.

자기도 연습생에서 지금 자리까지 올라온 거고.

에드는 연습생 때도 굳이 다른 사람들과 섞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실력만 쌓으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지환은 사람의 성향이 다 다르니 같은 상황에서도 각자 대처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팀의 막내를 예로 들었다.

세빈에 대해서는 에드도 들은 이야기가 많았다.

낯가림도 심하고 형들 뒤에 숨어 있는 일이 많았다고 들었다.

그런 애가 점점 자기주장을 내기 시작했다고.

처음엔 걔도 연예계 물먹더니 건방져졌다고 생각했다.

다른 방송에서도 세빈의 돌려까기로 신인 그룹 분량이 잘렸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하지만 조금 더 찾아보니 실상은 조금 달랐고, 지환의 입을 거쳐 나오는 이야기도 알던 것과 달랐다.

에드는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여태까지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 조각나고 있었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성정이라는 걸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잘못됐다고 대놓고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회사 사람들은 사람은 이기적인 게 당연하다고 했고, 밟히기 싫으면 밟고 서야 한다고 가르쳤다.

같은 팀 형들은 간혹 우려 섞인 조언을 했지만, 대부분 에드의 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지환은 세상 혼자 살 거냐고, 그래서 지금 행복하냐고 물었다.

여전히 팬들은 에드를 향해 환호했고 통장 잔고는 가득했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이들이 등졌다.

지금 그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에드가 할 수 있는 건, 지환에게 매달리는 것뿐.

근거는 없었지만, 지환이라면 무언가 해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이번에도 실수하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간절히 붙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자기가 형이고 선배라는 것도 잊고 들러붙었다.

멜트를, 형들을, 소중한 사람들을 잃기 싫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질린다는 얼굴을 하던 지환이 에드가 눈물을 보이자 당황했다.

그리고 에드는 지환이 생각보다 더 심성이 여린 사람이라는 걸 눈치챘다.

여태까지 눈치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계에서 잘 버틴 에드였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지금이 아니면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쪽팔림이고 뭐고 전부 내려놓고 마음껏 울었다.

처음에는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지만, 점점 이야기하다 보니 서러워서 울었다.

왜 이렇게 됐는지, 자신이 왜 그랬는지, 꾹꾹 가슴에 눌러놓았던 상처가 터지며 고름처럼 눈물이 흘렀다.

에드 앞에 휴지 뭉치가 쌓였고, 열심히 휴지를 건네주던 지환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뭘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어요. 결국 선배님이 직접 움직여야 해요.”

“알아. 방법만 알려줘.”

퉁퉁 부은 얼굴로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에드 모습에 지환은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말투부터 바뀌었다.

긍정적인 신호였다.

에드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진짜 너한테 못 할 짓 했어. 미안해.”

“갑자기요?”

뜬금없는 사과에 지환은 떨떠름한 얼굴로 대꾸했다.

“내 가족이나 친척은 나한테 아무 영향을 못 끼치는, 그러니까 남보다 못한 사람들이야. 그래서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어.”

언젠가 한 번은 꼭 지환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속마음이었다.

에드는 방송에서 MC 역할도 종종 들어올 만큼 진행에는 탁월했지만, 속마음을 꺼내는 건 무척 낯선 행동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진심으로 자신을 불쌍히 여겼고 도와주려고 했기에 에드도 자신의 속을 까발리기로 했다.

동정은 개나 주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에드는 그조차도 간절할 수 있다는 걸 이번 일을 통해 배웠다.

간절한 사람이 우물 파는 게 당연했다.

“친척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서 너한테 별다른 타격이 없을 줄 알았어.”

“그게 무슨….”

어린 애가 투정 부리는 것도 아니고 더듬더듬 이어지는 말은 유치하고 우스웠다.

에드는 왜 평소에는 그렇게나 잘 돌아가던 머리와 혀가 이렇게 딱딱하게 굳어있는지 원망스러웠다.

최대한 자극하지 않을 단어를 골라 마음을 담기 위해 애썼다.

에드로서는 데뷔 직전 치렀던 최종 경연만큼이나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사람을 잃기 싫다는 마음뿐만 아니라 이대로는 탈퇴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에드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나도 알아, 개소리인 거. 근데 그때는 뭐에 홀린 것처럼 그렇게 생각했어. 미안해….”

초조한 얼굴로 바라보자 그사이 몇 년은 늙은 것처럼 지환의 얼굴이 초췌해졌다.

지환은 한참 동안 에드를 바라봤다.

딱딱했던 얼굴이 조금 풀리면서 한 꺼풀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됐어요. 이미 지난 일이니까. 뭐, 그 덕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저도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었고요.”

그 후로 지환은 에드에게 숙소에 돌아가서 다른 형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을 일러주었다.

열심히 듣고 메모하느라 바빴던 에드는 지환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때 지환은 사고 친 힘찬을 볼 때랑 비슷한 얼굴로 에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불어 에드가 자신의 속마음을 전부 꺼낸 건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지환은 이미 그의 속마음을 전부 보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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