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42)화 (342/456)

342. 낙하(2)

* * *

“횽아, 바빠요?”

“아냐. 무슨 일이야?”

언래블에서 깨발랄을 맡은 동생이 슬그머니 얼굴을 들이밀어 영빈은 살풋 웃었다.

늘 활기차고 멤버들에게 에너지를 나눠주는 동생이지만, 그 안이 늘 밝지만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점차 나아졌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었기에 그만큼 뿌듯했다.

영빈에게는 한 명, 한 명 모두가 소중하고 사랑하는 동생이니까.

옆자리를 툭툭 치자 금세 밝은 얼굴로 쪼르르 옆자리에 달려와 앉았다.

“제가 고민이 생겼는데요.”

“응.”

영빈은 힘찬이 하준이나 지환이 아니라 자신을 찾아왔다는 게 의아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서로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으니까.

더불어 노래 관련된 걱정으로 자신을 찾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게 참….”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꼬물거리는 동생을 영빈은 편안한 얼굴로 지켜봤다.

재촉하는 것보다 기다려주는 게 옳을 때도 있다는 걸 아니까.

“좀 쑥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데….”

“괜찮아. 그냥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해도 돼.”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힘찬은 한숨을 푹 내쉬며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꺼냈다.

“환이가….”

“응. 환이가?”

지환의 이름이 나왔을 때 잠깐 긴장했지만, 둘 사이가 잘 풀렸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다시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는 지환에게 첫 콘서트의 개인 무대를 같이 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

지환이 최근에 쓴 곡을 그와 함께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면서, 곡은 좋은데 부를 자신이 없다고 했다.

“형한테도 안 들려줬는데 너한테는 들려줬네?”

“진짜요? 하, 진짜 걔는 안 그런 척하면서 날 너무 좋아한다니까요.”

영빈이 슬며시 건넨 한마디에 힘찬은 금방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좋아하는 게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이는 애가 그동안 어떻게 마음을 다 누르고 살았을까.

안쓰러움과 대견함이 동시에 몰아쳐 영빈은 힘찬의 머리를 헝클었다.

“곡이 좋으면 욕심내도 괜찮지 않을까?”

“불러보고 싶긴 한데….”

힘찬은 지환에게는 다 말하지 못했다면서 왜 주저했는지 이야기했다.

힘찬이 듣기에 너무 좋은 노래인데 정작 자신이 부르면 그 노래를 다 살리지 못할 것 같아 무섭다고 했다.

차라리 랩 라인 멤버와 부르면 더 노래를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덜컥하겠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고.

“듀엣곡이라며. 너한테는 어떤 파트를 맡겼는데?”

영빈은 힘찬의 말 중에 랩 라인 멤버들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이게 랩이라기엔 노래 같고, 노래라기엔 랩 같은… 조금 미묘한 파트더라고요. 계속 서로 주고받는 그런 노래에요.”

설명하기 어렵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힘찬은 이야기를 들었을 당시를 떠올리며 열심히 영빈에게 설명했다.

피처링이 아니라 온전히 둘이 함께 부르는 듀엣곡이라고.

노래의 흐름 자체가 둘의 대화, 혹은 나와 또 다른 나의 대화 같았다고 했다.

어떤 느낌이었고, 왜 보류했는지 등 이야기를 전부 털어낸 힘찬은 짙은 밤색 눈동자 가득 영빈을 담고 있었다.

영빈이 자신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줄 거라는 대책 없는 신뢰와 믿음이 느껴지는 시선으로.

이 덩치만 큰 어린애 같은 동생의 모습에 영빈은 결국 조금 웃어버렸다.

“왜 웃어요!”

“아니, 그냥 우리 힘찬이 귀여워서.”

“엑?!”

그럴 리가 없다는 듯 질색하는 얼굴을 하던 힘찬은 이내 새침하게 영빈을 흘겨봤다.

“내가 쫌 귀여워도 다른 데서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남들이 들으면 욕함. 우리 멤버들은 특별히 날 귀여워해도 되지만.”

“얼씨구?”

금방 짓궂게 웃는 다채로운 표현에 영빈은 힘찬의 이마를 툭 때렸다.

“까분다.”

“왜요! 맞잖아!”

“일단 들어봐. 형이 생각하기에는 너도 그 곡이 욕심나는 것 같은데 맞아?”

“어… 음. 네.”

방금까지 똥꼬발랄하던 힘찬이 금방 얌전해졌다.

무릎을 가지런히 모으고 그 위에 양손을 올리더니 들을 준비를 하고 영빈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너무 ‘기다려’ 중인 강아지 같았지만, 놀리면 또 길길이 날뛸 테니 속으로만 웃었다.

“얼마 전에 환이가 그러더라. 네 목소리가 생각보다 훨씬 폭넓게 매력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넹?”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을 댕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힘찬.

그 모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영빈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힘찬의 저음이 굉장히 매력 있다고 생각했다는 지환의 말과 하준과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점 등.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자 힘찬의 얼굴에는 기쁨이 흘러넘쳤다.

눈에서 빛이 떨어지는 것처럼 환하게 웃던 힘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진짜! 얘는 왜 그런 말을 안 해주는 거야!”

“너랑 똑같은 이유겠지. 부끄러우니까.”

영빈이 보기엔 지환과 힘찬은 닮은 구석이 꽤 많았다.

그저 드러나는 게 조금 다를 뿐이지.

물론 이렇게 말하면 지환이 상처받을 테니 직접 말하진 않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찬아.”

“네, 형.”

영빈이 ‘찬아’하고 애칭으로 부르자 화들짝 놀란 힘찬이 얌전히 대답했다.

하준과 영빈은 서로를 한 글자로 줄여 부르는 게 익숙했지만, 동생들은 애칭으로 부르면 그렇게 부끄러워했다.

정작 그런 주제에 멤버들 모두가 지환은 ‘환’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있었고.

“실력이 부족하다 싶으면 연습하면 되는 거야. 도망치려고 하지 말고.”

얌전히 눈만 깜박이던 힘찬은 이어진 영빈의 말에 눈꼬리를 접어 배시시 웃었다.

“형이 도와줄게. 같이 연습하자.”

“네! 그럼 전 화니한테 갔다 올게요!”

가뜩이나 눈꼬리가 살짝 쳐져서 강아지 같은 힘찬이 그렇게 웃자 영빈은 더 뿌듯해졌다.

신나서 달려 나간 힘찬.

저 정도로 신나서 달려갔으니 지환이 텐션에는 조금 버거울 테지만 어쨌든 잘된 일이었다.

그리고 영빈은 자신의 연습 노트를 펼쳐 힘찬에게 필요한 내용을 찾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걸로는 부족했다고 생각했는지 소현 팀장을 찾았다.

영빈의 이야기를 들은 소현도 무척 기뻐하며 최대한 돕겠다는 약속을 했고.

영빈은 최대한 본격적으로 힘찬의 연습을 도울 생각이었다.

그저 신나서 달려갔던 힘찬은 생각지도 못했던 연습 지옥이 이렇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앨범 활동은 끝났지만, 막판에 참여하게 된 스케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그렇게 나가고 싶어 했던 노래하는 프로그램.

‘무사이(Mousai)’이후 우리는 다양한 예능과 프로그램에 출연했지만, 경연 프로에는 나가지 못했다.

신인이라는 한계와 다사다난했던 우리의 꼬리표 때문에.

하지만 일 년쯤 되고 나니 이제는 불러주는 프로그램이 몇 군데 있었다.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쪽박이라는 평이 많았지만, 그래도 하고 싶었다.

우리 애들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는지, 얼마나 멋진 무대를 보여줄 수 있는지 알리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에 ‘낭만 가객’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제의받았다.

- 마지막 순간 듣고 싶은 단 한 곡

이라는 멘트가 기억에 남는 전생에도 있었던 프로그램이었다.

출연진이 꽤 빵빵한 데다 가수들을 줄 세우지 않아 서열화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웠다.

랜덤 추첨에 토너먼트였지만, 등수 붙는 것보다는 나았다.

여러 분야에서 노래 좀 한다는 분들이 모두 초대되는 프로그램이라 ‘아이돌’이라는 꼬리표에서도 약간은 자유로울 수 있었고.

꽤 인기 있는 주말 프로그램이라 나도 멤버들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꺼이 출연을 결심했다.

사전 인터뷰에서도 다들 굉장히 친절히 대해주셔서 멤버들의 마음이 더 콩닥거리는 듯했다.

‘아무튼 너희는 진짜….’

‘왜, 우리 애들이 뭐!’

‘하나같이 너 같은 인간 놈들이 모여서는. 쯧.’

포잉은 잔뜩 긴장했다가도 쏟아지는 칭찬에 녹아버린 멤버들을 탓했다.

워낙 방송국 놈들의 못 볼 꼴을 많이 본 포잉은 그들에 대한 경계가 심했다.

‘내가 잘못했어….’

‘또또 쓸데없는 생각.’

나를 보호하기 위해 워낙 사람들의 여러 모습을 보고 다닌 포잉이라 걱정스러웠다.

이러다 사람을 싫어하게 되진 않겠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중간중간 모든 사람이 이런 게 아니다,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있다 하고 속삭였지만 포잉은 귀찮아했다.

그런 것들에 휘둘리는 건 자신의 경력을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따끔하게 한마디 해서 요새는 안 했지만.

이왕이면 포잉이 나 이후 어떤 계약자를 만나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죽음에 대한 공포를 조금, 아주 조금은 털어내고 나니 포잉이 걱정됐다.

난 당장 내 죽음도 너무 무서운데 그걸 여러 번 봐야 하는 포잉은 어떨까 싶었다.

그건 너무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인데.

이 작고 작은 고양이 요정님이 긴 시간 반복해서 겪어야 하는 일이 너무 가혹하다 싶었다.

아직은 먼 미래라고 믿고 있지만, 그래도 포잉이 내가 죽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좋은 모습만, 우리가 이렇게 매번 티격태격하듯 이런 행복한 모습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갑자기 또 뭉클해져서 포잉을 바라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냉담했다.

‘뭐 또 사고 쳤음? 순순히 불으셈.’

‘…아냐. 내가 포잉한테 너무 많은 걸 기대했다….’

이렇게 짝사랑 같은 일방통행의 마음이라니.

내가 작정하고 사고를 친 적은 없지만, 포잉 눈에 나는 여전히 사고뭉치인 모양이었다.

터져 나올 것 같은 한숨을 꾹 눌러 담고 멤버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차 안에 각자 자세로 잠들어 있는 내 새끼들.

정말로 콘서트를 한다는 들뜸도 잠시, 우리는 몰아치는 연습과 회의, 스케줄, 공부에 짜부라들 것 같았다.

어디서 어떤 소릴 들은 건지 찬이는 내 요청을 받아들여 주었고.

아무래도 준이 형이나 영빈 형이 무언가 도움을 준 것 같았다.

나와 이야기를 나눈 후, 노래 연습 시간이나 강도가 어마무시하게 늘었다는 소문도 들었다.

우리 멤버들은 하나같이 자기 연습량은 생각 안 하고 다른 멤버의 연습량이 많다고 생각하는 게 참 신기했다.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다 같이 연습을 받는 건 공통이었고, 그 후에는 스케줄이 없다면 각자 시간을 가졌다.

연습하기도 했고, 공부나 곡을 쓰기도 했고.

힘찬, 세빈에게 춤 연습을 봐달라고 하면 관절의 안녕을 걱정해야 했다.

영빈 형에게 노래 연습을 부탁하면 그동안 잘 버텨주었던 내 성대가 혹시 유리였던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위해 하준 형이나 경환 형에게 질문하기 시작하면 몇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런 우리는 서로와 연습하는 걸 무척 힘들어했다.

서로에게 자극이 되니 실력이 확실히 늘지만, 수명과 맞바꾸는 느낌이 든다고.

그걸 서로에게 느끼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걸까?

이놈의 인간들….

한숨을 푹 내쉬며 흐물거리는 멤버들을 하나, 둘 챙겼다.

많이 지쳤는지 하준 형도 눈이 가물가물했다.

“우리 이제 내려야 해요. 정신 차려요.”

“다 왔어?”

열심히 졸다가 눈을 뜬 경환은 얼굴이 부어있었다.

“형, 가희 누나한테 한 소리 듣겠다….”

“아, 또 부었어?”

“몸에 문제 있는 건 아니죠?”

“어, 그냥 체질이야.”

유난히 잘 붓는 경환 형과 찬이.

호박즙도 먹어보고 마사지도 꾸준히 했지만 아무래도 체질 탓이라는 말이 사실인지 어떻게 되진 않았다.

꾸벅꾸벅 조느라 눈도 잘 못 뜨는 세빈이를 챙기는데 나보다 커버린 터라 세빈이 부축이 조금 버거워졌다.

자존심 상해….

내색하지 않았지만, 무척 가슴이 아팠다.

귀여운 우리 막내 돌려줘…!

차에서 내리자마자 몸을 풀기 시작하는 멤버들을 뒤로하고 유난히 잠을 못 깨는 막내를 살살 달랬다.

“막둥아, 이제 일하러 가야지.”

“너무 졸려요….”

“응, 얼른 끝내고 집에 가서 자자.”

“네….”

눈도 잘 못 뜨면서 달래는 말에는 또 예쁘게 대답을 잘했다.

그런 막내가 마냥 예뻐 토닥이자, 준이 형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꾸벅꾸벅 조는 막내를 가리키며 입 모양으로 ‘귀엽죠?’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덩치만 컸지, 애라니까.

겨우 눈을 제대로 뜬 세빈이를 붙들고 우진 형의 뒤를 따라 걸었다.

오늘의 마지막 스케줄은 새로운 주님을 만나는 것.

조물주와 건물주 다음가는 우리 광고주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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