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37)화 (337/456)

337. Daydream(2)

힘찬은 지환의 표정이 한결 밝아진 걸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외부의 폭풍을 잘 견디고 나니 멤버들이랑 다투고.

정말이지 하루도 쉽게 지나가는 날이 없었다.

알게 모르게 다들 마음에 쌓인 것들이 많았는지 자잘한 트러블이 있었다.

하지만 맏형들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듣고, 지환과 다투고 난 후부터는 다들 후련해 보였다.

후련해진 것까지는 좋았는데, 지환이 한동안 맥을 못 추는 건 걱정이었다.

너무 짧은 기간 몰아쳤던 탓인지 늘 또렷하고 분명했던 눈동자가 흐렸다.

오죽 걱정됐으면 다른 멤버들끼리 상의를 했을까.

이전 지환이 멤버들에게 비밀로 하고 연기를 하던 때처럼 나머지 멤버들만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잠은 잘 자는지, 연습할 때는 어떤지, 혹시 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물론 뾰족한 수가 생기진 않으리란 걸 다들 알았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그 후 연희 누나가 회사에 왔고, 누나와 점심을 먹고 온 그날부터 지환은 조금씩 평소의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이제 괜찮냐는 하준 형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어딘지 모르게 후련한 얼굴로 괜찮다고 했고.

지환의 ‘괜찮아’는 잘 믿지 않는 멤버들이었지만, 이번에는 괜찮을 것 같았다.

누나와 대화 후 좋아진 것으로 보아 이전 친척 일과 연관된 어떤 대화가 오간 것 같았다.

“진짜 손 많이 간다니까.”

막바지 연습을 끝내고 마무리 스트레칭을 끝낸 힘찬은 연습실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평소라면 막내와 연습했을 텐데, 막내가 요새는 영빈 형이랑 보컬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힘찬은 뜨겁게 열이 올랐던 몸이 조금씩 식어가는 이 순간이 좋았다.

몸 안 가득 쌓여 있던 모든 걸 다 쏟아내고 텅 비는 것 같은 느낌.

이렇게 비우고 나면 또 다른 것들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아 두근거렸다.

한계까지 몰아붙였던 터라 크게 숨을 내쉬는 가슴이 들썩였다.

춤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건 힘찬도 알았다.

지환이처럼 연기까지 손을 뻗을 생각은 없었지만, 적어도 노래는 아직 한참 더 공부해야 한다는 것도.

힘찬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다른 그룹들과 어느 정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DCL과 친하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까불거리긴 하지만 레노나 자인이랑은 죽이 잘 맞기도 했고.

하지만 더 많은 방송에 출연하면서 정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인사만 하는 사이에 오가는 말 말고, 전반적인 분위기 같은 작은 소문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다른 그룹에 열심히 말도 붙이고 잘 지내려 노력했다.

멤버들, 특히 하준 형이나 지환이는 연상들에게 예쁨을 받았다.

엄밀히 따지면 멤버들 모두가 유독 형님들에게 귀염을 받는 쪽이었다.

형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건 좋은데 그러다 보니 또래나 더 어린 사람들이 다가오질 못했다.

힘찬은 그 틈을 자신이 메꾸기로 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멤버 중에는 자신밖에 없었다.

하나같이 낯을 가리는 사람들만 모인 것도 신기할 지경.

덕분에 지금은 꽤 많은 또래 친구를 만들었다.

이 중에 몇 명이나 끝까지 친구로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잘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부쩍 부담스러워졌다.

정확히는 모임 친구들 사이에서 파트 분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였다.

파트 분배는 늘 서로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예민한 문제였다.

메인 보컬 중심으로 파트가 나뉘는 건 당연했고, 래퍼는 랩파트를 가져가는 게 당연했다.

노래는 길어야 4분인데 이걸 몇 명이 쪼개려니 골치가 아플 수밖에.

한번 불평불만이 나오기 시작하자 다른 자잘한 불만들도 조금씩 새어 나왔다.

그러면서 힘찬에게는 괜찮냐고 물어왔다.

힘찬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였다.

외부 곡이든 멤버곡이든 힘찬이 보기에는 정말 절묘하게 잘 나눠주셨으니까.

멤버 중에 곡을 쓰고 프로듀싱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움을 살 수 있다는 걸 이번에 느꼈다.

나름대로 자신을 객관화하여 분석하곤 했기에 힘찬은 자신의 한계를 알았다.

자신은 노래로 영빈 형이나 지환이를 이길 수 없었다.

대신 그 둘 보다는 춤에 자신 있었고.

언래블 모두가 자신이 잘하는 건 다른 멤버를 도왔고, 도움을 요청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그렇게 해와서 한 번도 어색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게다가 힘찬은 한 번도 노래 연습을 소홀히 한 적도 없었다.

부러워할지언정 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파트 분배라는 게 다른 그룹에서는 꽤 골치 아픈 문제인 듯했다.

서로 입장이 다르니 의견이 나뉠 수밖에.

복잡한 건 딱 질색인데 마음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 모양인지.

깊은 한숨을 내쉰 힘찬은 적당히 열이 식은 몸을 일으켰다.

역시 멤버들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아직 어렵다.

속을 다 꺼내 보일 수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되니까.

“찬아, 연습 끝났어?”

“응.”

뭔가 되는 일이 없다 싶어 한숨을 푹 내쉬던 그때,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귀가 절로 쫑긋거렸다.

지환이었다.

힘찬은 영빈 형의 목소리도 좋지만, 지환의 목소리가 무척 좋았다.

늘 애정이 담겨 있어 따뜻했다.

조곤조곤 말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딱 좋은 온도로 맞춰진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응. 뭔데? 춤 봐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힘찬이 씩 웃으며 춤 연습할 거냐고 묻자 지환의 얼굴이 순식간에 핼쑥해졌다.

“아니, 그거 말고.”

“쳇.”

“뭐가 쳇이야, 쳇은.”

저질 체력답게 늘 허덕거리는 지환은 그러면서도 악착같이 연습을 따라왔다.

그게 재밌어서 연습할 때 더 몰아붙이는 것도 있었고.

처음에는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거덕거리던 애가 이제는 제법 태를 만들어내서 흐뭇하기도 했다.

지환의 춤에는 힘찬의 지분이 18%쯤 있지 않을까?

그럼 막내는 10% 정도이려나?

엉뚱한 생각이 불쑥 떠올라 괜히 헤프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럼 뭔데?”

춤 말고 딱히 도와줄 게 있나 싶어 갸우뚱하자 지환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음…. 일단 내 작업실에 가자.”

잠시 고민하던 지환의 손짓에 힘찬은 언제나 그렇듯 별다른 질문 없이 졸졸 쫓아갔다.

뭔가 지환이 재밌는 일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는 촉이 왔다.

* * *

소현은 오랜만에 직접 SNS와 커뮤니티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다.

보고서로 전달받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직접 두 눈으로 보아야 마음이 놓였다.

“아직도 이런 애들이 있네.”

물론 좋은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었다.

눈치가 없는 건지 멍청한 건지.

악플러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 ON 엔터를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때마다 소현은 직접 하나하나 저장하여 증거자료를 챙겼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자료들은 법무팀으로 보내질 테고, 또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겠지.

그래도 확실히 한번 싹 잡아 처넣었더니 훨씬 깨끗해진 게 한눈에도 보였다.

악플 달고 싶어서 손이 드릉드릉한 종자들도 최대한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쓰는 게 훤했다.

그러던 소현의 눈에 한 글이 들어왔다.

“위캠 영상 얘기네.”

팬들이 위캠에 업로드되는 영상들을 꽤 좋아한다는 건 소현도 알고 있었다.

뷰수도 빵빵하게 잘 나오고 있었고, 댓글도 무시 못 할 정도였으니까.

윤관영 감독을 담당자로 점찍었던 게 역시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고, 소현은 그렇게 자신을 칭찬했다.

해외 팬들을 위한 자막도 좋은 선택이었다.

처음 회사에서는 해외 진출은 천천히 주의 깊게 살핀 후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회사의 생각보다 해외 팬 유입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었고, 물은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 법.

아직 멤버들에게는 오픈하지 않았지만, 국내 콘서트 후 해외 진출 쪽으로 이미 이야기가 오가는 중이었다.

일본은 이미 대행사와 상당한 내용이 논의 중이었고.

초창기 팬 중 능력자들이 직접 자막을 달아 해외 커뮤니티에 홍보한 덕을 크게 봤다.

회사에서 세심하게 챙기지 못한 부분을 팬덤에서 챙겨준 것.

언래블 멤버들도 하나같이 자기 몫을 단단히 해내더니, 그 아이돌에 그 팬이라고 팬덤까지 이렇게 야무졌다.

모처럼 기분이 좋아진 소현은 흐뭇한 얼굴로 솜뭉치들의 이야기를 구경했다.

- 뷰어들아 언래블 스토리 중에서 최애편 뭐야?

ㅈㄱㄴ!!

애들 영상 재탕하다가 급 궁금해졌어.

우리 무슨 편이 제일 좋았는지 얘기해보자ㅋㅋㅋ

ㄴ 나나나 애들 운동회!! 벨크로 달리기ㅋㅋㅋㅋㅋ 처음 봤던 그 충격을 잊을 수 없다….

ㄴ 난 애들끼리 저장한 이름 맞추는 그 편ㅠㅠㅠㅠ 애들ㅋㅋㅋ너무 자기 성격대로라 울면서 봄

ㄴ 나도 운동회편ㅋㅋㅋㅋ그편 진짜ㅋㅋㅋ애들 찐으로 화내는게 보여서 너무 조아

ㄴ 난 새벽이랑 같이 했던거ㅠㅠㅠㅠ가영이가 작은환들고 흔들던 거 너무ㅋㅋㅋ우리애 하찮아서.휴ㅋㅋㅋㅋ

ㄴ 난 일상 편에서 애들 첫눕방한거! 러그 위에 옹기종기 모여 누운 거 진짜 힐링물임

ㄴ 나도 눕방! 과장새끼 때문에 사표적다가도 그 편 보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옴. 아 내가 백수되면 덕질 못하지, 하면서 현실 자각은 덤….

ㄴ 애들 송편 만드는 것도 귀여웠는데ㅠㅠ 난 명절 편이 제일 좋아

ㄴ 난 DCL이랑 같이 찍은 거. 찐친 텐션이라 둘다 너무 귀여웠어ㅎㅎ

언래블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화해하고 찻잔 속 태풍처럼 흔들거려도 다행히 그 텀이 짧았다.

덕분에 외부로 티 내는 일 없이 부들부들한 특유의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고.

아이돌은 개개인의 매력도 중요했지만, 팀 내의 케미가 중요했다.

언래블은 담당 상담사인 찬영이 우려 섞인 의견을 전달할 정도로 자기들끼리 끈끈한 애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이일수록 사소한 일에서 틀어져 버리면 돌이키기 힘들다는 것도 알았다.

소현이 직접 지켜본 케이스도 있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속이 아려왔다.

최근 멤버들 컨디션이 정리된 자료를 확인한 소현은 천천히 숨을 내쉬며 뻐근해진 어깨를 주물렀다.

지환의 컨디션이 어느 정도 회복한 것으로 이번 일도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백 프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오진 못했지만, 그게 어딘가 싶었다.

“처음부터 상담 선생님 붙이길 잘한 것 같단 말이지.”

찬영은 주기적으로 멤버들에 대한 소견서를 회사에 보내주었다.

처음 계약할 때 언급했던 것처럼 멤버들의 개인사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없었다.

그저 담당 상담사로서 회사의 케어가 필요할 것으로 추측되는 부분과 우려스러운 점 등을 적어놓은 것.

정윤과 소현은 그것만으로도 꽤 만족스러웠다.

멤버들의 개인사는 당사자가 직접 말해서 알고 있으니 괜찮았고, 굳이 캐내고 싶지도 않았다.

멤버 모두가 자기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회사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멤버들까지 지금은 만족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만한 부분이었다.

그만큼 찬영의 상담 방식이 멤버들과 잘 맞았다는 거겠지.

소현은 최근 정윤과 이대로 상담을 지속해나갈 것인지 아니면 잠시 중단할지 논의하고 있었다.

점점 스케줄이 늘어나다 보니 이전처럼 규칙적인 시간을 정해놓기가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정윤은 비활동기로 상담을 옮기는 게 낫지 않냐는 쪽이었고, 소현은 한 달에 한 번씩은 지속하는 게 좋다는 쪽이었다.

각자 장단점은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최종 결정은 멤버들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소현은 멤버들의 반응이 내심 궁금해졌다.

과연 이 말썽꾸러기들은 어떤 대답을 들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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