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35)화 (335/456)

335. 외전 – 오아시스(휴가)

“내가 어쩌다 또 여기에 있는 거죠….”

“그건 우리가 널 납치했기 때문이지?”

“아직도 우릴 몰라?”

분명 숙소 가는 차 안에서 잠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바다였다.

그리고 익숙한 인간들 얼굴이….

“세빈아?”

“저는 아무런 힘이 없어요, 형….”

“준이 형?”

“형은 언제나 다수결을 존중한단다.”

눈꼬리를 늘어트리며 자신은 잘못 없다고 어필하는 세빈이, 늘 그렇듯 다정하게 웃는 준이 형.

그런 둘뿐만 아니라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빈이 형, 경환 형, 찬이.

거기다 무인도 패밀리인 새벽 형들과 진우 형.

아무래도 이 실행력은 가영 형의 수작인 듯했다.

밀린 곡 작업과 개인 스케줄을 휴가 전까지 끝낸다고 최근 무리했었다.

멤버들이 다 같이 놀러 가고 싶어했기에 일정을 맞춰야 했다.

빠듯하게 겨우 끝내고 내일부터 한동안은 조금 쉬었다가 멤버들과 여행이라도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렇게 멤버들과도 말을 해놨는데… 이건 내 예정에 없던 납치였다.

“아니, 이런 건 미리 말을 좀 해달라니까요.”

“미리 말하면 납치가 아니지.”

“그래도 눈떴을 때 바다 보이니까 좋지?”

언제 옮긴 건지 가영 형의 캠핑카 침대에 날 눕혀둔 이 인간들.

어떻게 된 게 이런 미친 행동력은 나이를 더 먹어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더 이상 푸념해봤자 달라질 것도 없고, 진우 형 말대로 눈뜨자마자 바다가 보이는 건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이건 누구 생각이에요?”

“누굴까?”

“순순히 대답하면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자꾸 이렇게 장난치는 건 심장에 해로우니 응징은 필요했다.

이제는 서로 너무 잘 아는 터라 멤버들은 내 시선을 피하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시선이 슬금슬금 가영 형과 찬이를 향하는 걸 확인한 나는 부러 부드럽게 웃었다.

“가영 형이랑 찬이죠?”

“아니이… 요새 너 너무 바빴잖아. 그래서 기분 좋게 해주려고!”

“맞아! 환이 너 바다 보는 거 좋아하잖아.”

늘 어딜 가든 밥을 쥔 덕에, 나는 이 모임에서 나름의 권력을 쥐고 있었다.

이렇게 형들까지 내 눈치를 볼 만큼.

키스 형은 등 뒤에서 눈짓으로 가영 형을 가리켰고, 경환 형도 몰래 손가락으로 찬이를 지목했다.

“두 사람은 고기 안 구워줄 거야. 알아서 먹어요.”

“야! 그건 너무 가혹해!”

“안돼! 얘랑 나는 너 없으면 안 되는 거 알잖아!”

영빈 형이나 세비 형, 키스 형은 제법 음식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제일 요리 구멍인 저 둘은 요리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자기가 만들고도 못 먹을 거라고 버리는 사람들이니까.

울상이 된 찬이를 무시하고 몸을 일으켜 밖으로 향했다.

뒤에서 둘이 무어라 외치고 있었지만, 몰라. 고생 좀 하라지.

하필 타이밍도 포잉이 요정계에 가고 없는 시기여서 전혀 몰랐다.

밖에 나오자마자 바다 특유의 짠 내와 물 냄새가 사방에 넘실거렸다.

탁 트인 바다는 언제 보아도 답답했던 마음을 풀어주곤 해서 나는 바다를 무척 좋아했다.

내가 잠든 사이 다들 캠핑 준비를 끝내둔 덕분에 손을 댈 구석은 없었다.

좋다.

이번엔 정말 좀 편하게 쉴 수 있겠구나.

“형! 옷 갈아입어요!”

“옷도 챙겨놨어?”

“그럼요.”

씩 웃는 세빈이 얼굴이 이제는 아가라고 놀리지 못할 만큼 잘 자라있었다.

여전히 귀엽고 쑥스러움도 많이 타는 우리 막내.

손도 제법 야물어져서 이제는 경환 형과 찬이를 완벽히 컨트롤하고 있었다.

흐, 하고 바보 같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본격적으로 휴가를 즐겨볼까?

* * *

“용케 이런 곳을 찾았네요?”

“괜찮지? 아는 형이 추천해준 곳인데 원래 본격적으로 개장하는 건 다음 주부터래.”

“이게 바로 인맥 빨인가.”

가영 형을 한껏 닦달해주고 나서 릴렉스 체어에 앉아 물놀이하는 막내들을 구경했다.

가영 형은 캠핑카를 산다고 하더니 정말로 사버렸다.

그전까지 운전 귀찮다고 차도 안 샀던 사람이 그런 데서만 빨라가지고.

국내 도로 사정상 대형 캠핑카를 구매해도 쓰지 못할 걸 알기에 구매 당시에 꽤 고민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적어도 두 대는 있어야 이 인원이 모두 돌아다닐 텐데 금액도, 운전도 관리도 모두 걱정이니까.

그래서 다 같이 움직일 때는 캠핑카를 한 대 더 대여하거나 각자 차를 끌고 오기도 했다.

경환 형과 찬이가 캠핑에 맛 들이더니 최근에 차박 한다고 시끄럽기도 했고.

“인생은 돈과 인맥이지.”

“와, 엄청 속물적인 발언.”

“뭐 어때, 우리끼리 있는데.”

능글맞게 말하는 진우 형의 모습도 이제는 낯설지 않았다.

그때는 내 앞가림도 힘들던 시기라 몰랐지만 진우 형은 꽤 냉정한 사람이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라 몰랐을 뿐.

연기를 배워가며 다른 배우분들과도 조금씩 친분이 생기면서 많은 소문을 들었다.

그런 상황을 짐작했던 걸까?

어느 날 진우 형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내게 묻기도 했었다.

혹시 자신에게 실망했냐고.

펄쩍 뛰면서 왜 그게 실망할 일이냐고, 다른 건 어쨌든 형은 형일 뿐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진우 형의 눈빛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빛이었다.

그날을 분기점으로 진우 형은 우리 앞에서 조금 더 편한 모습을 보였다.

지금처럼 예전이라면 애기들 앞이라고 하지 않을 말도 스스럼없이 하고.

우리가 그만큼 자라기도 했고.

“한가영, 애들이 부른다.”

“넌 이제 형이라고 부를 생각이 없는 거지?”

“불러줘?”

“됐다, 이 새끼야.”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키스 형과 가영 형.

이제는 어느 정도 포기한 건지 가영 형은 자신을 부르는 찬이에게 휘적거리며 걸어갔다.

“괜찮아?”

“네? 뭐가요?”

“피곤할 텐데 끌려왔잖아.”

키스 형과 세비 형은 가영 형을 막지 못해 미안하다며 내 컨디션을 물어왔다.

아직도 형들에게 나는 마냥 조그맣고 병아리 같았던 그때의 지환으로 남아있는 듯했다.

“당연히 괜찮죠. 이렇게 다 같이 모이기 힘들잖아요.”

“우리 환이는 그때보다 지금이 체력은 더 좋을걸요?”

“그래도.”

여전히 근육이 붙지 않는 몸이지만, 꾸준히 운동했던 터라 체력은 늘었다.

영빈 형은 그 사실을 언급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고 세비 형은 못내 미안한 듯 굴었다.

“저 진짜 괜찮아요. 안 그래도 바다를 보고 싶기도 했고.”

이렇게 우리 맏형들과 새벽 형들, 진우 형 사이에 있을 때면 멋모르던 그때가 떠올라서 마음이 한없이 풀어졌다.

녹진하고 따뜻한 안락한 분위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데뷔 초반부터 치고 올라가는 동안 있었던 많은 일.

처음부터 한결같이 지켜주는 이 사람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실없이 웃는 내 곁에는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멤버들이 모였다.

준이 형, 빈이 형, 키스 형과 세비 형, 진우 형, 나는 풍경을 즐기는 쪽이었다.

가영 형과 경환 형, 찬이, 세빈이는 움직이는 걸 좋아했고.

덕분에 바다든 산이든 놀러 가면 늘 저 멤버들은 활기차게 주변을 돌아다녔고, 우리는 그들을 구경했다.

간혹 영빈 형이나 준이 형이 저 멤버들에게 끌려갈 때도 있었고.

아직 물이 따뜻해질 시기도 아닌데 자기들끼리 노느라 난리인 막내들을 보고 있자니 자꾸 웃음이 헤퍼졌다.

“환이 너도 신기하단 말이지.”

“제가요? 왜요?”

“애들이 그렇게 좋냐?”

키스 형은 의자를 당겨 옆에 붙어 앉아 나와 같은 풍경을 바라봤다.

새파란 바다와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

그리고 그 프레임 안에는 사랑하는 사람들.

“좋죠. 가끔 뒤통수를 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어깨를 으쓱하며 답하는 날 유심히 바라보던 키스 형의 얼굴이 묘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네, 넌.”

“맞아. 얘는 나이를 안 먹는 거 같아.”

“나이는 우리만 먹고?”

한껏 풀어진 형들은 나를 가운데 두고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기 시작했다.

요새 흰머리가 자꾸 보인다느니, 가영 형 때문에 탈모가 오는 것 같다느니.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자연스럽게 캠핑카 안의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와 마시는 형들의 모습이었다.

이 몸은 알쓰였던 터라 커피를 들고 있었고, 준이 형도 술이 약했던 터라 커피를 들었다.

배부른 맹수처럼 릴렉스 체어에 각기 편한 자세로 맥주를 들고 있는 형들 모습이 광고의 한 장면 같았다.

“이렇게 보니까 우리 형들도 연예인이구나 싶은데요?”

내 손에 사진기가 있었으면 찍어놓고 싶을 정도로 근사했다.

배경도 피사체도 어디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어 캠핑 물건 광고 같기도 했고.

나도 모르게 감탄하며 중얼거렸더니 키스 형은 은근히 기분 좋았던지 웃으며 대꾸했다.

“처음부터 연예인이었다만?”

“그때도 지금도 그렇지.”

진우 형까지 한마디 거들며 씩 웃었고, 그 모습이 재밌었는지 준이 형도 피식거렸다.

평소 워낙 팔불출같이 굴고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가끔 잊곤 했지만, 이 자리 모든 사람이 연예인이긴 했다.

특히나 우리 막내 라인은 점점 몸이 더 좋아졌고.

“왜 나는 저런 몸이 안 될까요?”

“글쎄…. 타고난 건 포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

워낙 몸 쓰는 걸 좋아하는 경환 형이나 찬이, 세빈이는 부러울 만큼 잘 가꿔진 몸을 자랑했다.

그에 비하면 하얗고 날렵하기만 한 내 몸이 불만족스러웠고.

늘 키와 근육이 붙지 않는 몸이 콤플렉스인 걸 아는 준이 형이 다정하게 팩트로 때렸다.

웃는 얼굴로 팩트 날리는 건 이제 그만둘 때도 됐잖아요, 형….

체념한 듯 한숨 쉬는 내 모습이 웃겼는지 형들도 즐거워 보였다.

그래요, 예나 지금이나 나 놀리는 게 그렇게 재밌죠?

“형! 같이 놀아요!”

“화나! 이리 와!”

“안 해…. 싫어, 부르지 마.”

한숨을 푹푹 쉬는 나를 물놀이에 열중하던 막내들이 소리쳐 불렀다.

저기 끼었다가는 체력이 남아나질 않을 것을 알기에 단호히 거절했다.

“전 슬슬 밥 준비나 해야겠네요.”

“물놀이 끝나면 배고프긴 하지.”

“형들도 가서 발이라도 담가요.”

“쟤네 지치면 가려고.”

저기 끼면 피곤해진다는 걸 다들 너무 잘 아는 게 문제였다.

알아서 장을 봐 왔을 테니 재료를 확인하러 차 안으로 들어가자, 내 옆에 영빈 형이 다가왔다.

“같이 하자.”

“슬렁슬렁 혼자 해도 되는데.”

“아냐, 저 인간들 먹는 거 생각하면 같이하는 게 낫지.”

강경 육식파답게 냉장고 안에는 고기가 가득했다.

이 징글징글한 인간들….

멤버들에게 그렇게 채소를 먹이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무색하게 여전히 고기만 불러댔다.

한숨을 푹 내쉬는 날 보며 해탈한 듯 웃는 영빈 형.

“불피우면 되지?”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은데요?”

다른 형들은 주변을 정돈하고 불피울 준비를 하겠다고 알려왔다.

버너도 있고 내부에서도 조리할 수 있었지만, 캠핑의 낭만은 역시 불맛이지.

포잉이 있었다면 너희는 어떻게 변하는 게 없냐며 혀를 찼겠지만, 난 한결같아서 좋았다.

한결같은 애정과 신뢰, 그리고 이 친밀함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무척 귀한 것이었다.

영빈 형과 주거니 받거니 옛날이야기부터 최근 이야기까지 조잘거리며 준비하다 보니 금방이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무슨 생각?”

“내가 언래블이 안됐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요.”

영빈 형은 찌개를 끓인다고 차 안에서 준비하고 있었고, 키스 형과 세비 형은 불을 피워주더니 물 쪽으로 다가갔다.

고기 구울 준비를 하던 내 옆에 앉은 준이 형에게 문득 생각난 말을 꺼냈다.

언제나 현명하게 우리를 이끌어준 소중한 사람.

그때도 지금도 한결같이 내게는 최고의 연예인이자 형.

내 말을 한 번도 허투루 듣지 않는 준이 형은 이번에도 근사한 얼굴로 웃으며 답했다.

“어디에 어떤 모습이든 넌 잘 해냈을 거야.”

이제는 아주 오래된 일처럼 느껴지는 전생의 내 모습을 떠올랐다.

그때 난 잘 해내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널 찾아내지 않았을까? 우리는 네가 없으면 안 되니까.”

태연한 얼굴로 낯간지러운 말을 하는 준이 형.

“와, 진짜 형은….”

“왜, 뭐.”

한결같은 내 최애 님의 말 덕분에 결국 웃고 말았다.

하준 형은 그때도 지금도 꼭 내게 필요한 말을 해주었다.

언래블이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