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29)화 (329/456)

329. Lonely(4)

영빈은 뻑뻑하게 목이 말라가는 느낌에 작은 생수병 하나를 한 번에 비워냈다.

“휴.”

얕은 숨을 내쉬며 겨우 갈증을 해결하고 나니 그제야 뒤늦게 피로가 쏟아졌다.

오늘 노래 연습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았다.

최근에는 감정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 많았다.

동생들의 사춘기가 그러했고, 본인의 재능에 대한 의심이 그러했다.

처음에 비하면 한 발짝, 아니 한 발짝 반 정도?

나아졌다고 생각을 했다.

노래 부를 때, 지나친 몰입 때문에 감정 과잉되는 일도 이제는 제법 줄었다.

곡에 몰입하는 건 좋지만 너무 흠뻑 빠져 허우적거리는 건 몹시 힘겨운 일이니까.

자신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올 때마다 영빈은 물속에서 빠져나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소리가 차단된 세상은 붕 뜨는 기분과 함께 목소리도, 팔다리도 자신의 것이 아닌 듯한 낯선 기분을 주었다.

현실.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저 사람이 있는 공간.

현실감을 되찾으며 복도를 타박타박 걷는 영빈은 조금 전 연습 때의 감정들을 익숙하게 갈무리했다.

그러면서 생각은 자연스럽게 멤버들에게로 번졌다.

이번 앨범 컴백 쇼케이스 때 서로에 대해 이야기했던 영상.

동생들의 고민, 이전과 다른 행동.

소중한 친구인 하준과 나눈 불확실한 미래에 관한 고민.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부정적인 일들이 먼저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언제나 그림자처럼 발밑에서 늘 웅크리고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그림자조차 자신의 일부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영빈은 힘찬이 자신을 섬 같은 사람이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한참 어리고 돌봐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힘찬이었는데.

이제는 분명하고 또렷한 눈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줄도 알았고, 또박또박 말도 곧잘 했다.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미소가 얼굴에 번져가고 있었다.

얼마 전, 소현 팀장이 푸념하듯 너희는 좀 개인적일 필요가 있다고 했던 말도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필요한 물품을 물었더니 숙소에 놓을 에어프라이어를 요구했다던 동생들.

“하여튼.”

웃음 섞인 중얼거림에는 숨길 수 없는 유쾌함이 뚝뚝 묻어났다.

멤버들이 너무 서로에게 집착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은 하준과 영빈이 진작부터 했던 고민이기도 했다.

데뷔 직후부터 지금까지의 온갖 사건 사고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굳이 나서서 ‘개인’이라는 개념을 동생들에게 알려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영빈이 보기에는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여도 그 안의 모두가 전혀 달랐다.

천천히 복도를 걷는 영빈의 머릿속에 멤버들의 얼굴이 하나씩 스쳐 지나갔다.

처음 기죽은 얼굴을 하고 있던 세빈이, 울면서 레몬 사탕을 물고 있던 작았던 막내.

지금 모습을 본 사람이 과연 처음의 세빈이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까?

젖살 때문에 아직 아기 같은 얼굴을 하고 행복하게 웃는 우리 막내.

비록 몸은 자꾸 자라고 있지만 순하게 웃는 얼굴에는 진한 만족감이 가득했다.

늘 감정 과잉 상태로 뛰어다니던 힘찬이는 어떻고.

자기감정을 자신도 어떻게 하지 못했던 아이가 이제는 집중할 줄도 알고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 자체가 바뀌었다.

경환의 지금 모습을 본 팬들이 처음 연습생으로 들어왔을 때 사람에 무관심했던 경환을 알면 어떨까.

늘 무덤덤한 얼굴로 동생들과 놀아주는 모습을 아는 사람이 그 모습을 연상할 수나 있을까?

게다가 누가 채찍질하지 않아도 자신의 동생들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약간 위험한 마음이 기폭제가 되긴 했지만.

항상 피로에 찌들어 쫓기는 듯 하루를 살던 하준은 또 어떤가.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빠진다고 자신을 붙들고 하소연하던 하준의 얼굴이 생각났다.

사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이 더 바쁠 텐데, 얼굴에 되레 살이 올랐다.

하준과 영빈은 늘 동생들에게 당당한 형이 되자고 서로를 다잡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동생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었고.

영빈은 잘하고 싶고 더 뛰어나고 싶다는 열망이 언제나 옳은 결과물을 만들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최근 영빈은 지금이 언래블의 방향을 확고히 할 어떤 분기점이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어떤 그룹이 될 것인지, 그리고 멤버들 간의 관계는 어떻게 쌓여갈 것인지 등.

예전이었다면 하준과 영빈은 또 머리를 싸매면서 어떻게 하면 동생들에게 자리를 찾아줄지 고민하고 있었을 터.

“형, 어디 가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생각에 빠졌던 영빈의 걸음을 붙들었다.

“보컬 연습 끝나서 너희한테 가고 있었어.”

활짝 웃는 얼굴 위로 서늘하고 냉막했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앗, 오늘 뭐 있어요? 전달받은 거 없는데!”

허둥지둥하며 핸드폰을 꺼내 채팅방을 넘겨보는 지환의 모습에 영빈은 슬며시 웃었다.

얌전히 가라앉아있던 머리칼이 허둥거리는 몸짓을 따라 나풀거렸다.

처음에는 철두철미하고 칼 같을 것 같았던 지환이 생각보다 굉장히 허당이라는 걸 이제는 모두가 알았다.

“아니, 스케줄 있는 게 아니고 그냥 나도 연습하려고.”

“아, 놀랐잖아요.”

허둥거리던 동작이 느긋하게 흐르는 영빈의 목소리에 맞춰 멈칫하더니 축 늘어진다.

자연스럽게 영빈의 옆에 선 지환은 툴툴거리면서도 혹시 잊은 게 없는지 메모를 살피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무어라 중얼거리길래 귀를 기울여보니 메뉴 고민 중이었다.

“왜, 찬이가 자꾸 고기 먹고 싶대?”

“어? 어떻게 알았어요? 닭가슴살 안 먹는다고 승질을 아주 그냥….”

영빈의 말에 큰 눈을 끔벅거리던 애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세상 다 산 사람처럼 푸념을 늘어놓았다.

경환과 힘찬이 채소를 너무 피한다, 몰래 군것질하다 하준에게 걸렸더라 등등.

쉬지 않고 늘어놓는 말이 전부 멤버들 근황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영빈이 한마디 툭 던졌다.

“넌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저요?”

생각해본 적 없다는 듯 눈동자가 도르르 구르고 구르다 겨우 메뉴 한 가지를 말하는 데 성공한다.

“어… 닭볶음탕…?”

“아, 진짜 그거 안 먹은 지 오래됐네. 다음에 그거 먹자고 하자.”

영빈은 지환의 사고방식이 그룹과 멤버들을 우선으로 돌아간다는 걸 알았다.

하준과 진지하게 이 부분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당사자를 지적하기에도 이상했다.

‘넌 너무 이타적이니 이기적인 사람이 되렴’하고 말하는 것도 이상했으니까.

그래서 선택한 게 둘이 지환을 챙기는 것이다.

넌 어떻게 생각해?

넌 뭐가 하고 싶어?

넌 뭐가 더 좋아? 등등

둘은 지환의 의사를 끊임없이 되물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하자는 거 하자고 한 발 빼던 지환이 이제는 종종 자기 의사를 먼저 말한다.

하준과 영빈이 지환의 의사를 묻기 시작하자, 다른 멤버들도 자연스럽게 지환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는 점에서 영빈은 만족했다.

적어도 멤버들은 상대방의 의견을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이라는 이야기였으니까.

두 사람의 발이 나란히 같은 속도로 복도를 지나 숙소 침대보다 익숙한 공간에 도착했다.

“둘이 같이 왔네?”

“네. 오다 형 만났어요.”

이전보다 한결 편해진 얼굴의 하준이 둘을 반겼다.

연습실 바닥을 굴러다니던 한 덩어리에서 쏙하고 세빈이 빠져나왔다.

그걸 어처구니없다는 듯 보던 하준은 이내 자기보다 작은 지환에게 매달리는 세빈의 모습에 웃어버렸다.

이만하면 우리 애들은 괜찮은 것 같았다.

* * *

연습실 바닥을 숙소 거실만큼이나 익숙하게 굴러다니는 멤버들을 보며 진우 형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우리가 너무 외부에 날을 세우고 사는 걸까요?’

‘너희가?’

나도 귀가 있다 보니 언래블을 두고 외부에서 떠드는 소문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자기들밖에 모른다 등등.

이전 프로그램에서 다른 신인 그룹에게 기회를 양보한 데는 그런 소문들을 해소해보려는 것도 있었다.

억울하기도 했다.

우리 나름 다른 사람들이랑 잘 지내는데?

속 사정까지야 모르지만, 안면을 튼 사람들과는 대부분 잘 지냈다.

정말 친한 사람들이 한정적이어서 그렇지.

하지만 데미갓이 공중분해 되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우리에게까지 붙어버린 꼬리표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마음 깊은 곳에는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멤버들 모습이 박혀있어, 소문을 전부 부정하지도 못했다.

이대로 괜찮을까?

개인 활동이 하나둘 늘면서 멤버들은 더 많은 사람을 접하고 있었다.

내가 그렇듯, 멤버들도 여러 소문을 듣게 될 테고.

우리가 너무 사이가 좋아서 그런 걸까.

소문 중에는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기에 한숨이 늘었다.

홀로 활동하는 배우는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진우 형에게 조심스럽게 상담을 청했었다.

우리가 너무 외부에 날을 세우고 있는 건지, 다른 사람들과 모두 친하게 지내야 하는 건지.

진우 형은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으며 픽 웃었다.

‘너희가 날을 세우고 있는 거면 새벽 형들은?’

‘어, 음. 형들은 쫌… 뭔가 규격 외라는 느낌이라.’

그 형들은 그냥 평범한 사람들의 기준에서 생각하면 안 될 사람들 같았다.

‘단순하게 생각해. 너희가 외부 사람들이랑 엄청 잘 지내면 언래블 불화설 돌걸?’

그저 투정이고 질투라고 진우 형은 단정 지어 이야기했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 없는 게 사람인데 너희 정도면 만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너희끼리 사이좋은 걸 질투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그만큼 결속력이 강한 걸 부러워하는 거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가끔은 그룹으로 활동하는 우리가 부럽다고 했다.

형의 말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진 못했다.

내가 너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걸까?

답을 찾기 어려운 고민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와서 멤버들이 자신에게 데면데면하게 굴면 확실하게 상처받으리라는 것.

처음에 멤버들과 섞이기 위해 노력하면서 무척이나 외롭고 서글펐다.

홀로 모르는 세상에 똑 떨어져 있는 듯한 아찔함과 외로움 때문에 포잉이 더 애틋해지기도 했고.

그때에 비하면 소문 때문에 고민하는 지금이 배부른 투정 아닐까?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데 머릿속은 어지럽기만 했다.

“눈 감았다 뜨면 숙소였으면 좋겠다….”

“왜 사람은 순간이동을 못 하는 걸까?”

격렬한 연습 끝에 손 하나 까딱할 힘까지 모두 쏟아낸 멤버들은 바닥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그런 주제에 쉴 새 없이 헛소리하는 입은 멀쩡한 걸 보면, 우리 애들답다고 해야 할지.

그새를 못 참고 경환 형을 괜히 건드렸다가 밀쳐져 바닥을 구르고 있는 찬이.

그걸 보고 신나서 웃는 세빈이의 맑은 웃음소리.

기운 없다더니 저런 장난칠 기운은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벽에 기대 간신히 숨만 쉬는 게 고작인데.

“억! 세빈아! 너 이제 무거워!”

세빈이는 언제 기어갔는지 바닥에서 꿈틀대던 영빈 형 위에 철퍼덕 누웠다.

풍선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던 영빈 형이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세빈이를 밀쳐내지 않았다.

하준 형은 그런 둘의 모습에 그저 허허 웃으며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세빈이가 영빈 형을 깔고 누운 걸 보더니, 자신도 당할까 미리 발 빼는 게 역시 리더다웠다.

저 정도 눈치도 없으면 언래블에서 살아남기 힘들지.

절로 끄덕여지는 고개.

슬금슬금 몸을 빼던 준이 형은 어느새 내 옆에 와 벽에 기대앉았다.

“고민 끝났어?”

“에? 어떻게 알았어요?”

화들짝 놀라 쳐다보자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넘기던 형이 씩 웃었다.

“하루 이틀 보냐. 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우리한테 이야기도 좀 하고.”

연한 갈색의 눈동자가 오늘따라 짙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또 같은 실수를 할 뻔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우리 애들은 내 고민 따위와 상관없이 자신도 충분히 강한 애들이었다.

보호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이제는 정말 버려야 했다.

어쩌면 쭉 보호받고 있었던 건 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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