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10)화 (310/456)

310. 아주 NICE(2)

이후 이어진 젠가 게임은 세빈이와 레노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간장 팀의 승리로 돌아갔다.

“몸으로 하는 건 저 팀에 안된다, 진짜.”

“이건 몸이라기보다 그냥 센스 아냐?”

“쟤네는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하는 것 같은데?”

“음. 준이 형 빼고?”

막판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젠가.

나뭇조각들이 흔들거릴 때마다 뽑는 사람의 손도, 눈동자도 흔들렸다.

위태롭던 탑이 넘어지면 사방에서는 비명이 난무했고.

그렇게 최후의 판에 남은 건 세빈과 자인이었다.

동점 상태에서 마지막 게임을 주장들끼리 붙게 됐더니, 눈에서 레이저를 쏠 것처럼 이글이글했고.

세빈이가 섬세한 손길로 하나하나 빼 나갔다면, 자인은 과감하게 움직였다.

평소에도 세빈이는 생각이 많았다.

이번에도 생각이 많았는지 고민하다 손을 뻗은 순간, 진즉부터 위태롭던 나무 탑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세빈이는 무척 아쉬워했다.

아무래도 팀장이다 보니 더 이기고 싶었던 것 같기도 했고.

그런 막둥이를 마지막 게임에서 이기면 된다고 부등부등 달래고 있자니, 레노의 시선이 꽂혔다.

레노는 세빈이를 달래는 나와 영빈 형을 한번 보고, 리우 형을 한번 바라봤다.

“왜, 뭐.”

“아냐. 잠깐 상상했는데 소름 돋았어.”

고개를 살랑살랑 젓던 레노는 소름 끼친다는 듯 중얼거렸다.

“형은 그냥 지금처럼 대마왕 해….”

“뭐, 인마?”

평소 팀 분위기가 어떨지 안 봐도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한 번 이기고 나니 기운이 솟는지 간장 팀도 소란스러웠다.

아니, 준이 형을 제외한 나머지가 소란스러웠고 준이 형은 그들을 말리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경환 형은 늘 나서서 장난치지는 않지만 불난 집에 기름을 뿌리는 재주가 있었다.

“씨아이, 너 진짜…!”

“응? 나 왜?”

천연덕스럽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능청을 떠는 모습에 준이 형은 뒷목을 부여잡았다.

화르르 불타올랐던 승부욕의 불꽃이 슬며시 가라앉자, 즐거운 듯한 감독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간식 먹고 마지막 게임을 이어가 볼까요?”

“네!”

“좋아요!”

1:1 상황이 되었지만 아직 우리 팀은 여유로웠다.

간장 팀은 첫 번째 게임이었던 빙고에서의 페널티를 마지막 게임에서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평소 감독님의 성격을 보건대 절대 호락호락한 페널티는 아닐 게 뻔했다.

감독님은 행복한 간식 시간 동안 이어질 게임 종류와 페널티에 관해 설명해주셨다.

이어진 마지막 게임은 초성 게임.

여기에서 감독님의 악랄함이 빛을 발했다.

초성 게임은 제작진이 준비한 노래 제목을 맞추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다만, 페널티를 받는 간장 팀은 힌트 없이, 우리는 힌트를 최대 3회까지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 힌트는 바로 곡의 일부분을 들려주는 것.

본격적인 게임에 들어가기 전, 위 사실을 들은 간장 팀은 망연자실한 얼굴이 되었다.

가뜩이나 제작진이 90년대부터 최신곡 노래 중 100곡을 뽑아 준비했다고 했다.

말이 100곡이지 한해 쏟아지는 노래가 얼만데 그중에 100곡을.

이미 감독님에게 여러 번 굴러본 우리는 해탈한 듯 웃었지만, DCL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너희는 매번 이런 게임을 하는 거야?”

“오늘은 되게 순한 맛인데요?”

“하, 하하….”

리우 형의 질문에 눈을 깜박거리던 세빈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동안 워낙 이상한 벌칙을 많이 받아서 그런가.

게임을 진행 중인 간장 팀을 보아도 나나 세빈이, 영빈 형은 전혀 타격이 없었다.

“저게 도대체 무슨 노래야?”

“감독님, 히트한 노래만 뽑은 거 맞아요? 감독님 취향대로 넣은 거 아니죠?”

“신세기…?”

“그건 만화 제목이고.”

“신세계인 것 같은데 뒤를 모르겠네.”

간장 팀은 문제의 공정성에 의문을 표하기도 하고, 머리를 싸매기도 했다.

그 옆에서 간장 팀을 지켜보던 우리는 우리끼리 연습한다고 소곤거리고 있었고.

“진짜 어려운데 우리 잘할 수 있을까?”

“그래도 힌트 쓸 수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은데요?”

저 팀에서 그나마 문제를 맞히고 있는 건 자인과 하준 형.

자인은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최신곡을 통째로 듣는 편이라고 했다.

거기에 좋아하는 곡을 더 넣는 그런 플레이리스트.

준이 형은 워낙 노래 자체를 좋아해서 가리지 않고 많이 듣는 편이었고.

경환 형이나 찬이는 꽂히는 노래를 주야장천 듣는 편이라 별 도움이 안 되는 듯했다.

휴이는 그냥 막 지르고 있는 것 같았고.

긴장한 얼굴을 한 멤버들에 비해 나는 한결 여유로웠다.

나는 준이 형 못지않게 노래를 많이 듣는 편이기도 했고, 멤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스킬도 쓸 생각이었다.

평소에는 언래블 스토리 촬영 시에는 ‘너목들’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절대로 오늘은 게임에서 지면 안 된다고 본능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불길할 때는 최선을 다해 그 불길함을 피해 주는 게 도리.

여태까지 간장 팀에게 주어진 제목들도 절반은 맞췄으니 생각보다 쉽게 흘러갈 것 같았다.

‘꼼수를 부리다니.’

‘꼼수라니, 내 스킬인걸?’

‘하, 이렇게 불량한 계약자로 키우지 않았거늘.’

‘나 정도면 착하지!’

그런 내 속을 뻔히 아는 포잉은 옆에서 툴툴거렸지만, 전혀 타격이 없었다.

나도 이제 제법 얼굴이 두꺼워진 모양이었다.

그래, 벌칙은 안돼…!

* * *

여진우가 돌아간 뒤, 소현은 대본을 훑어보다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내 새끼는 자꾸 이런 역할만 들어오냐.”

지환의 역은 극 중 최종 보스 격인 악당이 어릴 때 납치해 기른 암살자였다.

모종의 사건으로 자신이 납치당해 여태까지 소모품으로 이용당한 것을 깨닫는 캐릭터.

이미 손에 피를 묻힌 후라 돌아갈 수도 없는 그는 복수를 위해 주인공을 돕게 되고, 최후의 순간 여주인공 대신 총에 맞아 죽는다.

저번 역할도 죽는 역이었는데 또 이런 역할이라 소현은 영 마음이 쓰였다.

아무래도 패션쇼 때도, ‘별도시’ 때도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인 탓일까.

지환에게 건네주진 않았지만, 그간 들어왔던 역할들이 대부분 악역이었다.

꽃 병풍으로 쓰기 딱 좋은 그런 악역들.

지환에게 따로 이야기도 하지 않고 회사에서 거절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지환이 제대로 연기에 발을 들이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는 건 좋지 않았다.

나중에 지환이 더 경험을 쌓고 싶어질 때 방해될 테니까.

소현은 언래블이 먼 미래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그룹 활동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젠간 개인 활동을 원할 수도 있다는 걸 늘 염두에 두었다.

그래서 멤버들 개인에게 들어오는 스케줄도 꽤 엄격한 기준을 놓고 고르고 있었고.

일부 업계 사람들은 ON 엔터가 유난이라고 하지만, 소현은 이게 보통이 돼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어린 자녀들을 믿고 맡기는 보호자들과 자신의 삶 일부를 맡기는 어린 연습생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게 시간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었으니, 회사는 최대한 서로 손해 보지 않게 잘 쓰는 게 맞다.

이것은 박 대표도, 정윤 실장도, 소현도 모두 생각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 때문에 ON 엔터는 아무리 지켜봐도 안 될 것 같은 연습생에게는 빠르게 포기를 권했다.

그런 면에서 소현은 지환이 신기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연기에 ‘ㅇ’도 꺼내지 말라고 할 만큼 전혀 재능이 없어 보였다.

정말 노래와 얼굴 딱 그 두 가지만 보고 뽑은 아이였는데.

우진의 관찰에 따르면 연습량이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다른 멤버들도 그랬지만, 지환은 더 필사적인 구석이 있었다.

놀라운 건 그렇게 죽어라 연습하더니 늘 지적받던 춤도 나아졌고, 노래도 훨씬 좋아졌다.

게다가 이제는 연기까지.

노력하는 것도 재능이라면 지환의 재능은 그 노력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소현은 대본을 한쪽에 내려놓았다.

촬영이 끝나는 대로 당사자의 의견을 들어볼 생각이었다.

여진우가 직접 부탁한 일이 아니었다면 지환에게 의견을 묻지도 않았을 것.

소현은 아직 어린 지환이 이런 어두운 역할만 들어오는 게 못마땅했다.

“이만큼 잘생겼겠다, 연기도 그 정도면 안전빵이겠다! 청춘 로맨스 같은 것도 들어오면 좋잖아!”

아직 파릇파릇하고 귀여운 아가에게 이런 우중충한 역할을 하겠느냐고 묻는 게 싫었던 소현.

다음에는 꼭 지환의 나이에 맡는 역할이 들어오길 바라며 무어라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머리를 싸매다 결국은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는 게 제일 나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 소현.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업무로 시선을 돌린 그때,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메시지를 확인한 소현은 하던 일을 대충 밀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일보다 우선으로 처리해야 할 일과 관련된 메시지였다.

* * *

“이거예요?”

“응. 확인해봐.”

정윤과 소현은 기본적으로 쉽게 타인을 신뢰하지 않았다.

야생의 정글도 여기보다는 상도덕이 있을 것이라는 게 연예계를 겪을 만큼 겪어본 둘의 생각이었고.

그러다 보니 이번 사건의 주범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는 건 필수였다.

정윤은 이미 수감된 최태성은 그렇다 쳐도, 그 외에 연루되었던 몇 명은 한동안 쭉 감시를 이어왔다.

혹시나 같은 일이 두 번 일어날까 경계했던 것.

다행히 별다른 일 없이 그쪽이 마무리되나 싶었더니, 이번엔 또 새로운 미친놈들이 나타났다.

“이경주 작가나 최병섭은 걱정 안 해도 괜찮겠네요.”

“주영욱도 손발이 다 잘린 상태니까 헛짓거리는 못 할 거야. 그래도 한동안은 지켜봐야지.”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니까요. 그나저나 제일 의외인 건 공정한 쪽이네요.”

보고서에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상세히 기재되어 있었다.

그들은 연희와 지환을 각자 찾아왔었다.

당시에는 한 명씩 맡아서 하겠다는 건가 싶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아예 틀어진 모양이었다.

이혼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과 함께 배우자인 화영은 봉사활동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반면 공정한은 집에 틀어박혀 전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고.

간간이 발작하듯 소리를 질러 경찰이 몇 번 찾아오기까지 했다고 했다.

“자식들도 딱 자기 같이 키웠네.”

소현은 혀를 차며 보고 있던 서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공정한이 정신을 놓은 듯하자, 자식들은 그를 정신병원에 수감시키려 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걱정해서라기보다 귀찮아지기 전에 치우려는 의도가 명백하다는 설명까지.

“한동안만 더 지켜보면 될 것 같네요.”

“그러게. 생각보다 정리가 빨리 되겠어.”

한시름 놨다는 듯 뻐근했던 어깨를 주무르던 정윤은 피로에 찌든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애들 팬 중에 해커가 있는 것 같아.”

“네?”

“전에 말했던 메일, 파봤는데 나오는 게 없대.”

누군가 돕는 듯한 느낌에 정윤은 그쪽도 사람을 써서 알아보려 했다.

하지만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리 뒤져보아도 나오는 게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

더 돈을 들여봐야 하나 고민하던 정윤은 더는 찾아보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정말로 애들의 편이라면 더 알아보려는 게 되레 독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음. 저도 그쯤 해서 그냥 두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어차피 진짜 해커면 저희가 뭐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애들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선까지만 해주면 좋으련만.

늘 결정적인 증거를 넘겨주는 것으로 보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지환을 지켜보던 포잉은 귀가 가려워졌다.

‘누가 내 흉보나?’

이 세계에서는 누군가 자기 얘기를 하면 귀가 가렵다는 말이 있다는 걸 포잉도 알았다.

지환을 지켜보는 때가 아니면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는 포잉은 이미 한국 고양이로 현지화가 끝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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