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 외전-아마도 반짝였을 거야(happy birthday to 세빈)
컴백 일이 생일과 겹치면서 올해 생일은 멤버들이 잊어버려도 서운해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늘 다정하고 상냥한 형들이지만, 이번에는 너무 정신이 없을 테니까.
11월 11일 컴백 일이 정해졌을 때, 지환은 세빈을 슬며시 따로 불러내어 말했었다.
혹시 다른 사람들이 잊어버리더라도 자신이 꼭 챙겨주겠다고.
정작 당사자인 세빈도 컴백에만 몰두하느라 잊고 있었다.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지환의 얼굴이 너무 그다워서 세빈은 웃고 말았다.
그러나 지환은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세빈에게 이내 엄한 얼굴을 하고는 괜찮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자꾸 괜찮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괜찮지 않은 순간이 와도 버릇처럼 괜찮다고 말해버리는 건 너무 슬프지 않느냐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지환의 얼굴이 아파 보여서 세빈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지환은 다른 형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곤 했다.
힘찬은 세빈 또래라 해도 믿을 만큼 똥꼬발랄하니 그렇다 치더라도.
어떨 때는 하준이나 영빈보다 더 나이가 많아 보이다가도 어떨 때는 자신보다 순진해 보였다.
그게 형의 매력이겠거니 하고 지내왔지만 아주 가끔은 걱정스럽기도 했다.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눈을 마주칠 때마다 부드럽게 웃어주는 형.
가끔은 심장 근처가 간지럽기도 하고 또 가끔은 이상하게 욱신거리고 아파졌다.
이상하다 싶어 하준에게 상담을 받아보았지만, 형은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괜찮다고. 지환도 우리처럼 하나씩 배우면서 자라고 있는 거라고 했다.
사실 정확히 무슨 뜻인지 세빈이 알기는 어려웠다.
다만, 하준이 해준 한 마디는 잊지 않았다.
‘지환이가 우리 팀의 중간다리가 되어 주는 것처럼, 우리도 지환이와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면 돼.’
지금까지처럼 지환을 좋아하고 의지하고 아껴주면 된다는 그 말.
세빈은 그 말은 잘 지킬 자신이 있었다.
형이 퍼부어주는 사랑에 꼭 보답할 생각이니까.
그리고 제일 재밌었던 건, 그날 지환뿐만 아니라 다른 형들도 모두 비슷한 말을 했다는 것.
약속이나 한 것처럼 주변의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세빈의 곁으로 다가왔다.
생일날 다 같이 파티를 못 해도 꼭 축하해주겠다고.
심지어 경환과 힘찬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까지 했다.
형들 앞에서 웃지 않으려 세빈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마 당사자들은 모르리라.
세빈은 평소에는 그렇게 형인 척하는 멤버들이 종종 이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무척이나 귀엽다고 생각했다.
역시 이런 순진한 형들을 자신이 어서 자라서 지켜줘야겠다고 다짐할 만큼.
물론 입 밖으로 꺼내면 기함할 테니 속으로만 생각했지만.
그렇게 바쁘게 컴백을 위해 달려오다 11월 10일.
늦은 시간까지 연습하던 우리는 다음날 일찍 음악 방송 녹화 때문에 평소보다 이른 시간 숙소에 돌아왔다.
씻고 보송보송한 얼굴로 러그에 모인 멤버들과 내일 무대를 위해 몇 가지 논의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힘찬의 핸드폰에서 요란한 알림이 울렸고, 다른 멤버들 핸드폰도 동시에 메시지라도 온 건지 진동이 울렸다.
그러자,
“12시다!”
“세빈이 생일이네!”
“우리 막둥이 생일 축하해-”
“사랑하는 우리 세빈이 생일 축하해.”
핸드폰을 확인하니 11월 11일 0시.
세빈은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 깜찍한 형님들은 자정에 맞춰 전부 알람을 맞춰둔 모양이었다.
“새벽 일찍 나가야 해서 케이크는 못 샀어. 부으면 안 되니까. 저녁에 숙소 와서 다시 케이크 먹자.”
“우리 막내 데뷔 후 첫 생일인데 이렇게 보낼 수 없어!”
“전 진짜 괜찮아요. 형들이 축하해줬으면 됐죠.”
최근 멤버들이 점점 더 자신을 어리게 보는 것 같아 고민이었기에, 세빈은 평소보다 더 점잖게 이야기하려 했다.
“세빈아, 너 입꼬리가 막 실룩거린다?”
“좋으면 그냥 좋다고 해.”
“아, 진짜!”
어른스럽게 말하고 싶었지만, 아직 육체가 제 뜻을 따라 주지 않는 듯했다.
금방 몰랑한 찹쌀떡 같아진 세빈이 불퉁하게 이야기하자, 형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칭찬해줬다.
영빈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예쁘다, 예쁘다 해주고, 지환과 하준은 한번 꽉 안아주었다.
물론 옆에서 괜히 평소보다 더 들떠서 장난치는 힘찬과 은근히 바람 넣는 경환도 있었고.
생일 케이크도 선물도 따로 없었지만, 형들에게 축하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밤이었다.
“세빈아, 생일 축하해!”
“고마워요. 누나.”
어떻게 안 것인지 회사 서포트 팀분들도 얼굴을 마주치자마자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축하받아본 적 없었던 세빈은 무척이나 행복했다.
여러 번 마주친 다른 그룹 사람들도 축하한다며 인사와 장난을 건네기도 했고.
“우리 막내, 그렇게 좋아요? 아주 얼굴이 활짝 피었네.”
“아니, 컴백해서 기쁜 거거든요?”
“그랬어요?”
“진짜거든요!”
지환은 시종일관 웃고 있는 세빈의 뺨을 쿡쿡 찌르며 놀리기도 했다.
축하받아서 기쁜 건 기쁜 것이고 컴백 날이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을 만큼 바빴다.
컴백 인터뷰를 하고 신나게 무대를 하고 솜뭉치들에게 열심히 자랑하고.
‘Pluto’와 ‘서성이다가’ 두 곡 모두 무대가 떠나가라 응원해주는 팬들이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가사를 외운 것인지, 응원법은 또 어떻게 이렇게 착착 잘 맞추는지.
세빈은 솜뭉치들의 모든 것들이 너무 감사했고 신기했다.
직접 가사를 쓴 ‘Pluto’를 컴백 무대에서 부른다는 건 너무나 벅찬 기분이었다.
자신에게 커다란 생일 선물을 준 것 같아 무대를 하고 내려올 때 살짝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그런 건 귀신같이 눈치채는 지환이 세빈의 손을 꼭 잡아주었고.
무대에서 꾹 참았던 눈물이 갑자기 흘러나와 당황스러웠지만, 지환은 세빈에게 속삭였다.
너무 기쁠 때 흘러나오는 눈물은 그냥 흐르게 두라고.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팬들도 세빈의 생일과 컴백을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많은 솜뭉치들이 공식 카페와 SNS를 통해 세빈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더불어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겼을 손편지와 온갖 선물이 회사에 도착했다고 우진이 몰래 귀띔해주었다.
거기에 더해 팬들은 컴백과 세빈의 생일을 축하하며 엄청나게 빵빵한 도시락도 보내주었다.
예쁘게 장식된 미니 컵케익과 맛있어 보이는 도시락은 다이어트로 굶주렸던 멤버들의 눈을 뒤집기에 충분했다.
무대가 끝난 후 짧은 시간이지만 팬들과 함께한 시간은 또 어떻고.
세빈을 가운데 두고 솜뭉치들과 형이 함께 불러주는 생일 축하 노래는 가뜩이나 싱숭생숭했던 마음의 정점을 찍었다.
또르륵 흐르려는 눈물을 눈에 힘을 꽉 주고 참는 게 전부일 만큼 심장이 쿵쿵댔다.
울지 말라는 아우성과 무수한 셔터음, 분명 우는 사진이 팬들에게 돌아다닐 거라고 놀리는 힘찬.
아직 이런 상황에 면역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내년엔 안 울 거라고 팬들에게 말했지만 다들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팬 미팅이 끝나고 숙소가 아닌 회사로 돌아온 멤버들은 오늘 무대의 문제점, 감정들을 쏟아내며 흥분된 마음을 조금씩 진정시켰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심장이 벌렁거렸다고 쿵쿵대는 가슴 위에 손을 얹고 속삭였다.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쌓고 있는 서로를 대견해하고, 무대 앞을 가득 채워준 팬들이 너무 고맙다고 했다.
숙소에 돌아가서 이야기하자는 하준의 말이 없었다면, 한참 동안 더 이야기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 *
“아으, 지친다….”
“그래도 실수 없이 무대 잘했잖아. 고생했다, 얘들아.”
흐물흐물한 슬라임 덩어리 같은 힘찬이 러그 위에 벌러덩 누웠다.
모두가 뽀득뽀득 깨끗하게 러그 위에 드러누워 있었지만, 복귀 무대의 설렘이 남아 들뜬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자, 그러면 더 늦기 전에 우리 세빈이 생일 선물 공개합시다.”
“아! 맞아, 12시 전에 해야 해! 빨리!”
지환의 말에 멤버들은 당황해하는 세빈을 두고 각자 방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아니, 괜찮다니까요….”
선물은 없어도 된다는 세빈의 공허한 중얼거림이 거실을 울렸지만, 이미 멤버들의 방에서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우리 막내, 형이 소고기미역국 못 끓여줘서 미안해. 내년에는 한우 사다 끓여줄게.”
“전 형이 해주는 거는 뭐든지 다 좋아요!”
“으휴, 우리 애기가 이렇게 착하네.”
지환은 몇 시간 못 자는 와중에도 다른 멤버들보다 일찍 일어났다.
평소에는 멤버들의 아침을 챙긴다고 일찍 일어났지만, 멤버들 생일에는 직접 미역국을 끓여야 한다고 그렇게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것만으로도 코끝이 찡해질 만큼 고마웠는데, 지환은 고기를 넣어주지 못했다고 마냥 미안해했다.
친구들에게 들어보면 위에 형이 있으면 대부분 세상에 둘도 없는 악마들이라고 하던데.
세빈은 친형보다 더 애틋하고 가까운 형들이 이렇게 잔뜩 있었다.
활짝 피어난 세빈의 얼굴을 지켜보는 멤버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얼른 뜯어봐, 다른 사람들 선물도 궁금해!”
“왜 네가 궁금해.”
“내 선물이 제일 좋았으면 좋겠는데 아니면 어떡해.”
힘찬 다운 말에 지환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세빈은 뜯어보라고 했던 힘찬의 선물부터 선물을 뜯었다.
“오, 찬이 신경 좀 썼네?”
힘찬은 전부터 세빈이 살까 말까 고민했던 태블릿을 선물해주었다.
“형, 이거 너무 비싼데요….”
“별로 안 비싼 거야. 더 좋은 건 나중에 돈 더 많이 벌면 사주마. 이제는 이 형의 위엄을 알겠어?”
장난스럽게 웃는 힘찬의 모습에 세빈은 무어라 말을 할 수 없었다.
이어서 뜯어본 선물들은 하나같이 세빈에게 꼭 필요했던 물건들이었다.
하준과 영빈, 경환은 돈을 모아 노트북을, 지환은 보스 이어폰을 선물해주었다.
“앞으로 찬이랑 세빈이가 우리 안무 멋진 거 뽑아줄 거라 믿는다.”
선뜻 선물들을 품에 안지 못하자 하준이 부드럽게 웃으며 선물을 세빈 쪽으로 밀었다.
멤버들 모두가 자신의 얼굴을 살피는 걸 눈치챈 세빈은 활짝 웃었다.
정산받았다 해도 이렇게 큰 금액을 덥석 쓰기 부담스러웠을 텐데.
세빈은 형들의 선물에 기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밀려왔다.
공용 노트북이 있었지만, 작곡하는 멤버들이 더 사용할 일이 많다는 걸 아는 세빈은 핸드폰이면 충분하다고 사용을 거부했었다.
세빈은 항상 그렇게 말하고는 핸드폰으로 위캠의 춤 영상을 찾아보곤 했다.
게다가 세빈은 게임을 좋아했다.
그러나 PC방에 가고 싶어 하는 걸 알면서도 자주 허락해줄 수 없었던 멤버들.
그런 세빈을 멤버들은 늘 안쓰럽게 생각했다.
원래는 각자가 세빈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다 지환의 주도하에 다 같이 고민하고 선물을 나누기로 했던 것.
세빈에게는 말하지 않은 형들만의 뒷이야기였다.
“형들, 너무 고마워요….”
세빈은 물건이 고가여서가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잘 파악해서 골라준 형들의 마음이 너무 선명해서 울컥했다.
여전히 세빈의 선택을 지지하지 않는 아버지는 세빈에게 금전적 지원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어머니가 종종 도와주실 뿐.
그래서 정산을 받은 후 약간의 금액만 남긴 채 모두 어머니에게 보냈다.
자신이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고 아버지에게 말하고 싶어서.
그러다 보니 무언가 덜컥 사는 건 늘 고민했었다.
이런 세세한 상황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멤버들은 모두 눈치챈 것 같았다.
멤버들은 늘 세빈에게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고맙다고 했다.
언래블 멤버가 되어줘서 고맙고 형들의 동생이 되어줘서 고맙다고.
세빈이 있어서 팀 분위기가 더 부드러울 수 있다고 틈만 나면 세빈을 칭찬했다.
세빈이 힘들어하는 날에는 우리는 이미 모두가 빛나는 사람이고, 앞으로 더 빛날 거라고 응원해주었다.
가뜩이나 낯을 심하게 가리던 세빈은 아버지의 반대로 잔뜩 주눅이 들었었다.
그랬던 세빈이 지금처럼 활발해지기까지는 멤버들의 덕이 컸다.
세빈은 형들이 품에 안겨준 생일 선물을 소중히 끌어안고 웃었다.
“제가 진짜 엄청 쩌는 안무 뽑아낼게요. 찬이 형보다 더 멋있는 거 만들 거에요!”
“야! 나는 왜 걸고넘어지냐! 같이 해!”
여전히 멤버들은 따뜻했고 다정했으며 단단한 울타리 같았다.
작년의 생일은 생각도 안날만큼 올해 생일은 벅차고 행복하다고 세빈은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좋은 날이니 형들 앞에서는 활짝 웃고 싶었다.
“형들, 진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