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82)화 (282/456)

282. 기억을 걷는 밤(3)

포잉의 중얼거림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우리 포잉이 이렇게 거친 요정은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말이 조금 험해진 것 같았다.

이것도 내 탓인가 싶어 포잉을 살살 달랬다.

‘애잖아. 망둥이 때에 비하면 간지럽지도 않은데 뭐.’

‘애는 무슨! 인간은 스무 살이면 성인 아님?’

‘스무 살이면 아직 애지 뭐.’

‘어휴, 이 미련 곰탱이 같은 놈.’

답답한 듯 한숨을 푹푹 내쉬던 포잉이 나를 흘겨보더니 훌쩍 대기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조금은 유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건, 우리 세빈이처럼 에드가 멜트의 막내여서 그런 걸까.

답 없는 질투심을 불태우는 그가 거슬리기는 해도 망둥이 때처럼 분노가 치솟지는 않았다.

난감해진 내가 대기실 문을 바라보는 사이, 하준 형이 옆에 와 앉았다.

“괜찮아?”

“응? 뭐가요?”

“아냐, 괜찮으면 됐지.”

방금 전 에드와의 상황이 신경 쓰였던 건지 준이 형의 표정이 흐렸다.

그 마음을 다 읽을 순 없었지만, 조금이나마 짐을 덜어주고 싶어서 말갛게 웃었다.

그런 시시한 도발은 이제 나에게 생채기도 남기지 못한다는 듯 그렇게.

그 후 우리는 친분 있는 그룹들과 적당히 인사도 나눴고, DCL을 찾아가 노닥거리기도 했다.

“미리 축하해, 조금 있다가는 정신없을 것 같으니까 미리 인사함.”

“?”

휴이가 본인 회사 사람들 몰래 우리에게 속삭였고,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자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신인상! 너희 받을 거 같으니까 축하한다고!”

“뭐래, 결과 안 나왔는데 어떻게 알아. 그래놓고 너희가 받을지.”

“우리도 미리 축하할게, 너희 신인상.”

“어휴, 이 눈치 없는 새끼들.”

우리 막내 라인과 나, DCL의 휴이, 레노, 자인은 서로 속닥거리며 치고받았다.

솔직히 기분이 좀 얼떨떨했다.

다른 사람들이 인사할 때는 정말 인사치레로 느껴졌는데, 비슷하게 데뷔한 DCL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게.

그 후로 근황이나 게임 얘기 등 온갖 자잘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찬이와 투닥거리던 자인이 낄낄거리며 한마디 했다.

“야, 진짜 지랄이 풍년이네.”

순식간에 우리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웃으며 말하던 자인도 순간 자신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에 얼어버린 듯 황급히 입을 가렸다.

“헐….”

낯선 정적을 뚫고 튀어나온 찬이의 한마디가 우리 심정을 대변했다.

“그, 얘가 원래 입이 좀 험해.”

“너 말조심 하라고 했지!”

휴이와 레노가 황급히 자인을 엎어놓고 마구 타박을 했고, 입만 벙긋거리는 찬이, 눈이 동그래진 세빈이 모습은 솔직히 조금 웃겼다.

그나마 나와 경환 형은 되레 담담한 얼굴이었으리라.

그 와중에 재밌는 건, 우리 애들뿐만 아니라 DCL의 세 명도 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왜 내 눈치를 보는데.”

“아니, 왠지 네 앞에선 욕하면 안 될 것 같거든.”

휴이와 레노에게 잔뜩 타박을 듣느라 얼굴이 뻘건 색으로 달아오른 자인이 소심하게 웅얼거렸다.

서로 눈치를 보며 답지 않게 쭈뼛거리길래 DCL과 자인을 생각해서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끼리 욕하는 거야, 뭐. 그래도 조심해, 어디서 어떻게 누가 듣고 있을지 모르잖아.”

언제든 대중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우리는 매사에 신중해야 했고 조심해야 했다.

공인이라는 건 보편적인 사람들의 기준보다 더 높은 도덕성과 잣대가 들이 밀어지는 직업이니까.

픽 웃고 마는 내 모습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는지 슬그머니 웃던 자인이 되물었다.

“근데 너희는 평소에도 욕 안 해?”

“욕이요? 하면 준이 형한테 엄청 혼나요.”

“욕하면 환이가 엄청 눈을 세모로 뜨고 쳐다본다니까? 가끔 난 하준 형보다 얘가 더 무서워.”

아이돌 지망생이나 연예계 활동을 하는 애들이 많이 다니는 우리 학교에서조차 욕설은 일상적이다.

물론 전생의 나도 가끔은 같은 반 친구들과 어울려 한두 마디씩 하기도 했지만.

그러다 그때의 누나에게 붙들려 세 시간 동안 지독하게 시달린 이후로는 봉인해버렸다.

그러다 보니 또래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언어표현을 사용하게 됐고.

그런 삶이 지속되다 보니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우리 애들도 전반적으로 굉장히 온화한 말을 주로 사용했고.

이런 분위기를 만든 건 준이 형과 영빈 형이었다.

DCL 멤버들도 늘 우리와 함께 있을 때는 욕설을 사용한 적이 없었기에 우리와 비슷한가 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형들은 그럼 형들끼리 있을 땐 막 욕해요?”

“큼, 너희랑 놀면서 우리도 욕 좀 덜 쓰고 고치긴 했어.”

몰캉한 찹쌀떡 같은 막내가 눈을 크게 뜨고 DCL 멤버들을 바라보자 죄책감이라도 들었는지 다들 어버버거렸다.

간신히 휴이가 정신을 차리고 수습해보려 했지만, 우리 막둥이는 나름대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잘됐네. 앞으로도 바른 말 고운 말 써라. 특히 우리 막둥이 앞에서는 더.”

시무룩해진 세빈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핀잔을 주자 휴이 얼굴에는 억울함이 한가득 들어찼다.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아! 아파! 하지 마!”

“내 이미지 어쩔 거야!”

휴이는 우리 세빈이에게는 선량하고 반듯한 형아이고 싶었던 건지 자인의 등짝을 퍽퍽 때리며 분풀이하기 시작했다.

“자자, 그만 놀고 돌아가자. 준비해야지.”

“넵.”

휴이와 레노가 자인을 타박하는 사이 우진 형과 맏형들이 돌아왔다.

투닥거리는 세 명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눈으로 우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자인을 위해 말하지 않기로 했다.

아마 휴이가 리우 형에게 말할 것 같았지만.

미리 속으로 자인의 명복을 빌어준 우리는 은밀히 눈빛을 교환했다.

‘맏형들에게는 말하지 말자.’

괜히 같이 묶여서 잔소리 듣지 않기 위한 우리끼리의 약속이었다.

일단 우리라도 살고 봐야지. 안 그래?

* * *

예상치 못한 트로피 하나를 더 추가하면서 우리의 2017년이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재증명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상이라 더 기뻤고, 멤버들은 그만큼 더 불타올랐다.

몰래카메라 사건 후 서로 말은 안 했어도 멤버들 모두가 생각이 많아 보였기에 다행이었다.

겨우 온전해지고 있는 우리가 더 이상 바스러지지 않기를 바랐기에 이번 수상이 더욱 기뻤다.

물론 ‘상을 받았다’라는 벅찬 마음과는 별개의 기쁨이지만.

다만, 이번에는 누나에게 전화하지 않고 메시지를 보냈다.

저번처럼 누나와 멤버들 양쪽으로 놀림 받는 건 질색이었으니까.

몰래카메라 사건이 있고 얼마 후, 우리는 소현 팀장님을 통해 이후 처리가 어떻게 되었는지와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전달받았다.

솔직히 그게 회사가 요구한 미션이 아니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예상과 달리 회사에서 요구한 것이었다면, 기껏 구축해둔 신뢰 관계가 흔들릴 수도 있었을 테니까.

당시 준이 형과 팀장님의 통화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형 몰래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었다.

늘 내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유영하는 터라 억지로 눌러놓지 않으면 지금처럼 멍하니 생각에 빠지는 시간이 많았다.

혼자임을 받아들였을 때부터의 버릇이라 혼자이지 않게 된 이후에도 이렇게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덕분에 옆에 있던 멤버들이 툭툭 건드려야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고.

“1차로 어느 팀 먼저 시작한다고 했지?”

“준이 형이랑 찬이 세빈이네 팀이요.”

“준이가 여러모로 고생하겠네.”

“그러게요.”

영빈 형의 목소리에 희미한 기쁨이 묻어났다.

최근 들어 세빈이 장난이 점점 심해진다며, 밝아지는 건 좋지만 힘찬이는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영빈 형은 힘없이 중얼거렸다.

둘이 형에게 달려들어 장난칠 때마다 버거워 보였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웃음이 흘러나왔다.

웃지 말라며 내 어깨를 툭 치는 영빈 형의 모습이 이제는 자연스러웠다.

처음 적응할 때까지만 해도 거리감이 느껴졌는데.

최근 유독 TV 프로그램의 출연이 없었다.

그렇다고 스케줄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프로그램에 나가지 않는 지금의 상황을 멤버들은 내심 불안하게 여겼다.

회사에서 무언가 뜻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나와 달리, 불러주는 곳이 없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운 듯했다.

첫 앨범을 내고도 사건 때문에 강제로 쉬어야 했던 시기가 떠올라서일까.

멤버들의 불안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했는지는 잘 몰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알았다.

“으으… 난 상담은 자신 없는데.”

“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오늘은 오피셜 계정에 올릴 언래블 스토리의 하나를 촬영하기 위해 모였다.

셋씩 팀을 이뤄 팬들이 보내준 고민을 함께 이야기해보는 시간.

많은 아이돌이 하는 방송이었다.

그만큼 사랑받는 코너이기도 했고.

나도 꽤 좋아했던 시간이었다.

그들이 진지하게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를 해주는 동안 나는 동경하는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으니까.

이제는 내가 그 입장이 되었지만, 솔직히 세빈이처럼 자신이 없었다.

자신 없다며 쪼그라든 우리 막내를 뒤에서 안아 둥기둥기해주자, 그만하라며 버둥거렸다.

“우리 막둥이 뭐가 그렇게 자신이 없어?”

“나는 내 일도 잘 해내지 못하는데 누군가의 고민에 답을 준다는 게… 조금 그래요.”

장난을 걸자 맑은 웃음소리를 내던 막내가 머리를 헝크는 손길에는 얌전히 굴었다.

“답을 준다는 건 조금 오만한 생각이지. 그냥 같이 고민해준다고 생각하는 게 맞지 않을까?”

“같이 고민은 해줘도 되는 걸까요?”

“그럼. 난 내 고민을 세빈이가 같이 고민해준다면 기쁠 것 같아. 그만큼 나를 걱정하는 거니까. 우리 팬들도 그렇지 않을까?”

다행히 내 다독임이 우리 막내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금방 씩씩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사 스튜디오 옆에 있는 대기실에서 각양각색의 자세로 소파를 점령하고 있는 멤버들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경환 형은 얼마 전까진 우중충한 얼굴로 좀비처럼 회사 복도를 배회하더니, 세빈이랑 쑥덕거린 이후론 생기가 돌아왔다.

어떤 곡이 튀어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둘이 함께 만든 곡이라면 나도 좋아할 만한 곡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 종종 세빈이가 가사를 썼다는 것도 생각났다.

자신의 춤만큼이나 서정적이고 솔직한 가사는 늘 메말랐던 나에게 위로가 되었으니까.

찬이랑 세빈이가 어느샌가 다시 붙어 장난을 치고 있었고, 그 모습을 준이 형이 암담하다는 얼굴로 보고 있었다.

“준이 형 얼굴이 지금… 지옥에 끌려가기 직전처럼 보이는데.”

“내 눈에도 그렇게 보여.”

영빈 형은 소파에 느긋하게 기대 모처럼 흡족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준이 형이 고통받을 미래가 기대되는 모양이었다.

“내가 제비뽑기에 망하지만 않았어도….”

“우리랑 같이하는 게 망했다는 거야, 형?”

“그런 거예요?”

심란한 얼굴로 중얼거리던 준이 형이 두 막내의 반격에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리 형이라도 둘이 작정하고 달려들면 진이 쪽 빠질 만큼 피곤해질 테니까.

애써 둘을 달래는 모습을 영빈 형과 속닥거리며 즐겁게 구경하다 경환 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형, 잘 돼 가요?”

“그럭저럭.”

좁은 공간에서 북적대는 이 상황과 격리된 듯, 경환 형은 고요했다.

틈틈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노트북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적어나갔다.

멤버들도 나도 지금은 경환 형이 집중하도록 두는 게 좋다는 걸 알기에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경환 형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가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 영빈 형이 물었다.

“왜?”

주저하듯 노트북의 자판을 톡톡 두들기던 경환 형이 입을 열었다.

“방향은 정해졌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알겠는데, 이번 앨범에는 못 실을 것 같아요.”

“응? 왜요?”

“컨셉이랑 안 맞는 것 같아서.”

아쉽다는 듯 중얼거리는 경환 형의 얼굴이 진지했다.

“그래도 다 되면 들려줄 거죠?”

“아아….”

조바심내듯 옆으로 조르르 달려온 세빈을 향해 경환 형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던 준이 형은 자꾸 머리를 만지는 찬이 손을 잡아 내렸다.

곧 촬영이 시작되니 망가트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얘들아, 시작하자.”

타이밍 좋게 우진 형이 들어와 우리를 불렀고, 어깨를 축 늘어트린 준이 형과 신난 막내 둘이 쪼르르 달려 나갔다.

그 모습에 풉, 하고 웃던 내게 영빈 형의 시선이 닿았다.

“형, 왜요?”

“그냥.”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형의 얼굴에 ‘응?’하고 되물었지만, 영빈 형은 그저 웃고 말았다.

셋의 촬영을 구경하러 가자는 말에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던 영빈 형이 내 머리에 툭 하고 손을 얹었다.

“나중에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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