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35)화 (235/456)

235. 같은 곳에서(1)

“우리 아들, 다 큰 줄 알았는데 아직 애기네.”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눈앞의 가족들을 바라봤다.

내 기억 속 그대로의 모습들.

언제나 남부끄러운 짓은 하면 안 된다던 강직하지만 다정하셨던 아버지.

평생을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 위해 자신에게는 엄격하셨지만, 누나와 나에게는 늘 다정하셨던 분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런 다정한 모습에 반했다고 하시면서 소녀처럼 웃곤 하셨다.

더 많이 잘해주지 못한 게 늘 미안하다고 하셨고, 되는대로 넋 놓고 살던 아들에게조차 험한 말 한 번 하지 않고 다 품에 안으셨다.

부모님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누나와 내 앞에서 욕설은 물론 거친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훈육할 때조차 우리가 이해할 때까지 차분히 설명해주시곤 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나를 더 많이 아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 때문에 내가 너무 힘들어하는 거라고 눈물을 보이기도 하셨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가족과의 이별을 수긍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울면서 잠들어야 했던가.

단편적인 기억의 꿈들.

이전까지의 꿈에서는 언제나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의 가족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직접 대면하는, 편안한 얼굴을 한 가족들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동경하던 멤버들과의 생활, 끊임없는 사건 사고들 속에서도 침대 위에 누워 이불을 덮으면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몸부림쳤다.

포잉이 옆에서 끊임없이 체온을 나눠주지 않았다면 나를 놔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억지로 묻었던 가족이 눈앞에 있다는 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퉁명스러운 얼굴을 했던 누나도, 여전히 다정한 눈을 한 아버지와 어머니도.

모두가 주저앉은 내 앞으로 다가와 앞에 같이 앉았다.

“우리 아들, 많이 힘들었구나. 미안해,”

손을 덜덜 떨면서도 차마 직접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아직도 어느 쪽이 꿈이고 어느 쪽이 현실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따뜻하고 거친 손이 내 손을 꼭 잡아주면서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려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얼굴을 바라봤다.

내 바로 앞에 편히 앉았던 누나와 곧은 자세로 앉았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지환아, 요새 어떻게 지내는지 말해줄 수 있니?”

“맨날 바쁘게 돌아다닌다던데요?”

“그래도 직접 듣고 싶구나.”

나는 그제야 이게 꿈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까 눈을 떴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전생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가족들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은 현재 삶의 얼굴이었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 하고 하염없이 울었다.

지금 이렇게 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우는 걸 참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한참을 어린애처럼 소리 내 엉엉 울었다.

잠시라도 더 보고 싶은 가족의 얼굴이 눈물 때문에 흐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게 속상해서 더 울었다.

더는 토해낼 수분이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어머니 손을 붙들고 그렇게 울었고, 가족들은 아무 말 없이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 동안 울어서 더는 눈물도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되자, 누나가 물 한 컵을 가져다주었다.

아무 말 없이 한 컵을 남김없이 다 마신 나는 그때부터 천천히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을 가족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함께하고 있는 포잉이라는 고양이 요정, 갑자기 눈앞에 보인 상태창이라는 것과 스킬들에 대해.

언래블 멤버들이 얼마나 아껴주고 소중히 대해주는지도, 새로운 사람을 사귀게 되었고 다들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는 것들도.

회사 사람들, 방송국에서 만났던 모든 인연, 내가 출연한 프로그램과 무대들도 빠짐없이 전부 말해주었다.

가족들은 중간중간 한마디씩 보태기도 하고 신기해하기도 하면서 조용히 전부 들어주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쪽씩 손을 꼭 잡아주었고, 내 모든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저 굉장히 잘 지내고 있어요. 이번에 처음으로 음악 방송에서 1위도 했어요. 1년도 안 됐는데 1위 한 거니까 제법 빠른 것 같아요.”

“이야, 학교 다닐 때 한 번도 1등 못해본 애가 다시 산다고 1등을 하네.”

“아, 진짜!”

누나는 한결같이 내 말에 툴툴 대기도 했고, 장난을 걸기도 했다.

그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손안에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래, 잘 지내니 되었지. 누구 아들인데.”

“지환이가 당신 닮아서 마냥 무를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어흠.”

기특해하시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놀리는 어머니 모습에 같이 웃었다.

“저 진짜 잘 지내고 있어요. 저쪽에 부모님은 안 계시지만… 누나도 있어요. 정말 좋은 누나예요.”

“네 누나라니. 그 사람도 참 힘들겠네.”

“응. 속 많이 썩은 것 같더라. 누나도 나 때문에 고생했잖아.”

짓궂게 굴려던 누나는 내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복잡했던 머리도, 발밑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슬픔도 가족들에게 말하는 사이 하나, 둘 녹아서 눈물을 타고 흘러나갔다.

두 분의 손을 놓고 일어나 큰절을 올렸다.

오늘이 지나면, 아마 앞으로는 가족들이 꿈에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꼭 제대로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열심히 재밌게 잘 살게요. 행복하게 살게요. 그러니까….”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와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꼭 말해야 했다.

“그러니까… 흑. 아빠, 엄마, 누나도… 다 잘 지내야 해요. 행복하게 지내세요. 꼭.”

울음을 삼키느라 목에 열이 가득 차 흐느낌같이 흘러나온 말들은, 사고 이후 늘 가족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엎드려 목놓아 우는 등에 따뜻한 손길이 세 번 느껴졌다.

억지로 고개를 들어보니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나도 모두 웃고 있었다.

그렇게 웃는 얼굴 그대로 천천히 흐려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한참을 그대로 울다 정신을 잃었다.

무엇하나 이룬 것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던 전생의 나.

전생의 가족들에게 내가 적어도 무언가를 이루고, 정말로 잘 지낸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숨이 모자라 헐떡이다 정신을 놓던 그때, 깨달았다.

오늘에서야 정말로 전생의 가족들과 영영 이별하게 되었다는 걸.

* * *

경환은 잠결에 들리는 흐느끼는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날듯이 몸을 일으켜 소리가 들려오는 지환의 침대로 다가가자, 얼마나 운 건지 베개가 축축해져 있었다.

지환은 무슨 꿈을 꾸는 건지 끊임없이 무어라 입술을 달싹이며 울고 있었다. 그런 그를 흔들어 깨우려 팔을 뻗었다가, 주먹을 꾹 쥐고 방을 나왔다.

이전에 하준이 경환에게 당부했던 말이 떠올라서였다.

하준은 혹시라도 지환이 잘 잠들지 못하거나 이상 증세를 보이면 꼭 자신에게 말해달라고 했었다.

방을 나온 경환은 옆 방문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가뜩이나 늘 잠이 모자란 형이었다.

지금 형을 깨우면 날이 밝을 때까지 잠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한숨과 함께 방문 손잡이를 놓았다.

일단은 자신이 지켜보고 내일 말을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발소리를 죽여 화장실로 간 경환은 수건 하나를 빨아 물기를 꾹 짜서 방으로 들고 들어갔다.

저렇게 눈물을 흘렸으니 일어나면 눈이 아플 것 같아 얼굴이라도 닦아주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조심스럽게 방으로 돌아온 경환이 흐느끼는 지환을 살짝 흔들어 깨우려 했지만, 평소에는 예민하던 애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더 큰소리를 내면 다른 방의 멤버들도 깰 것 같아 고민하던 경환은 잠든 지환의 손을 꽉 잡아주고 다른 손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

“좋은 날에 뭐가 그렇게 서러워서 우냐….”

무대에서도 놀래서 휘청이던 지환을 잡아준 게 경환이었다.

그 후 회식 때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누구보다 들떠 보였었다.

평소보다 말도 훨씬 많았고, 활짝 웃는 얼굴이라 누가 봐도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활짝 웃는 일이 좀처럼 없던 터라 그런 지환의 모습에 멤버들도 다들 더 신난 것도 있었다.

차가운 게 얼굴에 닿으면 깰 법도 하건만, 지환은 그 후로도 꽤 오랜 시간 눈물을 흘렸다.

이러다 탈수라도 오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겨우 눈물이 멈추고 흐느낌도 잦아들었다.

축축한 베개를 베고 자면 좋지 않을 것 같아, 경환은 잡았던 손을 조심스럽게 빼내려 했다.

하지만 잠결에도 무슨 힘이 이렇게 좋은지 잡은 손을 놓지 않아 당황하며 일단 수건을 침대 아래로 던져두었다.

필사적으로 잡은 손을 억지로 빼면 안 될 것 같았다.

“환아, 괜찮아. 다 괜찮으니까 푹 자자.”

왜 우는 지도,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저 지금은 늘 어른인 척하는 동생을 달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불 위로 지환을 천천히 다독여주며 손에 힘이 빠질 때까지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앞으로는 괜찮을 거라고.

어릴 때 악몽을 꾸고 무서워하는 경환에게 어머니가 해주셨던 것처럼 그렇게 한참 동안 다독여주었다.

숨소리도 고르게 변하고 표정도 평안하게 풀리며 지환의 손에서도 힘이 빠졌다.

그제야 겨우 손을 빼낸 경환은 베개를 빼내고 침대맡을 장식하던 쿠션을 머릿밑에 대주었다.

가끔 자다 깼을 때 지환을 살펴보곤 했었다.

악몽을 꾸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금세 괜찮아졌었다. 더욱이 최근에는 잘 자는 것 같아 안심했는데, 지금은 더 심한 몰골을 하고 있어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지환이 제대로 잠든 걸 확인한 경환은 조금 더 지켜보다 자신의 침대로 돌아갔다.

지환에 대해 하준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는 게 좋을지 잠시 고민하면서.

* * *

포잉은 경환이 깨기 이전, 그러니까 처음부터 지환의 꿈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황한 모습으로 자신을 찾는 모습에 자신을 제대로 의지하는 것 같아 기특해하기도 하면서.

평소라면 힘들어할 때 개입해서 강제로 꿈을 꾸지 않도록 했을 테지만, 오늘 꿈은 다르다는 걸 알기에 지켜만 보고 있었다.

아마도 오늘이 지나면 앞으로 가족들에 대한 악몽은 꾸지 않게 될 터.

이제는 보지 못할 가족일지라도 이전과 다른, 더욱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걸까 싶었다.

그 많은 일을 딛고 첫 1위를 이뤄낸 날 이런 꿈을 꾸는 걸 보면.

좋아서 방방 뛰는 모습에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포잉도 내심 흡족해하고 있었다.

계약자를 놀려먹는 게 꽤 즐거웠던 터라 지환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포잉도 언래블에게 문자 투표를 했으니.

포잉은 꿈이라는 공간을 통해 서로 다른 세계가 연결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여러 세계로 파견 나가는 요정들이 혹시나 그런 현상으로 양쪽 세계에 안 좋은 영향이 미칠까 연구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보통은 서로 영향을 주지 못하고 연결이 끊기는 게 일반적이었다.

포잉도 가능하다면 다른 세계의 가족들에게 지환이 새 삶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지만, 포잉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했다.

각 세계는 독립된 별개의 세계였다.

그렇기에 서로의 존재조차 알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다만 지환이 이런 꿈을 꾼 건 어쩌면 더 높은 곳에 계신 분들의 여러 배려 중 하나일 수도 있었기에 방해하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앞으로 지환은 조금 더 좋아질 수 있을 터.

경환이 묵묵히 지환을 챙기는 걸 지켜보던 포잉은 왜 전생의 지환이 그토록 언래블을 좋아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함께 생활하는 동안, 그들이 어떤 생각과 모습으로 사는지 충분히 보기도 했었고.

경환이 얼굴을 닦아준 덕에 열감이 조금 가라앉은, 그러나 퉁퉁 부어있는 지환의 얼굴을 핥아준 포잉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아침 가관일 얼굴을 생각하니 냉동실에 얼음이 충분한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쩜 이렇게 자신의 계약자는 손이 많이 가는지.

속으로 툴툴거리던 포잉은 지환과 이마를 맞대고 앞발로 서툴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정말로 이제는 다 괜찮을 거임. 그러니까 이제 울지마라, 지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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