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16)화 (216/456)

216. Butterfly(2)

“진우 씨,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아닙니다. 어려운 일도 아닌걸요.”

여진우는 최근 많아진 예능 출연 덕분에 스케줄 조정이 조금 번거로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여유롭게 웃었다.

회사에서 매니저 형을 통해 확인 요청한 인터뷰 목록을 주르륵 확인하다 ‘Beyond the line’이라는 프로그램을 확인하고 지환이에게 연락했었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다니. 별말을.’

여진우는 메시지를 보내자 전화해서 잔뜩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던 동생을 떠올리며 속으로 혀를 찼다.

자신도 아직 배우로서의 기반이 굳건하다고 하긴 어렵지만, 언래블은 더했다.

여러 일이 얽히면서 가장 크게 치고 나가야 할 시기에 그렇게 되지 못했던 애들이라 늘 안타까웠는데, 최근에 그나마 풀리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다들 하나같이 순해 빠져서 덕분에 주변 지인들만 안달 나게 만드는 묘한 애들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약간의 호기심이 있었던 것뿐인데.

키스, 그러니까 윤혁 형은 누군가를 칭찬하는 게 극히 드물었는데, ‘언래블’이라는 그룹을 그렇게 칭찬하길래 신기했었다.

그러다 출연 제의가 들어왔던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왜 형이 그렇게 말했는지 조금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진우는 언래블 멤버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순하지 않았다.

가끔 새벽 형들과 어울릴 때, 그 애들은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착해빠진 형을 보듯이 보는데 그건 형들과 있어서였다.

진우는 아역배우 출신이었고, 오래전부터 이쪽에서 구른 만큼 온갖 사람들을 다 겪어왔다.

그래서 새로운 인맥을 달가워하지 않는 성격이 됐지만.

“언래블, 그러니까 지환 군과는 처음 만남이 ‘무사이’였죠?”

“네. 맞아요. 처음에 극을 꾸며야 한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여러 도움 덕분에 재밌게 할 수 있었어요.”

“그때 이야기를 조금 더 들을 수 있을까요?”

“네.”

진우는 흔쾌히 웃으며 당시 다른 출연진들이 언래블을 어떻게 봤는지, 언래블이 얼마나 예쁘게 행동했는지 특유의 유순한 말투로 풀어나갔다.

진우가 순하고 착한 이미지를 갖게 된 건 둥근 눈매와 이 말투 덕분이었다.

그 덕분에 이번 영화에서 이미지와 완전히 정반대의 캐릭터로 더 큰 호응을 끌어냈 던 것도 있었고.

“김준현 선생님이 칭찬하셨다고요? 와, 그건 몰랐네요.”

“선생님께서 다 같이 노래도 들어보고 추천도 해주자고 하셔서 다들 놀랐어요. 워낙 엄한 분이시잖아요.”

“맞아요. 아무래도 한참 선배님이다 보니 신인들이 대하기는 어려웠을 텐데 말이죠.”

촬영 당시 세빈이가 선생님에게 귀여움받았던 일화를 짧게 이야기해 주자 자신을 김아란이라고 밝힌 작가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트로트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인지도 있는 선생님이었지만,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방송 중에는 그런 내용이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촬영 당시에는 문제를 일으킨 ‘그들’을 제외하면 굉장히 화기애애한 편이었다.

“그러면 그때 인연으로 자선 패션쇼에도 출연했던 건가요?”

“저도 나민수 형님과 인연이 있어서 참여했던 건데, 언뜻 듣기로는 이영진 님이 먼저 이야기하셨다고 해요.”

“이영진 씨와는 ‘미궁탈출’에서 인연이 있었겠네요.”

“네. 지환이 홍삼 짤 혹시 보셨어요?”

“아, 네. 저도 봤어요. 보고 엄청 웃었다니까요.”

“아, 이거 비밀인데 작가님이니까 보여드릴게요.”

진우는 지환이뿐만 아니라 언래블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자신의 핸드폰 주소록에서 지환의 연락처를 불러왔다.

연락처에는 홍삼 짤로 유명한 지환의 사진이 프로필 사진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슬쩍 번호를 가렸지만, 작가는 눈치껏 모자이크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이거 당사자가 보면 진우 씨한테 연락 오는 거 아니에요?”

“하하,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뭐, 사진이 저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멤버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 같아요.”

“그렇게 좋은 애들도 드물어요. 키스 형이나 다른 새벽 형들이 왜 그렇게 홀랑 빠졌는지 저도 겪어보고 바로 느꼈어요.”

“제가 힐링 캠프에서 보니까 지환 군 옆에 자주 있던데, 그만큼 편한 동생인가요?”

호기심이 호감이 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호기심과 약간의 동정이었다.

인지도 있는 선배 그룹과의 마찰은 신인 그룹 입장에서는 악재였고, 그들의 방식이 꽤 노골적이라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애들이 참 꿋꿋했다.

많은 아이돌을 아는 건 아니었지만, 드라마나 영화를 찍다 보면 아이돌들도 꽤 많이 마주치게 된다.

예전이야 발연기라고 욕을 먹었다지만, 요새는 다들 정말 못 하는 게 없었다.

드라마, 영화, 뮤지컬까지 이제는 일정 이상의 팬덤을 보유한 아이돌 멤버를 거의 필수로 넣었다. 티켓 파워가 보증된 이상 당연한 일이었다.

쭉 연기만 해왔던 여진우도 어릴 때는 그런 흐름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신인 배우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는데 그 자리를 가수가 차지한다는 게 싫었다. 함께 연기하는 다른 배우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험담을 들어오기도 했었고.

하지만 실제로 겪어보고 직접 마주한 그들은 생각보다 더 필사적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모습은 배우든 아이돌이든 다를 게 없었다.

대중에게 욕먹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던, 어떤 아이돌 출신 연기자의 씁쓸한 이야기가 좁은 시야를 가졌던 어린 진우에게 충격을 주었다.

배우가 연기를 못하는 거야 배우를 때려치워야 할 일이지만, 본업이 노래인 이들이 연기까지 잘해야 하는 건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그렇게 되기까지 도대체 그들은 얼마나 더 큰 노력을 퍼부어야 했을까.

결국 그들 중 상당수는 안으로 곪아있었다.

온갖 시선과 스트레스에 몰린 채로 살아가는 걸 생각하면 멀쩡하지 않은 게 이해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애들은 조금 묘했다.

처음에는 그냥 머리가 꽃밭인가, 천성이 그냥 착한 애들인가 했지만, 딱히 그렇진 않았다.

구겨지고 상처가 나도 굴하지 않을 만큼 강했다.

그리고 진우는 심지가 강한 사람을 참 좋아했다.

“가끔 지환이가 저보다 연상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네?”

“신기하죠? 저보다 4살 어린 동생인데 대화를 나누다 보면 30대 형 같을 때가 있다니까요.”

“그건 또 의외네요. 지환 군한테 그런 면이 있었군요.”

“평소에는 정말 귀여운 동생인데, 또 가끔은 사람 마음을 잘 보듬는 말을 툭툭 던져요. 어딘가 맹한 구석도 있지만, 주변 사람을 참 잘 챙기기도 하고요.”

“정말 다양한 매력을 가진 친구네요?”

“네. 아이돌인 환이도 정말 멋있는 친구지만, 인간 지환이도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길지 않은 인터뷰 내내, 진우는 자신이 아는 지환이의 매력적인 면모를 이야기했다.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만나 뵙길 기대할게요.”

“하하, 감사합니다. 저도 동생들한테 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해야죠.”

그렇게 인터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진우는 코트를 벗어 대충 던져놓고 윤혁에게 전화했다.

신호음이 몇 번 들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는 걸 보면 다행히 타이밍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형, 저예요.”

- 어.

듣고 있다는 의미로 들려온 짧은 목소리에 진우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평소에도 어지간히 말이 없는 형님이었다.

“지환이랑 애들 관련해서 인터뷰 들어온 거 혹시 형들한테도 있어요?”

- 글쎄. 가영이나 세비 형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왜?

“‘beyond the line’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인터뷰 요청 와서 방금 끝내고 왔거든요.”

- 응.

“제가 찾아보니까 출연자의 인간적인 면모? 이런 걸 탐구한다는 인터뷰 프로그램이더라고요.”

- 응. 그래서?

무덤덤했던 목소리에 흥미가 묻어나자 소파에 털썩 앉았던 진우의 얼굴에 그린 것처럼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지환이가 봤다면 우리 천만 배우님! 하고 좋아했을 거고, 윤혁이 봤다면 또 무슨 꿍꿍이냐고 했을 법한 미소였다.

“원래 연예인의 인간적인 면모에 초점을 맞춰서 좀 다양하게 인터뷰하고 보여주는 그런 프로그램인데, 이미지 세탁에 써먹는다고 욕도 꽤 먹었나 보더라고요.”

- 아아. 어떤 건지 알 것 같다.

세세하게 다 말하지 않았지만 윤혁은 진우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했다.

- 잠깐 검색해보니까 데미갓 얘네 공중분해 되기 전에 한 번 나왔었네. 그걸로 가루가 되게 까였고.

“네. 하필이면 문제가 된 멤버가 나온 게 치명타였나 봐요. 그래서 애들로 때 좀 벗겨내려는 것 같더라고요.”

- 그래. 형들한테 말해둘게. 지금 집이라고?

“네. 오늘은 이제 스케줄 없어서 좀 쉬려고요.”

- 할 거 없으면 놀러 와.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던 터라 이대로 한숨 잘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놀러 오라는 말에 혹한 진우는 잠시 고민했다.

“가면 맛있는 거 사줘요?”

핸드폰 너머의 시큰둥한 목소리가 조금 더 퉁명스러워졌지만, 허락을 받아낸 진우는 벗어놨던 코트를 다시 집어 들었다.

* * *

“자, 지금부터 인터뷰할 거니까 가감 없이 이야기하시면 돼요.”

“정말 가감 없이 이야기해도 돼?”

핸디 캠을 들고 연습실에서 모여 앉은 멤버들을 담으며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눈을 빛내는 찬이 얼굴을 보고 있자니 초장부터 목소리가 삐끗할 것 같아 세빈이에게 눈짓을 했다.

그런 내 신호를 잘 수신한 건지 세빈이가 뒤에서 찬이 옆구리를 꼬집었다. 멤버들 얼굴을 찍느라 당연히 카메라에는 그 모습이 잡히지 않았고, 흠칫한 찬이를 준이 형이 자애롭게 웃으며 바라봤다.

알아서 잘하라는 뜻을 듬뿍 담아서.

“여기서 말 잘 못 하면 멤버들이 저 잡을 것 같아서 무서워서 말 못 하겠어요!”

“네, 그럼 그냥 말 안 해도 괜찮아요.”

“아니, 솔직한 인터뷰라고 해놓고!”

“괜찮아요. 찬이 인터뷰는 빼놓지 뭐.”

태연하게 찬이랑 티격태격하는 동안 세빈이는 이런 모습이 재밌었는지 키득거리고 있었고, 경환 형은 씩씩거리는 찬이 머리를 헝클며 웃었다.

“자, 장난은 이쯤하고 멤버들이 생각하는 공지환은 어떤 사람인가요?”

“같은 그룹 멤버로서? 아니면 그냥 인간적인 면에서?”

“음. 그냥 말하고 싶은 쪽으로 말하면 될 것 같아요.”

사전에 방송국에서 건네준 인터뷰 질문지에는 딱히 어느 쪽이라는 구분은 없었다.

내 역할은 질문지에 있는 질문들로 인터뷰를 채워 녹화본을 넘겨주는 일이었고, 편집은 방송국에서 알아서 할 문제였다.

“그럼 우리 귀여운 막내 세빈이부터 말해볼까?”

“왜 이런 건 늘 나부터 해요?”

“그야 우리 막내가 귀여우니까?”

열심히 고민 중이었던 세빈이가 내 부름에 화들짝 놀라며 볼멘 목소리를 냈다. 다른 형들이야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귀엽다고 해서 부끄러운 건지, 먼저 답하라고 해서 불만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잠시 삐진 얼굴이 됐던 세빈이는 금세 표정을 수습했다.

요새 들어 멋있는 모습에 집착하는 것 같지만, 16세 막내에게는 아직 멀고 먼 이야기였다.

애꿎은 연습실 바닥을 문질거리던 세빈이는 생각이 정리됐는지 카메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신기한 형이에요.”

“어떤 면에서?”

“뭔가 일이 잘 안 풀리고 있어도 형이 괜찮다고 말하면 정말로 괜찮아질 것 같아요.”

“응?”

생각하지 못했던 대답에 나도 모르게 되묻자 조용히 세빈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멤버들이 왜인지 모르게 수긍하는 눈치였다.

뭐지?

“무대에 오르기 전에, 카메라 앞에 설 때 늘 긴장되고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그때마다 형이 괜찮다고 잘할 거라고 해주잖아요. 그러면 신기하게 긴장된 게 좀 가라앉아요.”

“그건 다른 형들도 마찬가지 아니야?”

“다른 형들도 그렇긴 한데 환이 형이 조금 더 효과가 잘 들어요.”

배시시 웃으며 무슨 만사형통 부적을 보는 것처럼 나를 대하는 세빈이 시선에 나도 모르게 이상한 얼굴이 되었다. 내가 찍고 있는 쪽이라 다행이었다.

아이돌 창조 때, 조별 경쟁 무대 결과를 기다리면서 세빈이와 찬이 손을 잡아줬던 게 이렇게 이어지는 건가?

내가 애들한테는 걱정 인형인가? 아니면 정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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