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15)화 (215/456)

215. Butterfly(1)

김아란은 언래블이라는 그룹이 부디 자신을 살려줬으면 하고 빌고 있었다.

분위기를 등에 업고 시청률이나 반응을 좀 살려보려면 이번에 화면을 잘 뽑아내야 했다.

이전 출연자였던 데미갓과 이재영 배우는 여러 팬덤에서 줄기차게 씹히고 있다고 했다.

덕분에 비욘드 팀 헤드들은 부장님들에게 호출당해 한바탕 살풀이를 당한 참이었다.

그런데 그들 때문에 피해를 보았던 그룹 멤버가 출연하게 되다니. 어찌 보면 참 아이러니 한 일이었다.

하지만 방송에 그런 인과관계가 언제부터 의미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며 피곤한 눈두덩을 꾹꾹 눌렀다.

그저 오늘 출연할 멤버가 별 탈 없이 잘 협조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언래블 환입니다.”

“안녕하세요, 김아란이에요. 반가워요.”

그리고 눈앞에 인터뷰 대상을 만나게 되자, 문득 자료 조사 때 보았던 기사가 떠올랐다.

한낮의 빌런이라는 자선 패션쇼에서 거의 홍보 사진처럼 쓰던,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던 소년이 무해한 눈동자에 자신을 담고 있었다.

아란은 묘하게 눈이 더 가는 신기한 분위기를 가졌다고 생각하며 눈앞의 소년에게 집중했다.

* * *

‘두통은 괜찮음?’

‘응. 시간 차가 제법 있으니까.’

한 번에 여러 스킬을 오래 쓰면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처럼 열이 훅 오르곤 했다. 그와 함께 동반되는 극심한 두통.

그래서 특성은 자기 마음대로 발동돼도 그러려니 했지만, 스킬은 되도록 연달아 사용하지 않도록 조심해왔다.

연습 시간에는 ‘독종’ 스킬을 써서 집중력과 습득력을 높였지만, 지금은 친한 척 할 수 있는 스킬이 필요했다.

‘내적 친분’ 스킬이 단시간에 큰 효과를 주는 스킬은 아니었지만, 촬영 내내 훈훈한 분위기만 유지해도 내게는 큰 도움인 셈이었다.

갑자기 이것저것 해보겠다고 기운차게 움직였더니 포잉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지 전보다 더 붙어 있었고, 잔소리가 세배쯤 늘었다.

이전에는 종종 피곤하다며 내 연습 내내 자기도 했는데 이번에 한번 응급실을 방문한 것 때문인지 잠도 자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피곤하면 좀 자고 와도 되는데.’

‘혼자 두면 네놈이 또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우리 사이에 이렇게 신뢰가 없다니….’

슬쩍 농을 던졌다가 가뜩이나 매서운 눈초리가 세모꼴로 뾰족해져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 빌어 포잉을 진정시켜 두었다.

대부분 사전 협의가 끝난 상황이었고, 오늘부터 촬영하는 내용으로 방송 분량을 만든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스킬 효과 때문인지 작가님도 첫인사 때보다 조금은 더 편해진 얼굴로 웃으며 질문을 던져왔다.

“아, 그러고 보면 지환 군 쇼에서 굉장했다죠?”

“네? 아뇨? 전 정말 묻혀 지나갈 것처럼 무대만 즐기고 얌전히 사라졌었는걸요.”

뜻 모를 소리에 설마 그 사진 이야기를 하시려는 건가 하고 극구 부정했다. 하지만 작가님은 그럴 생각이 없었는지 농담이라도 건네는 것처럼 웃었다.

“그 사진, 꽤 유명해요. 다들 한 번씩은 봤을걸요? 표정 연기나 몸짓이 보통이 아니던데 연기에도 욕심이 있나요?”

“아뇨. 어휴, 전혀요. 전 제 한계를 잘 알고 있어요. 전 음악 공부만으로도 늘 버거워하는걸요.”

“그런 것 치고는 여러 이야기가 들리던데요?”

“네? 어떤 이야기요? 전 들은 게 없는데요….”

도대체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건지 싱글벙글 웃던 작가님은 후후, 하고 낮게 웃더니 손에 든 수첩을 펼쳤다.

방금까지는 그저 분위기를 풀기 위한 시간이었다는 듯 본격적인 질문들이 쏟아졌다.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 연습생 시절의 에피소드, 쇼케이스 때 언급했던 방황에 대한 답을 찾은 건지 등.

사전 조사를 꽤 철저히 해오신 건지 우리 솜뭉치들이나 알법한 자세하고 깊이 있는 질문들을 던졌다.

간혹 답하기 곤란한 것들은 우진 형이 카메라 너머에서 사인을 보내줬기에 잘 얼버무릴 수 있었다.

“언래블 하면 멤버들 간에 사이가 굉장히 좋기로 유명하잖아요. 비결이 따로 있나요?”

“아마 숙소 생활하는 대부분의 그룹과 비슷하지 않을까 해요. 하루 24시간을 거의 내내 붙어서 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특히나 남자애들만 있다 보니까 별일 다 있거든요.”

“예를 들면요?”

숙소에서 있었던 온갖 흑역사들을 떠올리다 그중 가장 무난한 일을 끄집어냈다.

까딱 말 잘 못 했다가는 어디서 어떻게 뒤틀려서 소문이 날지 알 수 없어 에피소드 하나를 꺼내오는 것도 꽤 조심스러웠다.

역시나 가장 무난한 건 먹는 게 아닐까.

“왜, 한국 사람은 밥 같이 먹으면서 친해진다고 하잖아요.”

“맞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식사 자리를 중요하게 여기죠.”

적절하게 호응해주는 작가님 덕분에 긴장감이 한층 가라앉아 더 솔직하게 웃으며 말할 수 있었다.

“다들 그렇겠지만 체중 조절하느라 저희가 꽤 힘들었어요. 한창 먹을 나이잖아요?”

“이렇게나 말랐는데도 다이어트를 해요?”

“하하, 지금은 더 많이 빠진 건데 데뷔 전에는 진짜 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눈물 난 적도 있었어요.”

“정말요?”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는 사실이었다.

갑자기 연습생이 돼서 움직이는 것도 힘들고, 회사, 학교, 숙소만 오가느라 현대 문명인과는 거리가 먼 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제일 힘든 건 먹는 것.

갑자기 데뷔조의 연습생이 된 나는 제한된 식사가 너무 힘들었다.

그때는 정신도 없었지만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했던 시기였던 터라, 자기 전에 늘 감정이 들끓었었다.

그러다 한번은 엄마가 해준 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혼자 운 적도 있었다.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앞으로 두 번 다시 먹을 수 없는 엄마가 해준 된장찌개가 너무 그리웠다.

엄마표 된장찌개는 뭉근하게 오래 끓인 덕에 깊은 맛이 일품이었다. 살살 눌러도 부서지는 두부나 감자, 애호박을 국물과 크게 한 수저 떠서 밥과 비벼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시골 숙모가 보내준 집된장을 넣는 게 엄마의 비법이라고 했었던가?

그 맛은 어떻게 해도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이층 침대 구석에서 남몰래 울기도 했었다.

그렇게 먹는 게 힘들었던 나는 제일 먼저 다이어트 식단을 손봤다.

‘그때 생각하면 정말….’

‘고생은 내가 했는데 왜 네가 생색이야.’

며칠을 울면서 이대로는 데뷔고 뭐고 내가 먼저 죽을 것 같다고 포잉에게 하소연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포잉은 결연한 표정으로 사라졌다가 최상의 다이어트 식단표를 짜왔다.

그리고 먼저 트레이너 선생님과 많은 대화를 나눈 후 포잉이 준 식단을 점검하고 확인까지 받았다.

그 후에는 뻔하지.

그 식단을 들고 팀장님에게 달려가 영양실조를 예방하고 장기간 다이어트로 받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고 열심히 어필했다.

가뜩이나 먹는 문제로 힘들어하는 멤버들을 지켜봐 온 팀장님은 내 식단이 트레이너 쌤도 수긍할 수준인 걸 높이 사서 내 손을 들어줬고.

“직접 식단을 만들었다고요? 어휴, 바쁜 와중에 어떻게 그렇게 했어요?”

“저희가 데뷔 조였던 만큼 굉장히 예민하고 힘들어했었는데, 먹는 것만 조금 바뀌어도 훨씬 좋아질 것 같았거든요. 일단 제가 맛있는 것 좀 먹고 싶었고요.”

“와, 진짜 지환 군은 의지가 대단하군요? 다이어트는 작심삼일이라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저희는 어쨌든 많은 분께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사람 욕심이 그렇잖아요. 이왕이면 더 잘생기게 보였으면 좋겠고. 저희도 똑같거든요.”

식단 변경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때가 떠올랐는지 포잉의 시선이 아련해졌다.

그때는 포잉은 포잉 나름대로 이 세계와 요정 일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는 나대로 적응하느라 혼을 빼고 있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렇게 식단이 바뀌고 멤버들의 밥을 조금씩 제가 챙겨주기 시작했거든요.”

“직접 밥을요?”

“거창한 건 아니고, 간단하게라도 아침에 샐러드랑 주스를 먹이고 연습을 늦게 가는 날에는 밥해서 먹이고 그런 정도에요.”

“아침밥은 저도 안 챙겨 먹는데요?”

“아침밥을 먹어야 점심까지 잘 버틸 수 있으니까요.”

팀의 우애가 급격하게 좋아진 이유가 밥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조금 웃기긴 했는데 사실이었다.

내가 이전 지환이와 다르게 숙일 때 숙이고 열심히 멤버들 사이에서 눈치껏 행동한 것도 컸지만, 밥도 무시할 게 못 됐다.

잘 챙겨 먹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멤버들이 나에게 의지하는 게 확연히 늘어났으니까.

“먹는 것부터 한결 숨통이 트이니까 다들 더 유해지고 좋아졌죠. 거기다 맏형들이 중재를 굉장히 잘해줘서 더 급격하게 뭉칠 수 있었어요.”

“맏형이면 하준 씨와 히스 씨죠?”

“네, 저희 리더님이랑 메보님이죠.”

대화하는 내내 다른 멤버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섞어가며 골고루 이야기를 버무렸다.

어떻게 형들이 중심을 잡아줬고, 일상에서 투닥거릴 때도 선을 넘지 않도록 서로 어떻게 조심하는지.

현실 그대로 말해도 너무 예쁜 우리 애들이었지만, 거기에 약간의 포장을 더 하니 세상 이렇게 착한 애들이 없었다.

착하긴 착하니까, 음. 그래. 그런 걸로 하자.

“지환 군은 멤버들이 너무 좋은가 봐요.”

“티 나요?”

“좋아하는 게 눈에 아주 훤히 보이는데요?”

“하하, 제가 저희 팬들한테 한 얘기가 있어요. 제가 솜뭉치 0호라고요.”

“이런 걸 성덕이라고 하던가요? 후후, 팬덤 이름이 솜뭉치인가 봐요.”

작가님은 이런 인터뷰가 굉장히 익숙한지 다양한 이야기를 여러 방향에서 잘 이끌어주셨다.

덕분에 꽤 긴 시간 동안 나는 우리 멤버들과 팬들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실컷 할 수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덕질 메이트들과 팬심을 불태우던 과거가 생각나 웃음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꽤 긴 시간이 걸린 인터뷰가 끝난 후 내게는 핸디 카메라 한 대가 주어졌다.

“개별적으로 저도 지환 군의 지인들에게 인터뷰를 딸 거지만, 지환 군이 직접 주변인들에게 질문해야 하는 것들이 있어요. 질문지는 매니저님께 드렸으니 한번 훑어보시고 편하게 진행해주세요.”

“네. 궁금한 게 있으면 매니저 형을 통해 여쭤볼게요.”

“네. 언제든지 편하게 질문해요. 조만간 또 봬요.”

“작가님 감사합니다. 작가님 덕에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스킬을 적용한다고 해서 극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건 아니었지만,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호감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더 효과가 좋았다.

평소에도 우리에 대해 좋게 생각해주셨던 건지, 속마음을 따로 확인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날카롭거나 함정이 될만한 질문이 없었다.

옆에서 포잉도 인터뷰 내내 작가님의 향이 변하지 않는지 확인하다가, 나쁘지 않다고 말해줄 만큼 악의는 없는 사람이었다.

진심을 가득 담아 감사 인사를 전하고 함께 고생한 촬영 스태프들과 다른 분들께도 열심히 인사를 드렸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진 형은 그런 내 태도를 칭찬했다.

“잘했어, 이제는 말 안 해도 인터뷰도 잘하고 처신도 잘하네. 우리 지환이가 아주 잘 크고 있어.”

“에헤이, 왜 또 비행기 태워요. 혹시 몰카 해요?”

“몰카는 무슨. 기특해서 그러지!”

우진 형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 서려 있었다.

“처음에는 앞뒤 못 가리고 망나니처럼 뛰쳐나가서 걱정했는데. 어휴, 천만다행이야.”

“누가 보면 몇 년쯤 된 줄 알겠네!”

“얌마, 이렇게 빠르게 자기 잘못을 고쳐나가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

“어휴, 그만 해요. 나 진짜 부끄러워 숨질 거 같아요!”

연신 얼굴에 금칠해주는 우진 형의 입을 억지로 막고는 자꾸 흐물흐물해지려는 내 입꼬리를 꾹꾹 눌렀다.

칭찬에 약한 건 우리 애들만 그런 게 아니었는지,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서 고생하는 우진 형의 칭찬에 내 어깨가 한껏 올라갔다.

처음 이마가 찢어져서 응급실에 단둘이 갔었던 날, 형이 뽑아줬던 콜라가 아직도 생생했다.

그때 근심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살피면서 벤치에 앉아 차분하게 이야기를 해주던 우진 형 모습도.

그런 형의 모습에 나이 차 많이 나는 형이 있으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 팀을 위하는 건 좋은데, 그 팀에 너도 속해있다는 걸 잊지 말자.

그때 형이 해줬던 말은 준이 형이 해줬던 말들과 함께 늘 가슴에 남아있었다.

“형, 우리 오래오래 같이해요. 나중에 막 우리 응? 월드 투어 같은 것도 하고 막!”

“얼씨구, 기지도 못하는 게 날겠다고 하고 있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죠!”

“오냐, 돈 많이 벌어서 형도 부자 되게 해줘라.”

“걱정 마요, 우리만 믿어요!”

허황된 꿈 이야기조차 헛소리로 치부하지 않고 같이 웃어주는 우진 형이 우리 매니저여서 정말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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