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 BOOMERANG(5)
- 우리 애들은 어떻게 한 무대에 아련하고 귀엽고 멋있고를 다 보여줄 수 있을까????
오늘 자 생방보다 1차로 애들 무대 퀄에 심장 부여잡고 1위 후보에 각혈하뮤ㅠㅠㅠ진짜.. 울 애기들이 1위 후보에 오르는 날이 온다..얘들아 이거 진짜 현실 맞지? 나 주책맞게 엄마랑 보다 울었어 ㅠㅠㅠㅠ
ㄴ ㅌㄷㅌㄷ.. 나도 눈물 찔끔함 내가 진짜 눈물 안 흘리기로 최씨 집안에서 유명한 사람인데 애들 때문에 자꾸 주책맞게 눈물이 난다 ㅠ
ㄴ 난 안 울었는데 울엄마가 눈물 고임 ㄷㄷㄷ... 애기들 너무 짠한테 기특하다고 울엄마 솜뭉치각이야..?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머님 가입시켜드려.. 윗 뷰어가 눈치가 없었네! ㅋㅋㅋㅋ
ㄴ아 진짜 니들ㅋㅋㅋㅋㅋ무대보고 손 드릉드릉해서 왔는데 역시낰ㅋㅋㅋ
언래블 관련 커뮤니티는 오늘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무대에 우리 애가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들썩였다.
실시간으로 방송을 달리자며 각자 익숙한 커뮤니티 혹은 SNS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솜뭉치들.
그들은 언래블이 1위 후보에 포함되어 있다는 문구를 화면에서 본 순간 각자의 방식으로 감격스러운 마음을 발산하기 바빴다.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이 기쁨과 감격을 나누기도 했고,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른 사람도 있었다.
세상이 이제야 우리 애들의 본모습을 조금 알아본 것 같다는 어떤 솜뭉치의 SNS 메시지에는 수많은 ‘좋아요’가 눌렸고, 해외 팬들은 자기도 실시간으로 방송을 보고 싶다며 아쉬운 마음을 메시지로 남기기도 했다.
그렇게 다들 들떠있던 그 날 밤, 위캠의 언래블 공식 채널에는 하나의 영상이 올라왔다.
‘언래블 체육대회’
체육대회라는 문구에 홀린 듯이 알림을 누른 팬들은 즐거움의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영상은 멤버들이 어딘지 모를 곳에 도착해 경계하는 모습부터 시작했다.
모자이크 처리된 매니저인듯한 사람에게 자기들을 팔아넘기는 거냐는 찬이의 애처로운 질문이 시작이었다.
- 음, 역시 우리 최찐빵은 참 한결같아.
- 아냐, 환아. 세빈이는 이미 찬이한테 물들었….
영상을 보던 솜뭉치들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찬이의 투정과 진지한 목소리로 세빈이를 교육하는 환이 목소리에 기뻐했다.
물론 그중에는 지환이 보거나 세빈이가 봤다면 기함을 할 만한 내용도 있었지만.
그렇게 건물 안으로 들어간 언래블은 제작진을 경계해보았지만 선택지가 없었고, 한껏 하찮아졌다.
명절과 체육대회가 무슨 상관이냐고 얼핏 논리정연하게 반박했지만, 제작진은 그들 머리 위에 있었다.
‘그냥.’
논리는 무논리를 이길 수 없으니까.
- 작은환 시무룩한 것 좀 봐… 준이는 그걸 또 토닥여준다ㅠㅠ
ㄴ애기들 매달리는 거 뭐냐고 ㅠㅠ지네가 코알라야 팬더야ㅠㅠㅠㅠ
ㄴ코알라나 팬더보다 더 귀여운 거 같아.. 쟤네는 진짜 서로한테 너무 질투하는 것 같아 ㅋㅋㅋ
자기를 빼고 멤버끼리 친근한 걸 참지 못하는 막내 둘이 달려든 덕에 분위기는 금방 붕붕 떴고, 그 후로는 착착 빠르게 진행되었다.
팀이 정해지고, 나름의 대책 회의도 하더니 기어코 벨크로 트랙 위에서 온갖 자세를 펼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팀 내에서 유연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세빈이는 겨우겨우 넘어지지 않고 잘 버텼지만, 영빈이 문제였다.
- 내가 잘 못 들은 거야? 이거 팀전이라고 하지 않았어? 우리 최찐빵 왜 혼자…. 야, 최찐빵… 너 이 녀석….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팀전 맞앜ㅋㅋㅋㅋ
ㄴ ㅈㄴ 팀이고 뭐고 난 내 길을 간다!!
ㄴㅋㅋㅋㅋ아 영빈이 어떡햌ㅋㅋㅋㅋ
서로 도와가며 엉금엉금 착실히 앞으로 나아가는 보름달 팀과 힘으로 억지로 트랙을 주파하는 송편 팀이 시작부터 끝까지 극명하게 다른 두 팀의 분위기를 보여줬다.
- 언래블을 응원하려면 국제 축구 경기 룰도 알아야 하는 거야?ㅋㅋㅋㅋㅋ이게 뭐라고 진지햌ㅋㅋ
ㄴ 솜뭉치가 되는 길이 이렇게 험난하고….
ㄴ 선생님, 공이 자꾸 터지는데 어떡하죠?ㅠㅠㅠㅠ흐뷰ㅠㅠㅠㅠ
그 후 이어진 축구 경기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이 저 자리에 있었다면 온갖 비속어를 날리고도 남을 것 같은데 언래블은 욕은커녕 그 와중에 반칙도 안 하고 있었다.
정말 진지하게 축구 경기에 임했고, 그 대가로 펑펑 터지는 물 폭탄 때문에 물인지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들로 젖어있었다.
그 가수에 그 팬이라고 했던가.
그 영상을 지켜보던 솜뭉치들은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 주먹을 불끈 쥐고 각자 한 팀씩 응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경기는 후반전까지 이어졌고 결국 지환의 골로 보름달 팀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 이게 뭐라고 이렇게 감동적인데?ㅜㅜㅜ흡.. 작은화니 골 넣고 달려가는 거 봤니?
ㄴ 애기 형아들한테 달려가서 좋아죽는데ㅠㅠㅠ난 니가 귀여워 죽어 화나ㅠㅠㅠㅠ
ㄴ바스타월에 쏙 감싸여서 활짝웃는데 그게 그렇게 기뻤니, 우리 화닠ㅋㅋㅋㅋㅋㅋ
ㄴ망태기, 망태기가 필요하다ㅠㅠㅠㅠㅠㅠ
회사에서 노리고 만든 건지 이번 체육대회 편은 솜뭉치들의 심장을 제대로 가격했고, 요리 편에 이은 팬들의 최애 편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다음 경기를 생각하며 두근두근해 하던 솜뭉치들은 영상의 플레이 바가 얼마 남지 않은 것에 좌절했다.
요망한 ON 엔터는 그 와중에 영상을 두 편으로 나눠 놓은 것.
SNS에는 많은 솜뭉치들이 다음 편을 내놓으라고 외치는 문구로 가득했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건 여진우가 남긴 메시지였다.
@Unravel_ltt 님에게 보내는 답글
다음 편은 언제 올라와요…? 얘들아, 그래서 누가 이겼니?
한편 그 메시지를 확인한 소현 팀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왜 우리 애들 주변에는 다들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애들뿐이야.”
내심 못마땅한 듯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소현 팀장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뿌듯함이 서려 있었다.
그 모습에 보고하기 위해 왔던 김도연은 못 볼 꼴을 봤다는 얼굴이 됐지만, 금방 표정을 수습했다.
역시 사회생활도 쉬운 게 아니었다.
* * *
추석 특집 방송에 출연하고, 사전에 녹화해둔 프로그램이 TV에서 나오기도 하고.
고작 한 달도 안 된 사이 많은 것들이 변했다.
“신기하긴 하다.”
“응. 아까 우리 노래 나오는 거 들었어?”
“응? 못 들었는데.”
“편의점에서 라디오 틀어놓은 거 같은데 컨퓨전 나오더라.”
“와, 그걸 들었어?”
우리 노래를 못 들었다는 게 더 이상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찬이를 바라봤더니, 모자 아래 마주친 눈동자가 흔들렸다.
“…눈으로 욕하지 마.”
“욕까진 아니었는데. 그래, 네가 날 어떻게 여기는지 잘 알았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듯이 봤잖아!”
찬이 눈치가 아주 죽지는 않았는지 내 마음 깊숙이 있던 가장 날것의 생각을 눈으로 읽은 모양이었다.
물론 찬이 앞에서는 내가? 설마? 하는 의미를 가득 담아 어깨를 으쓱해줬지만 가늘어지는 눈초리를 보니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딴짓 그만하고 재료나 빨리 사 가자.”
“불리하니까 말 돌리는 것 봐.”
“불리할 게 뭐 있어. 빨리 안가면 형들이 잔소리하니까 그렇지.”
노란색 장바구니를 옆구리에 낀 찬이를 닦달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몸을 돌렸고, 그 뒤에서 홀로 씩 웃었다.
꽤 무거울 텐데 군말 없이 혼자 잘 들고 다니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했고.
찬이랑 나는 우리끼리 명절 음식을 만들어 먹는 내용을 촬영하자는 회사의 의견에 따라 장을 보러 나왔다.
평소 언래블 스토리를 촬영할 때랑 달리 핸디캠을 든 촬영 감독님 한 분뿐. 그 뒤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우진 형만 함께했다.
힐끔힐끔 카메라를 바라보는 시선이 간혹 있었지만, 일상생활을 촬영하는 스트리머도 있었고 얼굴을 가린 덕분에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솜뭉치들이 이 영상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글쎄…. 추석 영상으로는 체육대회가 있으니까 더 나중에 공개되지 않을까?”
“그럼 지금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해도 쓸모없는 건가?”
“보통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는 설에 하지 않아?”
“뭐 어때. 언제든 우리 솜뭉치들은 복 많이 받으면 좋지.”
초점이 조금 어긋난듯한, 그럼에도 늘 부수적인 것들보다는 핵심을 쿡 찌르는 찬이 말에 웃으며 장하다고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우리 애가 똑똑하진 못해도 똑 부러지지, 그럼.
“다 골랐나?”
“보자. 고기, 달걀, 전 재료가….”
“꼬치전에 파 빼면 안 돼?”
“그럼 색이 안 예쁘단 말야.”
생각했던 몇 가지를 떠올리며 찬이가 들고 있는 장바구니 안에 재료를 확인하던 나는 파는 맛없다고 투덜거리는 찬이 옆구리를 툭 쳤다.
“네가 편식하면 우리 좋아하는 솜뭉치들도 같이 편식하고, 응? 골고루 잘 먹어야 튼튼할 우리 솜뭉치들이 연약해지면 이게 다 찬이 편식 탓이고.”
“이게 또 말도 안 되는 걸 다 내 탓이래!”
“들켰어?”
낄낄거리며 장난을 주고받는 사이 어느새 계산대 앞이었다.
생각보다 뭐가 많아졌지만, 그래도 다 같이 맛있게 먹을 걸 생각하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종종걸음으로 숙소에 도착해 문을 열자 그사이 깨끗하게 거실을 치우고 있던 멤버들이 반겨주었다.
온 집안에 기름 냄새가 진동할 게 뻔했기에 우리가 사랑하는 러그는 안전하게 하준 형의 방으로 피난시켰고 각 방문은 꼭꼭 닫아두었다.
“왔어?”
“응. 다녀왔습니다.”
“맛있는 거 사 왔어요?”
“맛있는 건 이제 만들어야지.”
숙소에 있던 멤버들의 왁자지껄한 반김에 기분이 조금 더 좋아진 나는 맛있는 거 사 왔냐는 세빈이 머리를 잔뜩 헝클어주고 짐을 풀어놨다.
그렇게 우리의 무모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형, 자꾸 맛살이 찢어져요. 이거 왜 이래요?”
“세빈아, 가운데를 잘 찔러 넣어야지.”
“경환아, 반죽 좀….”
거실 바닥 가득 신문지를 깔아놓은 준이 형의 선견지명에 찬사를 보내며 사방에서 쏟아지는 멤버들의 목소리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늘 영상은 우리 평소 모습을 솜뭉치들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영상이었기에 다른 날 방송할 때처럼 화면에 말을 걸진 않았다.
언래블 스토리로 미션 영상을 찍을 때는 가끔 카메라를 향해 이런저런 말을 걸기도 했지만, 일상 영상은 거의 말을 걸지 않았다.
그저 몇 가지 주제로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찍어낼 뿐.
이쪽이 솜뭉치들이 보기에 더 일상생활 같고 몰입도가 높을 것 같다는 경환 형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었다.
물론 촬영 중이라는 걸 아예 잊을 수는 없었기에 간혹 우리끼리 눈이 마주칠 때는 씩 웃곤 했다.
다만, 촬영 중이라 평소보다 덜 거칠고 말도 조금 더 얌전했다.
아까처럼 세빈이가 전을 준비하다 망친 상황에서, 카메라가 없었다면 찬이가 멍청이라고 깐죽거렸을 터.
장을 보는 상황에서도 그렇게 곱게 재료만 사서 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간식 사자고 마트를 다 털어올 기세로 카트를 끌고 다니며 날아다녔을 것.
안 그래도 가위바위보로 마트 팀을 골랐는데 하필 찬이랑 세빈이가 걸려서 세빈이 대신에 내가 가게 되었었다.
멤버들이 둘이 보내느니 카메라를 끄는 게 낫다고 해서….
하, 얘들아. 제발….
암담한 상황들이 눈앞에 훤히 그려졌기에, 마른세수하던 준이 형이 안쓰러워 자진해서 찬이를 데리고 다녀왔다.
다행히 그동안 영빈 형과 내가 멤버들을 교육한 덕분인지 멤버들도 이제는 조금씩 주방 일을 거들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세빈이와 영빈 형이 전 종류를 준비하고 있었고, 찬이와 경환 형은 재료를 씻고 다듬는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찬이에게는 칼을 주지 않았고, 세빈이는 절대 불 앞에 두지 않았지만.
“화나, 새우튀김 먼저 먹으면 안 돼?”
“많이 배고파?”
“쪼금?”
튀김을 하던 내 옆에 슬쩍 다가온 찬이가 배가 고프다며 불쌍한 척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피식 웃던 영빈 형이 내 시선을 눈치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금 있다가 밥 먹어야 하니까 조금씩만 먹어.”
준이 형까지 허락의 뜻을 보이자 경환 형도, 찬이도, 세빈이도 얼굴이 환해졌다.
요리하는 건 나였지만, 맏형들이 허락한다면 나도 허락하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먹을 거로 길들이는 건 종을 초월하는 것 같음.’
‘그건 맞지.’
오늘은 준이 형 머리 위에 올라가 우리를 구경하던 포잉은 이미 길든 것 같은 셋을 바라보며 작게 혀를 찼다.
부정할 수 없다는 게 왠지 서글펐지만, 어쩔 수 없지.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먹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우리 애들을 잘 먹이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