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05)화 (205/456)

205. BOOMERANG(2)

그렇게 밥 먹자는 핑계로 끌려 나간 나는 동생과 형들 사이에 낑겨서 한참 동안 시달려야 했다.

왜 쉬라고 시간을 주는데 쉬질 않냐는 말부터 우리한테까지 말 안 하고 혼자 움직이냐는 말까지.

걱정과 심술이 공존하는 투덜거림에 시달리다, 꼭 다음에는 멤버들에게 알리겠다고 약속해야 했다.

그렇게 멤버들을 만족시키고 나니 새벽 형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늙은 형들은 귀찮아진 거냐며 죄책감 유발 화법을 사용하는 바람에 결국 두 손 다 들고 말았다.

순전히 놀리려고 장난치는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내 안의 미약한 양심이 울어 차마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이게 양심인지 아니면 유교 사상에 세뇌된 자아의 외침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당장은.

밥 먹는 중간중간 사진을 찍자던 가영 형은 SNS에 사진을 올릴 거라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우리가 함께 있던 그룹채팅방의 이름을 무인도 패밀리라고 이름짓기에 이르렀다.

“왜 하필 무인도….”

“원래도 좋았지만 거기 갔다 와서 한결 더 돈독해졌잖아?”

내 탄식은 들리지 않는지 가영 형은 SNS에 올린 내용을 옆자리에 앉은 진우 형이나 세빈이한테 보여주며 신난 얼굴이었다.

슬쩍 확인해보니 음식이 세팅된 후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 찍었던 그 사진을 올린 것 같았다.

그 밑에 해시태그가 ….

성덕이라는 글자를 본 것 같았지만 못 본 것으로 하기로 했다.

우리끼리는 외출을 금지했던 회사도 이번 휴일에는 최대한 자유롭게 지내라고 해주었다. 다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라고.

그래서 영화를 보러 외출했던 그때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번화가까지 나와 다 같이 음식점에 올 수 있었다.

다른 형들이랑 있다는 게 생각보다 더 마음에 안정을 주었던 것 같았다.

여기 스테이크가 정말 맛있다며 자신만만한 얼굴을 한 가영 형의 추천에,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키스 형도 음식을 먹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웬일로 한가영 치고는 괜찮은 곳을 찾았네.”

“형이라고 좀 해라, 인마.”

“여기 파스타도 괜찮네요.”

오늘 식사는 가영 형이 쏜다는 말에도 우리가 눈치를 보며 쭈뼛거리고 있었더니, 세비 형이나 키스 형, 진우 형이 우리 몫까지 다양한 메뉴를 시켜줬다.

덕분에 테이블이 버거울 정도로 음식이 가득 찼고, 찬이나 세빈이 얼굴에는 세상을 다 가진 미소가 맴돌았다.

만족스러운 식사 후 적당히 얼굴을 가린 우리는 데뷔 후 처음으로 편한 마음으로 대낮의 거리를 즐겼다.

물론 그 평화는 조금 후 형들을 알아본 팬들로 인해 깨졌지만, 그래도 충분히 재밌는 시간이었다.

* * *

그리고 그날 저녁.

새벽의 공식 위캠 채널에 ‘Pluto’의 커버 곡이 올라왔고, 이를 알리는 SNS에는 이런 해시태그가 붙었다.

#우리는_널_응원해 #네잘못이아냐

새벽의 감성으로 재해석한 플루토는 언래블의 곡보다 조금 더 날카롭고 전투적인 느낌이었다.

언래블이 호소력 있는 목소리와 멜로디로 감성을 자극했다면, 새벽은 전투력을 풀 장착한 느낌이랄까.

그리고 이 커버곡과 해시태그는 생각지 못한 반향을 불러왔다.

위캠에서 커버 곡으로 유명한 스트리머가 플루토를 커버해 업로드하면서 새벽의 해시태그를 그대로 사용한 것.

늘 커버 곡만 올려놓던 그 스트리머가 처음으로 영상 말미에 얼굴을 공개하며 자신이 얼굴을 공개한 이유를 남겼다.

어릴 때부터 외모 비하를 많이 들어서 쭉 자존감이 낮았다고.

그래서 그동안 많은 시청자의 요청에도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자신을 아끼기로 했다고 말하며, 용기 낼 수 있게 해준 언래블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이는 시류에 민감한 많은 스트리머들에게도 좋은 소스가 되어줬다.

처음 악플 사건이 수면 위에 떠올랐을 때는 연예계 기사를 다루는 스트리머들만 언래블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점차 많은 영상에서 언래블의 악플 사건과 데미갓과의 악연을 다루며 각자의 생각을 덧입혔고, ‘Pluto’라는 곡을 함께 소개했다.

순식간에 인터넷 방송과 SNS에서 언래블과 ‘Pluto’를 말하기 시작했다. 떄마침 가영의 해시태그가 일종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동안 온, 오프라인에서 타인의 비방이나 악플 등으로 괴로운 일을 당했던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 그런 지인을 둔 사람이 가해자를 비방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은 언래블의 노래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주의 깊게 상황을 체크하던 소현 팀장은 허탈한 듯 중얼거리며 웃었다.

“새벽 애들한테 정말 홍보비라도 줘야 하나.”

소현 팀장의 손에는 시간대별 음원 순위가 적힌 보고서가 쥐여 있었다.

일시적인 흐름이라 생각했던 ‘Pluto’의 음원 순위가 점차 한 단계씩 올라서 4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언래블이 추석 특집 음악방송과 예능 프로그램을 대비해 연습에 몰두하는 사이 ‘Pluto’는 그 곡 자체로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있었다.

* * *

“와, 진짜 개인 대기실을 받았네?”

“저번에는 특별 무대라 그랬다 쳐도 이번엔 왜지….”

“기분 진짜 이상해….”

졸업식의 특별 무대 때문에 배우분들과 함께 배정받았던 대기실보다는 작은 크기였지만, 이번에도 언래블은 개인 대기실을 배정받았다.

신기한 눈으로 대기실을 바라보던 세빈이가 조심스럽게 소파에 앉아 방석을 꾹꾹 눌러보고 있었다.

저 낡은 소파가 뭐라고 우리 애가 이렇게 신기해하고….

나는 다음에 더 큰 숙소로 이사하게 된다면 꼭 세빈이를 위한 소파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늘 무대는 ‘Confusion’과 ‘Pluto’였다.

아마도 ‘Confusion’으로는 이번 주가 마지막 음악방송 무대일 터라 더 많이 무대를 서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있었다.

그간은 너무 악플과의 전쟁과 우리 멤버들의 개인사에 초점이 맞춰진 터라, 섭외가 들어오는 프로그램도 음악방송이 아닌 예능과 인터뷰가 대부분이었다.

원래는 추석 이후 한주 정도 더 무대를 이어가자는 게 회사의 초기 계획이었지만, ‘Pluto’가 예상보다 훨씬 큰 인기를 얻자 방향을 바꾸었다.

정식 앨범을 통해 ‘Pluto’를 재발매하고, 그 앨범으로 활동을 하는 쪽이 음악방송 1위를 노려봄직 하다는 말과 함께.

멤버들도 나도 지표를 통해 보여주는 음원 사이트 내의 순위, 팬들의 싱글 앨범 발매 요청 등을 직접 확인하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꿈에서 얻은 멜로디가 이렇게까지 큰 사랑을 받을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으니까.

“우리 그럼… 리패키지 앨범은 무산되는 거야?”

“리팩에서 미니 앨범으로 바뀔 거 같던데….”

우리가 음악방송 무대를 위해 방송국에 와 있는 지금도 회사에서는 갑자기 바뀐 상황을 대처하고자 계속해서 회의가 진행되고 있을 것.

그동안 준비해왔던 것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앨범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그러니까 비용을 최대한 절감하기 위해 다들 머리를 싸매고 계셨다.

어디나 늘 돈이 들어가는 건 중요한 문제니까.

그 때문에 우리도 덩달아 바빠졌다. SNS에선 가영 형이 만든 해시태그가 하나의 챌린지가 되어 많은 사람의 고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멤버들은 그런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위캠과 SNS를 보지 않기 위해 늘 애를 썼다.

반응을 보고 들떠서 실수하는 것도 두려웠지만, 그러다 좋지 못한 내용을 읽고 낙심하여 활동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환아, 또 왜 이렇게 멍해.”

“아, 그냥 플루토 생각하고 있었어요. 신기하잖아요.”

멍하니 있는 내가 걱정되었던 건지 옆에 다가온 영빈 형의 눈에는 미약한 걱정이 담겨있었다.

곡 생각에 잠시 멍했다는 내 말에 대기실 한쪽에서 의상을 점검하던 찬이가 끼어들었다.

“그때 하준 형이 녹음하길 잘했다니까. 키스 형 말이 맞았잖아.”

“그래도 좀 신기하긴 하지. 이렇게 사랑받을 거라고 생각 못 했잖아.”

정작 하준 형도 이런 상황이 신기한 건 마찬가지였는지, 꾸준히 참여하던 라디오 방송을 다녀온 날 우리에게 말했었다.

최근에 우리 노래 신청이 굉장히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건지 ‘Confusion’에 대한 신청도 많았지만, 솜뭉치가 아닌 분들도 ‘Pluto’를 신청한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하겸 형이 라디오 진행을 꽤 오래 하다 보니 라디오 진행을 맡은 다른 분들과도 제법 친분이 두터운 것 같았다.

이렇게 건너 건너 우리 이야기가 짧은 시간 안에 계속해서 들려오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영빈 형이 졸리다며 소파를 차지하고 눈을 감고 있던 경환 형을 밀어내더니, 그 자리에 앉아 평소보다 조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가 그만큼 곡을 잘 만든 거라고 생각하자. 나쁜 일로 이름 알린 거 아니니까 우리는 더 열심히 하면 돼.”

“영빈이 말이 맞긴 한데, 밖에서는 꼭 입조심하고.”

준이 형은 그 와중에도 혹여나 멤버들이 들떠서 실수할까 봐 잔뜩 긴장한 눈치였다.

그런 우리를 서포트 팀 직원분들과 우진 형이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며 챙겨주던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넵!”

기운찬 대답과 함께 마침 준비를 끝낸 찬이가 쪼르르 문가로 달려가자 동그란 머리통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씩씩하게 외쳤다.

“언래블 안녕하세요!”

“앗, 레노다!”

“나도 왔다!”

“어서 오세요!”

그나마 또래 그룹 중에는 유일하게 친한 DCL의 멤버들이었다.

오늘도 역시나 활기차게 등장한 레노와 자인 뒤에는 리우 형과 휴이도 있었다.

“오늘 너희도 무대 있어? 왜 말 안 했어!”

출연진 리스트를 다 외우지 못한 찬이가 반가운 눈을 하고 레노와 하이파이브 하는 사이, 리우 형이 문을 열자마자 사방으로 흩어지려는 멤버들을 막아섰다.

“제대로 인사부터.”

“우리 사이에 무슨.”

“그래도 인사는 잘해야지.”

영빈 형이 드물게 밝은 목소리로 리우 형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 치며 반가움을 표하는 사이, DCL 멤버들이 나란히 서서 꾸벅 인사를 해왔다.

덩달아 우리도 같이 인사를 하고.

“이거 약간 좀 응… 난 좀 그래.”

“다음부터는 그냥 인사만 하자. 허리는 숙이지 말자….”

아직 신인 티가 풀풀 나는 서로의 인사에 애들과 DCL 멤버들 사이로 순간 정적이 흘렀다.

지켜보던 서포트 팀 분들도 다들 시선을 다른 곳에 두는 걸 보니 어지간히 이상했나 보다.

‘평소에는 잘도 서로 까불대더니 뭐함?’

‘아무리 포잉이지만 자꾸 팩트로 때리면 아프다.’

‘쯧, 인간의 예절이라는 건 여러모로 이해가 안 됨.’

정적은 잠시였고, 금방 평소의 컨디션으로 돌아간 DCL 멤버들은 우리 애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활짝 웃고 있었지만, 리우 형 얼굴은 왠지 그늘져 있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는지 준이 형과 영빈 형이 간이 의자를 옮겨 우리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셋이 모여앉았다.

“화니, 잘 지냄?”

“나야 맨날 똑같지 뭐.”

“요새 너희 기사 맨날 떠서 좀 걱정했거든. 그래도 잘 풀리는 것 같아서 다행이더라.”

형들끼리 이야기할 게 있다고 판단한 우리는 형들 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으려 우리끼리 대화를 이어갔다.

세빈이도 찬이도 레노와 자인을 반가워하며 한쪽에 동그랗게 앉아 밀린 수다를 떠느라 바빴고, 휴이만 내 옆에 느긋하게 앉아있었다.

“다행이지. 걱정도 좀 되고.”

“우리도 얼마 전에 한번 크게 혼나서 애들이 기죽어 있었거든. 근데 너희 만나니까 원래대로 돌아왔네.”

“무슨 일 있었어?”

그러고 보면 휴이도 평소보다 텐션이 조금 더 낮아져 있었다.

늘 잘 웃고 먼저 와서 장난을 걸 만큼 밝은 모습만 보여줬던 휴이였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안색이 안 좋았다.

휴이의 시선이 맏형들에게 닿았다가 금방 내게로 돌아왔다.

“다른 건 아니고, 그 이재영이라는 사람 있잖아.”

“어? 그 사람이 왜.”

우리의 악플 사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든 그 이름을 다시 들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었다.

어쩌다 앞으로 마주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봤지만 그게 휴이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기에, 나도 모르게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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