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네가 남겨둔 말(2)
소현 팀장님은 인터뷰 요청 중 몇 군데의 질문지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물었었다. 세간에 퍼진 루머에 관련한 이야기를 하며, 우리가 가정사에 대해 밝히지 않기를 바라는 거면 회사 선에서 자르겠다고.
우리가 직접 인터뷰할 필요 없이 회사에서 답변을 정리해서 보내는 거로 대신할 수 있다고도 알려주셨다.
그리고 찬이와 경환 형에게는 중학교 때 은사님이 도와주겠다고 나섰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거기에 용기를 얻은 걸까.
둘은 오해가 생기느니 자기들 선에서 먼저 말을 해두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되도록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 기억을 떠올리다 트라우마가 되살아나 플래시백 현상이 생길까 걱정한 탓이었다.
팀장님도 멤버들도 내게는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정작 자신들은 무리하는 것 같아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일부라도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답하겠다고, 다만 그 범주는 회사의 가이드 라인을 따르겠다고 이야기해두었다.
그리고 이야기해야 한다면 최대한 가감 없이 사실 그대로 전달해 줄 곳을 원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했다.
그리고 뉴데일리는 그런 조건을 모두 수용하기로 회사와 모종의 약속이 오간 것 같았다.
기자님과 우리는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 기자님이 우리 팬이라는 걸 알게 된 후에는 자꾸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끌어내리느라 힘들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팬이라는 걸 알기 전에는 조금 날카롭게 받아들였던 질문조차 팬이라는 걸 알고 나니 우리에 관한 관심과 호감으로 보였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그게 당연한 거지. 너 처음에 상태창 가지고 안달하던 거 기억 안 남?’
처음엔 내 연습만으로도 무럭무럭 자라던 상태창의 숫자들에 기뻤던 나는, 늘 자기 전 포잉과 누워 상태창을 구경하다 잠들었다.
하지만 포잉은 자꾸 거기에 신경 쓰지 말고 잘 때는 잠자는 것만 생각하라고 잔소리를 했었고, 얼마 후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상태창 숫자의 성장이 더뎌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며칠씩 같은 숫자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 날이 많아질수록 난 내 연습이, 내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초조함에 연습에 몰두했고, 그래도 숫자가 늘지 않으면 또 우울해졌다.
포잉에게 한바탕 혼난 뒤부터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열어보는 거로 타협을 봤다. 그제야 다이어트할 때 체중을 자주 확인하면 안 된다는 말이 이해됐다.
‘사람은 숫자에 너무 약한 것 같아….’
‘사람만 그런 건 아님. 숫자는 직관적인 지표니까.’
만족스러운 인터뷰가 끝난 후 나는 우진 형에게 부탁해서 이번 앨범을 꺼냈다.
“고마워요, 꼭 들어볼게요.”
“아니에요, 들어주시면 저희가 더 감사하죠.”
기자님과 함께 온 분들에게까지 모두 앨범을 돌렸고, 다행히 모두 흔쾌히 받아주셔서 기분 좋게 자리를 마무리했다.
“어? 팀장님한테 전화 왔어요.”
“형 운전 중이라고 하고 하준이 네가 좀 받아줘.”
“네.”
운전할 때 꼭 두 손으로 핸들을 쥐는 우진 형은 아주 급한 전화가 아니면 전화도 잘 받지 않았다.
회사에서 오는 전화는 준이 형한테 대신 받아달라고 하는 편이었고.
면허 따고 얼마 안 됐을 무렵, 친구가 운전하던 차를 탔다가 사고가 났었다고 했다. 업무 특성상 아예 운전을 안 할 수 없어서 최대한 집중해서 하는 편이라고.
“팀장님이 빨리 오래요.”
“응? 갑자기?”
“팀장님 목소리가 뭔가 급한데 나쁘진 않았어요.”
“으음…. 그래, 일단 가보면 알겠지.”
예정에 없던 일인지 우진 형도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속도를 높이진 않았다.
역시 안전제일 우리 우진 형이었다.
그렇게 회사에 도착한 우리는 싱글벙글한 소현 팀장님 얼굴에 반사적으로 굳었다.
자꾸 팀장님이 저렇게 웃으면 어디로 우리를 팔아넘길 것 같아서 불안해졌달까.
“뭐야, 너희 표정이 왜 그래?”
“하하하…. 아니에요.”
미심쩍다는 눈으로 잠시 우리를 훑어본 팀장님은 손짓으로 우리를 앉히더니 용건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얘들아, ‘Pluto’로 음방 섭외 들어왔어.”
“네? 그거 믹테로 끝나는 거 아니었어요?”
“대표님이 그대로 두는 거 아깝다고 올리라고 하셨거든.”
순간 당황한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지만, 눈앞에 영빈 형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만 가득했다.
“어제 너희 방송하는 동안 간단하게 손본 거로 등록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팀장님은 우리가 걱정했던 부분을 콕 집어서 설명해주셨다. 너무 투박한 상태로 부족한 음원이 등록됐을까 봐 걱정했는데 그걸 알아본 것.
“근데 그게 왜 음방을….”
“‘Confusion’으로 추가 활동하는 것 때문에 음방 출연 알아보고 있었는데, NBS 뮤직타임에서 연락 왔어. ‘Pluto’까지 해서 두 곡 무대 가능하냐고.”
팀장님이 신나있었던 건 뮤직타임 무대 하나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내용이 남아 있었다.
“아, 그리고 너희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연락 왔다?”
“…?”
‘Pluto’로 음악방송을 뛰라는 것도 어리둥절했는데 갑자기 시사 프로그램이 튀어나오니 정신이 점점 더 없어졌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돼가는 거지?
* * *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아닙니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때의 인터뷰보다 훨씬 긴장한 우리 얼굴을 본 우진 형은 웃고 있었다.
그런 우리와 우진 형을 지켜보던 PD님도 입꼬리가 실룩거리는 게 웃음을 꾹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이번 주 방송분에 넣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긴 했어요. 그런데 언래블이라는 그룹이 겪은 일들, 사건의 흐름, 마지막 대처까지 확인했을 때 꼭 넣고 싶었어요.”
“저희는 아직 많이 부족해서 회사 분들이 정말 많이 가르쳐 주셨어요. 저희끼리였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안 돼요.”
“저희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겁이 많아서 인터넷을 못 보거든요. 그래도 전 형들이 있어서 괜찮아요.”
겁이 많다고 말하는 공포 영화 팬 세빈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웃었다. 그 겁과 공포 영화는 또 다른 종류이긴 하니까.
하지만 애나벨을 예약했던 둘에 대한 원한을 잊지 않고 있지, 암.
말간 눈으로 웃는 세빈이를 보며 PD님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팀에서 제일 어린 세빈이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안타까우셨던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나 자신을 파괴하고 타인을 살해하는 행위는 다들 그만두셨으면 좋겠어요. 연예인, 비연예인을 떠나서 악플이라는 게 결국은 왕따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악의에 더는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닌 터라 아마 그들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내 용서는 고소 취하의 형태로 필요할 테니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우리처럼 운이 좋지 못했던 그러니까 적절한 보호나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떠올라 기분이 가라앉았다.
유독 별들이 많이 졌던 시기가 생각났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괴로워하고 눈물을 흘렸는지도.
하지만 그런데도 그들을 난간 아래로 등 떠밀었던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세상을 살아갔다.
그리고 잊혔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복잡해지는 머릿속을 털어내고 웃으며 이야기를 마무리 짓자 옆에 앉아 있던 준이 형의 손이 내 손등 위에 얹어졌다.
세빈이 말이 맞았다. 우리는 우리가 함께여서 얼마나 다행인가.
* * *
“빨리 와여!”
“간다, 가!”
갑자기 훅 늘어난 출연 요청에 허덕이던 우리는 간신히 시간 맞춰 숙소에 도착했고, 치킨까지 시켜서 노트북 앞에 모여앉았다.
어제는 무인도에서의 여행을 추억하게 하는 힐링캠프의 방송이었다면, 오늘은 끊임없이 화두에 오르는 악플러를 다루는 방송이었다.
“추억은 진짜 미화되나 봐요.”
“왜?”
“가서 구를 때는 재미 반 고통 반이었는데 어제 영상 보니까 그냥 다 재미만 있어 보여서요.”
물론 무인도 여행은 생각보다 덜 불편했고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다.
다만, 그건 생각보다 덜 불편했다는 거지 불편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모기향과 벌레퇴치제로 중무장을 해도 다가오는 벌레들이 있었고, 텐트에서 잠자는 것도 생각보다 불편했다.
아니, 같이 자는 멤버의 잠버릇이 안 좋아서 그랬을까?
“난 그래도 역시 집이 좋아….”
그날의 고통이 하나둘 떠올라 재밌었다는 세빈이 말을 가볍게 부정하고는 몸을 축 늘어트렸다.
“우리는 좀, 음. 출연하는 장르가 다양한 것 같아.”
“것도 그렇지. ‘알려지지 못한 이야기’에 출연할 줄은 몰랐으니까.”
가수들은 보통 다양한 축제나 행사에 초대되는 편이고, 소위 행사비가 수입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축제에 사용할만한 곡도 아직 없는 터라 행사 요청도 별로 없었고, 처음부터 너무 몸값을 낮춰가며 행사 도는 건 장기적으로 별로라는 회사 의견이 있었다.
조금 더 잘되고 나서 다녀도 문제없으니까 지금은 욕심내지 말라는 말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조금씩이라도 얼굴을 비출 수 있는 예능을 중점으로 활동했다.
요리, 아이들과 노는 내용, 음악 관련 프로, 자선 패션쇼를 거쳐 이제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니.
“그래도 알못은 사람들이 많이 보잖아.”
“그건 그런데 우리 너무 짠한 이미지 되면 그것도 위험하지 않나….”
“알못은 악마의 편집은 없잖아. 너무 걱정하지 마.”
팀장님이 적극 추천한 만큼 다 생각이 있으셨겠지 싶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앞으로의 활동을 걱정했다.
고소장은 접수되어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가고 있다고 들었다. 게다가 최근 인터뷰의 대부분 내용이 그 고소와 악플에 관련된 것들이라 심란하긴 했다.
가수인데 노래가 아닌 이런 이슈로 관심을 받는 게 다들 말은 안 했지만 걱정인 것 같았다.
“시작한다.”
“우리는 끝에 조금 나오지 않을까?”
“그래도 재밌으니까, 뭐. 겸사겸사지.”
“그래, 겸사겸사 쉰다고 생각하고 보자.”
경환 형이 우리 긴장을 풀어주려고 말한 건 좋았지만, 입가 묻은 양념치킨 소스 덕에 영빈 형과 찬이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러그에 치킨 떨구지 마!”
“나야, 러그야!”
“당연히 러그지.”
“공지환 인성…!”
경환 형의 얼굴에 묻은 소스를 닦아주던 세빈이가 찬이와 내 신경전을 듣더니 결국 한마디 했다.
“진짜 형들 때문에 내가 못 살아….”
우리 막내가 이제는 저런 말까지 하고 가슴이 아팠다.
칠칠치 못한 형들 때문에 세빈이가 고생이 참 많네.
한바탕 소란으로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린 우리는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방송을 시청했다.
앞부분은 악플로 피해를 받았던 사람들의 사건을 정리한 내용이었다. 많은 사람이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때 기억으로 힘들어하고 있었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약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 후 이어진 당시 악플러들의 인터뷰 내용에 보는 내내 속이 답답해져, 어느 순간 우리 모두 치킨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렇게 될 줄 몰랐어요’라니. 저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아요?”
“무책임하고 무지한 말이지. 그냥 남들 하기에 자기도 했다는 게 말이냐.”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악플러들의 인터뷰 뒤로 이어진 MC의 멘트는 우리 마음과 같았다.
- 한때의 실수라고 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어려서 몰랐다고, 그렇게 얘기하는 분들도 있었고요. 하지만 조사 결과, 많은 수의 악플러들이 얼마 후 또 똑같은 행동으로 고소를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제는 몰랐다는 변명보단 진실한 사과와 같은 행위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어? 우리다!”
“아직 시간 많이 남았는데?”
생각보다 우리에게 배정된 시간이 길었던 모양이었다.
가장 최근 사건으로 우리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얘들아, 소리 잠깐 끌까? 눈감을래?”
“괜찮아요. 아까 팀장님한테 들었을 때 각오했어요.”
우리 사건을 소개하면서 악플도 몇 개 노출될 거라고 했다. 방송 심의에 걸리지 않을 만큼 모자이크나 순화 돼서 보이긴 할 테지만 그래도 팀장님은 걱정이라며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야, 손 닦고 잡아.”
“비닐장갑 끼고 먹었어. 괜찮음.”
말로는 괜찮다고 해도 걱정됐는지 찬이가 슬며시 내 티셔츠 자락을 잡았다. 그게 괜히 짠해 보여서 손을 내밀어주자 냉큼 꽉 잡는 게 느껴졌다.
세빈이는 준이 형이랑 영빈 형이 끼고 있었고, 경환 형은 힘찬이에게 기대 있었다.
포잉은 내 무릎 위에 누워서 빤히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모두 서로에게 찰싹 들러붙어 있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