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198)화 (198/456)

198. 네가 남겨둔 말(1)

멤버들이 숙소에서 서로를 다독이는 사이 소현 팀장은 포털에 올라온 기사를 확인하고 있었다.

[신인답지 않은 의연한 대처, 악플러들에게 고하다]

[언래블 ‘인터넷 안봐요’ 악플 같은 거 볼 시간 없다]

[언래블 ‘회사 방침 적극지지’ 악플러 선처 없을 것]

[‘Pluto’ 악플러들 저격 노래, 가만히 있었는데 왜?]

직접 뿌린 기사도 있었지만, 요근래 언래블에 모인 관심 덕에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다양한 기사가 올라왔다.

대부분이 언래블에 호의적이었고, ON 엔터의 행보가 악플러들에게 경종을 울리길 바란다는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자정이 되는 순간, ON 엔터의 공식 홈페이지와 언래블 팬카페에는 고소장 접수가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공지가 등록되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인터넷 사이트의 질의응답 채널마다 고소 관련 문의가 폭발할 게 눈에 뻔히 보였다.

늘 있어 왔던 일이라 새삼스럽진 않았지만, 그렇게 겁나면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ON 엔터는 고소로 유명하다는 걸 모르는 걸까?

소현은 진심으로 궁금했지만, 그들의 심리까지는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이해가 안 되는 것 자체가 정상인이라는 증거일 테니까.

음원 앱을 열어 언래블을 검색해 앨범 후기나 리뷰를 적는 공간을 확인했다.

그동안은 이쪽에도 꽤 많은 악플들이 있어서 해당 사이트로 신고하느라 바빴던 직원들을 떠올리고 웃었다.

처음에는 정말 일적인 마음으로 대하던 직원들과도 이제는 꽤 서로 친근해져 있었다. 언래블이 얼마나 예의 바르고 착한 아이들인지 직접 경험을 통해 알게 된 후 생긴 변화였다.

“꽤 많이 올랐네.”

‘폭풍전야’는 차트아웃 되었지만, ‘Confusion’과 ‘졸업식’의 순위가 많이 올라 있었다. 이 기세가 유지된다면 10위권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졸업식’은 무난한 편이어서인지 차트아웃 없이 계속 순위에 있었지만 ‘Confusion’이 조금 의외였다.

들리는 바로는 언래블 지지 의사를 밝힌 연예인들의 팬덤에서 같이 스트리밍을 돌리고 있다고.

“다음 앨범은 대중성 있는 곡도 넣자고 해야지, 어휴.”

언래블만의 이미지를 구축하느라 컨셉에 맞는 노래로 구성하다 보니 누구나 편하게 들을만한 대중적인 곡은 아닌 것 같았다.

너무 무거운 느낌이랄까.

“팀장님, 퇴근 안 하세요?”

“가야죠. 수고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일찍 퇴근하리라 마음먹었지만, 정신을 차리니 또 자정을 넘겼다.

이러다 과로사로 쓰러지면 정윤 실장이 휴가를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방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궈냈다.

가방을 챙기던 소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가라, 언제 가봤더라, 휴가.

그 악독한 사람이 휴가 같은 걸 줄 리 없지. 휴가라고 줘놓고 내내 전화로 연락 오느니 그냥 출근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 * *

“이게 다 저희한테 온 거라고요?”

“너무 많은데요…?”

오늘 인터뷰의 질의응답 내용을 체크하던 우리에게 우진 형이 목록 하나를 내밀었다.

갑자기 출연을 요청하는 프로그램과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며 싱글벙글한 얼굴이었지만, 정작 우리는 어리둥절했다.

“악플이랑 싸우는 연예인이 우리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너희만 있는 건 아니지만 너희가 유독 짧은 시간 동안 사건 사고가 많았지.”

“아….”

우진 형의 말에 우리는 왠지 숙연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우리 잘못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사건 사고가 빵빵 터진 건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어? 겸이 형 라디오에서도 연락 온 거예요?”

“응. 준이만 나오는 게 아니라 언래블한테 출연 요청 온 거니까.”

“여긴 가고 싶어요.”

“그래, 차근차근 얘기해보고 맘에 드는 걸로 말해줘.”

“네엥….”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은 건지 눈을 꿈뻑거리던 찬이 옆으로 세빈이가 힐끔거리며 슬금슬금 가더니 등에 덥썩 매달렸다.

“업어줘라, 형님아!”

“아, 왜.”

“빨리!”

졸린 찬이는 비교적 고분고분한 편이라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아는 세빈이는 이런 기회에라도 찬이를 괴롭혀보고 싶었나 보다.

오늘 의상은 일상복이었기에 조금 구겨져도 괜찮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세빈이는 기어코 찬이 등에 어부바하더니 신나 하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더니 경환 형이 옆에 와서 슬쩍 물었다.

“너도 업어줘?”

“엥? 아니, 난 별로.”

“괜찮아, 아직 너 정도는 가뿐해.”

등을 내미는 경환 형의 모습에 주춤거리던 나는 결국 형의 등에 업혔다.

괜찮다고 말해도 어차피 안 듣잖아. 그럼 왜 물어본 거야….

카페 2층에서 인터뷰가 진행되는 터라 찬이도 경환 형도 우릴 업고 계단을 올랐고, 영빈 형과 준이 형이 만사 포기한 눈으로 뒤에 서 있었다.

혹시라도 떨어지면 잡아주려는 것 같았는데 애당초 안 업혔으면 괜찮은 거 아니었을까?

‘계약자 놈아, 너 얼굴이 터질 것 같아.’

‘조용해…. 창피해 죽겠으니까.’

2층에 오르자마자 경환 형 등을 두드려 내려달라고 했더니 피식 웃고는 바닥에 내려주었다.

“세빈이 부러워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있으면 그때그때 말해.”

“안 부러워 했거든요!”

아무래도 형들이 오해를 좀 한 것 같았다.

세빈이는 혼자 큰 탓인지 외로움을 많이 타서 나뿐만 아니라 형들한테 잘 치대고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매달리고 깔고 눕는 것도 애정표현이라면 애정표현이니까, 아마.

그런 세빈이가 귀엽기도 하고 다칠까 봐 걱정돼서 쳐다봤더니 그걸 부러워한다고 오해한 모양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 정정해줘야 하는 거지?

어느 순간부터 유난히 형들이 먹을 걸 자꾸 쥐여주려고 해서 갑자기 왜 이러나 했더니, 아마도 가족에 대해 얘기한 후부터인 것 같았다.

개인 연습 시간에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으면 갑자기 자기 먹을 거 사면서 샀다고 과자나 초콜렛 같은 걸 자꾸 작업실에 가져다주었다.

최근에는 바로 앞 편의점 갈 때도 회사 분들이랑 같이 나가야 했기에, 귀찮았던 나는 기쁜 마음에 잘 챙겨놨었다. 가끔 당이 당기는 순간들이 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마치 감방에 사식을 넣어주는 것 같은 분위기라 나 여기 감금당한 거냐고 웃었더니 그때부터 되려 간식 종류가 늘었다.

대신 횟수는 줄고 한 번에 이 사람 저 사람이 챙겨다 주는 양이 늘었다.

티 내지 않는다고, 신경 쓰이게 하지 않겠다고 서로 조심한다고 하는 것 같아서 두려고 했다. 하지만 이대로 두자니 뭔가 오해가 점점 깊어지는 것 같은데 괜찮은 걸까….

고민하는 사이 서포트 팀 누님들이 따라 올라와 우리 모습을 한 번 더 확인했고, 비어있는 테이블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찬이도 정신을 차렸고, 세빈이는 아쉬워했다.

“안녕하세요, 뉴데일리 이진아입니다.”

“안녕하세요, 언래블입니다.”

이윽고 촬영 장비를 짊어진 분들과 머리를 단정히 묶은 깔끔한 인상의 기자님이 환하게 웃으며 우리 앞에 오셨다.

“서울 쇼에서 멋진 모습 잘 봤어요.”

“아, 그 이진아 기자님이세요?”

“네?”

“저희 환이 사진 엄청 멋있게 찍어주셔서… 그 사진 핫했거든요.”

“아, 네. 제가 찍었던 사진이에요. 올해 찍은 사진 중에 제일 마음에 들어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장비들이 세팅되는 동안 가벼운 이야기를 이것저것 나누었다.

“잠시만요, 준비하고 올게요.”

“넵. 다녀오세요~.”

뉴데일리 기자라고 밝힌 기자님은 시종일관 굉장히 부드러운 얼굴로 우리를 친근하게 대해주셔서 괜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여태까지 기자님들이나 인터뷰어분들은 아무래도 우리가 신인이다 보니 무섭기도 했고, 은연중 무시하거나 귀찮아하는 기색이 보였었다.

하지만 이전에 우리 기사도 잘 써주셨던 분인 만큼 우리에게 좋은 인상을 받으셨는지 이진아 기자님은 조금 달랐다.

“기자님이 우리 좋게 봐주셨나 봐. 다행이다, 그치?”

“그러게. 이분은 되게 친절하시네….”

사람들의 감정을 기민하게 눈치채는 편인 찬이랑 세빈이도 긴장이 좀 풀린 건지 얼굴이 밝았다.

“사전에 공유 드린 대로 오늘 인터뷰는 특집 기사로 나갈 거고, 지금 촬영하는 영상도 비하인드 스토리로 저희 채널에 올라갈 거에요.”

“아, 네. 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인터뷰해본 적이 있어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인터뷰 내용은 사전 회사로 전달 드린 질문지 중심으로 진행될 거예요. 진행 중에 돌발 질문이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저희가 대답할 수 있는 선 안에서는 모두 답변 드릴게요.”

준이 형은 이제 제법 익숙한 모습으로 기자님을 대했고, 기자님도 우리를 상대로 예의를 지켜 행동해 주셨다.

시종일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말해주셔서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분위기가 몽글몽글해졌다.

“제가 패션쇼에서 찍은 그 사진 덕분에 오늘 이 인터뷰를 담당할 수 있었는데요, 사실 그날 언래블 팬이 되었어요.”

“아, 정말요? 너무 감사해요!”

“그래서 이번 사태가 벌어졌을 때 저도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악플이라는 게 이제는 거의 포기상태가 되어버렸잖아요.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 이러면서요.”

“아, 저희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 있어요.”

“네, 이런 상황에 대해 언래블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 팬이 되었다는 이진아 기자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지만,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들은 그리 쉽지 않았다.

“누구나 싫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냥 이유 없이 싫을 수도 있고, 굳이 이유를 붙여서 싫어할 수도 있죠. 하지만 타인에게 상처입히는 말을 무분별하게 남기는 건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렇게 사람들이 포기하고 넘어가면 점점 악플의 수위는 올라갈 거고 상처받는 사람들이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ON 엔터가 악플러와의 전쟁을 이어가는 이유일까요?”

어느새 또랑또랑해진 눈으로 기자님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가는 찬이와 경환 형이었다.

우진 형은 직업 특성상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만큼 어떤 질문이라도 우리 개개인이 직접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덕분에 그동안 준이 형이나 내가 주로 답했던 인터뷰를 이번에는 모든 멤버가 대답하게 되엇다.

찬이는 말은 잘하는 편이었지만 간혹 머릿속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튀어나오는 편이라 그 부분에 대한 연습이 필요했다.

영빈 형과 세빈이는 인터뷰라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해서 피하는 편이었고.

경환 형은 그냥 말이 많지 않은 편이었고.

“회사는 저희 의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주세요. 이번 일도 저희가 원치 않으면 진행하지 않겠다고도 하셨고요.”

“사실 저희는 말씀드린 것처럼 인터넷을 사용할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이번 건도 회사 분들이 알려주시기 전까진 잘 몰랐어요.”

“저희가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몇 개만 골라서 보여주셨는데 그날 너무 놀라서 심장이 벌렁거렸어요. 그런데도 이게 순한 맛이라고 하셔서 더 놀랐죠.”

이진아 기자님은 악플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회사와 언래블의 관계는 어떤지 등 꽤 다양한 방면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왔다.

다행히 대부분의 질문이 사전에 답변을 정리했던 내용들이라 인터뷰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었다.

간혹 진지한 얼굴로 우리 이야기를 들으면서 노트북에 무언가를 적기도 했고,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기도 하셔서 멤버들도 편해진 얼굴이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된 걸까, 기자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언래블은 활동 시기에 비해 짧은 시간 만에 다양한 루머들이 만들어졌는데, 오늘은 그중에 몇 가지만 답변해주실 수 있을까요.”

“으아, 저희 말실수하면 팀장님한테 혼나는데!”

“에이, 어차피 다 루머일 테니까 저희 구독자분들도 이 내용을 읽고 오해를 푸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기자님의 한마디에 멤버들은 잠시 느슨해졌던 긴장을 바짝 조인 건지 자세를 한 번 더 바로잡았다.

덩달아 진지한 얼굴을 한 기자님에게서 악의는 없는 것 같았지만,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알수 없다는 걸 이미 충분히 겪은 나는 잠시 갈등했다.

지금 스킬을 쓰는 건 너무 빠른가? 아직 인터뷰가 얼마나 남았지?

기존에 전달받은 인터뷰 질문지와 지금까지 주고 받은 내용을 체크해 본 나는 스킬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설마 가명은 아니겠지?

조심스럽게 스킬을 활성화했더니, 다행히 본명이었는지 익숙한 말풍선이 하나둘 퐁퐁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떡해, 갈 때 사인해달라고 하면 실례일까?]

[악플러 새끼들 다 잡아 족쳐야 하는데, 악플러의 피해사례를 모아서 터트릴까?]

[세빈이 얼굴 조막만 한 것 봐…. 진짜 찹쌀떡 같다….]

[찬이 부끄러워하는 건가? 덩치만 컸지, 진짜 애기다, 어떡해]

…기자님은 우리 팬이 맞는 것 같았다.

떠오르는 문구들이 너무 적나라해서 차마 고개를 들기 힘들 정도였다.

[우리 작은 환이 이렇게 보니까 빌런일 때랑 엄청 다르네. 귀엽다….]

이런 게 수치플이라는 걸까?

스킬이 혹시 잘못된 건가 싶어 눈을 깜박거리다 기자님의 노트북을 구경하던 포잉을 바라봤다.

‘포잉, 그… 혹시 기자님 노트북에 우리 욕 있어?’

‘아니. 이 인간은 너희 팬인 것 같은데? 님 스킬 발동했음?’

‘응. 공유해줘?’

포잉은 내가 보는 것들을 함께 볼 수 있어서 설명하느니 공유해주는 게 빨랐다.

‘…님 표정 관리. 지금 얼굴….’

[우리 환이 표정이 왜 이렇게 안 좋아졌지…. 악플이랑 루머 때문에 힘들었나 보네.]

스킬은 끄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수치사로 죽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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