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188)화 (188/456)

188. 싫다고 말해(1)

한참 분위기가 몰랑해지고 멤버들의 자세도 편해지자 발버둥 치는 세빈이를 끌어안고 장난을 치던 경환 형이 툭 말을 던졌다.

“내 아버지라는 인간은 쓰레기였어.”

“….”

순식간에 굳어버린 분위기에 세빈이까지 꼼지락거림을 멈추고 경환 형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그때, 힘찬이가 말을 더했다.

“내 친부도. 그걸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둘 다 덤덤한 얼굴이었다.

“힘든 얘기면 하지 않아도 돼, 얘들아. 괜찮아.”

“아뇨, 괜찮아요. 어차피 멤버들한테 숨길 생각도 없었어요.”

“맞아, 그냥 딱히 말할 필요가 없으니까 안 한 거지.”

찬이는 평소보다 느린 말투로 툭툭 내뱉듯 말을 이어가며 내 무릎 위에 머리를 얹었다.

묵직한 머리통의 무게에 ‘무겁다’라고 괜히 투덜거리며 찬이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하준 형과 나, 찬이 셋이 걸어서 숙소로 걸어오던 그 날.

하염없이 울면서 중얼거리던 찬이 이야기에는 단편적이지만 찬이의 어린 시절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내 친부는 툭하면 어린 날 앉혀놓고 머리를 때렸어. 내가 생겨서 자기 인생을 망쳤다고. 내가 머리가 나쁜 건 그때 머리를 맞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누구도 웃을 수 없었다.

“엄마가 그랬어. 어느 날부터 내가 자꾸 경기를 일으키고 헛걸 보더라고. 자꾸 열이 나고 그래서 너무 이상해서 나한테 캐물어서 알게 됐다고.”

아, 정말 쓰레기도 이런 쓰레기가 없었다.

찬이 어머니가 없는 시간에만 집요하게 어린 찬이에게 폭력과 폭언을 퍼부었다.

그길로 당장 찬이 어머니는 그 남자와 이혼하고 홀로 찬이를 키우다 지금의 양부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너무 어릴 때 새겨진 상처는 찬이에게 깊게 남아서 양극성 장애와 성인 남자에 대한 공포를 선사했다고 했다.

꽤 긴 시간 약물치료와 상담을 받았고, 약을 먹은 덕분에 지금은 정말 많이 나아졌지만, 상담은 싫다고.

“지금 아버지는 좋은 분이야. 누나들도 좀 극성맞긴 한데 나쁜 사람들은 아니고. 내가 사고 친 것도 누나들이 많이 숨겨주고 그랬어.”

평소처럼 씩 웃던 찬이는 처음 춤에 재능이 있다고 말해준 것도 누나들이라고 말하다 돌연 인상을 찌푸리며, 그래도 너무 말이 많다고 했다.

조용히 힘찬이가 하는 말에 집중하고 있던 멤버들은 다음에 누님들을 뵈면 감사하다고 해야겠다고 웃었다.

“우리 누나들은 왜?”

“누님들이 네가 춤에 재능있는 걸 알아차린 덕분에 우리랑 만난 거 아냐.”

“내가 잘해서 그런 거거든?”

부끄러운지 토마토보다 붉게 물든 찬이가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나는 능숙하게 그런 찬이 머리를 눌러 못 일어나게 막았다.

“어휴, 이런 동생 돌보느라 누님들이 고생이 많으셨겠네.”

“야!”

“네네, 다음 삐약이.”

우리가 너무 무겁게 굴면 말한 찬이도, 우리도 어색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가볍게 아무렇지 않게 굴었고, 찬이는 눈이 조금 붉어졌지만, 다행히 후련한 얼굴을 했다.

“내 아버지도 찬이 친부랑 비슷해. 뭐, 나뿐만 아니라 어머니한테도 폭력을 휘두른 게 다르긴 한데.”

세빈이 머리칼을 가지고 장난치던 경환 형이 입을 열었다.

평온한 어조와 무덤덤한 얼굴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닐 텐데.

나는 멤버들의 이런 모습이 더 가슴 아팠다.

“우리 어머니는 마음이 여린 분이라 혹시라도 이혼하면 나중에 나한테 문제가 될까 봐 참으셨어. 아무래도 편모가정이라고 하면 탐탁지 않게 보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우리가 집중하는 기색을 보이자 조금 어색한 얼굴을 하던 경환 형은 우리 얼굴을 하나씩 천천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러다 나한테까지 손을 댄다는 걸 아시고는 마음을 굳게 먹으셨어. 자기만 참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 주제에 바람까지 피운 모양이더라고. 덕분에 어머니가 이혼하는 게 그렇게 힘들진 않았지만.”

세상은 늘 우리 생각보다 더 잔인했고, 불행이 지나치게 흔했다.

그리고 경환 형은 느릿하게 덧붙였다.

분노를 풀어낼 길이 없었는데 그때 힙합을 알게 됐다고.

그렇게 곡을 쓰고 랩을 하면서 자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 데뷔 직전에 내 생일날 기억나?”

“당연하지. 우리 그날 먹은 메뉴도 다 말할 수 있어.”

씩씩하게 답하는 찬이 모습에 영빈 형이 웃었다.

찬이 기억력의 8할은 먹을 것에 소비하고 있는 것 같다며 요새 살이 빠져서 만지는 맛이 떨어진 찬이 볼을 잡아당겼다.

“하준 형한테 나 미역국 싫어한다고 했었는데, 예전에 그 인간이 나한테 미역국 냄비 던져서 그때부터 싫었거든. 근데 이제 괜찮아졌어. 우리 환이가 미역국을 정말 잘 끓이더라고.”

그런 사정이 있는 줄도 모르고 미역국을 끓였던 내 손을 원망하던 그때, 경환 형이 똑바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역국 정말 맛있었다고. 그래서 이제는 좋아질 것 같다고.

“다음에는 한우 국거리 사다가 끓여줄게요.”

“와, 내 생일에는?”

“넌 그냥 미역만 볶아서 해줄 거다.”

“넌 나를 너무 차별해!”

무릎 위에서 버둥거리는 찬이를 다시 제압한 나는 몇 번의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그동안 멤버들에게 가족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내 가족사가 아닌 이야기를 내 마음대로 하기 미안해서였다.

어린 시절 고통받았던 것도 이전의 지환이였고.

하지만 지금 누나를 내 누나로 살기로 한 만큼, 다른 멤버들이 자기 상처를 내보여준 만큼 나도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들 알다시피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누나가 날 키웠어요. 그때… 그냥 여러 가지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의지할 사람은 누나밖에 없는데 누나는 날 지키려고 바빴고.”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입을 떼자 생각보다 말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좀 삐뚤어졌던 것 같아요. 잘은 기억 안 나는데 상담도 받고 약도 먹고 했었어요. 별로 효과가 좋았던 것 같지는 않지만.”

효과가 있었으면 내 성격이 조금 더 좋지 않았겠냐고 웃으면서 말했지만, 멤버들은 눈 깜박이는 것조차 멈추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나가 20살 때니까… 제가 8살 때일 거예요. 누나랑 띠동갑이거든요. 너무 어렸고,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나요. 그래서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고.”

“누님 엄청 동안이신 거였네….”

“그러니까. 누님이 미인이신 걸 봐서 어머님, 아버님도 엄청 예쁘고 잘생기셨을 것 같아.”

“아니, 이봐요. 님들, 나는? 우리 누나만 미인이야?”

다행히 멤버들은 평소랑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장난을 걸고, 서로를 툭툭 건드렸다.

하나같이 눈에 힘을 주고 있어서 표정이 어색했고, 눈이 실핏줄이 가득해 붉어 보였지만 눈물을 보이진 않았다.

울음을 참느라 얼굴이 시뻘게진 영빈 형의 얼굴이 제일 눈에 띄었지만, 평소라면 제일 먼저 놀렸을 찬이도 모른 척해주었다.

“나는… 그냥 가족이랑 썩 사이가 좋지 않아요.”

그런 우리 사이로 가녀린 세빈이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원래 아빠는 제가 현대 무용을 전공하고 그쪽으로 가길 원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아이돌이 되겠다고 했을 때 엄청 반대하셨거든요.”

“우리 애가 이렇게 잘하고 있는데, 아버님이 너무하셨네.”

내가 세빈이 발바닥을 간질이며 말을 건네자 간지럽다고 하지 말라고 버둥거리던 세빈이가 기어코 자기를 붙들고 있던 경환 형을 차버렸다.

우리 막둥이 이제 다 컸네, 형아들 걷어찰 줄도 알고.

“그래도 엄마는 제 꿈을 지지해 주셔서 가끔 아빠 몰래 용돈도 주면서 응원해 주셨어요. 사실 저번에 아빠가 용돈 주셨다는 것도 엄마가 준 거예요.”

형들한테 거짓말을 했다는 게 미안했던 건지 우리 눈치를 보면서 말하던 세빈이는 조금 우물쭈물했다.

“그래도 처음처럼 막 뭐라고 하진 않으세요. 그냥 제가 아빠가 불편해서 집에 가기 싫은 거지…. 더 성공하면 그때는 절 인정해주시지 않을까 해요.”

처음에는 연예인은 아무나 하냐며 엄청 싸웠다고, 세빈이한테는 재능이 없다고 했다며 억울한 눈을 하고 말했다.

우리 애가 재능이 없으면, 세상에 재능 있는 사람이 어딨어?

그런 막내를 경환 형과 준이 형이 양쪽에서 넌 정말 잘하고 있고 멋지다고 우쭈쭈해줬더니 금세 또 웃었다.

“그래. 말해줘서 고마워, 내 동생들. 진짜 너무 고맙다.”

“또또 저렇게 웃는다.”

“오늘은 좀 조용히 해봐!”

길었던 이야기가 흘러간 후 전보다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더 크게 우리 가슴 속에 싹텄지만, 이전과 다를 건 없었다.

언제나처럼 우리는 한 팀이었고, 거실의 러그는 푹신했으며, 동생들의 뺨은 찹쌀떡처럼 말랑거렸다.

그래서 서로의 불행이 앞으로는 서로를 좀먹지 않도록 지켜주겠다는 다짐을 하며 다 같이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

늘 우리가 잠버릇이 고약해서 함께 하기 싫다고 몸을 내뺐던 포잉도 오늘만큼은 함께 자겠다고 러그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대화가 오가는 내내 반질반질한 유리구슬같이 예쁜 그 눈동자는 한 번도 멤버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 * *

정윤 실장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보고받은 내용을 다시 한번 살피고 있었다.

악플 관련 일을 처리할 때마다 느끼는 것들이지만, 타인을 이토록 증오하는 게 정말 심심해서, 그냥이라는 이유로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정말 정상인이라고 할 수 있는 지도.

장작을 지핀 건 이름만 알던 배우였지만, 그 후 퍼지는 속도는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었다.

애당초 언래블은 대중적이라고 보기 힘든, 이제 인지도를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는 그룹이었다.

팬덤의 수가 상당히 증가했고, 짧지만 예능에 여러 번 얼굴을 비추면서 얼굴을 알린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 주 힐링캠프가 방송되는 것과 함께 추가 광고 분량이 풀렸을 때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악재가 터진 것.

악의를 품은 누군가가 조직적으로 루머를 퍼트리고 있다는 게 보고서의 내용이었고 그 배후로 지금은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는 데미갓의 일부 팬이 지목됐다.

제논 엔터는 대표 이사의 공금 횡령으로 이사들 간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회사가 거의 주저앉았다.

제법 이름이 알려진 연예인들은 이 기회에 상당수가 새로운 둥지를 찾아갔고, 덕분에 한동안 인력 시장이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돼가고 있다지만 가장 크게 연루된 데미갓은 해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시장의 전망이었다.

정윤도 다른 멤버들이 불쌍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남의 새끼 불쌍하다고 내 새끼를 다치게 하는 부모는 없으니까.

원래도 데미갓의 팬덤은 조금 과격한 경향이 있었다.

극단적인 경우들이 많아 종종 기사로 나올 정도였으니까.

“후….”

그에 비하면 언래블의 팬덤은 아이들을 닮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보고서를 넘겼다.

반복적으로 도는 소문은 이런 것들이었다.

언래블 멤버들이 몇 지인들을 배경으로 오만하고 싸가지없이 군다는 것과 지환의 과거사에 기반한 정신이상 설, 그리고 경환이와 찬이가 폭력적이라는 설.

그 근거로 도는 몇 가지 사진을 확인한 결과 모두 원본 사진에서 잘라낸 일부 장면으로 확인되었다.

거기에 더해 도대체 어디서 캐낸 건지, 회사에서도 몰랐던 과거 지환의 정신과 치료에 관해 구체적인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조실부모한 8살 아이가 현실을 받아들이기 얼마나 힘들었을지 정윤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런 과거를 조작하고 악의 가득한 말을 내뱉는 그들의 조직적이고 집요한 모습에 다시 한번 질릴 지경이었다.

한편, 경환이나 힘찬이는 실제로 중학교 시절 폭력 사건에 휘말린 전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 싸움 자체가 상대방이 둘의 가정사를 들먹이며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라는 걸 당시 담임 선생님을 찾아 확인을 마친 뒤였다.

다행히 두 담임 선생님 모두 학생을 아끼는 좋은 선생님들이어서 언제든지 증인이 되어줄 수 있다고 기꺼이 영상을 남겨주셨다.

그걸로 모자란다고 느꼈던 건지 회사로 자필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SNS에 아이들에 대해 직접 떠드는 사람들을 상대로 이미 고소장을 준비해 두었다.

회사는 이미 여러 차례 진행해본 적 있는 악플러와의 전쟁이라 어렵지 않았다.

다만 멤버들의 의견을 모으고 가족들의 의견을 들어야 했기에 바로 고소장을 제출하지 않았을 뿐.

회사가 아이들의 대리인으로 고소 위임장을 받기만 하면 바로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반성하는 기색을 보이면 동정하고 선처하는 경우가 많았다.

ON 엔터도 처음 악플러들을 고소했을 때는 피해자인 소속 연예인의 의사를 중요하게 여겨 고소를 취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라도 되는지 하나같이 다시 잡아들이면 그 사람이 그때 그 새끼였다.

정윤은 소현과 함께 멤버들을 따로 불러 이 부분에 대해 분명히 이야기하고 위임장을 받을 생각이었다.

멤버들이 동의할 경우 가족들에게도 해당 사실을 전하고 진행 상황을 공유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환의 경우가 걸렸다.

다른 멤버들도 그렇지만 최태성의 무단침입 시도 때, 직접 그와 마주친 건 지환이었다.

회사 차원에서 상담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게 멤버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당장 준비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두었으니 멤버들의 마음을 한 번 더 듣는 게 남았다.

이 일이 잘 마무리되면 되레 멤버들에게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을 터.

정윤은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굳게 다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멤버들을 만나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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