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Odd Sense(4)
“매니저 형이 저희 고생했다고, 축하한다고 치킨을 시켜 주셨어요!”
“저희 다이어트한다고 그동안 열심히 풀만 먹었거든요.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급히 내가 수습에 나섰고, 준이 형이 거들기 시작했다.
화면에 잡히지 않는 곳에서는 세빈이가 찬이 허벅지를 찰싹찰싹 내리치고 있었고, 정신을 차린 우진 형이 일단 치킨을 받아왔다.
치킨 냄새에 홀린 듯이 눈이 그쪽으로만 가는 경환 형과 찬이를 보며 솜뭉치들이 죽는다고 웃고 있었다.
“네? 솜뭉치들보다 치킨이 좋다뇨, 아닙니다. 오해예요.”
“아니, 인간적으로 치킨은 우리 이해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 찬이는 빼고 우리끼리 촬영할까요?”
“저는 솜뭉치들이 더 좋아요!”
“아니, 솜뭉치들이 오해하잖아! 하지 말라고!”
못 믿겠다는 메시지와 수많은 웃음이 채팅창에 올라왔고, 그동안 우진 형은 계속 오는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찬이는 채팅창을 가득 채우는 솜뭉치들의 눈물 아이콘에 당황한 듯 버벅거리며 절대 아니라고 열심히 해명을 하느라 얼굴이 빨개졌다.
애가 이러니까 다들 놀리느라 바쁘지.
“매니저 형이 축하할 때는 치킨이라면서 여러분이랑 기쁜 소식 나누고 치킨도 먹고 하라고 했거든요. 대표님이나 팀장님한테 혼나면 안 되니까 여러분, 우리끼리 비밀이에요!”
나도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지르기 시작했다.
반응이 좋아야 팀장님한테 우진 형이 덜 혼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담긴 멘트이기도 했다.
팀장님, 부디…!
두 눈이 갈 곳 없이 떨리는 세빈이 시선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기는 것 같았지만, 별수 없었다.
내 입에서 나오는 게 말인지 뭔지, 이제 나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솜뭉치들은 이런 난장판 같은 모습을 재밌어한다는 것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치킨 먹방 할까요? 솜뭉치들도 먹을 거 챙겨와요. 우리 신나게 놀아요!”
결국 내 말을 끝으로 우리 애들은 모두 포기한 듯 상을 펴고 착착 평소에 밥 먹던 것처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원래 숙소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저희 씻고 잘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좋은 소식이 있다고 알려주셔서 다 같이 기쁨을 나누고 싶었어요.”
“실검 올려줘서 고마워요! 우리 솜뭉치들이 최고야!”
“폭풍전야 순위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저희가 워낙 쫄보라 순위 못 보고 있거든요.”
촬영용 핸드폰을 고정해둔 멤버들이 잠옷을 휘날리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채팅창에는 평소에 이렇게 입고 자냐는 질문이 올라왔다.
“아뇨, 음. 사실 더 편한 옷이 있는데 차마 그 꼴로 솜뭉치들을 만나긴 조금 그래서요.”
“잠옷이 궁금하다고요? 왜지?”
영빈 형이 조심스럽게 대답을 했지만, 찬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채팅창을 바라봤다.
그러자 솜뭉치들이 더 당황한 것처럼 아무것도 아니라고, 뭘 입어도 이쁘다는 둥, 빠른 속도로 채팅을 올리기 시작했다.
“형들이 옷을 잘 챙겨 입고 자진 않아요. 방이 더울 때도 있고 그래서….”
찬이 옆에서 채팅창을 구경하던 세빈이 대답에 영빈 형과 준이 형의 몸이 굳었다.
우리가 맨날 벗고 다니는 줄 알면 어쩌려고 저런 말을!
남자들만 있다 보니 씻고 나서 그냥 돌아다니는 경우도 있었지만, 현재 숙소로 이사 온 이후부터는 다들 잘 챙겨 입고 다니는 편이었다.
전 숙소는 욕실도 하나인 데다 워낙 덥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찬이나 경환 형이 팬츠만 입고 자고 어슬렁거리긴 했지만, 그 정도야 뭐.
“에어컨을 선물해 주신다고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방문 열고 자거나 거실에서 자면 돼요.”
“세빈아, 그렇게 말하면 솜뭉치들이 오해해….”
“우린 괜찮으니까 솜뭉치들은 시원하고 따뜻하게 보내요!”
경환 형이 애써 수습해보려 했지만 찬이와 세빈이가 오늘따라 툭툭 던지는 말들이 참 수습하기 힘들었다.
그래, 애기들은 때 묻지 말고 그렇게 순수하게 자라라….
회사에서 우리를 잘 챙겨주고 있다는 걸 어떻게 어필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일단은 우진 형을 살려주는 게 먼저일 것 같았다.
잠깐 카메라 너머로 몸을 뺀 나는 우진 형을 방으로 데리고 갔다.
밖에는 준이 형이랑 영빈 형이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았다.
“형, 괜찮아요?”
“응…. 그냥 치킨은 대충 넘어갔다. 팀장님이 너희 먹는 거 가지고 뭐라 하진 않으실 거야.”
원래 짧게 축하 영상을 남기려던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축하 파티가 되어버렸지만, 이것도 나쁘지는 않다며 웃었다.
아까는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그런 거라며 다시 나가보라고 나를 등 떠밀었다.
준이 형 혼자서는 세빈이랑 찬이 둘다 커버하기 힘들다면서.
반박할 수 없어 조금 슬펐지만, 방문을 나서자마자 브랜드를 가리지도 않고 치킨 봉투를 집는 찬이 모습에 기겁하고 뺏었다.
들고나온 매직으로 대충이나마 상호를 마구 칠해 가리며 찬이를 제지했다.
“왜?”
“기다려!”
“응.”
기다리라는 말에 또 얌전히 기다리는 찬이 모습에 채팅창에서 뭐라고 했는지 준이 형이 앞접시를 멤버들에게 나눠주다 웃기 시작했다.
화면 밖에서 치킨 박스를 열어 브랜드명이 보이지 않도록 챙기던 나와 영빈 형이 시선을 보내자, 멤버들이 얼른 오라고 손짓을 했다.
다른 접시에 우진 형 몫을 덜어준 나는 조심스럽게 상 위에 박스를 올려놨다.
“솜뭉치들이 너하고 찬이 보고 조련사랑 멍뭉이 같대.”
“별로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형이 거기서 수긍하면 어떡해요!”
내가 옆에 오자마자 냉큼 말하는 경환 형 모습에 영빈 형도 말을 보태자 찬이가 젓가락으로 영빈 형을 가리키며 씩씩거렸다.
“밥상 앞에서 뭐 하는 짓이야. 젓가락 안 내려?”
“씨이…. 나한테만 뭐라 해. 솜뭉치들 봤어요? 쟤가 맨날 나한테만 뭐라 한다니까요?”
젓가락을 순순히 내리면서도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불퉁한 얼굴이 된 찬이 앞으로 닭 다리를 밀어주었다.
“나는?”
“나도.”
“아니, 왜 다들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해요? 솜뭉치들 앞이라고 지금 이러는 거예요?”
찬이 달랜다고 닭 다리를 쥐여줬더니 멤버들이 전부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왜들 이러는데….
한숨을 푹 내쉬며 준이 형부터 영빈 형, 경환 형 앞접시에 다리를 하나씩 내려놔 주었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내 앞으로 접시를 내미는 세빈이에게는 내 몫까지 닭 다리 두 개를 올려주었다.
“너도 먹어.”
내 접시에 치킨을 옮겨주는 유일한 사람은 준이 형이었다.
역시 내 최애가 최고였다.
가끔씩 이렇게 자기를 챙기라고 티 내는 멤버들을 보고 있자면, 애정 결핍인가 싶다가도 다들 어린 나이부터 연습생 생활을 해서 애정이 고픈가 하는 생각이 들어 짠했다.
물론 대부분이 장난이겠지만 그 모습에 또 약해져 하나씩 챙기고 있으니 나도 참 물렀다.
준이 형이 세빈이를 챙기면 찬이가 툴툴대고, 내가 준이 형을 챙기면 영빈 형과 경환 형은 괜히 나를 툭툭 건드렸다.
“요새 환이가 찬이랑 세빈이만 챙겨서 이 형은 조금 서운하다.”
“서운하긴 개뿔.”
“진짠데. 솜뭉치, 요새 환이가 막내들만 예뻐하는 거 있죠. 제가 뭐 하냐고 물어보면 작업한다고 답도 안 하면서.”
오늘 몰아가는 대상을 나로 하자고 자기들끼리 말이라도 맞춘 건지 닭 다리를 들고 서운하다느니 어쨌다느니 투덜대길래 무시하기로 했다.
세빈이 손에 비닐장갑을 끼워주고 젓가락을 들며 말을 이었다.
“우리 솜뭉치들은 이런 음해와 날조에 속지 않을 거죠? 다들 먹을 건 챙겨왔어요?”
“와, 이렇게 맨날 나만 나쁜 놈이야….”
“그러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요?”
다행히 그 뒤로 형들은 헛소리를 그만두고 카메라 렌즈를 향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치킨을 조금씩 뜯었다.
“오늘 감사하게도 아이콘택트 덕분에 커버 영상을 많은 분들이 봐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덕분에 실검에도 올랐다고. 고마워요, 솜뭉치.”
“늘 환이가 자기 실력보다 더 많이 사랑받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는데 정말 기뻐요.”
“어휴, 저는 영빈 형 따라가려면 멀었죠. 아직 많이 연습해야 해요.”
그 뒤로는 다행히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방송을 이어갔다.
커버 곡을 선정할 때의 이야기, 아이콘택트 방송 때 함께 출연한 친구들에 대한 칭찬, 은근슬쩍 이후 나올 프로그램들에 대한 홍보. 패션쇼에 대한 칭찬들.
그러다 첫사랑이 있냐는 질문과 함께 이별을 부를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묻는 질문이 눈에 들어왔다.
“첫사랑이요? 없어요. 그냥 늘 매사에 좀 무덤덤했던 것 같아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열정적으로 시도한 게 연습생이 된 거였어요. ”
“지환이는 왠지 태어날 때부터 저렇게 생겼을 거 같아요.”
“그거 무슨 의미야?”
“아냐, 아무것도.”
평소였으면 치킨 무라도 집어던질 텐데 카메라가 돌고 있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방송 끝나고 보자.
“아, 우리 막 다 묻히고 먹었네. 못생겨 보여서 안 되는데….”
“아냐, 세빈아. 너 귀엽대.”
도대체 치킨을 어디로 먹은 건지 여기저기 양념을 묻힌 찬이 모습에 영빈 형이 한숨을 내쉬며 휴지를 내밀었다.
하지만, 평소에도 칠칠치 못한 놈이 제대로 할 리 없었고, 결국 경환 형이 내가 내민 물티슈를 받아 찬이 얼굴을 박박 문질러 닦았다.
그 모습을 본 세빈이가 근심 걱정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리길래 채팅창을 가리키며 달랬다.
채팅창에는 세빈이를 칭찬하는 메시지가 주르륵 올라왔다.
볼이 발그레해진 세빈이는 우리 솜뭉치들은 너무 착해서 그런 거라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치킨을 냠하고 야무지게 뜯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솜뭉치들이랑 다 같이 모여서 맛있는 거 먹고 싶어요. 치킨이든 피자든 뭐든.”
“그럼 진짜 좋겠다.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 나누면 진짜 재밌을 것 같아요.”
“콘서트요? 저희도 빨리 커서 여러분들이랑 콘서트 했으면 좋겠어요.”
평소처럼 전투적인 식사는 아니었다.
차마 방송하면서 그런 모습을 보이기는 부끄러웠던 탓이었다.
그나마 평소 텐션대로 먹은 사람이라면 찬이와 경환 형 정도?
놀랍게도 경환 형은 깔끔하고 빠르게 치킨을 조지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먹다 흘리던 형이 무슨 일인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역대급으로 엉망진창 시작했던 방송은 마치 친구들과 대화를 하듯 편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수많은 메시지를 틈틈이 확인하면서 질문과 답을 주고받고, 우리 몰골이 이상해지면 같이 웃고 즐기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여러분, 너무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환이 이별 한 소절만 듣고 다시 또 봐요.”
“응? 나요?”
워낙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 터라 커버곡에 대해 잠시 잊고 있었던 나는 멤버들의 등쌀에 뺨을 긁적였다.
“지금 이 꼴로 불렀다가 영상 보고 좋다고 했던 분들이 다 도망가면 어떡해요.”
그때와 같은 분위기를 잡자니 방송 끝난 후 멤버들이 무슨 추궁을 할지 너무 뻔해서 곤란한 얼굴을 했지만, 세빈이가 비닐장갑을 벗더니 내 손을 꼭 쥐었다.
“우리 솜뭉치들은 그런 사람들 아니에요. 우리가 솔직한 모습을 보여도 좋아해 줄 착한 사람들인걸요.”
가끔은 우리 막내가 무언가 알고 이러는 걸까 싶기도 했다.
이게 바로 천연의 무서움인가?
이별을 아쉬워하던 마음 반, 노래에 대한 기대 반이었던 솜뭉치들은 여러 메시지를 통해 자신들은 어떤 모습이든 언래블이 좋다는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여러분, 그렇다고 상대방 믿는다고 보증서고 그러면 안 됩니다. 그건 언래블 멤버들이 해달라고 해도 해주면 안 돼요.”
“이 감동적인 시점에 꼭 그렇게 현실을 뿌려야겠어?”
그새를 못 참고 찬이와 경환 형이 투닥거리기 시작하자 푸근하게 웃던 준이 형이 둘을 강제로 찢어놨다.
나는… 그냥 해탈하는 기분으로 포기했다.
이 정도면 우리 애들은 착하지, 그래. 그럼.
“그럼 짧게 한 소절만 하고 오늘은 이만 안녕하기로 해요.”
“와아!”
멤버들과 우진 형까지 박수를 짝짝짝 하고 치자 부끄러움이 몰려와 괜히 목을 만지작거리다 얌전히 손을 내렸다.
“나의 가장 화려한 시절을 함께한 그대가
가장 꿈같은 날에 내 곁을 떠나가네요.”
목을 가다듬고 시작한 노래 한 소절에 누구는 눈을 감고, 누구는 진지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멤버들 모두가 내 소리에 집중하니 기분이 꽤 이상해졌다.
“그대가 있어 가장 화려했던 시절이었다는 걸
이렇게 지난 후에야 깨달아요.”
세빈이가 멜로디를 함께 흥얼거렸고, 영빈 형과 준이 형이 화음을 넣었다.
방송 중이라는 것도 잊을 정도로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그래서 약간 기분을 내기로 했다.
“나를 가장 귀하게 바라보던 솜뭉치 눈빛이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게 내 삶을 차지했어요.
내 님이 있어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다는걸,
이렇게 함께한 후에야 알게 되었어요.”
기존의 가사를 즉흥적으로 개사해 부르며 준이 형을 바라보았다.
이제 마무리 멘트를 해달라는 내 간절한 눈빛에 준이 형이 피식 웃으며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함께 풀어나갈 미래, 언래블이었습니다. 우리 또 봐요.”
“잘 자요, 솜뭉치들!”
“좋은 밤~!”
모두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것을 끝으로 그렇게 방송은 끝났다.
정말로 방송이 종료되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 우진 형은 웃으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팀장님이 전화하라고 하시더라.”
허공에서 멤버들과 내 시선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