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Odd Sense(3)
아이 콘택트는 꾸준히 시청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힐링 프로그램이었다.
다양한 출연자들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친구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이 가진 지식을 나눠주고 다독여주는 플롯으로 흘러갔다.
가장 인기 있었던 내용은 배우의 꿈을 키우고 있는 아이들과 여러 배우들이 함께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화였다.
당시에 흥행몰이를 하고 있었던 드라마 ‘화원의 꽃’의 주연 배우들이 출연했었고, 아역 배우들까지 출연해 굉장히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였었다.
다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촬영이다 보니 돌발 상황도 많이 발생했다.
어린 친구들은 성인의 시선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서 무서워하고 울기도 했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출연자들이 그런 아이들을 달래면서 우왕좌왕하는 것도 하나의 큰 재미였다.
그래서인지 특히나 여성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태까지 아이돌이 나온 적이 없었기에, 처음 예고 영상에 다음 초대 게스트의 정체가 공개됐을 때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조금 부정적이었다.
애가 애를 돌보는 게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고, 아이돌 하는 친구들이 무얼 알겠냐는 시선도 있었다.
반면 한 번도 나온 적 없었던 아이돌이 나온다는 말에 기대하는 시청자들도 있었다.
어떤 그림일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아서 기대감이 든다는 말도 있었고.
그리고 방송이 공개된 그 날, 많은 시청자들은 자신이 너무 편파적인 생각을 했다고 후회했다.
첫 대면에서 서먹하게 인사하고 경계하던 아이들이었으나, 아이돌 그룹의 리더라는 사람이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몸을 낮추고 조곤조곤 인사를 나누자 경계가 많이 흐려졌다.
화면에 잡힌 민하준이라는 멤버는 온화하고 다정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는데, 아이들에게 말을 거는 모습이 굉장히 익숙하고 부드러웠다.
흔히 말하는 교회 오빠가 저런 모습일까?
아니면 옆집 명문대생 오빠?
현실에 없는 그런 풍경이 화면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멤버들도 바짝 긴장했던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웃는 게 무척이나 순해 보였다.
아이들이 놀라지 않도록 뒤에서 지켜보던 멤버들도 세트장 바닥이 더러울 텐데 아무런 주저 없이 털썩 주저앉아 아이들을 올려다보았다.
긴장한 얼굴이 날카로웠던 두 명의 멤버들도 아이들 앞에서는 무장해제 된 건지 사르륵 녹아들 것 같은 눈웃음을 지으며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랬어요? 잘했네.”
“그래서 엄마랑….”
“응, 엄마랑 어떻게 했어요?”
한편 멤버들이 나온다는 말에 본방 사수를 위해 TV 앞에 앉아있던 솜뭉치들은 다른 의미로 심장이 아팠다.
- 우리 애들이 이렇게 무해해…. 어떡해, 아가들이랑 같이 지켜줘야 할 것 같아….
- 울 애들 엄청 요망한 거 아니냐?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반존대를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데ㅠㅠㅠㅠㅠㅠㅠ
- 누, 누나도 애기할 수 있어, 경환아!!
ㄴ경찰입니다. 신고받고 왔습니다. (철컹철컹)(잡았다 요놈 짤)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밐ㅋ쳣냐고! 뷰어야! 정신 차려!
ㄴ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정색한 작은 환 짤)
- 찬이봐ㅠㅠㅠㅠ울 멍뭉이ㅠㅠㅠㅠㅠㅠ 애기들한테 형이라고 하는데 위화감1도 없다
ㄴ찬이 정신 연령 생각하면 큰 위화감 없다..납득 가능해 ㅋㅋㅋㅋ
ㄴ얔ㅋㅋㅋ너 너무해.. 울 찬이한테 왜 그르냐ㅋㅋㅋㅋㅋ
워낙 언래블 멤버들이 평소에도 순하고 착해서, 솜뭉치들은 그들이 예능에 나오거나 하는 경우에는 바짝 긴장한 상태로 대기하곤 했다.
무대에서는 다 때려 부술 것처럼 노래하고 춤을 췄지만, 무대만 내려오면 시골 똥개도 이보다 사나울 거라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화면에선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조금 큰 아이들의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자신들의 연습생 기간이 생각났는지, 멤버들은 다들 조금 아련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고는 진지한 얼굴로 차분하게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는 지환의 모습이 잡혔다.
단어 하나하나를 고심해서 최대한 현실에 입각한 설명을 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혜야, 저기 쟤는 누구냐, 가수야?”
“나도 잘 모르는데 언래블이라고 올해 데뷔한 신인이래. 저기 애기 안아 들고 있는 애가 하준이라고 리더일 거야.”
“애가 참 참하고 순하게 생겼네. 어쩜 저렇게 말을 예쁘게 하니.”
“그러게. 랩하는 애라고 했는데 엄청 착하게 생겼다. 그치?”
“저저, 쟤는 누구라고?”
“머리 회색인 애 말하는 거면 쟤는 지환이라고 하는데….”
부모님과 동석한 자리에서 아이콘택트를 시청하던 솜뭉치는 엄마의 질문에 최대한 티 내지 않고 성심성의껏 설명해 주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달랬다.
여태까지 부모님은 회사에 다니는 지혜가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못마땅해했었다.
차라리 나가서 친구를 만나고 남자친구를 만들라는 이야기를 종종 할 정도였다.
그래서 언래블을 덕질하는 건 집에서 철저히 감추고 있었는데, 오늘 방송으로 꽤 호감 어린 눈으로 보고 계셔서 기쁨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 모습은 꽤 많은 솜뭉치들의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어머, 저 노래가 나오네.”
“lulu가 부른 거였지? 오랜만이다. 저 노래 엄청 좋아했는데.”
친구와 가볍게 치맥이나 하려고 밖에 나왔던 은혜는 가게에서 틀어놓은 프로그램을 힐끔힐끔 보다 지금은 아예 친구랑 맥주잔을 내려놓고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는 게 팍팍할수록 머리 아픈 것보다는 이렇게 평온한 프로그램이 더 당겼다.
점점 가학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는 예능이 많아 한동안 예능에 손을 떼기도 했었다.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조금 더 자유롭던 시절 즐겨 듣고 부르던 노래를 언래블이라는 아이돌 멤버들과 아가들이 함께 연주하고 부르고 있었다. 은혜는 조용히 그 시절을 떠올렸다.
“아, 쟤네 목소리 좋다. 좋아하는 노래라 그런가?”
“어? 지금 실검에 떴다.”
“진짜?”
“쟤가 커버한 게 있대. 그래서 저 곡으로 준비한 거 아냐?”
친구의 말에 약간 마음이 식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들어보자.”
이어폰을 사이좋게 나눠 낀 은혜는 검색 사이트에 뜬 실시간 검색어를 눌렀다가 주르륵 따라 나온 SNS 링크를 발견했다.
어두운 무대에 홀로 앉아 조용히 웃던 지환의 옅은 분홍색 입술이 열리고, 아직 미성숙한 듯한 목소리가 기교 부리지 않는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가 끝난 후, 둘 모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생각에 빠졌다.
분명 절절한 아픔을 애틋한 가사로 노래하던, 자신이 좋아하던 lulu의 ‘이별’이 맞는데, 어린 친구가 부르는 ‘이별’은 또 달랐다.
“야, 왜 울어….”
은혜 맞은편에 앉아있던 친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륵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당황해서 이어폰을 빼고 허둥지둥 휴지를 뽑아 눈가를 꾹꾹 누르던 친구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서.”
“아… 야, 마셔. 사장님! 여기 500 두잔 더 주세요!”
은혜는 친구의 어머님이 몇 년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난 사실을 떠올리고 일부러 목소리를 키웠다.
눈물까진 흘리진 않았지만 은혜도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심장이 울렁이는 것 같기도 하고 지나간 사랑이 떠오르기도 했다.
재생도 끝나서 화면이 꺼진 핸드폰을 바라보던 은혜는 충동적으로 언래블이라는 이 그룹의 공식 계정을 팔로우했다.
노래가 괜찮았으니 조금 더 들어보자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고 있었다.
* * *
“이 사진 되게 괜찮은 것 같은데, 어때요?”
“어, 그러네. 환이가 엄청 잘 나왔어.”
“이제 환이도 연기 쪽에 관심 있는 걸까요?”
“그건 아닌 것 같아. 걔는 그쪽은 영….”
런웨이에서 환이가 보여준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지만, 언래블에 연기에 재능이 있는 멤버는 없다는 걸 소현은 인지하고 있었다.
아직도 아이돌 창조 때 연기 씬이 흑역사처럼 돌아다닌다고 수치스러워하는 애들이었다.
앞으로 관심이 생긴다면 공부를 지원해 줄 생각이긴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연기에는 관심이 없는지 늘 음악 관련 레슨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돌인 만큼 자신 안에 담긴 끼를 발산하는 건 매우 긍정적인 모습이었다.
언제나 조금 물러선 태도를 보이던 것도 요새는 많이 사라졌고, 곡 작업에도 무척이나 욕심을 내고 있다며 에단이 흐뭇해하기도 했다.
“팀장님! 애들 실검 떴어요!”
“갑자기? 쇼 때문이에요?”
“아뇨, 그 환이 커버요!”
“커버?”
소현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잠시 당황했지만,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오늘 아이콘택트 녹화분이 방영하는 날이라는 것을 기억해 낸 소현은 이번 앨범 발매 전 지환이 올렸던 커버를 떠올렸다.
“우진이 지금 어딨어?”
“애들 숙소에 데려다준다고 아까 나갔어요.”
“기사 준비했던 거 지금 다 뿌리라고 해. 홍보실에 얘기해놨으니 말하면 바로 해줄 거야.”
소현은 급히 지시를 내리고 우진에게 연락했다.
타이밍이 좋았다.
소현이 이번 앨범 직전부터 조금씩 준비했던 계획이 이번 이슈를 통해 꽃을 피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진아, 애들 GIVE 앱 하자.”
- 지금요?
“응. 지금”
소현은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고, 우진이 옆에 있으니 안정적으로 방송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원래 물 들어왔을 때 부지런히 노를 저어야 더 멀리 갈 수 있는 법이었다.
* * *
폭풍 같은 하루를 보낸 터라 배가 고팠던 멤버들은 우진 형에게 같이 치킨을 뜯자고 열심히 꼬시고 있었다.
멤버들이 한동안 치킨을 영접하지 못했음을 알기에, 결국 우진 형은 오늘 고생했으니 오랜만에 치킨 먹자며 직접 주문까지 끝내주었다.
혹시 팀장님이 알면 혼날지도 모르니까 다 같이 먹고 쓰레기는 우진 형이 갈 때 같이 나가서 버리자는 철두철미한 계획까지 세웠다.
기쁜 마음으로 멤버들이 씻으러 들어갔는데 우진 형에게 팀장님의 전화가 왔고, 멤버들은 아직 죄를 짓기 전인데도 괜히 움찔해서 눈동자만 데구루루 굴리고 있었다.
“팀장님이 우리 숙소에 CCTV 달아두신 건 아니겠지?”
“야, 무슨 말도 안 되는….”
타이밍이 너무 공교로웠던 터라 찬이는 불안한 얼굴로 사방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준이 형이 꿀밤을 먹인 후에야 입을 삐죽거리며 얌전히 앉아있었다.
“얘들아, 그, GIVE 앱 방송 켜야 할 것 같은데.”
“네? 갑자기요?”
“이 시간에요? 메이크업 다 지웠는데!”
뽀송뽀송하게 씻고 나온 멤버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멤버들을 달래며 우진 형이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지만, 설명을 듣던 멤버들은 점점 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커버 곡 때문에 실검 떴다고요? 왜요?”
“지환아, 노래 부를 때 무슨 마법이라도 부렸어?”
“그, 글쎄요? 마법이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걸 서로가 너무 잘 알았지만, 얼떨떨한 기분이라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오죽 당황했으면 나는 포잉에게 혹시 나 모르게 무언가 했는지 물어볼 정도였다.
포잉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일축하며 되레 흥미롭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일단 너희 피부 괜찮으니까 메이크업 없이 가자. 아예 잘 준비하다 실검 소식에 놀라서 솜뭉치들한테 고맙다고 하는 그런 그림이 더 나을 것 같아.”
“잠옷! 나 잠옷 갈아입을래!”
“그래도 좀 멀쩡한 옷으로 갈아입자, 얘들아. 너무 지금 옷이….”
급히 잠옷 중에서 제일 얌전한 옷으로 갈아입고 모인 우리는 의도치 않게 한밤중에 라이브를 진행하게 되었다.
“둘, 셋! 안녕하세요, 함께 풀어나가는 미래 언래블입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솜뭉치들 안녕!”
“솜뭉치들 이 시간엔 처음이죠?”
이제는 조건 반사처럼 나오는 구호를 마친 우리는 거실에 깔린 러그 위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손을 흔들었다.
갑자기 켠 방송임에도 많은 솜뭉치들이 찾아와주고 있었다.
채팅창에 아이콘택트를 봤다는 솜뭉치들의 칭찬과 인사가 주르륵 올라오고 있었고, 우리는 잠시 솜뭉치들에게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저희가 이 시간에 갑자기 방송을 켠 이유는요….”
그리고 준이 형이 방송 이유를 설명하려는 그때, 현관문에서 벨 소리와 함께 우렁찬 외침이 들렸다.
- 배달이요!
그 순간 채팅창은 물음표와 ‘ㅋㅋㅋ’로 도배되기 시작했고, 세빈이와 영빈 형의 얼굴은 하얗고 빨갛게 변해 볼 만해졌다.
준이 형의 얼굴에서 실시간으로 생기가 빠져나갔고, 경환 형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는 걸 간신히 눌러 앉혔다.
“여러분, 망한 거 같아요.”
순간 멍하니 있던 찬이가 중얼거렸다.
촬영 중인 우리 너머의 우진 형 핸드폰이 미친 듯이 울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우진 형의 얼굴에서도 점점 색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방송 사고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