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174)화 (174/456)

174. 외전 - 크리스마스니까(happy birthday to 하준)

하준은 조금 지쳐서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다 이제야 조용해진 거실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기들도 기운이 빠졌는지 뒤엉켜 잠들어 있는 동생들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다시 창밖의 새까만 풍경으로 시선을 옮기자 가장 서글펐던 그 날이 떠올랐다.

그날 하준은 조금 울었던 것 같았다.

사실 열이 많이 나서 생리적인 눈물이 흘러나왔던 건지 아니면 정말로 마음이 아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입안에 불덩이를 물고 있는 것처럼 내내 화끈거리고 혀끝부터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이 들어 침 한 모금 삼키는 게 힘들었다.

스스로도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번 주 평가가 데뷔를 가르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영빈도 며칠째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연습하고 있었다. 둘은 꼭 함께 데뷔하기로 약속했으니까.

그래서 회사 사람들에게는 핑계라는 말을 들을까 싶어 아프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약을 입에 털어 넣고 평가를 치렀다.

하지만 다음날 확인한 데뷔 조 명단에는 하준의 이름도 영빈의 이름도 없었다.

설마 했었다.

어색한 얼굴로 하준을 바라보는 김범욱과 히죽거리는 면상을 한 최태성을 본 후에야 웃음이 나왔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거구나.

이번 생일에는 가족들에게 꿈을 이뤘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더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해야 하는 현실이 암담해서 울고 싶어졌는데 웃음이 흘러나왔다.

“씨발.”

“뭐 이 새끼야?”

단 한 번도 같은 연습생들에게 입에 올리지 않았던 욕설이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뒤에서 최태성이 무어라 난리를 치는 것 같았지만, 거기에 쏟을 정신이 없었다.

회사에 바로 연습생을 그만두겠다는 말을 전하자 그들도 순순히 하준을 놓아주었다.

그길로 회사를 나와 숙소로 향했지만, 영빈에게조차 연락하지 못했다.

열이 가득 들어찬 머리론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짐을 정리하고 나오는데 백팩 하나로 끝날 만큼 자신의 짐이 없었다는 사실에 더 허탈해졌다.

2년.

이 회사에서 악착같이 준비하던 시간이 이렇게 덧없이 사라졌다.

그간 남들보다 덜 자고 덜먹으면서 부지런히 갈고닦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끝났다.

“하아….”

숨 한 번이 지나치게 뜨거워서 삼키기가 힘들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그 숨보다 더 뜨거워서 차마 손으로 닦아낼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잠시 넋을 놓았던 하준은 달칵하는 소리가 들려 반사적으로 몸이 굳었다.

“기다려.”

“…너 뭐 하냐.”

익숙한 허연 얼굴이 담담하게 말을 내뱉더니 가방 하나를 꺼내 빠르게 짐을 던져 넣었다.

자신은 래퍼니까, 회사가 제 곡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순순히 계약을 해지했다. 하지만 영빈은 그들이 내내 메인 보컬로 점찍어 놓던 사람인 만큼 쉽게 놓아줄 리 없는데.

“간다고 하니까 가라고 하더라.”

“그게 무슨….”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려던 욕을 삼키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진짜 씨발 새끼들이네.

차마 친구 앞에서 욕을 할 수 없어서 하준은 그냥 그렇게 속으로 삼켰다.

“가자.”

“…그래.”

그렇게 둘 다 가방 하나씩 짊어지고 숙소를 빠져나오는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올라와서 순간 자리에 굳은 것처럼 멈춰버렸다.

“준아.”

“어.”

“괜찮다.”

“뭐가 괜찮냐.”

“쟤네랑 데뷔하느니 그냥 가수 안 할란다.”

“미친놈.”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영빈이 얼마나 무대에 서서 노래하고 싶어 하는지 그 절절한 마음을 들었던 날이 아직도 선명한데 이딴 소리나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자신을 위로하기 위함이란 걸 모르지 않아서, 그런 친구 앞에서 차마 더 눈물을 보일 수 없어서, 하준은 입안의 살을 꾹 깨물어 눈물을 삼켰다.

“병원이나 가자. 너 주사 좀 맞아야 할 거 같아.”

“집에 가서 약 먹고 자면 돼. 이제 실컷 잘 수 있잖아.”

“까불지 말고 따라와.”

그대로 병원으로 질질 끌려가 진찰을 받고 링거를 맞는 그 시간 동안 영빈은 아무 말 없이 하준을 기다려주었다.

영빈도 속이 말이 아닐 텐데, 어쩌면 저보다 더 뭉그러졌을 텐데, 내색 한번 없이 가방을 싸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담담한 표정이었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하준은 차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긴장이 풀린 건지 아니면 약 때문이었는지 얼마 후 하준은 잠이 들었고, 그런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영빈은 참고 있던 한숨을 내뱉었다.

은연중에 마음속으로는 정리를 하고 있었던 걸까.

회사의 간부들이 바뀌면서 자신과 하준을 호감 어린 눈으로 대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걸 알고 있었다.

마음 깊이 의지하던 보컬 트레이너 선생님은 마지막 날 영빈의 손을 꼭 잡고 신신당부를 하기도 했다.

여기가 아니어도 분명 네 노래를 알아봐 줄 회사는 많을 거라고.

그러면서 자신처럼 겁먹고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하준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영빈은 잘 알고 있었다.

최태성과 최진웅, 그 둘이 데뷔하려면 2명이 빠져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 그만하자.’

하준에게는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이 가슴 언저리에 고여 썩어가고 있었다.

언제나 자신이 만든 곡을 같이 부르는 날이 올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하준이었다.

그런 하준에게 차마 너무 지쳤다고, 자신의 꿈을 약점처럼 회사에 잡혀 휘둘리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무대를 동경했지만, 무대가 아닌 곳에서도 노래는 부를 수 있다고 그렇게 영빈은 스스로를 위로했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고 조금씩 더 수렁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꿈을 저당 잡혀 바짝 조인 목줄이 채워진 짐승이 되는 기분이었다.

텅 빈 영빈의 눈에 다시 초점이 잡힌 건 하준의 팔을 타고 흘러 들어가던 약이 모두 끝나 간호사가 찾아온 시점이었다.

“좀 괜찮냐?”

“어어. 자고 주사 맞고 했더니 좀 낫네.”

“미련하게 그걸 꾸역꾸역 참고 있어요.”

“야, 나 환자다. 잘해줘라.”

“지랄은.”

하준은 욕설을 내뱉은 영빈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나는 욕하면 안 되냐?”

“아니, 그건 아닌데…. 아씨, 몰라. 밥이나 먹자. 배고프다.”

책잡힐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도 모두 신경을 썼던 둘이었다.

원래도 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부드러운 말투를 가지게 되었지만, 연습생이 되기 전 형들에게 곡을 배울 때는 종종 거친 표현을 쓰기도 했었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귀한 집에서 곱게 큰 도련님 같은 영빈이기에, 그의 입에서 나온 비속어가 너무 낯설었다.

연습실에 틀어박혀 지내던 생활에 너무 길들어진 걸까?

낮에 길거리를 걷는 게 묘하게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흡사 학교를 땡땡이치고 나온 것 같은 이상한 해방감과 죄책감이 동시에 들었다.

하지만 어색했던 건 한순간이었다.

그날 하준과 영빈은 낯선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기로 했다.

분식집에 가서 그동안 꾹 눌러 참았던 온갖 메뉴를 시켜서 배가 터지도록 먹었고, 길거리에 있는 인형 뽑기 기계에 달라붙기도 했다.

어슬렁거리며 한껏 들떠있는 길거리의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했고, 여러 브랜드의 의류매장에 들어가 아이 쇼핑도 즐겼다.

그렇게 물 만난 물고기처럼 거리를 누비던 둘에게 명함을 건네는 사람들도 있었다.

실장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팀장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못마땅해하는 영빈과 달리 하준은 재밌다는 듯 명함을 받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뭐, 어때. 어차피 우리는 자윤데.”

가벼운 목소리로 대꾸하는 하준의 표정은 목소리와 달리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어설픈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붙어 지낸 세월이 있었던 터라 영빈은 그 속이 편치 않음을 알고 있었다.

“집에 가자.”

“…그러자.”

그렇게 둘은 다시 보자는 인사조차 남기지 않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하준에게, 부모님과 형, 누나는 별다른 말 없이 하준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상을 차려주었다.

늘 체중 조절하느라 제대로 먹지 못했던, 엄마가 해준 밥이었다.

하준은 울음을 꾹꾹 눌러내며 그날 밥 두 공기를 깨끗하게 비웠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학교와 집을 오가던 하준은 하루하루 지날수록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허전함에 괴로워했다.

영빈과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던 날 받았던 몇 개의 명함은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다.

몇 번이나 버리려고 했지만, 우습게도 손이 떨려서 결국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했다.

그런 자신을 미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음악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죽을 때까지 랩을 하고 곡을 쓸 거라고 말하던 시절의 모습이 자꾸만 생각났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하준은 그해의 마지막을 앞두고 있었다.

하필이면 생일이 크리스마스 날인지라 가족들에게는 선물을 하나밖에 받을 수 없는 게 여태까지 하준은 조금 불만이었다.

어차피 음악에 미치고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부터 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멀어졌다.

일상을 제대로 공유하지 못하는 하준은 그저 30명 남짓한 같은 반의 누군가일 뿐이었다.

제논 엔터 이전 잠시 있었던 기획사에서 알고 지낸 연습생 친구들이 생일 축하 메시지를 몇 개 보내와서, 모두 답장을 한 참이었다.

학교 친구들이 아닌 같은, 처지의 연습생들밖에 친구라 부를만한 사람이 없다는 게 조금 속 쓰렸다.

“준아, 친구 왔네.”

“친구요?”

그래서 방에서 노트북을 붙들고 있던 하준은 어머니의 부름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집까지 찾아올만한 친구라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던 탓이었다.

“연락 한 번을 안 하냐.”

“어, 어떻게 왔냐?”

눈이라도 내리는 건지 물기가 남아있는 머리를 한 영빈이 하얗게 서 있었다.

하준은 얼떨떨한 눈으로 영빈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아무렇지 않게 의자에 걸터앉는 영빈의 모습이 낯설었다.

숙소에서도 이렇게 자연스러운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전에 대신 집에 택배 보내 달라고 사진 찍어준 거 있었잖아. 그거 보고 찾아왔어.”

“와… 너 행동력 미쳤네.”

“냥톡에 너 생일이라고 뜨길래.”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서로의 본가가 꽤 먼 것을 아는 하준은 이상하게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야, 우리 엄마 음식 잘해. 밥 먹자.”

“고기반찬?”

“당연하지.”

하준은 영빈과 헤어졌던 날 이후 처음으로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다.

부모님은 예의 바르고 차분한 영빈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지 자주 놀러 오라는 말을 하셨다.

그렇게 모처럼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고, 하준은 느지막이 집에 가야 한다고 나서는 영빈을 배웅하러 따라 나갔다.

지하철역으로 걷는 내내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 다 암묵적으로 미래에 대한 이야기,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었고 하준은 영빈의 마음을 조금은 짐작하고 있었다.

잠시 걷는 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고른 하준은 영빈을 붙잡았다.

“김영빈아.”

“어.”

“우리 딱 한 번만 더 해보자.”

“….”

말간 영빈의 눈동자에 괴로움이 스쳤다.

“학교 가는 거 좋았냐.”

“….”

영빈이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못하자 하준은 틈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난 솔직히 수업 하나도 머리에 안 들어오더라. 그냥 내 자리 아닌 것 같고 이상하고 무엇보다 하나도 재미가 없어.”

“학교를 재미로 가냐?”

“곡 쓰고 안무 연습할 때는 재밌었어. 아무리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거든? 근데 그걸 안 하니까 못 버티겠다.”

“준아.”

애써 담담하게 말하려는 영빈의 말을 잘랐다.

영빈이 하준을 아는 만큼 하준도 영빈을 알았다.

“딱 한 번만 나 믿고 다시 해보면 안 되겠냐.”

“널 뭘 보고 믿어.”

퉁명스럽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하준은 아마 자신도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쓰게 웃었다.

“내가 쓴 곡을 네가 꼭 불렀으면 좋겠다. 우리가 같이 음악 하면서 얼마나 재밌었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딱 한 번만 더 해보자.”

영빈은 대답하지 않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하준은 초조했지만 입술을 꾹 깨물고 참았다.

“…그래서 들어가고 싶은 곳은 있고?”

“어?”

“뭐야, 아무것도 생각해둔 거 없이 지금 같이 가자고 꼬신 거야?”

영빈의 눈초리가 뾰족해지자 하준은 평소답지 않게 허둥거리며 열심히 생각 중이라며 둘러댔지만, 통할 리 없었다.

“하… 이런 어리바리한 새끼를 내가 뭘 믿고.”

한탄하듯 중얼거리는 영빈의 모습에 하준은 활짝 웃었다.

혼자보다는 믿을 수 있는 친구와 함께라면 마지막이라고 해도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 * *

“뭐 하냐.”

“그냥 예전 생각?”

씻고 나온 영빈이 휘적휘적 굴러다니는 멤버들을 솜씨 좋게 피해 가며 하준의 옆에 와 털썩 앉았다.

그때보다 키도 훌쩍 크고 얼굴도 더 선이 뚜렷해진 친구 모습에 하준은 슬며시 웃었다.

지금 동생들은 모르는 하준과 영빈의 코찔찔이 때 모습…. 왜인지 모르게 아주 오래전 일인 것 같았다.

“하, 쟤 또 저러고 자네.”

잠시 앉아있던 영빈이 다시 몸을 일으켜 경환의 밑에 깔려 끙끙대는 지환이를 끄집어냈다.

“안 자냐?”

“자야지. 애들 그냥 여기 이렇게 둬도 되려나 모르겠다.”

“난 내 방 가서 잘 거다.”

찬이한테 이불을 다 뺏긴 세빈이가 추울까 싶어 다시 이불을 뺏어다 덮어주던 하준은 질색하는 영빈의 모습에 웃었다.

가끔 다 같이 거실에서 잘 때면 동생들 등쌀에 제대로 잠들지 못해 다음날 퀭한 얼굴이 되는 영빈을 알기 때문이었다.

“왜 자꾸 생일날만 되면 다 같이 자려고 드냐, 우리 애들은.”

“뭐 사이 나쁜 것보단 좋은 게 낫지.”

스케줄을 끝내고 숙소에서 미리 크리스마스 파티 겸 하준의 생일 파티를 거하게 했던 터라 이미 시간은 새벽이었다.

하준은 영빈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우리 애들이라는 말에 괜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야, 그때 내 말 듣길 잘했지?”

“뭐?”

“내가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나 믿고 하자고 했잖아.”

“…얼씨고?”

“솔직히 나한테 좀 고맙지 않냐?”

“진짜 지랄도 풍년이다, 이 자식아.”

동생들 없이 둘이 대화를 나눌 때면 가끔 이렇게 영빈의 입에서는 욕이 튀어나왔다.

이런 모습을 세빈이나 환이가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내 덕에 우리 애들 만난 거나 다름없잖아. 어디 가서 이런 애들이랑 팀으로 만나냐.”

“그 정도면 팔불출이다, 너 진짜 환이한테 뭐라 할 게 아닌 거 알지?”

“근데 사실이잖아. 아냐?”

“맞는데, 맞긴 한데… 하…. 자라.”

한 놈씩 빼놓고 보면 모를 수도 있지만, 언래블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우리는 제법 괜찮은 모습이었다.

방금 각자 이불을 챙겨줬는데 그사이 찬이가 이번엔 지환이 이불을 뺏고 있었다.

세빈이는 언제 저기까지 굴러가서 환이와 경환이를 나란히 뭉개고 있는 걸까.

얘네 혹시 깨어 있는 거 아냐?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돌아가면서 환이를 괴롭히는 동생들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동생들을 다시 챙기는 하준을 뒤로하고 영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방으로 걸어갔다.

방문 앞에서 잠시 멈춘 영빈은 찌뿌둥한지 이리저리 몸을 푸는 하준을 바라보다 한마디 툭 내뱉고 방으로 사라졌다.

“생일 축하한다, 민하준.”

고맙다고 하기도 전에 방으로 사라진 수줍음 많은 친구의 모습에 하준은 피식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같이 잠들었으면 모를까 팔다리가 이리저리 뻗어있는 이 난장판에 굳이 끼어 자고 싶진 않았다.

일어나면 배신자라고 시끄럽게 굴 테지만 어차피 제일 일찍 일어나는 건 하준, 자신이었으니 대충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모처럼 기분 좋은 크리스마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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