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158)화 (158/456)

158. 불장난(1)

처음 계획은 도대체 어떤 미친 짓이었을까.

사람 좋은 얼굴로 휴가처럼 다녀오라고 서글서글하게 웃는 저 사람들의 속이 궁금해졌다.

그 후 프로그램의 설명과 일정을 듣는 내내 우리도 진우 형도 어색한 웃음을 머금고 험한 말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전부였다.

그저 가영 형 혼자만 흥미롭다는 얼굴로 몇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고개를 푹 숙인 키스 형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그렇게 미팅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우리 쪽으로 합류한 새벽 형님들은 진우 형까지 끌고 와서는 밥이라도 먹자며 넉살 좋게 우진 형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진 형의 얼굴이 흐릿해지는 것 같은데 가영 형의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였나 보다….

“감자탕 먹자, 감자탕.”

“아 진짜, 누가 노인네 아니랄까 봐.”

“음식 가지고 그러는 것도 편견이다?”

“진우야, 감자탕 괜찮지?”

“그, 네. 어… 어차피 제가 뭐라고 해도 형 마음대로 할 거잖아요.”

감자탕을 외치는 가영 형과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키스 형.

중간에 낀 진우 형만 힘없이 중얼거렸다.

가여운 진우 형의 목소리에 누구도 대답해 주지 않아 더 안쓰러워 보였다.

저 둘 사이에 끼면 세비 형이 아닌 이상에는 누구도 도망갈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저 구렁텅이로 기어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진우 형, 미안해요…. 우리라도 살고 봐야죠.

“우리 근데 진짜 저녁 여기서 먹어도 되는 거예요?”

“응…. 팀장님한테는 형이 말했다. 가영 씨가 밥 먹고 가라고 했다니까 알았다고 하셨어.”

“그… 팀장님 목소리는 괜찮았어요?”

“포기하신 거 같더라.”

우진 형과 준이 형이 앞에서 소곤거리는 내용을 들어보니 우리 처지도 진우 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감자탕, 전 좋아요!”

“그치, 역시 찬이가 먹을 줄 안다니까.”

“쟤는 그냥 고기면 다 좋은 거 아냐?”

“크게 다르지 않을걸요….”

찬이는 눈치 보던 건 어디로 가고 고기 먹는다는 사실에 신이 난 것 같았다.

우리 찬이는 그런 눈치가 없어서 참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가영 형의 단골이라는 감자탕 집은 허름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내부는 깔끔했고, 감자탕도 고기가 두툼하게 붙은 커다란 뼈다귀가 잔뜩 들어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우리를 기어코 무인도에 처박겠다는 그 내용만 아니었다면, 정말 즐거운 식사 시간이었을 텐데.

벌써부터 무인도에서의 야영이 걱정되는 듯 영빈 형의 얼굴은 그늘져 있었고, 하준 형은 핸드폰으로 무언가 열심히 뒤지고 있었다.

“형, 뭐해요?”

“아, 벌레 퇴치제….”

“제작진이 가져갈 수 있게 해주긴 할까요…?”

“안될 것 같지?”

“네. 왠지 물건 뒤져서 압수할 것 같던데.”

“바르는 약이라도 잘 찾아보자….”

뮤직비디오 촬영 때문에 섬에서 벌레와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산처럼 쌓여있던 뼈다귀를 모조리 해치운 뒤 빵빵해진 배를 통통 두들기던 가영 형이 근심 걱정이 가득한 우리를 바라보며 웃었다.

“괜찮아. 어차피 요새 텐트는 설치하기 쉽게 나왔다더라. 영상 몇 번 보면 할 수 있다던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계약만 끝나봐라, 이 인간이랑 다시 활동하나!”

영빈 형의 증언에 따르면 우리만큼이나 벌레와 사이가 나쁜 키스 형은 이를 갈고 있었고, 세비 형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얼굴로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그냥 포기하면 편해, 얘들아. 적어도 겨울은 아니잖니.”

“…세비 형, 괜찮아요?”

“괜찮아. 한번 고생하고 앞으로 저 인간 안 보면 되는데 싸게 먹힌 거지 뭐.”

세비 형은 이번 일정이 끝나는 대로 가영 형을 담가버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겨대서 둘 사이에 앉은 진우 형만 세상을 잃은 얼굴로 뼈다귀를 깨작거렸다.

아무래도 괜찮지 않은 것 같았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회사로 돌아온 우리는 애잔한 얼굴로 구조 요청하던 진우 형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아마 오늘 늦게까지 가영 형과 키스 형 사이에서 시달릴 것 같았다.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형.

“가영이는 진짜, 휴. 내가 이 바닥에서 걔만큼 정신없는 애를 못 봤어.”

“하, 하하….”

“곡 쓰고 노래하는 거 빼면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놈이 쓸데없이 모험심만 넘쳐서는.”

유난히 지쳐있는 멤버들을 바라보며 작게 혀를 찬 소현 팀장님은 오늘 확정된 두 스케줄에 대해 내일 이야기하자며 축객령을 내렸다.

어차피 광고는 그쪽에서 준비하는 방향에 따라 촬영 일자를 조절해야 하니 당장 할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회사에 남아서 개별 연습이라도 조금 더 해볼까 했지만, 소현 팀장님은 단호했다.

“내일부터 다시 바쁠 거야. 오늘은 그만 들어가서 쉬어.”

“괜찮은데….”

“괜찮기는. 기가 쪽 빨려와서 흐느적거리는 게 눈에 훤히 보이는구만.”

강제로 숙소로 돌려보내진 우리는 거실에 동그랗게 모여앉았다.

“어떡하지?”

“진짜 우리 막 텐트 치고 해요?”

“밥은? 밥도 우리가 다 해 먹어야 돼요?”

“밥은 환이가 하겠지. 그보다 텐트 칠 줄 아는 사람 있어?”

“밥은 왜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는데!”

“형아들, 벌레 나오면 내가 잡아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우리의 유일한 희망 세빈이가 덩칫값, 나잇값 못하고 있는 형들을 다독이며 듬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봤자 아직 젖살도 안 빠져서 찹쌀떡같이 귀엽기만 했지만.

정확한 날짜는 아직 조율 중이라고 했지만, 대략 짚어준 날짜들을 보면 패션쇼 전이었다.

“우리 팬싸 일정이랑 겹치진 않겠죠?”

“그거 다 알아서 조율하실 거야.”

일정이 줄어들길 바랐던 건지 은근한 목소리로 준이 형한테 물어보던 경환 형은 답지 않게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일단 캠핑 같은 거 해본 사람?”

“어릴 때 학교에서 한번 해봤어요.”

“그 어릴 때가 얼마나 어릴 땐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찬이 대답에 핸드폰을 쥔 하준 형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손에 쥔 게 핸드폰이라 차마 던지지 못하고 참는 게 눈에 보여서 준이 형 시야에서 찬이를 쓱 밀어 치워줬다.

“아니, 진짜… 캠핑카 같은 거 빌려서 밥 해 먹고 자고 하면 얼마나 좋아. 왜 하필 텐트야.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넋두리하듯 중얼거리는 영빈 형의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어지간히 걱정되는 듯했다.

그저 벌레에 강한 세빈이만 캠프파이어 했으면 좋겠다고 찬이에게 소곤거리고 있었다.

혼돈의 카오스 같은 거실 모습에 정리할 필요를 느낀 내가 영빈 형 다리를 베고 누워 꾸물거리는 찬이를 발로 툭툭 밀어버렸다.

옆에 붙어서 소곤거리던 세빈이까지 덩달아 옆으로 데굴데굴 굴러야 했지만, 둘은 그것조차 재밌었나 보다.

꺄르륵 웃고 있는 둘을 잠시 무시하기로 하고 거실 중앙에 밥상을 펼쳤다.

“준이 형, 텐트 설치 방법 좀 찾아봐 줘요.”

“텐트도 막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하던데….”

“뭐, 제작진도 진짜 미치지 않고서야 초보들한테 거창한 걸 바라진 않겠죠.”

혼이 나간 영빈 형을 준이 형 옆으로 밀어놓고 경환 형에게 메모지를 부탁했다.

가서 핸드폰을 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 핸드폰에 저장해두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설치 방법이라도 좀 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자세한 건 일정 확정되면 팀장님한테 물어보든가 하고.”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몸만 오라는 거 보니까 기본 장비는 줄 거 같긴 하다.”

“그 기본 장비가 우리가 생각하는 기본 장비랑 다를까 봐 그게 걱정이죠.”

위캠에 ‘텐트 치는 법’이라고 검색하자 꽤 많은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아무래도 제작진은 출연진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원하는 것 같아서 불안감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최대한 공부해서 살아남아야 했다.

“자립 텐트는 뭐고 비자립 텐트는 또 뭐야?”

“몰라, 일단 그냥 다 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그냥 밑바닥 깔고 천에 막대기를 쭉쭉 꽂으니까 되는데?”

“저 사람은 숙련자잖아. 우리가 하면 또 다르지.”

“땅에 막 때려 박는다. 어우….”

“밖에서 안쪽으로 45도로 때리래.”

노트북 화면 안으로 들어갈 것처럼 세 명이 뚫어져라 영상을 바라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화면에서는 인상 좋은 아저씨가 웃으면서 몇 번 뚝딱거리니 텐트가 짠하고 만들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모르는 용어들이 중간중간 나왔지만, 영상으로 보고 있는 도중에는 대충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요새 텐트는 옛날에 비해 설치하기 어렵지 않다며, 색으로 표시되어 있기도 하고 장비도 잘 나온다는 푸근한 목소리에 다들 설득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좋은 장비가 주어질지가 가장 큰 문제였고, 인원이 어떻게 나눠질지도 걱정스러웠다.

그렇게 한참 동안 위캠에서 캠핑 영상을 찾아 보던 우리는 어느샌가 알 수 없는 추천 영상 알고리즘에 따라 화려한 캠핑 요리 영상을 보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응?”

“지금 우리가 이걸 보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숯불 위에서 타닥거리며 익어가는 꼬치구이에 넋을 놓던 찬이는 뭐가 문제냐는 듯이 나를 바라봤지만, 다행히 다른 멤버들은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마음만으로는 이미 캠핑카 사서 전국 일주한 것 같아.”

“돈 벌면 언젠가는 캠핑카 살 거야, 진짜.”

“렌트도 해준다던데 나중에 나 면허 따면 같이 캠핑가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지금은 일단 자자.”

“분명히 방금까지 텐트 치는 법을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왜….”

혼란에 빠진 멤버들을 챙겨서 무인도 탈출을 준비하려 했건만, 멤버들과 나는 어느샌가 캠핑 도구 업체들의 음모에 빠져있었다.

우리에게 닥칠 미래는 풀밭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텐트를 조립하는 모습이겠지만, 영상 안의 캠핑은 특유의 감성과 멋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래서 광고에 속는 건가.

“영상 그만 보고 가서 자요, 이제.”

“뭐야, 왜 벌써 열두 시야?”

“세빈이는 이미 잠들었네.”

“얘는 언제 잠들었대.”

피곤했는지 경환 형의 다리에 누워 있던 세빈이는 이미 잠들어서 도롱도롱 작게 코까지 골고 있었다.

경환 형과 영빈 형이 세빈이를 들어 방으로 옮기는 사이 찬이는 바닥에서 흐느적거리고 있었고, 준이 형은 무언가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안 자요?”

“아, 자야지.”

생전 안 해본 상황을 겪게 되는 게 어지간히 걱정됐던지 평소라면 진즉 멤버들을 챙겼을 하준 형조차 넋을 놓고 있었다.

열두 시가 넘었다는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린 건지 자리를 정돈하던 하준 형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제발 큰 벌레만 없었으면 좋겠다….”

캠핑이 문제가 아니라 벌레가 더 큰 문제였나 보다.

이번 프로그램은 유난히 불길한 것이 아무래도 최대한 몸을 사리고 조심조심 다녀와야 할 것 같았다.

부디 별문제 없이 무사히 촬영을 마쳤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보통 이런 경우에는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이런 걸 클리셰라고 하던가.

‘포잉, 우리 괜찮겠지…?’

‘뭐, 조난 당하면 구조 신호는 대신 접수해 주겠음.’

‘조난 당하라고 고사를 지내라, 아주.’

‘요정인 내가 빌면 효과는 확실할 듯.’

다행히 조난 당하진 않겠구나. 그것참 고마워라,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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