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111)화 (111/456)

111. 외전 - 그때, 그 송편은 누가 먹었을까.

“우리 송편 만들자!”

“갑자기?”

“굳이?”

“사 먹는 게 훨씬 맛있고 안전할 거 같은데.”

“송편이 아니라 폭탄이 만들어질 수도 있어서 싫어요.”

“귀찮아.”

모처럼 명절이니 가족들의 얼굴을 보러 다녀오라는 정윤 실장님의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추석 당일에만 집에 다녀오기로 하고, 그 외 시간은 우리끼리 지내기로 미리 정해두었다.

다 같이 휴가를 보내는 기분을 즐기고 싶다는 것.

그래서 추석 다음 날은 강원도 쪽으로 드라이브 가기로 일정도 다 짜둔 상태였다.

우리 중 가장 꼼꼼한 준이 형이 드라이브 코스와 필요한 물품들을 계획했고, 환이 형이 몇 가지 내용을 더 첨언하는 걸 구경하던 참이었다.

“세빈아, 찬이 옆에 있지 마라. 물든다.”

“네엡~.”

“쟤는 왜 점점 능글맞아지냐, 예전엔 귀여웠는데.”

힘찬이 형은 저 멘트가 질리지도 않는지 툭하면 똑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아서 굳이 대꾸해 줄 필요성을 못 느꼈다.

나는 그동안 키가 많이 자라서 준이 형이랑 비슷해졌는데, 앞으로 더 자랄 것 같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환이 형이 한탄하듯이 중얼거렸었는데, 뭐라고 했었지?

이렇게 자라는 건 왜 똑같냐고 했던 것 같은데.

환이 형이 팀에서 제일 작은 키가 돼버렸지만, 그래도 찬이 형이랑 비슷해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또 그거 가지고 환이 형을 귀찮게 만들었을 테니까.

“지환아, 송편 만들자, 송편!”

“찬아, 그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막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냐. 귀찮단 말이야.”

“우리가 만들어서 영상도 찍고 사진도 찍어서 솜뭉치들 보여주면 얼마나 좋아하겠어. 이런 게 다 솜뭉치들을 위해서라니까?”

“와, 너는 어떻게 약 파는 기술만 점점 늘어나냐?”

환이 형이랑 찬이 형은 투닥거리면서 계속 송편을 만드니 마니 하는 걸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솜뭉치들에게 보여주면 좋아할 거라는 말이 나온 이상 우리는 송편을 만들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형들도 이미 상황이 그렇게 흘러갈 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기에 찬이 형이 환이 형을 쫓아다니면서 칭얼대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하아… 그래, 다 좋은데 재료는 어떡하려고 그래.”

“그건 내가 이미 준비해놨지!”

“엥?”

이건 조금 의외의 상황이었다.

찬이 형은 준비성이라는 개미 눈물만큼도 없는 사람인데 미리 재료를 준비해놨다고?

다들 눈을 깜박거리며 찬이 형의 자신만만한 발언의 진위를 의심하고 있었다.

“최힘찬이 미리 준비라는 걸 알 리가 없는데.”

“와, 이 형님들 보소. 평소에 날 뭘로 보고 있는 거야?”

경환 형이 미심쩍다는 얼굴로 찬이 형을 바라보았지만, 놀랍게도 형은 실제로 준비물을 챙겨두었다.

“허, 정말 준비를 해놨네.”

“저거 힘찬이 아닐지도 몰라. 세빈아, 경환아, 조사해봐.”

우리 리더님 명령에 따라 나랑 경환 형은 찬이 형을 들고 탈탈 털었고, 그런 우리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던 환이 형은 준비물을 챙겨보고 있었다.

한 손에 든 핸드폰으로는 무언가를 검색하면서.

“…힘찬아, 너 쌀가루 잘못 샀어.”

“응? 쌀가루랑 찹쌀가루로 만들 수 있다고 했는데.”

“그냥 마트에서 파는 쌀가루로는 안 돼. 습식 멥쌀가루라고 따로 있다는데….”

“헐. 그럼 못 만들어?”

그러면 그렇지.

가장 중요한 반죽을 할 쌀가루를 잘못 챙겼다는 말에 찬이 형은 세상이 다 무너진 듯한 얼굴로 환이 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참 하찮다는 듯이 바라보던 환이 형이 한숨을 푹 쉬더니 준이 형에게 물었다.

언제나 최종 결정을 내릴 때면 준이 형한테 어떻게 할지를 저렇게 묻는다. 그런 환이 형 모습에서 늘 리더를 존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우리를 대표하는 사람이 하준 형이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리더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외부의 사람들도 우리 팀을 존중해 줄 거라고.

그렇게 언젠가 나에게도 말했었다.

아마 하준 형이랑 내가 싸워서 씩씩대던 그 날 해줬던 이야기인 것 같은데.

갑자기 부끄러운 질풍노도의 시기를 떠올리니 창피해서 지구 밖으로 사라지고 싶어졌다.

휴….

생각해보면 제일 신기한 사람은 환이 형이기도 했다.

예전에, 그러니까 연습생 시절에는 늘 잔뜩 곤두서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었다. 하지만 데뷔 직전부터 급격하게 변하더니 지금은 형들 중에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함께 지내온 시간 동안 나는 환이 형에게 사람들을 대하는 여러 모습들을 배워왔다.

의식하고 따라 한 적은 없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형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다.

“준이 형, 진짜 만들 거예요?”

“이거 못 하게 하면 찬이가 매년 추석마다 얘기할 것 같은데.”

“뭐, 예쁜 송편 만들어서 솜뭉치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재밌을 거 같아요.”

힘찬이 형이 예뻐서가 아니라 그냥 우리 솜뭉치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그래서 송편을 만들어보자고 말을 보탰다.

환이 형이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무언가 방법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솔직히 한 번도 송편을 직접 만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 해보자.”

“형,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어쩌긴, 발로 뛰어야지.”

준이 형의 허락이 떨어지자 영빈 형이 옆에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 질문에 핸드폰을 꺼내 들며 씩 웃던 환이 형.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본 찬이 형은 불길한 예감이라도 느낀 건지 부르르 떨었다.

환이 형이 숙소 주변의 떡집에 전화를 돌리면서 멥쌀가루를 살 수 있는지 문의하는 동안 영빈 형과 경환 형은 재료를 꼼꼼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송편 속에 뭐 뭐 들어갔지?”

“밤이랑 깨, 콩 정도였던 것 같은데.”

“콩은 없네.”

평소에 콩밥은 질색하는 찬이 형답게 콩은 없었다.

“찬아, 여기 멥쌀가루 판대. 가서 사 와.”

“넹….”

“멥쌀가루 사 오는 길에 꿀도 하나 사 와.”

“꿀은 왜요?”

“깨랑 같이 넣어야지. 그게 더 맛있대.”

재료를 확인한 형들이 하나둘 부족한 재료를 지적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고, 먼저 말을 꺼낸 책임이 있는 탓이 찬이 형은 냉장고에 붙어있는 메모지를 가져와 적었다.

숙소 냉장고에는 한 달 치 일정과 일주일 분의 일정이 붙어있었다.

월 단위에는 주요 스케줄과 주변 사람들의 생일이 적혀있었고, 주 단위 캘린더에는 매일 매일 우리가 챙겨야 할 것들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포스트잇과 이름 스티커, 볼펜이 붙어있었다.

개인이 사다 놓은 음식을 구분하기 위해서.

거기다 하도 이것저것 잘 잊어버리는 찬이 형은 늘 메모할 게 필요했는데, 어느 날부터 냉장고 앞에 이것들이 매달려 있었다.

준이 형 아니면 환이 형이 했을 거라 예상했던 대로, 환이 형이 사다 두었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숙소 생활이 조금씩 더 편해진 건 환이 형의 챙김 덕분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었다.

원래 우리 칫솔은 한쪽 화장실에 몰려서 담겨있었다. 한 통에 그냥 담겨 있다 보니 칫솔이 섞이는 일도 있었고.

그런데 어느 날 양쪽 욕실 벽면에 살균 칫솔 케이스가 붙더니, 멤버들의 칫솔이 3명씩 나뉘어서 들어가 있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씻을 때는 자기 칫솔이 있는 화장실로 가게 되면서 외출 준비 시간이 줄었다.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는 거지만 누구도 잘 신경 쓰지 않는 것들.

환이 형은 어느 순간부터 말없이 이런 소소한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고, 언젠가부터는 멤버들도 서로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늘 서로에게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들의 모습은 언제나 내 자랑이 되었다.

“우리 막둥이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아?”

“그냥 송편 먹을 거 생각하니까 좋아서? 밤 넣은 송편 진짜 오랜만이에요.”

“그치. 요새는 파는 송편도 대부분 깨만 들어가니까.”

영빈 형이 내 머리를 툭툭 쓰다듬어주더니 밤을 삶기 위해 주방으로 움직였다.

밤이 삶아지는 사이, 찬이 형이 부족했던 재료들을 사 왔고 평소에 밥을 먹던 상 위에는 송편을 만들기 위한 재료들이 한가득 쌓이기 시작했다.

“카메라 위치는 여기쯤으로 해두자.”

“팀장님은 뭐래요?”

“영상 넘겨주면 바로 편집 요청하겠다고 해보라고 하셨어.”

“크, 역시 우리 참리더 행동력. 칭찬합니다.”

예쁜 영상을 위해 이리저리 위치를 잡던 환이 형은 귀찮다고 방으로 도망가려는 경환 형을 잡아 왔고, 영빈 형은 잘 삶아진 밤을 꺼내왔다.

“솜뭉치들, 행복한 추석 보내고 있어요?”

“솜뭉치들 안녕!”

“솜뭉치들, 복 많이 받아요!”

“그건 설 인사 아냐?”

“복은 언제든지 받으면 좋지 뭐.”

“지방방송 좀 꺼라, 이것들아!”

해맑은 찬이 형과 경환 형의 발언에 언제나처럼 엉망진창이 된 오프닝이 되었지만, 새삼스럽지 않았다.

여기에 환이 형이나 준이 형이 해탈한 표정으로 웃을 거고 영빈이 형은 머리를 감싸 쥐겠지.

보지 않아도 충분히 연상되는 이후 모습에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 후로도 송편이 만들어지는 내내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경환이 형이 잘못 건드려서 가루가 한번 바닥에 쏟아지기도 했고, 익반죽할 물을 챙겨오던 환이 형은 엉망이 된 카펫을 바라보며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겨우 상황을 수습하고 카펫을 거둬낸 후에 익반죽을 완성하긴 했지만 제일 좋아하던 카펫을 치운 환이 형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여분 카펫 있잖아, 형.

한편 밤껍질을 까던 영빈 형은 몰래 껍질을 벗겨 둔 밤을 집어 먹던 찬이 형한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너 이 새끼, 이리 안 와!”

“에헤이, 몇 개 안 먹었어요!”

“당장 이리 안 와?!”

솔직히 나도 몇 개 집어먹어서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준이 형 어깨도 움찔하는 걸 봤지만 모르는 척해주기로 했다.

빈이 형, 미안….

깨를 으깰 방망이가 없던 탓에 수저로 꾹꾹 눌러 문지르던 환이 형은 환장하겠다는 얼굴로 이를 갈고 있었다.

형들이 너무 날것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고 있어서 찍고 있는 카메라가 조금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솜뭉치들도 우리를 잘 알고 있어서 그러려니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가끔 솜뭉치들이 말하는 것들이나 응원차 보내준 도시락들을 보면 나보다 우리 멤버들을 더 잘 아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정도였다.

“속 재료랑 반죽이 다 됐으면 이제부터는 쉬워요.”

“동그랗게 만들어서 안에 넣고 잘 오므리면 됩니다.”

“누가 제일 예쁘게 만드나 해보자.”

“일단 꼴찌는 확정되어 있으니 1등만 가리면 되겠네.”

카메라를 향해 차분히 만드는 순서를 설명하는 하준 형의 등 뒤에서는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이것조차 일상이었다.

춤출 때 몸 쓰는 건 그렇게 잘하면서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건 못하는 찬이 형이 꼴찌일 것 같고, 음식은 잘하지만 예쁘게 꾸미는 건 못하는 환이 형이 그다음이지 않을까.

그릇에 만들어지는 송편의 모습이 형들 성격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 같아서 보는 재미도 상당했다. 아, 물론 저 지옥에서 온 송편은 먹고 싶지 않았다.

찬이 형은 도대체 뭘 만들어 낸 거지?

왁자지껄한 시간이 한바탕 흘러간 후, 다 쪄낸 송편을 그릇에 예쁘게 담아내서 사진을 찍었다.

그중에서도 존재감 넘치는 기괴한 모습의 송편들을 음식으로 쳐야 할지는 논의가 필요할 것 같았지만.

역시나 가장 예쁜 송편은 경환 형이 만든 송편이 되었고, 모습은 이상해도 환이 형이 만든 송편이 가장 맛있었다.

잔뜩 만든 송편을 회사 분들에게 찍은 영상과 함께 가져다드리자 찬이 형이 무언가 굉장히 아쉬운 듯한 얼굴로 송편을 바라보았다.

“왜, 뭐 아쉬워? 집에 아직 송편 더 있잖아.”

“아냐, 아쉽긴. 그거 아냐.”

다시 옆구리를 쿡 찔러봤지만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다만, 숙소로 돌아가던 찬이 형이 ‘그건 누가 먹게 되려나’라는 말을 중얼거린 걸로 보아 아무래도 함정 송편이 있는 것 같았다.

이왕이면 대표님이 그 송편을 먹으면 재밌을 것 같았다.

뭐, 대표님이 이런 송편을 굳이 먹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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