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109)화 (109/456)

109. 불타오르네(4)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는 멤버들을 바라보다가, 나는 소현 팀장님의 곁으로 다가가서 옆구리를 쿡 찔렀다.

“어차피 숙소에서 쉴 거면 우리 리얼리티 촬영분을 숙소에서 하면 안 될까요?”

“쉬라니까?”

“그냥 멍 때리는 게 더 불편해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너희는 벌써부터 일 중독이니?”

의도치 않게 다양한 일들에 휩쓸렸고, 음악이 아닌 다른 이슈로 우리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기사에는 우리 이름이 오르지 않았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겠지 싶어 속이 쓰렸다.

그 이슈가 좀 더 건설적인 일들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테지만, 그러지 못한 이상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소현 팀장님에게 조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때다 싶었는지 멤버들이 우르르 다시 회의실로 쫓아 들어왔다.

“팀장님, 어차피 할 거였으니까 촬영이라도 해요, 우리!”

“당장 지금 찍어놔도 편집하고 뭐하고 하면 나중에야 공개할 수 있잖아요.”

“아무것도 안 하고 숙소로 돌아가면 진짜 멍하니 있을 것 같아요.”

멤버들이 이번에는 팀장님을 둘러싸고 종알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하준 형조차, 자발적으로 무언가 일을 하려고 하는 동생들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말릴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영빈 형은 차마 우리처럼 조르기는 부끄러웠는지 멤버들 뒤에서 동생들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할 뿐이었다.

“어휴, 일단 있어 봐. 촬영팀에 연락해봐야 해. 다른 데 가지 말고 휴게실 가서 쉬고 있어.”

“네!”

“얌전히 놀고 있을게요!”

팀장님이 허락의 뜻을 내비치자 신난 우리는 가벼운 걸음으로 휴게실로 향했고, 다들 소파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았다.

그 모습을 쭉 지켜보던 포잉은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너희는 좀 이상한 것 같아.’

‘이상한 게 아니라 활동적인 거야.’

‘아냐, 너희는… 좀 그래.’

초딩 말투를 제법 많이 지웠지만 그 특유의 리듬감이 남아 있어 포잉의 귀여움이 배가 되었다.

대놓고 말하면 또 질색 팔색하고 싫어할 게 뻔해서 혼자 웃고 말았지만, 역시나 포잉은 귀엽다.

공기는 시원하고 등을 대고 있는 소파는 푹신해서 이대로 누우면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방금까지 혀를 찼던 포잉조차도 소파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팔걸이에 늘어져 꼬리만 조금씩 살랑거리고 있었다.

“잠이 부족했나. 졸리다….”

“한숨 자. 어차피 많이 자지도 못했잖아.”

“여기 소파 되게 좋다….”

눈앞에서 포잉의 꼬리는 살랑거리고, 내 새끼들은 각자 편한 자세로 허물어져 있고.

이게 평화지.

행복한 얼굴로 늘어져 있었더니 어디서 찾은 건지 경환 형이 쿠션 하나를 나한테 던져주었다.

그리고는 한껏 편한 자세로 앉아있는 힘찬이 다리를 베고 드러누웠다.

“왜 하필 또 나야!”

“제일 가까이 있었으니까?”

“와, 이 형님 뻔뻔한 것 보소.”

“응, 감사.”

투닥거리는 모습이 평소같이 참 하찮아서 더 안심이 된달까.

거실 바닥의 러그 위에서도 늘 저런 이상한 만담을 주고받으며 굴러다니던 둘이었기에 새삼스럽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근데 숙소에서 촬영하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음. 숙소 내부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은데?”

“어디서 본 건데, 창문 밖에 비친 간판으로 어디에 있는 건물인지 찾아낸 사람도 있다더라.”

영빈 형은 지난 새벽의 일을 떠올린 건지 우려가 섞인 목소리로 하준 형에게 물었고, 나는 조금씩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올리며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묵직하게 낮은 하준 형의 목소리가 부드러워, 어딘가 신뢰를 주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반면 영빈 형은 평소 목소리 자체가 조금 톤이 높았다.

말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간혹 멤버들과 이야기를 하다 즐거워질 때면 듣는 사람이 시원해질 만큼 청량한 웃음소리를 내곤 했다.

그렇게 현실과 꿈나라의 경계를 오가던 나는 휴게실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누워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얘들아, 오늘은 그냥 숙소 가서 쉬어야 할 것 같아. 촬영팀이 오늘 재촬영 안 할 것 같아서 다 퇴근했대.”

“아… 그럼 어쩔 수 없죠. 그냥 숙소 가서 잠이나 더 자야겠어요.”

“그래, 너희도 방금까지 졸고 있었던 것 같구만.”

하준 형이 팀장님과 대화를 주고받다 고갤 돌려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있는 나와 경환 형을 바라보며 웃었다.

“집에 가서 자자, 얘들아.”

“예엥….”

“진짜 집에 가서 잠만 자야지.”

빈둥거리던 찬이랑 세빈이까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와 경환 형을 툭툭 건드리며 건들건들 휴게실을 나섰다.

“아니, 어디서 또 저런 걸 배워가지고! 세빈아, 형이 찬이 닮으면 안 된다고 했지!”

“내가 언제 저랬냐!”

평소보다 더 크게 웃고 더 과장된 반응을 하며 서로에게 장난치는 멤버들의 모습에, 맨 뒤에서 따라가던 나는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모두가 조금 많이 놀랐던 모양이었다.

팀장님이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경환 형도 비슷한 이유로 자리에서 일어난 것 같았다.

우리를 바라보던 팀장님의 얼굴에서 안쓰러움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것을 봐버렸다.

아무래도 우리들 표정이 썩 좋은 몰골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럼 석환 형이 데려다주는 거예요?”

“응, 오늘은 석환이가 데려다줄 거야.”

결국 우리는 얌전히 숙소에 배달되었다.

그리고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러그 위에 하나, 둘 자리를 잡고 드러누웠다.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운 나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포잉은 별말 없이 가벼운 동작으로 내 배 위에 자리를 잡았다.

“쉬어도 마음이 불편하다는 게 이런 건가 봐요.”

“좋아하는 게 보통 반응일 텐데.”

다들 비슷한 표정으로 흐느적거리는 모습이 아주 가관이었다.

솜뭉치들이 이런 꼬락서니는 안 봐서 천만다행이지….

“다른 선배님들한테도 연락 왔지?”

“네, 새벽 형들한테 카톡 엄청 왔는데 정신 놓고 있어서 아직 안 봤어요.”

“그 양반들 또 회사로 쳐들어오는 거 아닌가 몰라.”

어쩐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내용이라 갑자기 더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흐물거리던 멤버들이 하나, 둘 잠이 들어가는 그때. 새롭게 우리와 함께 일하게 된 석환이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석환이 형 [얘들아, 가영 님이랑 키스 님이 회사에 찾아오셨어…. 숙소에 방문하고 싶다고 하시는데 괜찮니?]

이미 잠든 세빈이와 경환 형, 영빈 형을 제외한 우리는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예지력 상승?”

“인정.”

“됐고, 어떻게 해요? 형들 오라고 해요?”

“집에서 노는 거면 뭐 괜찮지 않겠어?”

힘찬이가 핸드폰 게임을 하는지 화면을 계속 두드리다 나를 향해 웃었다.

그걸 또 하준 형이 받아주는 모습에 그냥 한숨을 푹 내쉬고 말았다.

점점 멤버들의 평균적인 성격이 힘찬이와 비슷해져 가는 게 기분 탓일지 아니면 팩트일지 매우 걱정스러워졌다.

갑자기 어디서 짠 내가 조금 나는 것도 같고.

하준 형이 석환 형과 연락하는 걸 바라보다 미뤄두었던 냥톡을 열어 수두룩하게 쌓인 메시지들을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과거 지환이와 깃털처럼 가벼운 친분이 있던 사람들의 메시지도 많았다.

채팅 목록에 살짝 보이는 내용들로만 유추해도 아이돌이 된 ‘나’에 대한 호기심, 기사가 사실이냐는 단순 흥미 같은 질문들이었기에 심신 안정을 위해 읽지 않았다.

그들의 메시지를 신경 쓰기에는 내 마음이 그렇게 넓지 않았다.

저번에 다 차단한 줄 알았는데 아직 더 있었네….

괜히 찝찝하게 두는 것보다 차단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나는 누군지 기억 안 나는 사람들은 빠르게 전부 차단 목록으로 보내버렸다.

그 후 이번 생에서 친분을 맺었던 사람들이 보내준 메시지를 하나씩 확인해보았다.

OST 때문에 알게 됐던 효정 누님의 생사 확인 메시지, 하겸 형과 단우 선배님이 보낸 생존 확인 메시지까지는 선배님들에게 예쁨받는 막내 느낌이라 웃으면서 확인하고 답장도 전송했다.

다만, 하나같이 언래블이 무사한지와 내가 숨은 쉬고 있는지를 묻는 뉘앙스라 어지간히 주변 사람들에게 허약하게 보이는구나 싶었다.

“나 그래도 근육 좀 붙지 않았어?”

“초반보다야 많이 붙었지. 근데 넌 좀 티가 안 나는 타입 같아.”

“겸이 형이랑 단우 선배님이 나보고 살아있냐고 보내셨어….”

“‘괜찮냐’가 아니라 ‘살아있냐’라니.”

운동도 꽤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째 별로 변한 건 없나 싶어서 찬이한테 물었더니, 자신은 그냥 다 괜찮냐고 묻는 내용들이었다며 나를 비웃었다.

이 새끼를 언젠가 내가 매우 조지고 말리라. 후.

찬이 뒤통수에 쿠션을 집어 던져 맞췄고, 익숙한 신음 소리와 함께 힘찬이가 뒤통수를 부여잡았다.

애들이 잠에서 깰까 싶어 큰 소리는 낼 수 없었지만 이 정도 응징이야 언제든 가능하지.

그런 우리 모습을 느긋하게 풀어진 채로 구경하던 하준 형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날아갈 듯 가벼운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왠지 너한테는 그렇게 해야 할 것 같기는 해.”

“준이 형…. 제가 그렇게 비리비리해 보여요?”

그리고 그 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하준 형 표정을 보아하니 대답은 이미 들은 것 같았다.

“그나저나 새벽 형들 누가 오신다는 거야?”

“톡방 안 봤어?”

“응. 그냥 말해줘.”

“가영 형이랑 키스 형이 얘기하시던데.”

“아, 군것질거리 사다 달라고 석환이 형한테 연락할까?”

“오늘은 그냥 막 다 먹는 날이야?”

어차피 집에 있는 거! 맛있는 거라도 먹어야 덜 억울하기라도 하지 않을까?

내 발언에 힘찬이가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과자 먹고 싶다. 아이스크림도.”

“난 좀 뭔가 상큼한 거 먹고 싶어.”

“커피나 마셨으면 좋겠다….”

각자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중얼거리던 우리는 결국 석환이 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평소 우진 형에게 이렇게 말하면 어림도 없는 소리 말라며 웃으며 철벽을 쳤을 테지만, 석환이 형은 우리랑 다니지 않아서 성격을 잘 모르는 상태였다.

더군다나 회사에서도 오늘은 되도록 맘 편히 그냥 쉬라고 두는 걸로 보아, 적당히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을 것 같았고.

“있다가 형들 오면 우리 피자 시켜 먹을까요?”

“난 치킨이 조금 더 땡기는데.”

“우리 인원을 봐 얘들아, 어차피 한두 판으로 안 되잖아. 둘 다 시키면 되지 왜 고민을 해.”

역시 참리더 민하준 님은 배우신 분이었다.

쓸데없는 우리의 고민을 이렇게 한순간에 깔끔하게 정리해 주다니.

신이 나서 맛있는 음식 이야기를 꽃피우던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세비 형 없는데 그럼 누가 말려?”

주어가 빠진 문장이었지만 깨어있는 사람들은 말려야 하는 그 누군가를 익히 잘 알고 있었던 터라 그저 웃고 말았다. 망했네.

어떻게든 되겠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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