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너나 잘해(6)
“얘들아! 고생 많았다!”
“우진 형! 우리 잘했어요? 어때요?”
“다들 실수 안 했지?”
무대 아래로 내려온 우리를 우진 형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양팔을 벌려 반겨주었다.
언제 오셨는지 팀장님과 실장님도 오셔서 웃고 있었고, 다른 스태프들도 우리를 향해 잘했다고 칭찬을 한마디씩 해주고 가셨다.
“그래, 잘했어. 이제 곡 수만 맞춰지면 콘서트 해도 되겠네.”
“진짜요? 우와!”
소현 팀장님의 칭찬은 우리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라, 우진 형을 껴안고 폴짝폴짝 뛰던 멤버들이 그대로 우르르 소현 팀장님과 정윤 실장님에게 달려가, 두 분을 껴안고 폴짝폴짝 뛰었다.
“얘들아, 진정 좀 해봐!”
“지환아! 너는 뛰면 안 되지!”
우리가 그렇게 달려들지 몰랐던 두 분은 우리를 진정시키려 애썼고, 그 와중에 정윤 실장님은 내 다리를 걱정하며 나를 붙잡아 어디든 앉히려 했다.
하지만 너무 흥이 올랐던 우리는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렸고, 그 후 나는 다시 스태프분들에게 끌려가 다리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나중에 팀 닥터를 구해야 하나 걱정이라니까, 진짜.”
“에이, 설마 제가 그 정도로 자주 다칠까 봐요.”
“넌 그럴 것 같아서 문제야, 이 녀석아! 조심조심 좀 다녀.”
다행히 다리는 무사했다. 내일까지만 조심하고, 월요일에 병원에서 어떤 처방을 내리는지 지켜보자고 했다.
“자, 내일 하루 더 해야 하니까 오늘은 간단하게 밥 먹고 부산으로 이동합시다.”
“저희 기차 타고 가요?”
“아니, 원래 너희 차 타고 가면 돼. 기차보다 잠자기 편할 거야.”
긴장이 좀 풀린 건지 멤버들은 조금씩 몸에 힘을 빼며 화장을 지우고, 편한 의상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아, 배고파요. 밥 먹고 잤음 좋겠다.”
“먹고 바로 누우면 소 된다.”
“아니, 무슨 할아버지세요?”
그 와중에도 멤버들의 입은 쉬지 않았다.
그냥 몸만 가만히 있는 거라 조잘거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포잉이 조금 질린 듯이 물었다.
‘쟤네는 안 피곤한 거임? 미친 체력?’
‘아냐, 저렇게 말하면서 바짝 긴장했던 신경을 풀고 있는 거야. 워낙 긴장했어서 오늘 몸 안 풀고 자면 다 근육통 생길걸?’
‘흐음… 그렇다고 해두자.’
포잉이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하나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상처는 받지 않았다. 나도 반쯤은 그렇게 생각하니까.
멤버들은 평소에도 말이 많기는 했다. 하지만 나라도 우리 애들이 그런 이유들로 더 열심히 장난치고 말하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 주기로 했다.
일단 나는 더 말을 할 기운도 없어서 해탈한듯한 표정으로 이제는 의상을 갈아입고 뛰어다니는 멤버들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일단 힘내려면 고기지! 고기 먹자!”
“우와! 고기 만세!”
“갑시다!”
소현 팀장님의 외침에 대기실 안에 있던 모든 스태프들이 기운차게 고기를 외쳤고, 우리도 함께 외쳤다.
고기 만세!
“이거까지 찍어서 SNS에 사진 올리자!”
“찬이가 하면 해시태그가 불안하니까 하준 형이 하자.”
“일단 찍어!”
우리끼리 한 테이블에 몰아주신 덕분에 나는 고기를 열심히 굽고 있었고, 그 와중에 찬이의 발언으로 팔이 긴 경환 형이 단체 사진을 찍었다.
굳이 따지자면 영빈 형 팔이 더 길지만 그 형은 셀카도 망하는 형이라 사진은 부탁하지 않기로 했다.
공연 직후 단체 사진과 지금 뒤풀이 때의 단체 사진을 함께 준비한 경환 형이 짧은 코멘트와 함께 사진을 업로드했다.
“이제 맘 편히 실컷 고기 먹자!”
자리를 배정받고 고기가 구워지기 시작하자 우리는 두셋씩 뭉쳐서 다른 스태프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러 돌아다녔다.
데뷔 쇼케이스를 진행하기 전, 하준 형은 한번 우리를 모아놓고 이렇게 얘기했었다.
사무실과 현장에서 고생하시는 스태프분들한테는 우리가 먼저 다가가고 고맙다고 인사드리라고.
그분들이 열심히 힘써주시는 덕에 우리가 멋진 무대를 할 수 있는 거라고, 우리에게 꼭 잊어버리지 말고 감사 인사를 하라고 했었다.
그래서 항상 언제 어디서든지 스태프분들을 보면 모르는 얼굴이어도 먼저 인사하고 고개 숙였다. 덕분에 오늘 고생해 주신 우리 스태프분들과도 어느샌가 친해져 있었다.
함께 커나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서 뿌듯해졌다.
오늘도 자꾸 상추와 깻잎으로 싸우는 중생들 덕분에 중도파인 나와 하준 형은 명이나물과 다양한 쌈 채소를 고기와 흡입했다.
냉면도 먹고, 된장찌개에 밥도 먹고.
다양하게 먹는 게 좋았던 우리는 서로 시킨 걸 나눠 먹었고, 고깃집 아이스크림으로 행복한 입가심까지 끝냈다.
“바로 숙소로 이동할 거니까 도착해서 보자.”
“네!”
숙소로 정해주신 호텔 침대가 엄청 푹신해서 좋았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트레이너 쌤에게 끌려간 우리는 다 같이 몸풀기로 간단한 운동을 했다.
그 후에야 방에 들어갈 수 있었고, 뜨거운 물에 푹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나는 포잉과 함께 침대의 감촉을 즐기며 열심히 뒹굴뒹굴하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푹신한 침대와 부들부들한 포잉의 털.
이런 게 바로 행복 아닐까?
이대로 그냥 잠들면 좋겠다는 생각에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누구세요? 하고 외쳤더니 세빈이 목소리가 들렸다.
“세빈아, 무슨 일….”
문을 열었더니 보이는 건 멤버들이었다.
본능처럼 빠른 속도로 문을 닫아버렸더니 이번엔 핸드폰이 미친 듯이 울기 시작했다.
우리 준이 형 [환아, 문 열어줘.]
내 동생[형? 왜 문….]
모지리 [야!]
모지리 [지환아]
모지리 [문 열어!]
모지리 [문!]
모지리 [무운!!!!]
[안돼. 돌아가]
우리 빈이 형 [형이 간식 사 왔다.]
주르륵 올라가던 메시지를 모른척하려던 찰나, 빈이 형의 한마디에 어쩔 수 없이 나는 슬그머니 문을 열어주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히죽거리며 들어오는 멤버들 모습에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포잉, 시끄러워도 이해해….’
‘익숙함.’
포잉이 무덤덤하게 내뱉는 익숙하다는 그 한마디가 왜 이리 슬픈지….
어느새 테이블 위에는 간식거리와 음료수가 놓여 있었고 모두가 각자 편한 대로 앉아서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뽀송뽀송한 걸 보니 씻고 먹을 것부터 챙긴 모양이었다.
“씻고 나니까 또 배가 고픈 것 같더라고. 그래서 우진 형이랑 먹을 것 좀 사 왔어.”
“우진 형은?”
“운전하느라 피곤했는지 방에서 쉬신대.”
“같이 먹음 좋을 텐데.”
형은 우리랑 노는 것보다 잠이 소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잠들기 전까지 내 방에서 뭉개던 멤버들은 결국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자기 방으로 흩어졌다.
‘이제 자자….’
‘고생 많았다, 계약자야.’
비몽사몽 한 와중에도 문단속을 철저히 한 나는 그대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아침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었다.
그리고 푹 잘 잔 덕분인지 다음날 우리 팬 사인회도 별다른 사건이나 사고 없이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어제보다 질문이 조금 더 디테일해져 있었고, 10명뿐인 번호표에는 더 많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번호표를 뽑은 솜뭉치는 모든 순서가 끝난 후에 멤버들과 함께 폴라로이드로 사진을 찍어줬는데 그게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오늘 보인 솜뭉치들은 옷에 이번에 굿즈로 판매한 가면 모양의 배지를 차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보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다양한 머리띠를 들고 온 솜뭉치들도 많았다.
알아도 모르는 것으로 하자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 때문에 힘찬이에게 환히 웃으며 커다란 리본이 달린 머리띠를 건네는 솜뭉치 모습에 애써 시선을 돌리기도 했다.
그리고 나에게 귀여운 고양이 인형을 선물해 준 솜뭉치가 있어서 고맙다고 웃으며 인형을 폭 끌어안았더니, ‘역시 호랑이는 아닌 것 같아요.’라며 만족한 웃음을 지어서 나를 슬프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 팬 송을 부를 때, ‘내 이름을 불러줘, 알고 있잖아.’라는 파트에 솜뭉치들이 ‘언래블!’이라고 외치는 모습에 결국 눈물이 몇 방울 흘렀지만, 금방 멈춰 다른 사람들은 못 본 것 같았다.
‘위험했어….’
‘너는 마음이 너무 약한 게 탈임.’
‘그치만 그건 내 노래였잖아.’
졸업식처럼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남의 곡을 빼앗은 게 아니라, 내가, 언래블이 솜뭉치들을 생각하며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만들어낸 정말 우리 노래였다.
알려준 적도 없는 노래에 이렇게 찰떡같이 대답을 해주니 심장이 울렁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포잉에게 열심히 설명했지만 시큰둥한 반응만 보여줬다.
드디어 모든 일정이 끝나고 돌아온 우리 집, 숙소는 언제나처럼 편했다.
바닥과 한 몸이 된 멤버들의 자세가 날이 갈수록 자유분방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힘찬이 배 위에 머리를 얹었다.
“너는 왜 자꾸 베개 냅두고 내 배 위에 눕냐.”
“높이도 두께도 딱임.”
“너 목 꺾일 거 같거든?”
결국 데굴데굴 굴려져서 바닥에 널브러졌지만, 세빈이가 금방 베개를 머릿밑에 받쳐줬다.
“넌 세빈이 1/10만큼만 착해 봐라.”
“네, 다음 세빈이 어머니.”
“이것들은 도대체 언제 철들런지.”
하준 형이 나와 힘찬이가 투닥거리는 걸 언제나와 같이 허허로운 웃음을 머금고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안타깝게도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듣지 못한 것으로 하기로 했다.
“이제 이 집이랑도 얼마 안 남았네요?”
“그러게. 다음 주에 이사한다고 했지.”
“우린 정말 짐 안 싸도 돼요?”
“포장 이사래. 쓰레기만 미리 다 버려두라고 하시더라고.”
“와, 정말 좋은 세상이야….”
이번에 이사 가는 집은 방이 3개여서 2명씩 방을 같이 쓰기로 했다.
룸메이트는 어떻게 정할 것인지 고심하던 우리는 결국 운명에 맡긴 체 사다리 타기를 눌렀다.
“난 다시 한번 신이 내 편이 아닌 걸 깨달았어….”
“난 내 룸메 마음에 드는데.”
힘없이 중얼거리는 힘찬이 모습에 하준 형이 예의 그 미소와 함께 찬이 어깨를 두드렸다.
힘찬이는 이번에도 하준 형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아마 새로운 숙소에서 사는 동안에는 조금 사람답게 개조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나는 경환 형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고, 영빈 형은 세빈이랑 같은 방이 되었다.
누구랑 같은 방이 되어도 좋았던 나였기에 결과에는 불만이 없었고, 힘찬이를 제외한 모두는 만족했던 결과였다.
“이사 갈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이사 가는 건 처음이에요.”
“아마 우리 다 처음 아닐까….”
사진으로만 봤던 집이지만, 우진 형과 소현 팀장님이 알아서 한다고 하셔서 큰 걱정은 없었다.
어련히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는 마음 반, 귀찮은 게 싫다는 마음 반 정도?
“빨리 열심히 곡 작업 해서 콘서트 하고 싶다.”
“나도.”
“맞아, 조금 더 힘들어도 참을 수 있으니까 콘서트 하고 싶다….”
다음으로 내는 앨범이 미니 앨범으로 확정 난 뒤라 아마 앨범이 한 개에서 두 개는 더 나와야 콘서트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곡수가 나올 것 같았다.
피처링 한 곡도 있고 OST 곡도 있지만, 아직 한참이나 모자랐다.
콘서트 주제에 맞춰 곡을 고르면 더 부족할 테고.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는 내 아이돌의 목소리를 듣고 무대하는 보고 싶어 하는 팬들과의 축제다. 어설픈 준비로 실망시키는 것 보다는 철저히 준비하고 만나는 게 훨씬 나았다.
머리로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자신에게 주지시키며 조급해하지 말자고 다독였다.
친한 가수들을 게스트로 부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친하다고 할만한 가수는 새벽 형들과 하겸 형 정도였고, 솜뭉치들이 그런 무대를 좋아할지도 의문이었다.
당장 내가 갔던 콘서트들도 언래블이 모든 무대를 채우는 콘서트였으니까.
“조금만 더 열심히 하자. 우리 솜뭉치들이 얼마나 열심히 따라 부르는지 봤잖아.”
“맞아…. 마지막 이야기 가사를 다 외워올 줄은 몰랐어요.”
“솜뭉치들이 힘찬이 보다 가사를 잘 외운다니까.”
“와, 너무하네! 나 안 틀렸는데!”
다행히 행복하게, 즐겁게 무대를 마친 우리들은 밤늦도록 앞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무대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평소에 모습이야 어쨌든 간에 무대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멤버들 모습은 아주 조금이지만 멋있었던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