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85)화 (85/456)

85. 우연이 아니야(6)

“고생하셨습니다.”

“언래블, 또 봅시다.”

오늘은 무슨 인터뷰의 날인가 싶었다.

무사이 팀에서는 내 개인 인터뷰를 따갔고, 넌지시 물어보니 데미갓 쪽도 인터뷰가 끝났다고 했다.

조만간 홍보용으로 쓸 영상이 나온다고 하는 말을 전해주는 스태프의 얼굴에는 나를 향한 호감이 서려 있었다.

늘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굴려고 노력했던 언래블과 인기가 생기자 건방져진 데미갓의 대립.

한참 선배인 그룹이 이제 막 데뷔한 신인 그룹을 핍박한 이야기는 서로 말하지 않을 뿐 다들 흥미롭게 지켜봤을 게 뻔했다.

다행히도 우리가 착실하게 굴었던 만큼 아직까지는 적이 없었고, 두루두루 좋은 이미지를 조금씩 쌓고 있었던 덕에 다리를 다쳐서 여러모로 손해 보고 있는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팬 사인회와 리얼리티 방영에 대한 인터뷰도 진행되었다.

별일 아니더라도 꾸준히 기사라도 내보내서 아주 조금씩이라도 언래블이라는 그룹이 있다는 사실을 표시해야 했다.

막바지로 다가온 팬 사인회를 위해 멤버들은 몇 번이고 동선을 맞추고 편곡한 곡의 파트를 다시 한번 체크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던 나는 의자에 앉아 노래하며 멤버들의 춤을 봐주는 역할을 했다.

“찬아, 반 박자 빨라! 영빈이 형, 왼쪽으로 너무 치우쳤어요!”

“누가 쟤 입 좀 막아라!”

“경환아, 죽겠으니까 너부터 조용해!”

“에헤이, 준이 형 또 주춤한다?”

“너 다리 다 낫기만 해!”

“하하, 다 낫기 전까지 계속 채찍질 해드릴게요!”

멤버들은 죽어라 땀 흘리는 동안 의자에 앉아있는 내 역할이 편해 보이기도 했지만, 모두들 내가 좋아서 그러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더 자주, 더 많이 연습하면서도 끊임없이 서로에게 말을 걸었다.

가서 같이 뛰려면 뛸 수는 있었다.

수천 번도 넘게 연습했고, 꿈에서도 연습했던 안무였다.

팬들에게 자주 보여줄 수 없어서 우리 모두 팬 사인회라고 부르지만 팬 미팅에 가까운 이 공연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그 무대에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내 속이 편할 리 없었고, 멤버들도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내가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계속 말을 걸고 질문을 던져왔다.

춤 연습이 끝나고 바닥에 널브러진 멤버들에게 생수병을 하나씩 던져주니 잘도 받아 챙겼다.

“아고고… 삭신이 쑤셔 죽겠네, 진짜.”

“그러게 누가 거기서 틀리래.”

안무를 담당하는 제영 쌤의 지도하에 편곡한 노래에 맞춘 안무 연습을 새로 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마지막에 경환 형이 쇼케이스 때 동선이랑 착각하는 바람에 막판에 불호령이 떨어졌다.

재영 쌤은 나에게 감독의 역할을 맡기며 완벽하게 맞을 때까지 계속 반복하라는 숙제를 남기고 떠났다.

“어떻게 된 게 한 명이 고치면 다른 한 명이 틀리냐, 진짜.”

“제 말이요….”

내가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자 옆에서 숨을 할딱이던 세빈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끝낸 게 어디야, 난 이대로 오늘 숙소에 못 돌아가는 줄 알았어.”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하준 형의 말에 영빈 형은 말없이 물만 벌컥벌컥 마셨다.

“아, 오늘 그 영상 공개될 텐데.”

“그 애니 말하는 거지? 쪼꼬미들 나오는 거.”

“오늘 자정이었던가?”

“솔직히 조금 기대되죠?”

“우리 이제 리얼리티 찍으면 막 여행도 가고 하나?”

다들 그동안 주변에 다른 아이돌들이 어떻게 하고 뭘 찍는지 봐온 짬들이 있어서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숙소에서 지내는 모습, 게임 하는 모습, 연습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다른 장소로 여행도 가고 거기서 바베큐 파티도 하는 그런 모습들을 봐왔으니 우리도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들.

솔직히 이전 언래블에게는 없었던 프로그램이라 나도 조금 설레기도 했다.

짧게 활동이나 숙소 생활을 자체적으로 위캠에 올려주는 영상들은 있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을 짜는 건 없었으니까.

“다 잘됐으면 좋겠다.”

“잘될 거야. 그러니까 열심히 하자.”

내가 버릇처럼 중얼거리자 숨을 고르며 바닥에 앉아있던 경환 형이 덤덤하게 내 말을 받아줬다.

형들은 입버릇처럼 늘 얘기했다.

열심히 하자, 우리가 열심히 하면 돼.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모르는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노력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그런 말로 나에게는 다가왔다.

다행히 회사도 우리를 열심히 서포트 해주려고 했고 멤버들도 열정이 넘쳤다.

좋은 인연을 맺은 연예계의 선배님들도 있었고,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응원해주는 팬들도 눈에 보였다.

“그만 쉬고 이제 각자 연습하자.”

“예압!”

“으으… 죽겠네.”

우리가 이번 주말에 있을 팬 사인회만 하고 끝인 것도 아니었고, 앨범 준비도 해야 했다.

요새 들어 찬이랑 세빈이는 보컬 레슨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영빈 형은 체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운동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하준 형과 경환 형, 나는 팀 연습이 끝나면 작업실에 틀어박혀서 숙소로 돌아가기 전까지 곡 작업에 모든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다는 것을 저녁 먹으러 다시 모였을 때 우진 형을 통해 알게 되었다.

“오늘 OST 공개 날이잖아, 이놈들아.”

“아….”

“맞아, 그러네?”

“어떻게 아무도 모를 수가 있지?”

“환이 형 미안해요!”

“아냐, 나도 까먹었어….”

매일매일이 전쟁 같이 빵빵 터지는 일들에 치이다 보니 정작 발매 당일에는 멤버들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곡을 만진 나조차도….

“이놈들아, 정신 안 차릴래.”

“하하…. 솔직히 하루하루 제정신이 아닌 거 같아요.”

우진 형이 혀를 차며 말했고 나는 조금 넋을 놓은 상태로 중얼거렸다.

무언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움직이려고 하는데, 그게 늘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아니, 생각해보면 내 마음대로 된 일이 몇 가지나 될까?

“드라마가 인기 있으니까 OST도 잘될 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퍼온 밥을 먹으며, 멤버들은 곧 공개될 OST가 잘되길 빌었다.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공개되는 곡이지만 졸업식은 그때도 숨겨진 명곡이라고 불렸으니까. 그러니까.

드라마의 인기에 좀 업혀 가는 게 남들 눈에는 치사해 보이려나 싶다가도… 우리가 곡을 편집했고 노래도 우리 애들이 불렀다.

그러면 우리 애들 지분이 51%쯤은 된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49%는 드라마 덕이라고 하고.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부지런히 밥을 먹고, 그 후 시간도 부지런히 머리를 싸매며 보냈다.

반응을 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잘되면 잘되는 대로, 안되면 안되는 대로 가슴이 너무 울렁거릴 것 같아서.

어찌 되었든 내 이름으로 작사, 작곡이 올라가는 첫 곡이라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기분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다.

‘에단 쌤, 미안해요.’

에단이 만들었던 뼈대 위에 겉가죽과 속살은 거의 다 바뀌어버린 졸업식이 이번에는 내 이름을 달고 세상에 공개되는 오늘, 나는 심하게 속이 울렁거려서 결국 먹은 걸 모조리 게워내고 말았다.

생각이 너무 많았던 탓인지 긴장을 너무 많이 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온몸에 힘이 쭉 빠져버렸다.

눈을 감아도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소리마저 잡아먹을 짙은 어둠뿐이었다.

“이렇게 속이 약해서 어쩌려고 그러냐.”

“처음이니까 그런 거겠죠?”

“병원 안 가도 되겠어?”

“손 따줄까?”

결국 숙소로 돌아와 씻고 거실 바닥에 널브러졌더니 파리해진 내 안색에 우진 형이 숙소에 남았다.

혹시라도 상태가 안 좋아지면 바로 병원에 가야 한다면서.

그 옆에는 멤버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체한 건지 아니면 그냥 진짜 멀미 같은 건지 모르겠는데 자고 일어나면 낫지 않을까요?”

“그래도 약은 먹자.”

우진 형은 능숙하게 거실에 있던 서랍장에서 상비약을 꺼내왔고 세빈이가 쪼르르 냉장고로 달려가 물을 꺼내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첫날 내가 집은 검정 티가 세빈이 거라고 알려주던 우진 형의 모습이 떠올라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내가 멤버들을 부추겨 숙소를 직접 정리하고 신경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소현 팀장님도 우진 형도 숙소에서의 일은 우리 자율에 맡겼다.

우리가 한 행동들이 신뢰를 쌓은 것 같아, 그 허락을 받던 날 우리는 꽤 즐거워했었다.

“형, 핸드폰 계속 울린다.”

“내 핸드폰은 맨날 이래.”

우진 형이 투박스러운 손길로 염려를 담아 손을 계속 주물러 줬다. 민간요법이라면서 엄지랑 검지 사이를 꾹꾹 누르는데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와서 금방 세빈이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형 안 죽었다, 세빈아.”

“형이 자꾸 다치고 아프니까 그러죠.”

“니가 오죽 허약하면 막내가 저러냐.”

“아니, 사고는 내 탓이 아니잖아요?”

뚱한 얼굴로 내가 항변했지만 멤버들이 걱정해서 곁을 못 떠나고 있단 걸 알아서 일부러 더 틱틱거렸다.

경환이 형은 자기 쿠션을 가져와 내 머리에 받쳐줬고 영빈 형과 하준 형은 지금이라도 이놈의 자식을 병원에 데려가야 하지 않을까, 하고 수군거렸다.

“그… 마시는 거 마시면 금방 내려가던데, 그거 사 올까?”

힘찬이는 당장 문밖으로 튀어 나갈 것처럼 옆에 앉아서 이것저것 계속 필요한 게 없는지 묻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이 모습이 너무 웃겨서 나도 모르게 피식거리고 웃었더니 우진 형이 한숨을 푹 내쉰다.

“얘는 다들 긴장하는 장소에서는 멀쩡하더니 갑자기 왜 이러냐. 너 진짜 별일 없는 거 맞아?”

“넵. 맞아요. 그냥 진짜 처음 제가 손댄 곡이라 너무 긴장해서 그래요. 우리 앨범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거 한 곡만 덜렁 나가는 거라.”

“반응 안 궁금해?”

“지금은 안 듣고 싶어요. 어느 쪽이든 들으면 잠 못 잘 거 같아서.”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이자 입술을 달싹이던 우진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때문에 형도 회사에서 오는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하고 옆에서 지키고 있었던 거니까.

“형, 저 괜찮으니까 집에 가요. 어떻게 된 게 맨날 야근이야.”

“그만큼 돈 받고 일하는 거다, 이놈들아. 지환이 좀 괜찮아지면 갈 거야. 얘나 빨리 재우자.”

찬이가 우진 형을 쿡쿡 찌르며 집에 가서 쉬라고 종용했지만 지나치게 성실한 우리 우진 형은 우리만 두고 집에 가기 뭐하다고 버티고 있었다.

안 그래도 약 효과인지 아니면 기력이 빠져서인지 눈이 점점 가물가물해져 갔고, 나는 몽롱한 정신으로 우진 형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나 오늘은 그냥 거실에서 잘래. 찬아, 이불만 가져다줘.”

“아프니까 봐준다, 진짜.”

툴툴거리면서도 내가 늘 덮고 자던 이불을 끌고 나온 힘찬이는 투덜대는 입과 달리 조심스럽게 내 몸에 이불을 덮어줬다.

그동안 좀 지쳤던 걸까?

늘 가슴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죄책감은 별거 아니라고, 난 뻔뻔하니 괜찮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속에 든 걸 다 비우고 나니 너무 지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솔직히 회사에서 숙소로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았고.

“나 잘게. 우진 형 잘 가요. 다들 고마워, 잘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바라보던 포잉이 웅크린 내 품 안으로 들어왔다.

‘계약자야, 너는 몸이 너무 약하다.’

‘그런 거 아냐. 괜찮아.’

눈 안에 우주를 담고 있던 내 요정님이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뺨을 핥아주었다.

까끌까끌한 느낌이 간질거리기도 했고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주변에서 중얼거리는 멤버들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그렇게 푹 잠들어 버렸다.

틀어놓은 선풍기 바람은 다행히 선선했고, 이불 안쪽 내 품에 기대있는 포잉은 따뜻했다. 간간이 서로 다른 느낌의 손이 내 이마를 짚어보는 느낌을 자는 중간중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곧 아주 깊은 잠에 빠졌다. 모처럼 아무 생각 없이 꿈조차 꾸지 않는 밤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