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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54)화 (54/456)

54. 날아올라(5)

우연이라기에는 조금 공교롭게도 지하 주차장에서 데미갓 멤버들과 그 매니저를 마주쳤지만, 다행히 깔끔하게 예의 바른 인사를 한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망둥이와 개미핥기가 지네 멤버들에게 무어라 씨불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우리를 보는 시선이 달갑지 않았던 건 분명했다.

왜, 뭐, 꼽냐?

오랜만에 전투력이 올라가는 느낌에 나는 비실비실 웃어주었다.

아무래도 내가 박세날 PD나 다른 출연진들에게 칭찬 들은 게 못마땅했던 것 같았다.

‘저 해산물 파티처럼 생긴 인간들을 따라가서 염탐하라는 게 맞음?’

‘응, 맞아. 적당히 우리 얘기 나오는지, 방송국 얘기 나오는지 조금 들어보고 와줘.’

‘하아…. 계약자 놈아, 네가 잊었을까 봐 다시 한번 말해주는 거지만 난 요정임.’

‘내 요정님 파이팅!’

세상 다 산 것 같이 터덜터덜한 걸음으로 그들의 벤에 올라타는 포잉의 뒷모습이 조금 짠했지만, 그저 웃어주었다.

“뭐 재밌는 일 있나 봐.”

“네?”

그냥 얌전히 갈 길 가는 줄 알았더니, 망둥이가 무언가 못마땅했는지 눈썹을 꿈틀거리며 한마디 툭 뱉었다.

그 와중에도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없는지 빠르게 양쪽을 살피는 모습이 진짜 딱 망둥이를 닮았다.

아, 그러니까 지금 내가 포잉 보고 웃은 걸 자기 보고 웃었다고 생각하고 저러는 거구나?

“어지간히 빨아대던데 잘 돼야지. 안 그래?”

“적당히 하고 가라.”

그런 내 앞을 하준 형이 막아섰다. 눈으로 보진 않았지만, 뒤에서 힘찬이 울컥하는 걸 다른 멤버들이 누르고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하준 형의 앞에는 우진 형이 서 있었다.

“더 이상 무례한 행동은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무례는 그쪽 새파랗게 어린 후배들이 했지. 선배들 앞에서 나대길 어딜 나대.”

“태성아, 그만해. 안 그래도 시간 간당간당하다.”

여태까지 보고만 있던 그쪽 매니저도 한발 앞으로 나서더니 망둥이를 등 떠밀어 벤에 태우고, 우리 매니저를 위아래로 훑더니 피식 웃으며 돌아섰다.

“저희 애들은 그쪽만큼 한가하지 않아서 더는 못 어울려드리겠네요. 소속 가수 단속 좀 잘하셔야겠어요.”

“그쪽 가수분들 입부터 잘 단속하시는 게 좋겠네요.”

냉기 풀풀 날리는 두 매니저가 각자 자기 가수들을 챙겨서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차 문이 닫히자마자 우진 형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작게 무어라 계속 중얼거렸고 씩씩거리는 힘찬을 영빈 형이 토닥여줬다.

“잘 참았어. 거기서 우리가 뭐라고 해봤자 건수만 주는 거야.”

“선배면 선배답게 굴어야지 어디서 뒷골목 양아치같이 굴어!”

“뒷골목 양아치는 잡아 패기라도 하지.”

“너희 말조심해.”

끝도 없이 나오는 불만에 결국 우진 형이 한마디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는 연예인이고 공인이니까.

그 뜻을 알고 있는 모두는 굳게 입을 다물었고 조용한 가운데 숙소로 돌아왔다.

그나저나 이렇게 적나라하고 추잡하게 나오는 하수일 줄은 몰랐는데.

* * *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힘찬이 분노에 차 포효하며 자기 베개를 폭행하는 동안, 우리는 고개를 내저으며 하루 종일 고생한 얼굴 근육을 풀어줬다.

“와, 진짜 종일 웃고 있는 거 되게 힘든 일이네요.”

“우리 솜뭉치들 볼 때는 절로 웃음이 나와서 몰랐어….”

중얼거리며 버릇처럼 바닥에 얼굴을 대고 있는 경환 형의 뒤로 세빈까지 납작하게 늘어져 버렸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벌써부터 그렇게 진 빠져 하면 어떡해.”

“적응해가는 거지, 뭐.”

모든 사람들 앞에서 감정을 숨기고 그럴듯하게 상황에 맞추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어서, 다시금 모든 감정노동자들을 존경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나저나 우리 지환이가 립 서비스 잘하는 줄 몰랐는데.”

이제야 감정을 좀 추스렸는지 내 옆에 털썩 주저앉은 힘찬이 조금 개운해진 얼굴로 말을 붙이길래, 난 다시 쓱 옆으로 밀어버렸다.

“립 서비스는 돈 안 들잖아. 좋게 말해서 나쁠 것도 없고.”

바닥에 눌어붙은 경환 형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나를 조금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 자세로 바라보는 건 썩 그렇게 와닿지 않는데.

“그나저나 그 망둥이같이 생긴 놈은 왜 형들이랑 우리한테 그렇게 열폭해요?”

“망둥이?”

“네. 그 눈 도륵도륵 굴리면서 폴짝거리는 물고기요.”

“풉! 아, 대박. 방금 상상됐어. 싱크로율 쩐다.”

내 표현이 너무 찰떡이었는지 평소엔 크게 감정 표현을 하지 않던 영빈 형까지 입을 떡 벌리고 크게 웃기 시작했고, 힘찬은 이미 박장대소 중이었다.

우리 위아래층에서 시끄럽다고 신고 들어오면 전부 최힘찬 탓이다.

“아, 진짜 나까지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해도 돼요. 우리끼린데 뭐 어때.”

“큼, 우리 지환이가 관찰력이 뛰어나구나.”

“이 정도야 보통이죠.”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하는 내 모습이 스위치가 된 건지 다들 웃느라 바빴다.

“우리끼리 숙소에서야 별 얘기 다 해도 밖에서는 절대 그러면 안 된다?”

“에이, 당연한 말씀을 왜 그렇게 분위기 잡고 하신대요.”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야 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아직 깨우치지 못한 힘찬은 또 까불다가 등짝을 얻어맞았다.

“전에 회사에서 같이 데뷔 준비하던 애들인데 좀 질이 안 좋아.”

“예를 들면?”

“대표이사 아들이라 좀 개념이 많이 부족했거든.”

“좀이 아니라 그냥 없는 것 같던데요?”

“아까 미팅 때 혼자 계속 표정 안 좋던데.”

이제야 다 웃은 건지 빨개진 얼굴에 부채질을 하던 영빈 형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곤 벽에 툭, 지친 몸을 기댔다.

“거기도 원래 그러지 않았었는데… 외부에서 왔거든, 그 이사가.”

“그런데 그 사람이 영 별로였나 보네요.”

“회사 분위기 자체가 아예 바뀌어버렸으니까.”

그래도 의아한 점은 해결되지 않았다.

회사 분위기 바뀌고 낙하산 생기는 거야 그럴 수 있는데 왜 하준에게 그렇게 열폭하는 거지?

“걔 원래 데뷔 멤버 아니었죠? 옆에 개미핥기도.”

“개, 개미핥기?”

“얼굴 좁아가지고 주둥이 길고 얍삽하게 생긴 게 개미핥기랑 닮았던데요?”

제발 어디 가서 그런 얘기 하지 말라는 하준 형의 말에 건성건성 고개를 끄덕인 나는 다시 형을 채근했다.

옆에서는 웃겨 죽는다는 힘찬과 경환 형의 웃음소리가 배경음같이 들려왔다.

“맞아. 최태성이랑 최진웅 둘 다 나중에 대표이사 입김으로 들어온 애들이었어. 포지션 넣기도 애매하고 여러모로 내가 회사 마음에 안 들었나 봐. 그래서 자르더라고.”

“에? 형들 랩이랑 노래를 포기할 만큼 잘해요?”

“아니. 그냥 돈 처바른 거지 뭐.”

자포자기한 듯 한숨과 함께 속에 꾹꾹 눌러놨던 과거 이야기를 하는 하준 형의 모습에 내가 다 열이 뻗쳤다.

“아니, 아이돌이 장난이야? 와 세상 진짜 쉽게 사네.”

“누군 죽어라 뛰고 연습하는데.”

떨떠름하고 못마땅한 건 모두가 같은 마음일 터.

데뷔 하나 보고 죽어라 매달리지 않았던 사람은 이 자리에 나밖에 없었다.

물론 이전 지환이는 매달렸고, 나도 내 딴에 최선을 다했으니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탈락할 뻔한 내 처지를 바꾼 건 순전 행복한 수면 시간을 포기한 내 노력이었다.

하준 형과 영빈 형은 사고 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그 순간 마음을 먹었다.

걸려오는 싸움이라면 어떤 치사한 방법을 쓰더라도 이겨주겠다고.

“그래도 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뭐가?”

그건 그거고, 나는 솔직히 언래블의 팬으로서 지금 이 조합이 너무나 행복했다.

의아함이 깃든 또렷한 눈동자를 마주하자 왠지 가슴 한쪽이 뿌듯해지기도 했다.

렌즈를 빼도 흐리멍덩하고 찌들어서 기운 빠지는 시선을 가진 사람은 이 안에 아무도 없었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내 아이돌은 이렇게나 올곧고 선명한 눈동자를 가진 별들이었다.

“거기서 삽질해 줘서 형들이랑 우리가 만난 거잖아요.”

“와, 오늘 지환이 멘트 되게 괜찮네. 어디서 따로 교육받아?”

“너는 이래서 문제야!”

이런 꽁냥꽁냥한 분위기 자체를 못 견뎌 하는 힘찬이 기어코 또 한마디를 보탰다가 하준 형에게 등짝을 두 대 더 얻어맞고 바닥에 뻗어버렸다.

“그래도 얘들아, 우리는 늘 조심해야 해. 알지? 시건방진 후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요. 우리가 얼마나 예의 바르고 성실한 청소년인데. 안 그래요?”

걱정을 놓지 못하는 하준 형과 영빈 형의 시선을 받은 청소년 넷은 오랜만에 모두 마음이 통했는지 씩 웃었다.

“근데 우리 형들한테 열폭할 만 하긴 함.”

“어, 약간 인정?”

“실력도 외모도 인품도 아무것도 형들한테 안되니까 그럴 만도 하지.”

몸을 돌려 눕던 경환 형이 툭 뱉은 말을 힘찬이 바로 받았고 내가 몇 마디 더 얹었더니 영빈 형과 하준 형의 얼굴이 훅 달아올랐다.

“그만 까불고, 너희 안 씻어?”

“에이, 좋으면서 또 그런다.”

“우리가 더 열심히 뛰어서 걔네보다 더 크면 되지 뭐!”

“맞아! 이 바닥은 인기가 다 아닙니까!”

“얼른 들어가기나 해!”

벌게진 두 형들의 얼굴을 놓고 낄낄대던 우리는 결국 한 대씩 얻어맞은 다음에야 조용해졌다. 다행히 그사이 먼저 씻겠다고 들어간 세빈이의 등짝은 지킬 수 있었다.

그 후 씻고 나온 세빈은 입을 댓 발 내밀고 있는 힘찬의 모습에 혀를 차더니 조금 불퉁한 얼굴로 내 옆에 앉았다.

“내일부터 안무 연습 좀 더 빡세게 할까요?”

“응? 갑자기?”

“우리가 더 잘해야 우리 형들이 어디 가서 무시 안 당할 것 아니에요. 그러려면 연습해야죠.”

“세빈아, 세빈아. 우리 예쁜 막내야.”

“네, 형.”

“마음은 기특하다만 여기서 더 하면 우리 죽지 않을까?”

여태까지 예쁘고 착하기만 했던 세빈이가 갑자기 시니컬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요, 형.”

그렇게 세빈의 모습에서 키스의 그림자를 본 것 같아서 순간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우리 막내를 키우는 여정이 날로 험난해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 든 나는 즉각 행동에 들어갔다.

“혹시라도 쌤들이나 우진 형, 팀장님 앞에서 그런 말은 하면 안 된다?”

“악, 아파요! 형 그만!”

늘 어깨가 뭉쳐서 뻐근해하는 세빈이에게 안마를 선사했고, 아프다고 발을 동동 구르던 세빈이는 결국 항복을 외쳤다.

이 좁은 거실 바닥에서 무슨 일이 이렇게 매일 매일 생기는지 나도, 멤버들도 알 수 없었지만… 다행히 포잉이 돌아오기 전까지 우리는 꽤 화목한 분위기를 즐겼다.

거실에 모여서 그날 하루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레슨에 대해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다 같이 얘기하는 게 요새 우리 하루의 마무리 일과였다.

대화가 부족하면 오해가 생기기 쉽고 그로 인해 분란이 일어난다는 리더 선배님들의 조언에 따라 하준 형이 제의해서 생긴 시간이었는데, 우리는 꽤 만족하고 있었다.

나중에 지금보다 스케줄이 훨씬 많아지거나 개인 활동이 늘어나면 이런 시간들을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게 될 테니까.

“슬슬 자라. 늦었네.”

“다들 잘 자고, 아침에 제발 잘 일어납시다….”

대충 서로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넨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고 나는 철푸덕 침대에 누워 포잉이 어서 좋은 소식을 물고 오기를 기다렸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보아 꽤 들을 얘기가 많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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