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3)화 (23/456)

23. EVERYDAY(4)

자비 없는 공격을 퍼붓고 사라진 팀장님. 그 뒤에서 우리를 짠한 눈으로 보는 매니저 형에게 불쌍한 눈빛을 쏘아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리고 곧이어 유난히 신나 보이는 제영 쌤이 들어와서 손뼉을 치며 우리를 둘러보았다.

“병아리들, 몸 풀었지?”

“아, 쌤…. 병아리라고 하기엔 저희가 좀 크지 않아요?”

팀 내에서 제일 작은 세빈이가 170cm 정도였던가? 워낙 얼굴이 조막만 하고 팔다리가 길쭉길쭉한 애기여서 실제 키보다 더 커 보였다.

작은 편인 내가 176cm이다 보니 대체적으로 애들이 길었다.

아직 키가 크는 중이니 꼭 180cm까지는 컸으면 좋겠다….

멤버들의 덩치를 지적하며 병아리라는 호칭에 질색하는 힘찬에게 제영 쌤은 코웃음을 쳤다.

“달걀들이라고 안 한 걸 감사히 여겨. 겨우 이제 한 발짝 커서 병아리 해줬더니. 힘찬이 넌 달걀 할래?”

“달걀 괜찮은데요?”

“앞으로 내 시간엔 힘찬이는 달걀이다, 알았지?”

제영 쌤이 던진 먹이를 경환이 잘 잡아챘고 그렇게 우리 힘찬이는 달걀이 되었다. 제영 쌤한테 가뜩이나 찍힌 게 있는 것 같았는데 안쓰러운 녀석….

“우리 힘찬이 얼굴이 딱 맥반석 달걀이긴 해요.”

“그럼 우리 앞으로 찬이는 찐 달걀 할까?”

“잘모태씀미다…. 봐주세요….”

집중 공격에 파사삭 쭈그러든 힘찬이 불쌍한 척을 했지만 거기에 속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우리 찬이만 보면 맥반석 달걀이 그렇게 생각났던 게?

잠깐의 유쾌한 수다 시간으로 피해자 한 명이 생겼지만 그 외에 모든 사람은 즐거워했다.

그리고 그 후로 세 시간 동안 제영 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웃지 못했다.

“너네 운동 시작했다며. 아직도 요거하고 힘들어하면 어쩌냐.”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초 체력이 부족하다고 지적받은 후 우리는 매니저 형에게 우르르 몰려가 운동을 어디서 해야 했는지 물었다.

그런 우리를 매우 기특해하던 형은 회사 내의 피트니스 시설로 우리를 끌고 갔고 그날부터 트레이너 쌤과 함께하기 시작했지만, 고작 며칠 만에 체력이 좋아질 리가 없었다.

“그래. 힘들어도 꼬박꼬박 기본적인 운동이라도 해. 춤추는 거랑 운동하는 거랑은 달라.”

“넵!”

전날의 흐물거렸던 사람들은 어디 갔는지 전부 다 바짝 눈에 빛을 품고 죽어라 연습에 몰두했다.

프로필 촬영도 하고 영상도 찍는다고 했는데 이런 팅팅 부은 얼굴로 갈 수는 없다는 나름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얘들아, 지금 밥 먹고 아까 그 회의실 있지? 거기로 다시 모여야 된다. 팀장님이 전달 사항 있대.”

무슨 일인지 엄청 바쁜 매니저 형이 잠깐 쉬고 있던 우리에게 밥 먹으라고 하고는 또 사라졌다.

“김치찌개 먹고 싶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따라와.”

“아, 밥 먹고 거기 가면 왠지 체할 거 같은데….”

“그래도 지금 안 먹으면 밥 못 먹을 거 같은데요?”

김치찌개를 외치는 경환을 질질 끌고 먼저 앞장서는 하준의 뒤를 터덜터덜 따라가던 내가 중얼거리자, 세빈이가 먼저 조잘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렇지? 오후에 회사에서 안 찍을 거 같던데….”

“그래도 전 조금 떨려요. 프로필 사진 찍는 거.”

“우리 세빈이 귀여워. 괜찮아.”

“저도 멋있단 소리 듣고 싶은데요. 영빈이 형….”

세빈에게 힘을 북돋아 주려던 영빈의 멘트는 슬프게도 상처만 남기게 되었다. 우리는 누구보다 열심히 밥을 먹을 먹으면서도 끊임없이 자잘한 대화를 나누었다.

어제랑 똑같은 오늘인 줄 알았는데 말을 하지 않았을 뿐 모두들 무언가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다른 직원분들의 분위기도 그리고 우리 각자의 모습도.

앞으로 바쁘게 진행될 데뷔를 위해 모두가 직감적으로 몸에 긴장을 불어넣어 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소화제 안 먹어도 괜찮겠어?”

“아직 괜찮은 거 같아. 우리 뭐 혼날 거 없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회의실 갈 때마다 긴장되냐….”

우리는 회의실 가는 동안에도 소곤거리며 서로의 위장 안부를 물었다. 아침에도 거기서 대표님이랑 실장님을 만나고 왔는데 이번엔 팀장님이다.

아까 연습실에서 얘길 안 하고 따로 부른 걸 보니 뭔가 중요한 얘기 같았다. 지금으로써는 추측되는 게 너무 많다 보니 동생 라인은 약간 정신이 출타 중인 것 같아 보일 지경이었다.

“어, 왔어? 밥 먹었니?”

“넵…. 팀장님은 식사하셨어요?”

“조금 있다 먹어야지. 일단 앉아, 얘들아.”

한국인 특징이라고 했던가? 인사할 때 시간이 언제든 밥 얘기를 하는 게.

회의실 안에는 그대로 뒤돌아 나가고 싶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주춤거리던 애들이 서로 바싹 붙어서 앉는 모습을 보더니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우리가 좀 많이 하찮아 보였나 보다.

“애들이 왜 이렇게 잔뜩 긴장했어. 김 팀장님 이제 보니까 막 애들 달달 볶고 그런 타입이었어?”

“뭐래, 아니거든요?”

우리 팀장님을 놀리고 있는 사람은 전에 한번 본 적 있던 A&R 팀 팀장님이었다.

“오, 지환이네. 안 때려치우기로 했어?”

아, 제발요…. 지금 여기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

“형?”

“그만둔다 그랬어?”

“공지환!”

“그렇게 말한 적 없습니다! 아, 팀장님!”

와, 살 떨린다.

멤버들에 이어서 소현 팀장님까지 6명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칼날같이 날아와 박혔다. 시선이 어찌나 날카로웠는지 피부가 따끔거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

“클클, 지환이 입으로 그만둔다는 얘기는 한 적 없지.”

“하준 형, 이건 인간적으로 심문이 필요한 거 같슴다.”

“인정, 팀장님 저희 잠시 멤버들과 돈독한 시간을….”

“아니라구요! 팀장님 저 진짜 죽어요!”

필사적으로 김주영 팀장님을 바라보며 외쳤지만 저 인간이 작정했는지 불을 지피고 있었다.

갑자기 경환이랑 힘찬이 양쪽에서 내 팔을 잡더니 하준을 바라봤다. 그 와중에 세빈이만은 내 편일 거라고 믿고 바라봤지만… 이 자리에 내 편은 없는 것 같았다.

“얘들아, 그만해. 지환이가 그랬을 리 없지.”

“소현 팀장님! 역시 절 믿어주는 사람은…!”

“쟤 여기 그만두면 지 누나한테 맞아 죽을지도 몰라. 집에서도 쫓겨났거든.”

“헐, 대박.”

정말 아무도 내 편이 아니었다.

평소에 하준과 힘찬을 분위기 전환용으로 자주 몰아갔더니 다들 이날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달려들어, 그 후로도 한동안 괴롭힘을 당했다.

내 불쌍한 희생 덕에 회의실 분위기는 한결 화기애애해졌다. 이렇게 한 몸 희생하는 상황이 올 줄은 몰랐다…. 복수할 테다.

“자자, 장난은 그만하고 다시 앉아, 얘들아.”

이 장난에 불길을 쏘아 올린 김주영 팀장님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난 아직 하찮은 연습생인 관계로 참았다. 꼭 언젠가 복수한다.

“너희 아직 A&R 팀분들이랑 정식으로 인사한 적 없지? 앞으로 너희가 자주 뵙고 이야기도 많이 나눠야 할 분들이야.”

“안녕하세요!”

“그래그래, 우리는 소현 팀장님처럼 막 그렇게 들들 볶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 하하”

“쫌!”

“하하하….”

우리 팀장님이 회사 분들이랑 다 두루두루 친한 것 같아서 조금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제영 쌤도 트레이너 쌤도 다들 소현 팀장님에겐 친근하게 대했고 좋은 얘기만 했었다.

“대표님이 너희가 이번에 경연에서 무대 구성하고 편곡했던 게 인상 깊었나 봐. 데뷔 앨범의 컨셉 회의에 너희 참석 시키고 너희 얘기 많이 들으라고 하셨어.”

신 님, 계세요? 제 마음의 소리를 들으셨나요?

이전 데뷔 컨셉이 똥망이었던 걸 어떻게든 만회하고 싶었기에, 리더인 하준과 직접 곡을 쓰는 경환만이라도 컨셉 회의에 참석해서 우리 의견 좀 전달해 줬으면 했었다.

내 간절한 마음의 소리가 대표님의 마음에 전달된 모양이었다.

“일단 오늘은 윤곽만 잡을 거야. 너무 긴장하지 말고 너희는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은지 말해봐.”

“우리가 먼저 말을 꺼내면 거기 휩쓸릴 거 같아서 너희 얘기 먼저 들어보는 게 나을 거 같더라.”

두 팀장님이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시작하자 다른 멤버들도 고민에 빠져들었다. 데뷔 앨범에 따라서 흑역사를 생성하느냐 돌판에 이름을 좀 알리느냐가 많이 갈리기 때문에 쉽사리 입을 열기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총대를 맺다.

“저는 우리 팀이 앞으로도 쭉 가져갈 수 있는 그런 메인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성장 같은 거요.”

“성장? 그거 너무 흔하지 않니?”

“흔한데 그만큼 공감받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작곡이라는 걸 배우면서부터 계속 고민했던 문제였다.

사람들은 어떤 노래를 좋아할까.

우리가 어떤 노래를 하고 어떤 무대를 보여주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노래를 들어줄까.

시간이 흘렀을 때 우리도, 우리 팬들도 하나, 둘씩 떠올리면서 같이 웃을 수 있는 노래를 하고 싶었고, 그런 곡을 만들고 싶었다.

“성장이라는 말은 너무 포괄적이야.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해봐.”

팀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평소엔 말을 많이 하지 않던 영빈도 관심을 가지며 질문을 던졌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우리가 나이대마다, 사람마다 제일 무서운 게 조금씩 다르잖아요. 고등학교 때는 대학가야 하는 게 무섭고, 대학 가면 취직이 무섭고. 그 와중에 대인관계가 무서운 사람도 있을 거고요.”

머릿속의 생각을 말로 풀어내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특히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감정적인, 감각적인 부분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거나 설득하는 것들은.

“사람마다 그것들을 이겨내기도 하고 마음 깊이 묻어두기도 하고 결국 지기도 하고 하면서 어떻게든 살기는 하잖아요. 그냥 그게 잘못된 게 아니고 당연한 거니까 괜찮다고 얘기해 주는 거예요.”

누구는 갸웃거리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고, 누구는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고, 그리고 누구는 나에게 시선을 맞추고 더 얘기해보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왠지 목이 타는 것 같아 앞에 있던 생수병을 들어 조금 마셨다.

“데뷔 앨범은 그 두려움을 우리가 마주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벗어나는 모습 같은 걸 노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첫 앨범인데 너무 무거운 주제 아냐?”

“사람마다 두려움에 대한 대상이 엄청 다를 텐데?”

그리고 그때부터 이름은 모르고 얼굴만 아는, 늘 지나가면서 인사만 했던 A&R 팀분들이 하나둘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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