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Fiction(3)
숨 막히는 침묵을 같은 날 여러 번 겪는 건 아무리 열심히 정신을 부여잡고 있는 나라도 조금 힘든 일이었다.
정신을 잘 수습했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회사로 불려간 나는 온갖 시선과 한숨, 타박을 웃는 얼굴로 버텨내야만 했다.
‘내’가 잘못한 게 분명한 상황에서 뻣뻣하게 굴만큼 회사에서의 내 위치가 굳건하거나 얼굴이 두꺼우면 모르겠는데….
나는 실장님 콧김 한 번에 저 멀리까지 날아갈 하찮은 연습생1이었다.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사과하고, 다시 한번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어떤 조치도 감수하겠다는 약속을 한 후에야 연습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동고동락한 멤버들과 대화하라고 촬영도 잠시 멈춘 상황. 최애들을 눈앞에서 영접한다는 감격도 잠시, 들려오는 날 선 말들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공지환, 미쳤어?”
“야, 그만해. 얘가 다치고 싶어서 다쳤냐.”
“하준아 그냥 둬. 지도 답답했겠지.”
“….”
매니저도, 촬영진도 트레이닝 선생님도 모두 없고 온전히 데뷔 조 멤버들만 모여있는 이 상황에서, 나는 다시 한번 싸늘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미안해. 미안해요, 형들.”
“사고 치고 사과하면 받아주고, 세상 편하다. 그치?”
“적당히 해, 준아. 지환이 너도 가서 몸 풀어.”
날카로운 말이 연신 터져 나온 얼굴에서는 냉기가 풀풀 흘러넘쳤다.
훗날 언래블에서 가장 공평하다는 평을 받으며 ‘유일한 양심’이라고 불리는 민하준이었다.
그리고 그런 하준을 다독이며 나에게 눈짓하는 사람은 김영빈이었다.
무대 위에서는 치명, 섹시를 담당하는 멤버지만, 멤버들끼리만 있을 때는 ‘어설픈 조무래기 형 1’. 그 갭 차이에 치여 입덕한 팬들이 많아 팬덤 제조기라고도 불렸었다.
“하준이 형, 영빈이 형. 잘못했어요.”
“그래. 네가 사고 날 줄 알고 나갔겠냐.”
“우리끼리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연습이나 하자.”
내가 기억하는 언래블의 멤버 4명을 제외하고도, 나를 포함해 3명의 연습생이 더 있었다. 그리고 이 중에서 가장 불리한 건 ‘나’였다.
매니저 형이랑 얘기하다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사고가 난 후 나는 꼬박 하루를 정신 차리지 못하고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고 했다.
그 덕에 촬영 스케줄도 꼬였으니, 데뷔까지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기분으로 버티고 있던 이들 모두가 진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애써 불안감을 억누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누가 더 간절하고 덜 간절하고는 없었다.
여기 이 연습실이라는 공간의 6명, 나를 제외한 모두가 온몸과 얼굴에 절실함을 담고 있었다.
공지환도 나도 이 공간에서는 튀어나온 못 같은 존재였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이미 더 친하고 덜 친한 사람들이 나뉘어 있는 이 무리 안에, 이제부터 나라는 사람을 비집고 넣어야 했다.
배에 힘을 주고 깍듯하게 허리를 숙여 큰 목소리로 사과하자 사방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이걸로 한고비 넘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냉랭한 얼굴을 한 민하준의 입장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영빈이나 하준이는 이미 몇 번이나 데뷔가 엎어지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었다. ON 엔터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터.
더군다나 하준이는 임시 리더 자리까지 맡았고, 자신을 제외한 6명을 모두 품고 챙기기 위해 안간힘을 내서 버티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멤버의 숙소 무단 이탈에 교통사고라니.
천만다행으로 타박상으로 끝났지만, 얼마든지 심각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연습실 바닥이 무너질 것같이 무거운 하준의 한숨을 끝으로, 우리끼리의 분위기는 정리되었다.
이후 댄스 트레이너인 제영 쌤이 들어와 대열을 맞춰주기 시작했고, 다행히도 몸이 기억해서인지 따라갈 수 있었다.
“지환아, 잠깐만.”
“네?”
“너 방금 거 다시 해봐.”
몸이 기억하는 방향으로 손을 뻗고, 지적받은 대로 손가락 끝까지 힘을 줘 팔을 직선에 맞춘다. 그리고 속으로 박자를 세면서 스탭을 맞추고, 시선 처리까지.
“좋아, 고쳐왔네.”
“감사합니다.”
이 타이밍에 칭찬을 받는 게 나한테 득일지 실일지 애매하다고 생각한 그때, 거기서 멈추지 않은 트레이너의 한마디로 무게 추는 확실히 기울었다.
“사고 났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더 좋아졌어. 열심히 했나 보네.”
지금 단체로 연습하고 있는 곡은 댄스 부분 평가를 위한 곡이었다.
4명, 3명으로 팀을 나누어 두 팀이 동일한 곡으로 각각 어떤 무대를 만들어 내는지를 보고, 평균치를 맞춰보려 하는 것. 그게 예전에 영상을 봤을 때 읽었던 자막이었다.
남자 아이돌의 무대는 군무가 매력적인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우리가 커버하게 된 곡도 유독 각 잡힌 안무가 많았다.
이전의 ‘나’는 전체적인 안무에 녹아들기보다 돋보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대형을 맞추는 동작에서는 되레 힘이 빠져 처진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그 부분을 오늘 칭찬받은 것이다.
슬쩍 눈치를 보니 불만을 가졌던 사람들 중 몇 명은 조금 누그러진 게 보였다.
제영 쌤… 고마워요!
“경환이, 영빈이 시선 처리 더 신경 쓰고, 세빈아, 몸 좀 더 써. 하준이랑 우빈이도 많이 좋아졌고….”
거기까지 말을 한 김제영의 얼굴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건, 그녀가 최힘찬을 바라보면서였다.
“찬아, 안 그런 애가 왜 그래.”
“네?”
“너 오늘 몇 번 틀렸어?”
“….”
“왜 대답을 안 해.”
“더 신경 쓰겠습니다.”
트레이너가 들어온 순간부터 다시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었고, 그걸 알고 있는 모두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장 의외인 것은 오늘 대차게 까일 것을 각오했던 내가 놀라울 만큼 안정적으로 안무를 소화했다는 것.
“자, 처음부터 다시.”
힘찬에게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지만, 연습 내내 제영 쌤의 표정은 굳은 상태로 풀리지 않았다.
땀을 얼마나 쏟았을까?
운동이라고는 학창시절 체육 시간과 운동회 외에는 경험해본 적 없었기에, 몸이 견딘다고 해도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있었다.
연습이 끝나고 모두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나도 간신히 숨만 쉬고 있던 그때, 누군가 슬쩍 나에게 손을 뻗었다.
“어?”
내가 연습실에 등장한 순간부터 여태까지 한 번도 말을 걸지 않았던 강세빈이었다.
“형, 이거 먹어요. 매니저 형한텐 비밀….”
“고마워. 잘 먹을게.”
내 손에 쥐여준 건 레몬 맛 막대사탕.
손안에 굴러다니는 이 막대사탕이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마지막에 내가 세빈이에게 건넸던 것도, 지금 막 세빈이에게 건네받은 것도 모두 같은 제품이라서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야, 너 진짜 괜찮아? 검사 잘 받은 거 맞아?”
“괜찮아요. 이상 없대요.”
아직까지 목소리에 담긴 날카로움을 다 버리진 못했지만 못내 걱정스러웠는지 말을 걸어오는 민하준을 향해,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괜찮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준은 몇 번 입속으로 말을 고르더니, 결국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사방에서 카메라가 돌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말이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지환아, 교통사고는 골병 난다. 너무 무리하지 마라.”
“고마워요, 형.”
다음 연습을 위해 몸을 일으켜 연습실을 나서는 나에게 말을 툭 내뱉으며, 김우빈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 모습에 걱정했나 보네, 하고 약간 마음이 찡해진 것도 잠시. 이어진 상황에 의도치 않게 몸이 멈칫했다.
- 스킬,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활성화됩니다.
대상을 설정해 주세요.
무심결에 방금 전 방금 위로를 건넨 김우빈을 바라보자, 김우빈 주변으로 육성 게임에서 보던 말풍선 같은 게 생기더니 그 안으로 글자가 떠올랐다.
[어차피 곧 잘릴 텐데, 연습생 그만두고 먹고살려면 몸이라도 멀쩡해야지.]
“어…?”
“뭐야, 공지환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동정표라도 사려면 차라리 크게 다치던가. 멍청한 새끼. 아 배고파. 삼겹살 먹고 싶다.]
쉴 새 없이 떠오르는 말풍선이 담고 있는 가감 없는 감정 덩어리들.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넘기기에는 내 마음의 수련치가 부족한 것 같았다.
날 것 그대로의 텍스트. 그저 글자들의 조합이라는 걸 알면서도, 왠지 상대방의 목소리가 직접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아찔해지는 기분에 머리를 부여잡자 마지막으로 연습실을 나오며 빠진 것이 없는지 체크하던 민하준이 다가와 얼굴을 살폈다.
“아파? 내가 팀장님한테 말해줄 테니까 좀 쉴래?”
“아니에요. 잠깐 어지러웠나 봐요. 고마워요, 형”
“아니긴. 너 지금 얼굴 하얗게 질렸어.”
미간을 찌푸린 채 열은 없는지 이마에 손을 얹는 하준의 모습에 날뛰던 감정들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어차피 이 모든 건 내가, 그리고 언래블이 행복해지기 위해서야. 정신 차리자.’
어설프게라도 웃으며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버릇 같은 한숨을 내쉰 하준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김우빈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준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연이어 메시지 창이 깜박였다.
- 스킬 적용 대상을 변경하시겠습니까?
기존 대상 : 김우빈 > 변경 대상 : 민하준
이건 판도라의 상자였다.
그리고 인간은 언제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를 열기 마련이었지.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하준을 바라보자, 왜 그러냐는 듯 하준도 마주보기에 아니라고 답했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따라가던 나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변경’이라고 중얼거렸다.
최애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데 포기할 팬이 몇 명이나 되겠냐고 애써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그리고 이어서 떠오르는 무수한 말풍선의 바다를 마주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많이 안 좋은 거 같은데…. 억지로라도 쉬게 해야 하나? 아까 내가 말을 너무 심하게 했나….]
[경환이가 요새 자꾸 몰래 간식 먹는 거 같은데. 하, 이 새끼를 때릴 수도 없고.]
[힘찬이가 묘하게 힘이 없어 보이는데 왜 그러지?]
[팀장님이랑 면담이 몇 시였지?]
[세빈이가 찾아달라고 했던 게….]
[오늘 빨래 누가 담당이었지? 메모장이 어딨더라….]
[지환이랑 따로 얘기 좀 해야겠어. 조금만 잡아주면 잘할 수 있는 앤데….]
‘아냐, 안 써! 안 쓴다고! 꺼! OFF!!’
남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본 것 같아 부끄러움이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데뷔가 결정된 것도 아니고, 임시 리더라고 온갖 꾸중은 혼자 다 듣고 있는 민하준이었지만, 복도를 걷는 그 짧은 사이에도 자기가 챙겨야 할 팀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다.
결국 데뷔를 한 후에도 언래블의 리더가 하준이었던 건 그가 이런 사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수많은 고민들 중 자기 자신에 대한 내용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팀만을 생각하는 사람. 그가 리더가 아니면, 누가 리더일 수 있을까?
솜뭉치 공지환은 절대 알 수 없었을, 연습생 공지환으로 민하준을 겪는 이 순간의 기묘한 감정.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벅차게 차오르는 감정은 다름 아닌 ‘행복’이었다.
적어도 그만은 내가 믿었던 만큼 올곧은 사람이었다. 내 덕질은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하준에게 이 말을 건네고 말았다.
“준이 형, 고마워요.”
“어?”
“형이 리더라 진짜 다행이에요.”
순간 하준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얘가 뭘 잘못 먹었나 하는 것 같았지만, 이내 조금 편안해진 얼굴로 피식 웃었다.
“교통사고 한 번 나더니, 아예 사람이 바뀐 거 같다? 네가 나한테 고맙다는 말을 다 하고.”
사람이 바뀐 게 맞다고 말했다가는 미친놈 취급받고 쫓겨날 것을 알기에, 그저 웃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시 눈을 뜨게 되고 처음으로, 이것이 포잉이 말하던 판타지 소설이 아닌 내 새로운 삶이라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