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화 (3/456)

3. Fiction(2)

“….”

“….”

숨이 막힐 것처럼 어색한 이 공간에서 도망 나가고 싶어졌다.

별로 아프지 않은 주제에 병원 침대 위에 앉아있는 나를 노려보는 여자는 ‘공지환’의 누나였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아무도 오지 않길래 누나랑 진짜 아예 연 끊고 살았나보다, 나중에 조금 더 정리되면 찾아가서 무릎이라도 꿇자. 하고 마음먹은 게 오늘 아침이었는데.

“너는 어떻게 애가…!”

“미안해.”

“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내가 얼마나…!”

아, 내가 버튼을 눌러버린 모양이었다.

누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을 툭툭 떨구고 있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어깨는 그녀가 얼마나 큰 감정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철없이 굴어서 미안해, 그치만 난 정말….”

“됐어. 어설프게 하다 말 거면 안 하는 게 낫지.”

“….”

아, 이번엔 내 스위치가 눌렸다.

너무나 익숙한 말 한마디.

이 얘기를 여기서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지금 이 슬픔이 내가 느끼는 감정인지 육체가 기억하는 감정인지는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우리 누나와 조금 다른 얼굴의 그녀가 이제는 내 가족이라는 걸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 울고 그래, 사고당한 애가 울어서 기운까지 빼지 말고.”

그렇게 새로운 누나의 품에서 한참을 울고 나니 나도 모르게 억누르고 있던 온갖 감정들의 범벅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솔직히 무섭고, 아직도 온몸이 아픈 것 같았다. 이제 못 볼 내 가족이, 내 지인들이, 우리 래블이들이 보고 싶었다.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병원의 침대 위여서 심장 한구석이 무너져내렸다. 자기 전 했던 각오가 무색해졌고, 밤새 참았던 눈물이 결국 툭하고 떨어졌다.

이 괴리감은 다시 한번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가져가야 할 부분이 아닐까.

“나 진짜 열심히 할 거야. 그러니까 내 걱정 말고 누나 하고 싶은 거 해.”

“그게 맘먹은 대로 그렇게 막 되냐. 으휴, 누굴 닮아가지고 고집만 드럽게 세서.”

“누구 닮긴, 누나 닮았지.”

“말이나 못 하면!”

그 후로 잠시 동안 온갖 시시콜콜한 얘기로 서로 감정을 추스른 후, 누나는 쿨하게 날 두고 돌아갔다.

아주 망해서 받아주는 기획사가 아무도 없을 때나 집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생각이 들 때까지 절대 집으로 오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지환이 누나는 우리 누나와 비슷한 사람이었다. 덕분에 죄책감과 안도감이 뒤범벅되어 진흙탕처럼 질척거리며 마음속에 고였지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누나, 누나 동생이 죽었어. 아주 미련이란 게 없는 사람처럼 모든 걸 놔버렸더라.

그리고 이제 내가 누나 동생이야.

이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곧이어 등장한 어제 그 여자분. ‘내’가 팀장님이라고 불렀던, 나를 ON 엔터의 연습생으로 뽑아준 그 사람이 병실로 들어왔다.

“지환아, 애가 얼굴이 이게 뭐야.”

“하하, 팀장님 죄송해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누나랑 부둥켜안고 운 덕에 얼굴이며 눈이 팅팅 부어있었는지, 그녀가 기함하며 차가운 캔커피를 눈 위에 눌러주었다. 나는 그 마음이 고마워 인사를 건넸다.

막내 외삼촌을 통해 누나에게 연락한 건 팀장님일 테니까.

“그래, 나도 그냥 솔직하게 말할게. 괜찮니?”

“네. 그냥 가감 없이 말해주세요.”

한바탕 감정을 털어내고 나니 마음은 더 단단해졌다. 무슨 말을 듣더라도 멘탈을 잘 수습하고, 쫓겨나지 말고 연습실로 돌아가야지 하는 각오를 다졌다.

“너 지금 문제가 한두 군데가 아냐. 이미 들은 거 같으니까 그냥 말해주는 건데, 탈락 후보 중의 하나고.”

“네. 들었어요.”

“실장님이나 다른 사람들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널 빼는 게 나을 거 같다고 하더라. 빛이 안 난대.”

“팀장님은요?”

“나?”

“네.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잠시 표정 변화 없이 나를 바라보던 김소현 팀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냉랭했던 얼굴을 풀고 들고 온 캔 커피 하나를 따서 마시기 시작했다.

눈을 뜨자마자 했던 게 여태까지의 기억을 떠올리며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눈앞의 이 사람이 ‘나’를 뽑을 때 빛냈던 눈을 기억하고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 널 봤을 때 난 진짜 원석이라고 생각했거든. 준비된 애들은 엄청 많아. 당장 데뷔해도 될법한 연습생들이 이 시장에 얼마나 많은지 이제 너도 알잖아.”

“그렇죠.”

“널 봤을 때, 내가 생각한 팀에 네가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널 뽑았단 말이야.”

“감사합니다….”

김소현 팀장이 그렇게까지 ‘나’를 생각하고 있었는지 몰랐었다. 처음 얼굴을 봤을 때부터 마지막까지, 특별할 것 없이 그저 모든 연습생들에게 적당히 잘해주고 적당히 엄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지금의 넌 아냐.”

“네?”

“너 무작정 연습만 오래 하면 데뷔한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아이돌 되는 게 쉬울 거 같아? 너보다 더 죽어라 연습하는 애들도 널리고 깔렸어.”

“아….”

“컨디션 관리도, 평가 대비도, 팀 분위기도 뭐하나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해. 근데 넌 어땠어?”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내가 한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무어라 변명할 수도 없는 게, ‘나’는 어지간히 연습에만 매달렸다.

좋게 포장해서 연습에만 매달렸다는 거고, 솔직히 말하자면 사교성도 썩 좋지 않은 데다가 트레이너들의 코칭 역시 문자 그대로만 이해하는 전반 지식이 전혀 없는 머저리였다.

“죄송합니다.”

“누나가 많이 걱정하더라.”

“네….”

“사과했어?”

“네. 사과하고 풀었어요. 집에 오지 말래요, 팀장님. 그래서 저 집에 못 가요.”

나는 아는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지만,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정도는 경험으로 배워 아주 조금 알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머지야 열심히 배우면 되지만 사람 대하는 법은 18살의 나이에 갖기 힘든 경험이니까.

“아주, 옛날이나 지금이나 입만 살았지?”

“에이, 아니에요. 팀장님, 저 집에 못 가니까 길바닥에 나앉지 않으려면 죽을 만큼 해야 해요.”

“휴…. 내가 어쩌다 이런 걸 주워와서.”

“어쩔 수 없죠, 저는 팀장님 새낀데.”

웃는 얼굴로 뻔뻔하게 대하자 기가 막힌다는 듯 바라보던 김소현 팀장이 어제처럼 내 등짝을 한대 후려쳤다.

아, 진짜 이거 주사보다 아픈 거 같아.

“네가 그렇게 얘기했으니까 나도 실장님한테 잘 얘기해볼게. 당장 쫓아내진 말아 달라고.”

“감사합니다!”

“됐네, 이 사람아. 검사 결과는 이상 없다고 하니까 오늘 퇴원하자. 좀 이따 우진이가 데리러 올 거야. 준비해놔.”

“네. 팀장님 나중에 봬요.”

바로 나갈 것처럼 가방을 집어 든 김소현 팀장은 잠시 나를 내려다보더니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덧붙였다.

“지환아, 바뀌는 건 없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널 당장 내쫓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는 것뿐이야.”

“알아요, 팀장님.”

“이번 평가 되게 중요한 거 알지? 넌 그 중요한 평가를 앞에 두고 사고 친 거야.”

“네….”

“네가 일부러 사고 난 게 아니라지만, 숙소를 무단이탈한 건 분명한 잘못이야.”

“두 번 다시 이런 일 없게 할게요.”

“그래, 평가 결과는 네가 만드는 거니까 더 말 안 할게. 간다.”

그렇게 그녀가 병실을 나갔다. 그제서야 긴장이 좀 풀려서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마음을 다스렸다. 솔직히 내가 연예계에 대해 얼마나 알겠는가? 같이 덕질하던 홈마들과 주고받은 카더라 통신발 소문에 대해서나 조금 알고 있는 정도지.

그나마 내가 쓸 수 있는 무기는, 앞으로 5년간 ’Unravel’이 겪을 크고 작은 사건 사고와 그들의 스케줄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것 한 가지였다. 잘 쓰면 굉장한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낱 연습생에 불과한 내가 지금 당장 이용할 수 있는 건 없었다.

* * *

아침에 눈을 뜨니, 포잉은 가볼 곳이 있다고 금방 다녀온다며 사라졌다. 언제 올지도 말을 안 해주고 간 걸 보니… 내가 망할 것 같아 도망간 걸지도 모르겠다.

역시 냥아치….

팀장이 다녀간 후 기억을 더듬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푸는 도중이었다. 매니저 형이 들어오더니 그윽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며 애잔한 빛을 띄웠다. 뭐야 무서워.

“…다 들었다. 지환아.”

“네…?”

“괜찮아. 잘할 수 있어. 애들도 이해할 거야.”

“어… 그… 네.”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차마 입이 안 떨어졌다. 떨떠름한 표정을 수습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자. 막 무리만 안 하면 괜찮다고 의사 쌤이 그러더라.”

“네, 저도 이제 제 몸 잘 챙겨가면서 할게요.”

“그래. 앞으로 더 잘하면 되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그저 하잔 대로 하는 수밖에.

아직 몇 화 안 나왔고 시청률은 망했지만, 그래도 방송 탔다며 얼굴 가리라고 모자까지 챙겨다 준 고마운 사람 아닌가.

아무도 나에게 관심 없을 테니 못 알아볼 거라고 웃었지만, 그래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이 바닥이라며 꿋꿋하게 내 머리 위에 모자를 푹 눌러 씌웠다.

숙소까지 가는 내내 별다른 대화가 없어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할 시간이 주어졌다. 다른 애들은 회사 연습실에 있을 시간이라고, 그들이 씻고 옷 갈아입으면 나도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어, 지환아, 그건 세빈이 거고. 네 검정 티는 그 옆에 있잖아.”

아직 기억을 다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탓에 물건 위치를 헷갈려 했지만, 다행히 매니저 형은 평소에도 뒤죽박죽된 물건을 찾아주곤 했는지 별말이 없었다.

솔직히 검은 티가 사방에 널려있는데 뭐가 내 옷이고 뭐가 남들 건지 어떻게 구분하나 싶다. 신기하기도 하고.

그리고 세빈이 이름을 듣고 나서야 새삼 내가 미래의 언래블과 함께하게 됐다는 게 실감 났다. 세상에. 레몬 사탕 주면서 사인해달라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아, 엊그제는 맞지. 그때 죽었으니까.

갑자기 내가 얼마나 운이 없는 놈인지를 실감하게 돼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우진이 형, 저 잠깐 화장실 좀 들를게요.”

“그려, 내려가 있을게. 갔다 와. 후딱 가자.”

드디어 혼자가 된 나는 화장실에서 멍하니 중얼거렸다.

“하, 진짜 이게 꿈이야 생시야.”

팬싸나 콘서트에서 세상 다정하게 웃어주던 애들과 한집에 살게 되다니.

그렇게 큰일을 겪고도 미치지 않고 정상인에 가까운 사고방식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비록 다른 세계라고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다시 삶을 얻었고, 래블이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할 기회를 그러쥐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데뷔 초 입덕한 솜뭉치는 아니었지만, 덕질 당시 나는 2년의 시간을 온전히 모두 쏟아부어 데뷔하기 전부터 콘서트 직전까지의 언래블에 대해 파고 또 팠었다.

무미건조하고 밑으로만 가라앉을 것 같았던 삶에서, 그것만이 나와 외부를 연결해주었던 유일한 수단이었다.

경환이, 세빈이, 영빈이, 하준이가 울고 웃을 때 나도 울고 웃고 소리쳤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서 앞으로 함께 만들어갈 날들에 대한 기대가 풍선처럼 끝도 없이 부풀어 올라만 갔다.

솜뭉치 공지환과 연습생 공지환 사이에 있는 거리감.

그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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