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시베리아의 끝도 없이 넓은 대지. 인간의 손길이 한번도 닿지 않은 땅 아래. 엄청난 황금 매장량.
시베리아 황금에 대한 이야기가 골든보이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져, 나의 입을 통해 퍼틴의 귀로 들어갔다.
퍼틴의 입가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그려졌다. 그의 머리 속은 금방 황금으로 가득찼다.
당신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남자. 골든보이. 자. 계약합시다.
우리는 러시아 상공회의소 리셉션에 마련된 상담실로 바로 이동했고, 거침없이 계약했다.
하지만 좀 이상한 계약. 홍철없는 홍철팀. 금광 없는 금광 계약.
그래도 모든 사람의 얼굴에 불안함 따위는 없었다. 골든보이가 금이 있다면 있는 거다. 다 긁어져 있는 즉석 복권을 확인하고 사는 느낌. 원더풀 혜자 계약일 할 수 있지.
시베리아 금광 채굴 사업.
러시아 금광 개발 51%,
㈜엘도라도 41%,
한국 5%
아랍 에미리트 3%
맘대로 하라고 51%의 지분을 주었더니, 퍼틴은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사실 지분이 1%만 있어도 독재자인 퍼틴이 방해하면 버틸 사람이 누가 있을까? 미리 팍팍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51%이니 이미 본인의 금광이다.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 분명했다.
나는 소박하게 41%. 이래서 투자자들이 골든보이를 찾는 것이다.
대한민국 지분 5%.
무슨 일이 터지면 방패막이가 되고 옆에서 같이 액션 해줄 ‘파워’가 필요했다. 역시나 첫번째 선택은 ‘대한민국’. 조국을 믿지 않으면 어디를 믿겠는가?
아랍 에미리트 지분 3%.
두바이와 아부다비에서 원유를 받고 있었음으로 밥값을 해야 했다. 한국만큼 믿을 수는 없지만, 일이 터졌을 때 내 편이 될 곳. 일종의 우호 지분이다.
퍼틴은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나에게 빈 잔을 내밀고 포도주를 가득 따라주었다.
“시베리아 금은 어디 있나? 계약했으니 시원하게 말해보게.”
나는 포도주를 쭉 마시고 탁자 위에 놓인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스베르들롭스크 주를 찍었다. 우랄 산맥 너머의 광활한 대지가 펼쳐지는 곳. 시베리아의 전초기지.
“여기입니다. 이곳에 금이 있습니다.”
“스베르들롭스크에 금이 있다는 말인가?”
나는 퍼틴 대통령의 눈을 보며 강하게 바라보았다.
“빅터가 나에 대해서 뭐라고 했습니까?”
국가간의 계약이 이렇게 빠르게 진행되는 것은 말이 안되었다. 누군가가 계약을 진행하라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 신속하게 일이 진행되는 것.
나는 그것을 빅터의 입김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퍼틴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골든보이가 ‘해야 할 일’을 하도록 지켜보라 하더군.”
내가 스탈린의 유산 찾는 것을 도우라는 의미일 것이다.
퍼틴은 내가 스탈린의 유산을 찾는 것을 알고 있을까? 혹시 모르고 있다면 둘 사이에 의심의 씨앗을 심을 수 있다.
퍼틴이 빅터를 의심하는 것. 둘을 이간질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일단 나에 대한 신용을 올리는 것이 먼저다.
골든 보이라고 해도, 오늘 본 미국 스파이를 쉽게 믿지 않겠지.
“일단 골든보이가 금찾는 것을 지켜보세요. 금에는 늘 진심이었습니다.”
나는 퍼틴의 표정과 혈색을 살폈다. 잠수함에서 발견된 문서를 보면 퍼틴은 죽을 병에 걸렸다고 나와있다. 좋은 혈색은 아니지만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아까 게를 먹는 것도 봤는데, 식욕도 분명해 보였다.
벌써 다 치료 되었나? 겉으로 봐서는 알 수가 없었다.
러시아가 유럽과 전쟁을 할 것인가? 그것도 얼굴을 보고는 모르겠다.
하지만 혹시나 퍼틴이 사고를 쳤을 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고삐’가 필요해 보였다.
퍼틴을 멈출 수 있는 고삐는 바로 ‘진생 심향환’.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환약이다. 그 약을 보상으로 받는 것은 기정사실인데···. 퍼틴에게 설명할 길이 없다.
남자한테 참 좋은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
어떻게 약을 팔까? 말로 설명해 봤자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골든보이를 믿냐고 사람들에게 물으면 천천히 ‘신용’을 올려왔다. 이제 금에 관한 이야기는 무조건 믿는 수준까지 왔다.
나는 퍼틴 대통령에게 물었다.
“골든보이를 믿으십니까?”
퍼틴은 나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나는 사람의 눈을 보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알 수 있다.”
설마 관심법?
“제 눈은 어떻습니까?”
“자네는 진실을 이야기 하고 있다.”
나는 머리를 끄덕이고 정색했다.
“저는 믿어주시니, 좋은 기회를 드리고 싶습니다. 제 손에 아주 좋은 약이 들어왔지요.”
퍼틴은 갑자기 약 이야기를 하자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약?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저희 할아버지가 인화그룹 회장 김산입니다.”
퍼틴도 인화 그룹을 잘 알고 있었다. 몇 번이나 러시아 투자를 권했던 기업이다.
“러시아에서 인화 중고차의 인기가 좋았다. 그리고 5년 전부터는 완제품이 수입되고 있지. 최근에는 러시아 내 인화 자동차 생산 공장 투자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할아버지에게 잘 이야기 해봐. 내가 확실하게 밀어 줄 수 있네.”
나는 정색하고 퍼틴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의 건강상태가 어떤지 아십니까?”
퍼틴은 살짝 인상을 쓰며 머리를 끄덕였다.
“몸이 좋지 않아서, 러시아 투자가 미뤄지고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네.”
“사람을 써서 우리 할아버지 김산 회장님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세요. 상당히 흥미로울 것입니다.”
“뭐가 흥미롭다는 거지?”
“죽을 날짜까지 받았다가, 이번에 약을 드시고 쾌차하여 일어나셨습니다.”
퍼틴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세상에 그런 약은 없어.”
“그러니까 속는 셈치고, 김산 회장님의 건강을 자세히 확인해 보세요. 한국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에 확인시키면 빠를 것 같습니다.”
퍼틴의 표정은 여전히 씁쓸했다.
“특별한 약이라. 동양의 신비는 믿은 적이 없어. 나는 중국의 진시황제가 아니야.”
나는 가볍게 웃었다.
“손해 볼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가볍게 알아보세요.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골든보이를 믿어보세요.”
퍼틴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좋아. 골든보이의 행운을 조금은 믿어보지.”
진생 심향환을 퍼틴이 욕심 낸다면, 일이 쉬워진다. 그것으로 퍼틴의 코를 걸어, 빅터가 가진 DW 해운 주식을 확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본인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 법.
그러니 미션을 완료하고 진생 심향환을 얻는 것이 우선이다. 그 약을 얻기 위해서는 미션에서 주어진, 스베르들롭스크 주에서 ‘엄청난’ 금광을 찾아야 했다.
나는 퍼틴과 이야기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베르들롭스크주로 바로 넘어가겠습니다.”
퍼틴은 놀라며 말했다.
“지금?”
“배도 부르니, 못 갈 것도 없지요. 오늘 밤. 모스크바 공항에서 바로 비행기로 넘어갈 생각입니다.”
퍼틴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역시 한국 사람은 액션이 빨라서 좋아.”
“한국이 단시간 내에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미션 종료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최대한 빨리 스탈린의 유산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스탈린의 유산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시베리아 금을 찾는 도중에 발견할 수도 있고, 이번 일을 끝내고 새로운 미션에서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럴 때 알아야 하는 한가지.
‘미리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눈 앞에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이것이 괴산 스타일의 일처리 방식.
일단 시베리아 대금광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제는 반쯤 믿고 있는 ‘황금신’을 기대하는 수 밖에.
게다가 너그러운 황금신은 두번째 보상으로 수류석을 약속했다. 수류석의 그 엄청난 가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어떻게 수류석을 쓸 것인가? 이번에는 수류석을 쓰지 않고 팔기로 마음 먹었다.
바로 미국에 ‘연구용’으로 넘길 예정이었다.
수류석이 어떻게 가능한지 과학적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러면 전체 그림을 확인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퍼틴이 어딘가에 전화를 하여, 한참 이야기 하다가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곳의 주지사에게 이야기 해 놓았다. 각종 편의를 봐 줄거야.”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다. 나는 동양의 예를 보이며 머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일단은 모스크바 공항에 군수송기를 대기 시켰다. 바로 이동 할 수 있을 거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퍼틴은 군생활 할 때 경험했던 타이가 숲을 생각했다.
“우랄 산맥을 넘으면 거대한 타이가 숲이 나올 것야. 금을 찾으려면 그곳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총 없이 돌아다니는 것은 자살 행위지. 그야 말로 야생의 땅이다. 죽어서 묻히면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이라고 할 수 있어.”
“대한민국 특수부대 사람들이 저를 경호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습니다.”
“총과 대포를 가지고 있어도, 숲을 죽일 수 없어. 에드워드.”
“GPS는 개인별로 가지고 있고, 위성전화도 4개나 가지고 갑니다.”
“그래도 조심하게. 나는 시베리아 금광을 확인하고 싶네. 금과 함께 무사히 돌아와. 그럼 자네가 원하는 것을 받을 수 있을 것이야.”
빅터의 주식 이야기를 한 것인가? 일단 금을 찾고 보자.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모스크바 공항으로 바로 이동했고 대기하고 있는 러시아 수송기를 타고 스베르들롭스크 주로 향했다.
비행기로 4시간.
입이 딱 벌어지는 눈 덮인 우랄 산맥을 넘으면, 바로 거대한 평원의 스베르들롭스크 주가 나온다. 주의 인구는 총 400만.
주도는 예카테린부르크.
여제 예카테리나의 이름을 따서 지은 곳이다.
이곳은 중부 러시아에서는 손에 꼽는 큰 도시로 시베리아 철도의 주요 기착점이었다.
이 도시에는 120만명이 살고 있으며, 주변에서 철, 구리, 백금, 대리석이 풍부하여 과거부터 중공업이 발달한 곳이었다. 특히 철이 많이 생산되어 제철 공업이 발달해 있었다.
최근에는 한국과의 교역량도 증가하여 3억 달러를 돌파하였다.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해 최근에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서, 새로운 건물이 많이 올라가고 있었다.
멀리서 떨어져 보면 오래된 칙칙한 건물과 새롭게 만들어진 신형 건물이 대비를 이루며 뒤섞여 있었다.
우리는 스베르들롭스크 주의 골초보 공항에 착륙했다.
아. 이름이 어렵다. 몇번을 반복해 보지만 입에 착 붙지 않았다.
스베르들롭스크.
예카테린부르크.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공군 복장의 중령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중령이 우리를 보고 놀라고 있었다. 동양인 18명이 수송기에서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군 대령이라고 들었는데, 동양인이라니 잘못 전달된 것인가?
게다가 모두 완전 무장하고 방탄복까지 차려 입은 매서운 눈빛의 용병들이었다.
중령은 조심스럽게 다가와 거수 경례를 하고 말했다.
“누가 에드워드 대령이십니까?”
나는 당당하게 앞으로 나갔다.
“내가 에드워드입니다.”
중령은 놀란 얼굴로 나를 위아래로 바라보았다.
“미군이라고 해서 미국 사람일 줄 알았습니다.”
이런 반응에 일일히 대꾸할 시간이 없다. 바로 본론으로 가자.
“타이가 숲으로 떠날 준비가 되었습니까? 이미 이야기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중령 당황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내일까지는 정비를 해야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비하지 않은 기체로 나가면 정말 위험합니다.”
나는 가방 안에서 10만 달러를 꺼내, 강제로 중령의 품 속에 넣었다.
“받으시오. 중령.”
중령은 돈을 받고 완전히 얼어버렸다.
“이게 뭡니까?”
“시간이 없소. 퍼틴 대통령님이 주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가는 것이요. 최대한 시간을 당겨 보세요.”
중령은 깜짝 놀라고 있었다. 에드워드 대령을 주지사의 친구 정도로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통령님 주신 임무라고요?”
“기밀이니 큰소리로 떠들지 마시오.”
중령은 갑자기 마음에 급해졌다.
“최소 5시간 정도 필요합니다. 점심쯤 출발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오후 1시에 출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겠소.”
“최대한 빨리 준비하겠습니다.”
이 근처의 타이가 숲으로 들어간다면 우리도 최소의 비상식량과 캠핑장비 정도는 있어야 했다. 혹시 아나? 진짜 조난 될지도. 최대한 준비를 해야 했다.
중령에게 버스와 당번병 까지 빌려서, 시내에서 가장 큰 쇼핑몰로 이동했다.
큰 캠핑장비 판매점이 있다는 그린비치 쇼핑몰.
그린비치 쇼핑몰은 20년쯤 장사해서 이제는 리모델링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오래된 대형 쇼핑몰. 그래도 캠핑장비 판매점은 생각보다 컸다. 뭘 사야 하지?
어떤 물건을 고를지 걱정할 필요 없다. 선 대위를 중심으로 팀원들이 착착 물건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스터카드만 내밀면 되었다.
캠핑 장비 판매점 사장님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1년치 매상을 한번에 올린 느낌. 판매점에 있는 물건의 2/3도 넘게 팔았다.
아래 층으로 내려가, 비상식량과 시베리아의 추위를 버틸 수 있는 옷까지 모두 구매했으나 아직 시간이 남았다.
“밥이나 먹자.”
그래서 푸드코트로 갔는데 놀랍게도 한식을 팔고 있었다. 러시아에 한식이라. 한국이 참으로 많은 발전을 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있었다.
식당 이름은 ‘Mr. Kim’.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김밥을 시켰는데. 생각보다 맛이 괜찮아 놀라며 다 흡입. 알고 봤더니 사장님이 고려인 3세였다.
계산하면서 한국말로 인사했으나, 한국말을 못 알아들었다. 그래도 러시아에 한국인의 손맛이 살아 있다는 것이 참으로 반가웠다.
“커피나 한잔 할까?”
러시아어로 쓰여 있어, 이름을 읽을 수 없는 커피숍에서 따듯한 커피를 마시고, 짐을 잔뜩 짊어지고 버스에 올라타 다시 공항으로 향했다.
지옥의 마차. M-24 하인드
공항에는 군용 헬기 2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로켓런처는 제거했지만 아직 기관총도 달려 있었다.
나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소령을 바라보았다.
“튼튼한 놈을 데리고 왔군요.”
10만 달러를 받은 소령은 머리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다른 헬기 한대를 가리켰다. 매우 눈에 익은 이중 로터 카모프 헬기가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산림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소방헬기로, 힘이 좋아 10톤의 짐을 옮길 있어 우리나라에서만 거의 50대를 운용하고 있었다. 이제 러시아 보다 우리나라가 더 많은 숫자를 운용하고 있었다.
M-24 하인드에 사람이 나눠 타고 다니고, 카모프 헬기는 짐 운반 및 보급용으로 운용하기로 했다.
하인드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역시나 러시아제 특유의 진동이 느껴졌으나, 이제 익숙해 졌는지 멀미가 심하지 않았다. 그래도 멀미약을 때려 넣었다. 이제부터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했다.
헬기에 쥐약인 태경이의 안색이 나쁘지 않았다. 이놈도 헬기에 익숙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도시가 급속도로 멀어지고 있었다.
헬기에서 내려다 보는 예카테린부르크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회색의 도시와 진한 녹음이 완벽하게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거대한 이세티 강이 도시를 도도하게 관통하며 흐르고 있었다.
조금만 도시 외각으로 나가자, 1000평 짜리 별장을 건축할 수 있는 빈 땅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금방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보였고, 그 양 옆으로 끝도 없는 우랄 침엽수림이 보였다. 일명 타이가 지역.
비행한 지 10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사람의 손길이 한번도 닿지 않은 야생의 숲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태경이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타이가 지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여기서 길 잃어버리면 집에 못 가겠는데?”
나는 두툼한 금반지를 태경이의 목걸이로 걸어주며 말했다.
“이거 걸고 있으면 이 형님이 찾아준다.”
“정신줄 바짝 차리고 있어야 겠다. 숲이 무서운 것은 처음이다.”
태경이는 금반지를 자신의 점퍼 안주머니 깊숙한 곳에 넣었다.
나는 다시 한번 미션을 살폈다.
<<스베르들롭스크 주 거대한 금광을 개발하세요.>>
‘거대한 금광’ 얼마나 큰 금맥이 있을까? 머리 속에는 산과 같은 크기의 금을 상상하고 있었다.
좋아. 얼마나 ‘거~대한’지 함 보자.
헬기는 속력을 높였고, 나의 눈은 주변을 매섭게 바라보았다.
예카테린부르크를 출발하여, 아카잔 – 예체보잔 – 니즈니타길 – 아스베스트를 돌아오는 루트.
일단 소도시 아카잔으로 향하는 길.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시작된 원시 침엽수림은, 지금까지 끝도 없이 펼쳐졌다. 사람의 흔적 따위는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원시의 땅 중앙을 거대한 이세티 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태경이가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켰다.
“곰이다! 곰!”
거대한 곰 2마리가 강을 뛰어다니며 연어 잡이를 하고 있었다. 비교적 작은 곰이 연어를 어렵게 잡았는데, 덩치 좋은 놈이 그 연어를 빼앗기 위해 달려왔고, 작은 놈은 급하게 연어의 알부분만 뜯어 먹고 도망쳤다.
실시간으로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기장이 말하기를 이곳에 곰이 수만 마리는 있다고 했다.
“수만 마리? 헬기에서 못 내리겠는데?”
1시간 쯤 더 날아갔을 때. 드디어 인간의 땅이 나왔다.
크신체 철 노천광산. 거대한 포크레인이 땅을 파내, 덤프트럭에 싣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 내려 식당에서 한끼를 때우려고 했는데. 아···. 이렇게 맛이 없어도 되나?
저쪽에서는 신경써서 양고기를 듬뿍 내 놓았는데. 양냄새가 너무도 강렬해서 도대체 목구멍으로 넘길 수 없었다.
그러자 소스랑 먹으면 맛있다며, 나이든 기장이 웃으면서 뭔가를 내밀었다. 샤워크림이라 불렀다. 양파, 우유, 치즈, 고추냉이, 크린베리, 샤프란, 소금···. 등등.
우리는 샤워크림을 찍어서 양고기를 먹고 바로 내려 놓았다. 2배는 맛이 없어졌다.
“뭔 맛이 이래?”
“샤프란이 들어갔다고 하네.”
경복이가 바로 뭐라고 했다.
“씨발놈들이 왜 섬유 유연제를 넣어?”
“똥에서 꽃향기 나라고 먹는 모양이지.”
나도 양고기는 포기. 러시아 조종사들에게 모든 고기를 넘겼다.
손짓으로 냄비를 10달러에 빌렸다. 그리고 가방에 있는 것 중에 먹을 수 있는 것을 다 때려 넣었다.
일단 무조건 김치. 그리고 햇반, 소고기, 소시지, 참치, 소금, 후추... 맛을 봤는데, 뭔가 부족했다.
“고추장 넣을까?”
“아니야. 텁텁해져.”
태경이가 매운 라면 스프를 하나를 까서 넣었다. 그러자 바로 맛이 살아났다.
“그래. 그 맛이야. 역시 고향의 맛.”
“훈제 연어 넣어 말아?”
“다 때려 넣어.”
아주 맛있다고 할 수 없었지만, 배가 고파서 우리는 꿀꿀이 죽을 미친듯이 퍼먹었다.
역시 한국 사람들은 밥심. 속이 든든하니 배에 힘이 빡 들어갔다.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따듯한 밀크 커피를 마시며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가 나는 깜짝 놀라며 손가락으로 한 곳을 찍었다.
“어? 금빛이다!!”
내 눈에 금빛이 보였다.
금은 사방에 보였다.
나는 활짝 웃었다. 시베리아는 황금 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