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예상했던 ‘대혈투’는 허무하게 끝났다.
할아버지가 이미 적장의 목을 베어버렸으니, 내가 할 것은 없었다.
크게 편찮으시지만. 역시 이 산의 호랑이는 할아버지.
다들 산 주인의 포효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우리는 호텔에서 밖으로 나왔다. 이제야 긴장이 풀리며 온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다 끝난 건가?”
태경이가 정신을 차리고 있다가 말했다.
“워렌에게 전화해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거다.”
“아··· 워렌.”
나는 뉴욕 크리스티의 워렌과 통화하여 전용기가 도착하는 날짜를 사흘 후로 잡았다.
사흘 후에 전용기를 한번 타면, 1억 달러.
그냥 거부도 아니고, 전용기를 보내줄 수 있는 부자.
생각해 보니, 워렌이 ‘그 사람’을 만나고 좀 ‘쉬자고’ 했다.
그렇다면 그 거부가 거대한 리조트 정도는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따듯한 햇살, 푸른 바다, 백색 모래사장,
10명의 아름다운 금발 아가씨들이 프라이빗 리조트 풀에서 뛰어놀며 나에게 뜨거운 시선을 보내는 상상을 했다.
오. 누구를 골라야 하지?
서양이면 흑인도 있나? 흑인은 내 취향이 아닌데.
당장 워렌에게 전화하여 전용기를 보내는 ‘거부’가 누구냐고 확인하고 싶었다.
금발의 아가씨들이랑 요트로 세일링 하다가, 멀리 무인도에서 황금빛을 보고 옛 해적선의 보물을 발견하는 거지.
아름다운 상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이때 경복이가 다가와 말했다.
“몇 번을 불렀는데, 왜 대답을 안 해?”
나는 따듯한 ‘카리브해’에서 강제로 ‘월미도’로 돌아왔다.
“뭐라고?”
경복이는 인상 쓰며 말했다.
“뭐 하는데 혼자 실실 웃고 있어?”
“흑인은 네가 맡아라.”
“흑인? 뭔 흑인.”
나는 웃으면서 이를 보였다.
“이 형님에게 고마워해야 할 거다.”
경복이가 뱃속에서 철판을 하나 꺼내 바닥에 떨어트렸다.
“이제 ‘액션’ 할 일은 없겠지?”
나는 철판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혼자 살겠다고 철판을 넣었어? 죽어도 같이 죽는다며?”
경복이가 코웃음을 쳤다.
“우리가 ‘도원의 결의’냐? 같이 죽게? 그리고 유비, 관우, 장비도 다 다른 날 죽더라.”
나도 삼국지를 읽어본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한날에 안 죽고 따로 죽냐? 그럼 누가 제일 오래 사냐?”
경복이는 잠깐 생각하다가 짜증을 냈다.
“몇 번이나 읽었는데 왜 기억이 안 나지?”
“그래. 그 머리로 공부하려고 하지마.”
“웃기지 마. 내가 너 만나고 공부를 쉬어서 그렇지 계속 ‘열공’했으면 ‘제갈량’ 뺨쳤다.”
나는 혀를 차고 말했다.
“네가 제갈량이면 유비가 빡쳤어.”
“지랄!”
“공명 선생!! 동남풍은 언제 붑니까? 이러면 동쪽이 어디예요? 이렇게 대답할 놈이다.”
경복이가 멀리 대형 횟집을 보고 말했다.
“동남쪽에 괜찮은 회센터가 있다. 월미도에 왔으면 회를 먹어야지.”
태경이도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사시미 맞을 각오를 하고 왔으니, ‘사시미’를 먹어야지. 감생이 어때?”
이상하게 오늘 회가 땡기지 않았다. 어젯밤에 야식으로 광어 초밥을 먹어서 그런가?
“회가 별로 안 땡기는데?’
태경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횟집 가자고, 내가 너를 삼고초려 해야겠냐? 그냥 대세에 따라.”
경복이가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안주도 통일이 안 되는데, 남북통일, 천하통일이 되겠어?”
태경이가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런데··· 유비, 조조, 손권 중에 누가 천하를 통일했냐?”
경복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히 주인공이 유비니까, 유비가 통일했지. 주인공이 죽는 소설 봤냐?”
나는 잘 모르지만, 일단 아는 척을 했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독자들은 새드 엔딩 안 좋아해. 그리고 다른 놈이 통일했으면 독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야.”
태경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안주나 통일해. 병신들아!”
“나는 감생이.”
“나는 참돔.”
“나는 낙지탕탕이”
경복이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천하의 뜻이 ‘횟집’으로 모였군.”
가자!!!
우리는 수행과 직원들과 함께 횟집에서 찐하게 무제한 회식을 하였다.
마틴 대위는 물고기 회를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다고 했는데, 금방 맛을 알더니 앉은 자리에서 참돔을 2마리나 먹어 치웠다.
마틴 대위가 산낙지를 먹을 수 있나 없나 내기를 했는데. 기겁하고 도망쳐서, ‘먹는다’에 돈을 걸었던 나는 5만원이나 잃었다.
30명 가까이가 마구 먹으니, 횟집에 있는 물고기 절반이 뱃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본격적인 진검승부가 벌어졌다.
‘여포’를 쓰러트리는 심정으로, 나와 태경이는 경복이를 공략했다.
한잔을 받으면 ‘남기고’ ‘버리고’ ‘숨기는’ 전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나와 태경이는 장렬히 ‘전사’했고 근처의 호텔로 실려 가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제시간에 출근 못 했다. 수백 번 도전하여 넘지 못한 벽을 또 넘으려고 하다니··· 미쳤지.
예쁜 유 비서가 타주는 꿀물을 먹었으나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오후에 ‘전복 따따불’ 추가 전복죽을 먹고, 스벅 커피를 마시니, 겨우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다시는 경복이에게 도전하지 말자.”
태경이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씨발··· 내가 하지 말자고 했잖아.”
“경복이 간을 이식해 볼까?”
태경이가 미친놈처럼 웃었다.
“크크크 미친 새끼. 삼등분하자.”
경복이가 짜증 내며 말했다.
“이 새끼들이 누구 간을 맘대로 나눠?”
“몰라. 살려줘.”
서 상무님이 나의 컨디션을 살피다가, 퇴근 시간 전에 ‘석유 채굴 테마파크(?)’ 상황을 보고했다.
바로 보고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결과가 썩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역시나 석유 채굴 테마파크를 만들 땅은 많았지만, ‘석유 저장 시설’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엄청난 자금과 시간이 들어갔다.
만수르 프로젝트는 바로 진행할 수 있는데···. 저장 시설을 만드는 일에는 최소 1년 이상이 걸렸다.
아.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석유 나오는 데 가서, 돌 하나 던지면 끝나는데. ‘저장 시설’이 내 발목을 잡는구나.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법이 없을까?
‘석유 저장 시설.’
부동산 매물로 나와 있는 것이 없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즉빵’ 어플을 켜보았는데, 석유 저장 시설이 매물로 나와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네이보 창에 ‘석유 저장 시설’이라는 키워드를 집어넣었다.
엄청난 정보가 쭉 떴는데···
이것은 아니고.
이건 쓰레기.
요건 광고인가?
그리고 눈에 들어온 단어.
‘국가 석유비축 기지’
이것으로 다시 검색했다.
-새로운 국가 석유비축 기지를 건축 중.
-석유 파동을 대비하여, 원유 비축기지 증축.
-이제는 원유 비축기지를 확장해야 한다.
-드론으로 인한 석유비축 기지 화재 사건.
-연한 기한이 크게 지난 석유비축 기지 폐쇄와 비용 우려.
바로 이거다!
나는 바로 서진택 비서관님께 전화했다.
“인화자원개발 김성열입니다. 안녕하세요. 비서관님.”
-김 대표님. 이렇게 전화를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청와대에 전화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제가 영광입니다.”
-어떤 말씀을 주시려고 전화하셨을까요? 혹시 보물이라도 보셨습니까?
“아닙니다. 공민왕 그림의 처분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전화했습니다.”
서 비서관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것 때문에 전화를 한번 드릴까 했었습니다. 사실 그 그림 때문에 상당히 곤란했습니다.
“누가 우리 비서관님을 곤란하게 했습니까?”
-돈과 권력이 있는 높은 분들이, 서로 자신에게 달라고 연락해 왔습니다. 로비가 치열해서 밤에 우리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지요”.
“그 정도인가요?”
-현산의 유 회장님이 도자기 애호가라서 북한에서 넘어온 고려청자를 각각 10억씩, 총 100억에 산다고 하셨습니다.
“엄청난 금액이군요.”
-아닙니다. 서경덕 선생을 위한 시구가 적혀 있는 조선 전기 황진이 백자가 있습니다. 그것이 진품이라면 그것 하나만으로 몇십억 할 수 있습니다.
“황진이요? 대단하군요.”
-공민왕 그림과 편지는 삼송 미술관과 송암 아트홀에서 서로 가져가려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삼송 회장님과 송암 회장님의 감정싸움이 되었지요.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림당 200억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림을 사면 편지는 사은품으로 줘야겠군요. 하하하”
-삼송 미술관 사람들과 송암 아트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우리 김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만날 필요가 있나요?”
-플러스알파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요?
“플러스알파요?”
-그것은 미술관에서 ‘상상력’을 발휘했겠지요. 김 대표님은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는 곳에 ‘공개’하는 조건인데도 이렇게 많은 입질이 있을 것으로 생각 못 했습니다.”
-미술품 대부분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아니면 국내 미술품 창고에 보관되어 있지요. 안전하고 전문적으로 보관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 조건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됩니다.
“가격이 괜찮다니, 좋은 뉴스군요.”
-전체적인 예상 가격을 알려드릴까요?
나는 쓴 입맛을 다시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사실 저는 판매할 상대를 정했습니다.”
비서관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판매할 상대를 정하셨다고요?
나는 잠깐 말을 하지 않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개인이 아닌 ‘국가’에 판매할 생각입니다.”
서 비서관은 잠시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국가요? 정부에 판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물건은 국가가 소유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비서관은 머리를 끄덕였으나 길게 한숨을 쉬었다.
-매우 훌륭한 생각인데, 민간에서 제시한 가격의 1/10도 맞춰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참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국가 부동산과 바꾸고 싶습니다.”
-국가 부동산이요?
“네 정부가 가지고 있는 부동산을 원합니다.”
서 비서관은 잠깐 생각하다가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땅을 원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가, 가볍게 말했다.
“노후화 문제로 뉴스에 나온, ‘고령’ 혹은 ‘곡성’ 국가 석유 비축기지를 소유하고 싶습니다.”
-석유비축 기지를 말입니까?”
서 비서관은 그곳에 국가 석유 비축기지가 있는지도 몰랐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뉴스를 검색해보면 고령은 기지는 69년도에 만들어져서, 석유 비축기지로서 수명을 다했다고 나오는군요.”
-지금 공민왕 그림과 편지 그리고 다수의 고려청자를, 국가 석유비축 기지 부동산과 교환하자는 말씀이지요?
“정확하게 그렇습니다.”
잠깐 생각하던 서 비서관은 머리를 끄덕였다. 자신이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대통령님의 결단이 필요한 문제였다.
-6시간 안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사장실에서 몸을 편하게 늘리며, 다시 서 비서관의 전화를 기다렸다.
잠깐 졸고 있었을 때, 벌컥 문이 열리더니, 엄마가 웃는 얼굴이지만 화난 얼굴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들~~”
경복이는 거의 누워있다가 번쩍 자리에서 일어나 큰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머니.”
“복이도 있었구나.”
경복이는 도망치고 싶은 얼굴이었다.
“아드님과 심도 있는 말씀을 나누게 제가 자리를 비켜 드리겠습니다.”
“아니. 물어볼 것이 있으니 거기 있어.”
아··· 탈출 실패.
엄마가 나를 노려보며 그릇에 검은약을 하나 가득 따랐다. 설마 사약? 내가 뭐를 그렇게 잘못했다고?
엄마 뒤에 서 있는 여동생이 사악하게 웃었다.
“으흐흐 오라비 마셔. 한약이야.”
그렇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니까 진짜 ‘사약’ 같잖아.
엄마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셔···.”
나는 장희빈이 된 심정으로 한약을 벌컥벌컥 마셨다. 혀가 마비되는 느낌이다.
으··· 쓰다. 써써써써. 완전 쓰다고. 사약 농축 엑기스 아니야?
하지만 입에서는 다른 말이 나간다.
“우리 ‘오마니의 사랑’이 듬뿍 들어서 그런지 맛이 아주 좋네요.”
엄마의 시선은 차가웠다.
“나를 엄마로 생각하는 거니? 아들이 어디 있는지를 왜 TV를 통해서 알게 되는 거야? 김정은이랑 친해 보이더라? 아들 교우 관계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니?”
나는 식은땀을 조금 흘렸다.
“어머니. 그것은 협박에 의한 ‘강제 납북’이었습니다.”
“태경이가 다 불었어. 본인과 경복이는 너에게 속아서 강제 납북당했다고 했다.”
아 배신자 새끼들···.
이럴 때는 더욱 뻔뻔하게 나가자. 나는 눈에 힘을 주며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평양’으로 가라는 국가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항상 어머니 생각을 했지요.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나의 사랑을 증명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끝내 나를 감시하고 있는 북한군 10만명을 뚫고 북한 백화점으로 들어갔습니다.”
“북한 백화점? 북한에도 백화점이 있어?”
“탱크 1개 대대가 지키고 있는 곳입니다.”
나는 책상을 열어서 북한 백화점에서 산 샤넬 립스틱을 꺼냈다.
외교관들에게 선물로 주고 남은 것이었다. 이것이 남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아름다운 입술에, 이 혁명적인 붉은색을 물들이고 싶다는 소원을 이야기했더니, 김정은 위원장님이 효심은 남북한이 같다며 이 물건 구매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손에 샤넬 립스틱을 올려놓았다.
엄마의 의심스러운 눈이 경복이를 향했다.
“너무 뻥이 심한 것 아니야?”
나의 강렬한 눈빛을 받은 경복이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제가 그 백화점 함께 갔습니다.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 성열이와 제 손에 쓰러진 북한 특수부대 병사가 100명을 넘었습니다. 손이 피범벅이 되었지요. 저번에 북한 쿠데타 뉴스 나왔잖아요. 알고 계세요?”
“그래. 오보라고 나왔지.”
경복이는 정색하고 말했다.
“그거 사실 우리 둘이 백화점에 들어가려고 사고 쳐서 쿠데타로 오해받은 겁니다. 평양 근처의 10개 사단이 움직였지요.”
여동생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오빠~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개연성이 1도 없잖아.”
거의 다 되었는데. 저 망할 년이!!!
나는 품속에서 다른 샤넬 립스틱을 꺼냈다.
“김정은 위원장이 하나만 가지고 돌아가라 했는데, 내가 도깨비의 김고은 같은 여동생이 있다고 하니 그분께서 직접 색을 골라 주셨다.”
나는 그 샤넬 립스틱을 여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
“전지전능하신, 수령님이 직접 골라 주신 SS 컬러다.”
“진···진짜?”
진짜겠냐 미친년아?
나는 감탄하는 얼굴로 말했다.
“색이 어때? 뭔가 백두혈통의 고귀한 색감이 느껴지지 않냐?”
“나름대로 센스 있는 색인데?”
당연하지! 샤넬인데. 그 색을 골라 준 대성 백화점 봉사원 아가씨.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이때 아버지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가볍게 한마디 하셨다.
“나랏일을 하면, 그럴 수도 있는 거야. 뭔 잔소리가 그렇게 많아.”
엄마는 지지 않고 강하게 말했다.
“나라가 밥 먹여 줘요? 우리 아들 다치면 누가 책임진다고 그래요?”
“어른이면 알아서 해야지.”
나는 사장실 금고를 열어서, IH 백화점 상품권 100만원 어치를 여동생에게 조심스럽게 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겠지?”
“OK. 접수.”
이때 내 전화기가 울렸다.
청와대였다.
“엄마. 청와대 서진택 비서관님이야. 이거 기밀 사항이라 엄마가 들으면 안 돼.”
돈을 받은 여동생은 엄마의 팔짱을 끼더니 말했다.
“우리 백화점 가서 쇼핑이나 하자.”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오빠에게 카드 달라고 하면 되지.”
와···. 상품권을 줬는데. 카드까지 빼앗아 가네. 독한 년.
나는 어쩔 수 없이 카드를 넘겼다.
옛날에 뒷골목의 무서운 누나들에게 용돈을 빼앗겼던 추억이 떠올랐다.
나쁜 년들. 불량하기는 해도 ‘예뻤다’. 또 돈 빼앗기고 싶었는데··· 나의 순결(?)도 빼앗기고. 그런데 다시 가니까 없더라? 아쉽게.
- 김 대표?
“아··· 비서관님. 말씀하세요.”
서 비서관은 낮게 웃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고령 국가 석유비축 기지는 69년에 완공해서 수명을 다했습니다. 그것을 넘길 수 있습니다.
“그것 참으로 좋습니다.”
-고령 국가 석유비축 기지는 1단지부터 4단지까지 있습니다. 그중 1단지를 넘겨 드리겠습니다. 시설은 오래되었어도 몇 번 전면 수리가 이루어져 사용하는 것은 문제없을 겁니다.
“직접 가서 봐도 될까요?”
서 비서관은 잠깐 망설이다가 정면으로 물었다.
-어디에 쓸지 물어볼 수 있겠습니까?
만수르 프로젝트는 말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믿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석유 채굴 테마파크를 만든다는 계획입니다.”
딱 봐도 사실이 아니었다.
-이것도 골든보이가 말했으니 믿어야 합니까?
나는 낮게 웃었다.
“다 믿을 필요 있나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석유비축 기지를 넘기는데,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좋습니다. 내일 바로 가보겠습니다.”
-저희도 준비하겠습니다.
다음날. 고령 국가 석유비축 기지로 향했다.
산과 임야 포함 20만 평 땅 안에, 200만 배럴의 저장탱크가 있었다. 이 정도면 원유를 뽑아 올려도 충분히 저장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천천히 돌아보시지요.”
멀리부터 석유 냄새가 진하게 났다.
기지 입구로 열차 길이 연결되어 석유를 뽑아 올리면 바로 여수나 광양에 있는 정유공장으로 보낼 수 있었다.
기지 정면에 있는 중앙통제실로 갔는데, 너무 낡아서 다시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직원 숙소와 식당은 사용한 지 30년은 넘어 보였다. 모두 새롭게 건축해야 했다.
석유 저장 기지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 저장탱크에는 미세하게 석유 유출이 있어서, 1단지에 있던 원유를 2, 3단지로 옮겼다고 했다.
심각한 누수는 아니었기에, 보름 정도 작업을 하면 잡을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
외부에도 3개의 석유 저장고가 있었는데, 윤 교수님이 초빙해준 비 파괴 검사 전문가가 꼼꼼하게 확인했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이번에 수리만 잘하면 내, 외부 탱크 모두 30년은 거뜬히 쓸 수 있다고 했다.
다음 확인할 것은 외부 보안 시설.
특별하게(?) 원유를 확보할 계획이기 때문에 보안시설 확충은 꼭 필요했다.
전체적인 시설의 조감과 외곽 보안시설의 확인을 위해서 산길로 차가 오르고 있었다.
일단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오래된 감시 초소가 목적지였다.
산길을 오르는 차도는 너무도 오래되어서 움푹움푹 패어 있었다.
돌과 나무를 피해 운전을 해야 할 정도였다.
“나무가 길을 막았다.”
길가에 있는 나무가 벼락을 맞았는지 도로 쪽으로 쓰러져 있었다.
태경이가 차에서 내려, 과도하게 어깨에 힘을 주며 말했다.
“다 비켜 형님이 오랜만에 힘을 써준다.”
혼자서 나무를 밀었으나 나무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입술 끝이 올라가며 웃었다. 그리고 더욱 어깨에 힘을 주며 말했다.
“아침에 먹은 국밥이 아깝다. 비켜봐. 이 형님이 진정한 파워를 보여줄게.”
나는 순간 통나무를 밀었는데 나무가 물을 먹었는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태경이가 나를 비웃으며 말했다.
“나무 밀다가 똥 싸냐? 뭘 기다려?”
“몸이 덜 풀려서 그래.”
나는 다시 힘을 쓰기 위해서 통나무를 꽉 쥐었다.
이때 눈에 금빛이 들어왔다.
!!!!
나는 통나무를 버리고 숲속을 바라보았다.
태경이가 비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뭐해? 괄약근이 약해져서 찔끔 나왔냐?”
나는 숲 사이의 황금빛을 보며 말했다.
“빛이다. 숲에서 빛이 보여.”
태경이가 매우 놀라며 물었다.
“빛이라고? 무슨 색?”
“황금색.”
“대박!”
기지 뒷산의 중턱쯤에서 분명한 황금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때 미션이 떴다.
<<황금인은 그날의 재앙을 확인하라.>>
<<금관가야의 멸망 유적을 확인하세요.>>
<<보상 : ‘시간을 돌리는 손’을 드립니다.>>
나는 멍하니 미션창을 확인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