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워커홀릭.
처음 아버지를 회사로 모셨을 때,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겠냐며 출근하기 싫어하셨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 변신.
아침 7시에 가장 먼저 출근.
밤 9시 퇴근.
올라오는 결재 서류를 조사 한자 빼놓지 않고 모두 확인했으며, 잘 모르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그래서 북한에서 돌아왔을 때, 내가 해야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서 상무가 간단하게 현재의 회사 상황을 설명했다.
광명 황금 동굴 테마파크에서 매달 입장료가 입금되고 있었다. 이것으로 월급과 사무실 임대료를 주고도 남는다고 했다.
호주 B-5에서 1차 선적된 구리 광석도 이틀 뒤에 한국으로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고,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제련 회사인 BH 아연이 구리를 인수하기로 되어 있었다.
사실.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구리 광석을 선적한, 배 안에 석유 시추 장비 2세트가 들어 있다고 했다.
석유 시추 장비라··· 흐흐흐
이제 ‘만수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이때 밖에 나갔다고 돌아온 태경이가 밝게 웃으며 들어왔다.
“이 형님이 돌아왔다.”
손에는 스벅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촉촉 생크림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오~ 센스. 북한에서 고생하더니 좀 사람이 된 것인가?
스벅 촉촉 생크림 케이크를 한입 넣었다.
아.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본주의 극한의 맛.’
북한의 양각도 호텔에서 먹은 촌스러운 케이크보다 한 3,000배쯤 맛있었다. 공산당 새끼들이 쫓아 오려면 한 300년은 필요한 고급스러운 단맛이었다.
하지만 커피 몇 번 쭉 빨고, 포크질 몇 번 했더니 케이크가 모두 사라졌다.
경복이가 발끈했다.
“머릿수대로 사 와야지. 입맛만 버렸잖아.”
태경이가 혀를 차며 경복이를 바라보았다.
“이 멍청아! 애피타이저로 먹어. 저녁때 실장님 참치 먹을 거야.”
오! 실장 스페셜 참치!!
경복이는 눈을 크게 떴다가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생각이 깊은 친구였군. 내가 자네를 오해한 모양이야.”
이때 아름다운 모습의 유 비서가 들어왔다.
아. 역시 남한 스타일. 뭔가 자연스러운 미모가 돋보인다.
남남북녀 아니다. 남자도 여자도 남한 사람이 잘생기고 예쁘다. 북한의 촌발 날리는 화장은···. 정말 NG였다.
좀 어감이 이상하지만, ‘남남남녀’다.
나는 유 비서를 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야?”
“손님이 오셨습니다. 대표님.”
“손님?”
“인화 그룹 보안과 김상진 부장 오셨습니다.”
오 상진이 형 왔어?
“안으로 모실까요?”
여기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 그 이름을 듣자마자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상진이 형은 분명 할머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큰아버지가 보낸 ‘사자’다.
“흐흐흐 빈손으로 오지 않았을 거다.”
유 비서가 나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
“빈손으로 오셨던데요.”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야. 혼자 한 말이야. 안으로 모셔.”
곧 상진이 형은 웃으면서 다가왔다.
“김정은이랑 손잡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TV에 나와 진짜 놀랐다.”
할머니가 ‘피의자’고, 내가 ‘피해자’니,
갑甲은 나다. 사람들이 자주 한다는 그 ‘갑질’. 나도 좀 해 보자.
나는 건방지게 다리를 꼬며 말을 놓았다.
“왜? 국정원에 신고하려고?”
내가 갑자기 건방진 자세로 반말을 하자, 김상진은 잠깐 충격을 받은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런지 별말 하지 않고 머리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취하서’를 받아오라는 아버지의 엄명을 받은 것이었다.
그래서 가볍게 농담으로 받았다.
“하하. 동생을 고발할 만큼 나쁜 놈은 아니다.”
펄벅 교수의 연구 자료도 빼가고
보안과 놈들을 보내서, 나를 납치하려 하고.
형의 머릿속에 있는 ‘나쁜 놈의 정의’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나는 일단 상준 형의 속을 긁어 보았다.
“전에 을왕리에서, 그룹 보안과 애들을 내가 박살 냈는데 괜찮아? 그것 때문에 우리 형이 잘렸을까 걱정했어.”
“아. 그일···?”
“그룹 보안과 애들은 허우대만 멀쩡했지 ‘히마리’가 하나도 없어.”
갑자기 ‘을왕리 폭행 사고’ 이야기가 나오자 김상진은 순간 ‘발끈’했다. 아버지에게 ‘머저리’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날은 같은 ‘식구’라고 봐준 거야.”
‘걸려들었어.’
나는 놀란 척 물었다.
“보안과 애들을 형이 보낸 거야? 누가 보냈는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는데···”
김상진은 ‘아차’하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니. 뭔가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어. 아랫놈들의 ‘과잉 충성’이랄까? 그래서 내가 크게 뭐라고 했다.”
나는 낮게 웃었다.
“평소에 ‘나’를 뭐라고 하고 다녔기에, 그런 방식으로 ‘충성’을 해?”
할 말이 없는 김상진은 얼굴이 붉어져 ‘어버버’하고 있었다.
실장님 스페셜 참치가 기다린다. 빨리 큰아버지가 보낸 보따리나 풀어놔 봐.
내 옆에 앉아 있는 태경이와 경복이가 ‘적군’을 보는 강한 눈빛으로 김상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김상진은 조금 부담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둘이서 조용히 말하면 안 될까?”
“지난번처럼, 밑에서 보안과 놈들이 뛰어 올라올 수 있잖아.”
“도대체. 무슨 소리를···.”
나는 일부러 크게 웃었다.
“하하하. 농담이야. 형.”
상진이 형은, 갑자기 만들어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는 좀 그렇지 않냐? 여기 있는 네 친구랑 다 함께 좋은 데로 갈까? 형이 기가 막힌 곳으로 알아 놨다.”
“여자 나오는 곳?”
김상진이 머리를 크게 끄덕였다.
“남자들끼리 놀면 무슨 재미가 있냐?”
나는 일부러 빈 커피잔에 있는 얼음을 와자작 씹어 먹으며 말했다.
“소문에 약 먹이고, 몰카 찍어서 얼굴을 못 들고 돌아다니게 만드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고. 무서운 세상이야.”
나의 이야기에 김상진은 움찔했다.
어? 움찔?
그냥 찔러 봤는데. 이런 반응이라면, 뭘 준비한 거야?
물뽕에, 몰카에, 필로폰까지 날 완전히 죽이려고 작정한 거 아니야?
김상진은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무슨 농담을 그렇게 재미없게 하냐?”
나는 길게 한숨을 쉬며 몸을 늘렸다.
“형. 그냥 여기서 해. 큰아버지가 시켜서 할머니 이야기하러 온 거 다 알고 있어.”
이제부터 본론이고, 나는 할 말이 많다.
“사모님이 나를 ‘불태워’ 죽이려고 했어. 사람을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는 방법이지.”
나는 경복이와 태경이에게 시선을 잠깐 주고 말을 이었다.
“여기 있는 친구들 아니었으면, 나는 검게 탄 시체가 되었을 거야.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손님들에게 절 2번씩 받았겠지. 누가 부조금 가장 많이 냈는지 확인하면서 말이야.”
김상진은 침통한 표정을 연기했다.
“할머니가 정신이 온전치 않아. 치매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잘 몰라.”
그것을 지금 변명이라고 해주는 건가?
“형. 이미 사모님 만나고 왔어. 나를 보고 송곳니를 보일 정도로 쌩쌩하던데?”
“치매가 심하면, 감정적이고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한 거야···.”
“큰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자동차 주식 500억을 준다고 했어. 본인 주식을 아끼고, 큰아버지 주식을 주는 것으로 봐서는, 절대 치매 아니야.”
“자동차 주식 500억을?”
“왜 놀라? 모자간에 대화를 안 해?”
김상진은 당황하며 버벅거렸다.
“이번 사건은, 그 방화범 새끼가 거짓말해서 치매 할머니께 죄를 다 뒤집어씌운 거야.”
나는 경찰, 검사가 작성한 조서를 앞으로 내밀었다. 청와대가 받아온 것으로 이런 것이 진정한 ‘빽’이다.
“방화범 이야기는 다르던데? 범행 계획을 아주 구체적으로 지시했다고 쓰여 있네?”
나는 상진이 형이 열심히 변명하는 것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형. 진짜 열심히 산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리 검찰하고 경찰을 움직이려고 해도 안 움직여지니 답답하지? 솔직히 형도 여기까지 오고 싶지 않았잖아.”
김상진은 가볍게 숨을 뿜었다.
“높은 쪽에 선이 닿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당연하지. 북한 NO. 1 김정은 위원장 손을 잡고 이야기하는 거 형도 TV로 봤잖아.”
“농담하지 말고.”
“그룹 보안과 애들이 또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면, ‘인민군 자살 특공대’를 형 사무실로 보낼 거야. 아마 폭탄 스위치를 누르면서 ‘김정은 장군 만세!’라고 할걸?”
김상진의 인상이 더욱 구겨졌다. 확실히 농담 같지만, ‘설마’ 하는 느낌이 있다.
“그냥. 간단하게 원하는 것을 말해봐. 우리가 너의 조건을 다 맞춰줄 수 있다.”
나는 정색하고 말했다.
“죄지은 사람이 감옥에 가는 것. 말 그대로 정의 구현. 나는 그것을 원해.”
“할머니 나이가 몇인 줄 알아? 감옥 가면 돌아가셔.”
“할머니가 밖에 있으면 또 마수를 뻗을 거야. 그 걱정에 내가 잠을 편하게 잘 수 없을 것 같아. 나부터 살고 봐야지.”
“간단하게 숫자로 말하자. 얼마나 보상할까?”
나는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 단숨에 마시고 일부러 시원하게 ‘트림’을 했다.
그리고 청와대가 가져온 ‘최신 정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고모님 아니, 우리 부회장님이 할머니를 ‘한정치산자’로 만들고 있다던데?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김상진의 표정이 극히 어두워졌다. 그 사실까지 알고 있다니···
“‘*한정치산자’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아.”
(정신이 온전치 못한 구성원의 재산을 가족이나 대리인이 관리하는 것.)
나는 낮게 웃었다.
“이것이 바로 진퇴양난인가? ‘정신병’으로 밀고 가야. ‘감옥’이 아니라 ‘정신병원’으로 갈 수 있는데, ‘정신병’으로 결론 나면 할머니가 ‘한정치산자’가 되네?”
“그것은···.”
“사실. 형도, 큰아버지도 할머니가 감옥에 가도 상관없는데, 할머니가 감옥에 가기 싫다고 버티고 있으니 정말 큰 일이야. 정신병원 VIP 병동에 있으면 한정치산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인데.”
“나는 할머니의 건강을 걱정하여···”
“할머니가 한정치산자가 되면, 회장님의 주식을 할머니가 대신 권리행사하는 것도 없어지고, 회장님과 할머니의 주식 모두를 고모와 ‘반땅’ 해야 해. 그럼 큰아버지가 회장님이 되는 꿈은 멀리멀리 ‘빠이빠이’ 되는 것 아닐까?”
나는 크게 웃었다.
“아! 이번 기회에 우리도 변호사를 써서, 아버지께도 몇 주 떨어지게 해야지.”
상진이 형이 뭔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혀를 차며, 상진이 형을 보았다.
“이 정도 ‘싸이즈’를 이야기하려면 형이 아니라 큰아버지가 직접 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형의 아래쪽을 살짝 보며 말했다.
“형은 아직 사이즈가 좀 작아.”
김상진의 표정에 분노가 보이며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이때 태경이가 커피잔을 강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뒤지기 싫으면 그냥 앉자.”
경복이도 강한 눈빛으로 말했다.
“나도 그날 연기 마신 사람인데. 여기가 괴산이었으면, 우리 형님. 한대 까서 뒷산에 묻었을 거야. 그러니까 닥치고 앉아.”
김상진은 순간 쫄아 그냥 앉았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아빠 찬스~
“전화 좀 할게.”
처음부터 그를 것이지. 왜 이렇게 시간을 끌어.
그는 사무실 구석으로 가서 조용히 통화를 하더니, 스피커 모드로 바꾸며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큰아버지 김도영 회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열이 거기 있냐?”
나는 소리 내어 웃으면서 말했다.
“이 정도면 얼굴 보면서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차가웠다.
“이제 제대로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던데?”
“10년 기르던 똥개도, 주인이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하면 ‘송곳니’를 보입니다. 저는 개만도 못한 겁니까?”
큰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 번 더 속을 긁었다.
“할머니가 한정치산자 판결이 나면, 큰아버지가 그룹을 승계하는 데 큰 문제가 생기겠습니다. 고모님이 연기금하고 은행장 몇 명을 잘 ‘사사삭’ 하면 그룹 회장님은 고모로 바뀔 수 있을 것 같군요.”
큰아버지는 계속 말이 없다가, 겨우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인화 모직은 넘기겠다. 나에게 줄을 서라.”
“인화 모직이요?”
인화 모직은 매출액 1,500억대 회사로 ‘역사’가 있는 회사였다.
“인화 물산 주식을 1%나 가지고 있는 곳이다.”
쓸데없는 미끼를 던지시네.
“인화 그룹 경영권 따위는 조금도 관심 없습니다.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이 태산처럼 많거든요.”
당장 진행해야 할 프로젝트만 두 개다.
태양광 프로젝트.
만수르 프로젝트.
“다시 한번 힘주어 이야기하자면, 인화 그룹의 주식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세요.”
“내 꼬리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낮은 낮게 웃으면서 말했다.
“꼬리가 있습니까?”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가 보실래요?
김도영 부회장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마지막 제안이다. 인화 모직을 넘기고, 네가 이번에 만든 인화 솔라를 매입하겠다.”
응? 이건 또 뭔 신박한 개소리냐?”
“인화 솔라를 매입 하신다고요?”
“인화 솔라를 1,500억 아니, 2,000억에 매입하겠다.”
나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기에 이런 제안을 하는 거지?
큰아버지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인화 솔라는 말라 죽어. 재산 대부분을 여기에 쏟아 넣었으니 어떻게든 돈을 건져야지. 이것은 하늘이 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쓸데없는 이야기 하지 말고 내 손을 잡아!”
“무슨 생각인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인화 솔라는 죽어가는 하마야. 지금도 먹기는 엄청나게 먹지만, 다 크기도 전에 죽는다.”
인화 솔라가 ‘죽어가는 하마’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 재미있는 말씀 하십니다.”
“허세 부리지 마라.”
“LD&인화 태양광 회사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곧 거인과 개미만큼의 차이가 되겠지. 내가 손가락으로 인화 솔라를 누르면 끝나는 싸움이다.”
나는 다시 한번 크게 웃다가 머리를 숙였다.
“부회장님. 행복한 시간 되십시오.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일 겁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거침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상진이 형을 차가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다들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상진이 형이 화를 내며 말했다.
“경영에 감정을 넣으면 어쩌자는 거야? 무조건 아버지 손을 잡았어야지.”
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 형님도 아직 꿈속이시네. 우리 모두 행복하니까 참 좋다.”
“인화 모직 1,500억에, 인화 솔라 2,000억이면, 최대한 ‘성의’를 보인 거 아니냐?”
“형이 모르는 것이 많아.”
“자존심 버릴 때는 버려야 해! 회사가 망하면···.”
나는 말을 끊었다.
“생각보다 좋은 제안이었다고 김도영 부회장님께 전해 드리고.”
“너 진짜···.”
나는 여유 있게 말했다.
“할머니께 그냥 감옥 가시라고 해. 그러면 간단하잖아.”
김상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오늘의 일. 평생 후회하게 될 거다.”
“유 비서. 여기 소금 뿌려~ 재수 없다."
어쨌거나, 우리 인화 솔라를 그렇게 봤다는 말이지?
“인화 솔라로 가자.”
우리는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고, 바로 펄벅 교수가 있는 대표이사실로 직행했다.
역시나 펄벅 교수가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하며 말했다.
“오 천사님~”
아. 수십 번 들었어도 적응이 안 된다.
“펄벅 사장님. 그동안 별일 없었지요?”
펄벅 교수는 크게 웃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연구는요?”
펄벅 교수가 금고에서 검녹색 ‘태양광 셀’ 하나를 꺼내 들었다.
“63%짜리 태양광 셀의 개발이 완벽하게 끝났습니다.”
푸하하하하하.
김도영 부회장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던, 내가 미친놈이었다.
나는 펄벅에게 물었다.
“요즘 회사 분위기가 어떻습니까?”
펄벅은 눈만 크게 떴을 뿐, 아무 말도 못 했다. 보안상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으니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몰랐다.
“그럼 분위도 띄울 겸 회식이나 할까요?”
“회식? 같이 고기 먹는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국산’로 먹겠습니다.”
“You are an American. 교수님에게 국산은 ‘미국산’ 아닌가요?”
펄벅 교수는 정색하고 말했다.
“노. ‘국산’ is ‘한우'”
갑작스러운 회식. 장소는 회사에서 가까운. 삼한한우.
30명이 들어갈 수 있는 방이 있다고 해서 잡은 삼한한우는 ‘으리으리’했다. 삼정승이 사는 대갓집 같이 생겼는데, 물이 흐르고 물레방아까지 있었다.
2층에 회식 장소가 있었고, 칸막이를 전부 치워 거대한 방을 만들었다.
인화 솔라의 간부와 연구원을 전부 모으니 40명은 충분히 넘어 보였다.
‘회식’
같이 고기를 먹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직원들의 대부분은 회식을 싫어한다.
공짜로 고기를 먹는데 왜 싫지?
누가 꼰대들의 '라떼는 말이야'에 비유를 맞추면서 술을 먹고 싶어 하겠나.
꼰대들의 재미없는 이야기가 처음이면 말도 안 한다. 이미 100번쯤 들은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것처럼 듣고 있으면 귀에서 피가 난다.
돼지갈비 먹을 것이면, 마음 편하게 '넵플렉스' 보면서 맥주 한 캔 마시는 것이 훨씬 좋다.
젊은 직원들이 회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꼰대들이 이런 말을 했다.
‘회식은 일이다.’
그러니 업무 시간에 회식하는 것이 맞다.
일하는 시간인 ‘오후 4시’에 식당에 모이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한우 + 일하는 시간에 시작하는 회식, 듣기만 해도 좋지 않나?
나는 그것을 실현했다.
모든 직원은 나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어제까지 인화 솔라는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개발하던 차세대 태양광 셀이 해킹당하고. 그것으로 거대한 경쟁 회사인, LD와 인화의 태양광 합자 회사가 만들어졌다.
직원들이 충격받은 것은, ‘모회사’라고 생각했던 인화 그룹이 자신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적과 함께 자신들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럴 때 대표가 갑자기 나타나, 대낮부터 간부들을 식당에 모은 것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기가 앞에 있는데, 누가 말을 길게 하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특히 오늘같이 ‘한우’가 있는 날에 말을 길게 한다는 것은 매너가 아니지요. 저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좌중에서 가볍게 폭소가 터졌다.
원래 하나도 재미없는 말도 사장이 하면 반사적으로 웃음이 나왔다. 직장인의 ‘조건반사’라고나 할까?
“딱 1분만 짧게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방금 우리 회사를 2,000억에 사겠다는 곳이 있었습니다. 왜 사려 했을까요? 우리가 준비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엄청난 것을 말입니다.”
나는 펄벅 교수님께 손을 들어 보였다.
한국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가 손을 들어 보이니 활짝 웃으면서 같이 손을 들어 보였다.
“우리 펄벅 사장님이 또 엄청난 것을 개발 완료하셨습니다. 해킹당한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번 주유에 250km 가는 기름과 500km 가는 기름 중 무엇을 쓸 것인가? 게다가 500km 가는 기름이 더 싸다.
이미 싸움은 끝나 있었다. 그런데 왜 기다리느냐?
바로 LD와 인화가 돈을 때려 부어서 250km 가는 기름 공장을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쏟아부은 만큼 엄청난 타격으로 돌아올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이 자기 몸에 더 많은 다이너마이트를 붙이게 기다릴 생각이었다.
언젠가 내가 직접 그 도화선에 불을 붙일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이곳 한우집 사장을 불러서, 지금 가게 안에 있는 모든 한우를 전부 달라고 했다.
그리고 아줌마들에게 각각 10만원을 줄 테니 와서 고기를 구워 주라고 이야기했다.
2,800만 원을 회식비로 긁자, 이제는 여기 사장님의 사모님까지 와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골든보이 콘텐츠를 보신 분?”
대부분 사람이 손을 들었다.
사장이 어떤 미친놈인지 알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제가 호주에 금광이 있는 것을 아시죠? 골든보이가 망할까 걱정하는 것만큼 미친 짓이 없습니다. 호주 가서 한 달 정도 고생하면 금을 캘 수 있어요. 그리고 주말에 경주라도 놀러 가서 몇 바퀴 휘휘 돌면 문화재를 발굴할 수도 있습니다.”
경주. 좋은 생각이다. 다음에 꼭 가자.
“그런데 왜 내가 우리 인화 솔라에 와 있냐? 여기가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고 말했다.
“요즘 어디 주식이 제일 비쌉니까? 삼송, 마이크롭소프트, 태슬라? 저는 곧 인화자원개발의 주식이 그 가격을 따면 잡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너무 ‘허풍’ 친다고 생각하겠지?
펄벅 교수에게 앞으로의 사업 전망을 말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가 영어로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대부분은 영어가 유창하여 펄벅 교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이번에 개발 완료된 새로운 태양광 셀로, 5년 안에 인화 솔라는 매출액 10조 원의 회사가 될 것입니다.”
새로운 태양광 셀이 있다는 말에 사람들은 모두 눈을 크게 떴다.
자신 있는 펄벅의 말은 계속되었다.
“이미 연구 중인 ‘태양광 플라스마 기술’이 완료되면, 매출이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석유와 원자력 중심의 시스템에서, 태양광 에너지 시장으로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뀔 것입니다.”
나의 표정은 황홀했다.
‘10년 안에 매출 10조라.’
역시 펄벅 교수는 황금 나침반이 가리킨 ‘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