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개성’으로 가던 1호 열차가 철로에 있던 폭탄에 의해 완전히 폭발했다.
김정은의 떨리는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개성 가는 열차가 폭파될 것을 어떻게 알았나? 이것은 짚고 넘어갈 문제야.”
“여기에 금이 있는 것은 어떻게 믿으셨습니까?”
김정은은 좀 생각하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어. 그래도 설명해 보라. 김 선생이 말하는, 그대로 믿겠어.”
군관이 김정은 앞으로 가져온 의자에, 내가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가끔씩 ‘미래에 일어나는 사고’를 내다 봅니다. 이것을 보통 ‘예지몽’이라고 하지요.”
“예지몽?”
생각지도 못한 설명에 김정은은 인상을 살짝 구겼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했다면 화부터 낼 만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골든보이는 금을 찾는 특별한 사람이다. 예지몽을 꾼다는 이야기를 100% 헛소리로 치부할 수 없었다.
게다가 예지몽으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것은 사실 아닌가?
나는 정색한 표정으로 김정은을 바라보았다.
“그것도 정확한 예지몽을 꿉니다. 특히 누군가가 죽는 예지몽은 백발백중이지요.”
이미 썸플러스 화재 사건을 예지몽으로 보았다.
김정은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죽음에 대한 ···예지몽을 꾼다는 말인가?”
“열차가 폭발하는 예지몽을 꾸고, 위원장께서 제 말을 믿어줄까 걱정되어, 말씀드릴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저와 우리 외교단이 그 열차에 함께 타게 되었지요. 그래서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 목숨이 위험해졌으니까요.”
“그랬다. 열차가 막 출발하기 전에 나에게 왔지.”
나는 김정은에게 강한 눈빛으로 말했다.
“제가 위원장님의 목숨도 ‘선물’로 드린 겁니다.”
김정은은 조금 생각하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김 선생을 믿어. 나는 분명 골든보이를 믿는다고 말했다.”
금도 보여주고, 암살도 막아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믿음이 가득했다.
무슨 말을 해도 믿을 것 같은 표정이기에 나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 내 마음대로 꾸민 한마디를 했다.
“조금은 흐린 꿈이라, 이야기하지 않으려 했지만, 위원장께서 믿는다고 하시니 한마디 더 하겠습니다. 이곳에 ‘대기근’이 오고, 인민들이 배가 고프다며 횃불을 들고 길 밖으로 뛰어나왔습니다. 군인까지 포함해서 말이지요. 성난 군중들 때문에 평양에 대화재가 일어나고 그 불길은 주석궁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누구도 불을 끄려 하지 않았지요.”
쓸데없는 곳에 돈 쓰지 말고. 북한 주민들 밥 잘 먹이라는 말이야.
믿는 얼굴인가? 나는 은근슬쩍 김정은의 표정을 살폈다.
김정은은 나의 말에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바로 떠올렸다.
“대기근이 있다고?”
자세히 물어보면 할 말이 없다. 막 머릿속에서 지어냈기 때문이었다.
“열차 사건처럼 가까운 때가 아니라 그런지, 보였던 것이 흐렸습니다. 하지만 뼈만 앙상하게 마른 인민들이 횃불을 들고 몰려오는 장면은 선명하게 봤습니다.”
김정은은 나의 말에 살짝 겁먹은 것 같았다. 인민들의 폭동을 겁내지 않는 독재자는 없었다.
“횃불을 든 인민이라···.”
“비가 내리지 않아, 전국이 메말라 있으면 작은 불씨 하나에도 온 강산에 불이 붙습니다. 위원장님이 할 것은 불씨를 다스리는 일이 아니라, 비를 불러 북조선을 촉촉하게 만드는 일일 겁니다.”
“‘비를 부른다.’ 표현이 마음에 드는군.”
“눈앞에 쌓여 있는 금이라면 ‘기우제’를 지내기에 정성이 부족하지 않을 겁니다.”
이때 나이 든 비서가 ‘살생부’와 ‘뇌물 장부’를 모두 복사하고 원본을 김정은에게 다시 가지고 왔다.
김정은의 표정이 순간 차갑게 바뀌었다.
“기우제를 지내기 전에 하늘에 ‘제물’을 올려야겠어.”
제물이 무엇을 말하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장성택의 ‘비자금 장부’와 ‘김정은 열차 폭파 사건’은 하나로 합해져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었다.
장성택 장부 명단에 없는 인물까지 반역자로 잡아넣을 수 있는 기회였다.
김정은은 보위부 이성출 장군에게 명령했다.
“장성택 리스트에 나온 놈들은 물론이고, 비서실에서 리스트를 하나 더 줄 거야. 그놈들도 같이 수용소에 다 박아 버려.”
“알겠습니다. 위원장 동지.”
김정은의 표정은 엑스칼리버를 뽑은 아서왕의 표정이었다. 눈엣가시였던 오래된 늙은 ‘원로’들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기회였다. 게다가 그들의 재산까지 빼앗아 통치자금을 확보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김정은은 명단을 쭉 확인하다가, 이곳에 와 있는 류경수 탱크부대 장군의 이름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혁명 2세대의 대표주자.
올해 87세로 사령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지만, 군부 내에 영향력이 강해 그 자리에 눌러앉아 있는 장군이었다.
김정은은 당장 그 명단을 가지고 늙은 대장 앞에 섰다.
“당신도 장성택에게 돈을 받았어?”
김정은이 물어보자, 옆에 있던 보위부 장교들이 순간 달라붙어 그 늙은 장군의 허리에 있는 권총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그 권총을 김정은에게 넘겼다.
“정성택이에게 돈을 받고 무슨 일을 해주기로 했소? 장군.”
늙은 장군은 바로 온몸에서 힘이 빠지며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그냥···. 인사차 준다고··· 했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받았다는 말이오?”
“위원장님. 살려주십시오.”
김정은은 차가운 눈빛으로 권총 총구를 류경수 탱크부대 늙은 대장의 이마에 겨누었다.
“그것이 배신자가 남기는 마지막 말인가?”
“저는 ···단지 ‘인사’만 받았을 뿐입니다. 장군.”
갑자기 김정은이 낮게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폭소를 터트렸다.
“당신의 이름이 살생부 명단 7번째에 나와 있는 것을 아시오?”
“예?”
김정은은 복사한 살생부 복사본 1장을 주었다.
“장성택이 돈을 줬지만, 막상 성공하면 당신을 죽였을 것이란 말이지.”
“그···그것은···”
“이 권총을 받으시오. 장군.”
김정은은 권총을 다시 늙은 대장에게 넘겨줬다.
“나에게 충성을 다하라. 대장.”
살길을 찾은 늙은 대장은 온몸에 힘을 주며 일어서 경례하며 말했다.
“예. 지도자 동지!!!”
“충성 맹세를 하라!!”
늙은 장군은 이마를 땅에 박으며 몇 번이고 충성을 맹세했다.
김정은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1호 객차가 폭발했다. 전방 부대의 반동분자 놈들의 소행이야. 탱크부대를 끌고 가 당장 그 괴수를 잡아 오라.”
“목숨을 다해 사명을 완수하겠습니다.”
노인 장군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선봉에 설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부대의 기세가 살아나고 어떤 적도 단숨에 격파할 수 있을 것이었다.
죽었다가 살아난 얼굴로 장군이 나가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느 정도 일이 마무리된 것 같군요.”
“오늘은 김 선생 덕에 큰일을 많이 하는군.”
“골든보이가 제법 기특한 일을 많이 했으니, 제가 말한 ‘이벤트’를 위원장님께 부탁해도 될까요?”
김정은은 시원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그래야지! 나는 약속한 것은 지키는 사람이야.”
그날 밤 한국 뉴스에서는 재미있는 뉴스가 쏟아졌다.
김정은이 탄 열차 폭파.
김정은 사망설.
방북 한국 외교관 간첩 혐의로 단체로 억류.
평양 시내에 탱크와 장갑차의 배치.
쿠데타 발발 시나리오.
각종 확인되지 않은 뉴스 때문에, 전방 부대에 ‘데프콘 2’가 발령되었다.
하지만 오후에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는 뉴스가 갑자기 터졌다.
갑자기 ‘정상회담’이라니?
북한 쪽 판문점에서 우리 외교관들이 활짝 웃으면서 한국 땅으로 걸어 넘어왔다.
단장이 미리 준비된 단상에서 이번 회담의 성과를 이야기했다.
이산가족 상봉.
식량 지원과 옵서버.
남쪽의 고향방문단.
북한 대표단 서울방문
고려 황궁 공동 발굴 및 복원 사업.
휴전선 유해 공동개발 사업.
양측 중화기 일부 휴전선에서 철수.
개성공단 2차 개발 사업.
···
등의 성과를 이야기했다.
나는 외교관들에 끼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완전히 피곤한 표정. 꼭 행사해야 해? 그냥 집에 가서 쉬고 싶다···.
얼마 후 김정은이 모습을 드러냈고, ‘북남평화의 시대’에 대한 연설을 했다.
남한 대통령도 김정은의 연설을 받아, ‘남북한 공존 발전’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그리고 판문점 작은 연못 앞에서, 두 지도자가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중계가 되었다.
이때 갑자기 김정은이 나에게 다가왔다.
어? 설마. 설마. 설마.
그는 나의 손을 잡고 대통령 앞으로 끌고 갔다.
“이 친구 북한으로 보내주시면 안 됩니까? 제가 큰 것으로 양보할 수 있습니다.”
남한 대통령도 낮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김 대표 오랜만이야. 북한에서 잘 지냈나?”
나는 당황하였으나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한민국의 외교관으로, 양국이 만족할 결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낭중지추’라고 북한에서도 우리 김 대표가 큰 활약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김정은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공화국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이번 양국 간의 외교적 성과는 우리 김 선생이 다 만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는 겸양을 떨며 말했다.
“위원장님이 저를 너무 좋게 보신 모양입니다. 과찬이십니다.”
당연히 좋게 보겠지. 내가 벌어준 돈이 얼마야?
김정은이 웃으면서 말했다.
“일 년에 6개월은 평양으로 보내주세요. 보답은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대통령은 순간 주도권을 잡고 웃으면서 말했다.
“저도 우리 김 대표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 많습니다. 대한민국 젊은 인재상을 그냥 받은 것이 아니지요. 그리고 남한은 자유를 중요시하는 곳이라 우리 김 대표의 의중이 가장 중요합니다.”
김정은이 나를 은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김 선생. 우리 자주 봅시다.”
“위원장님이 불러 주시고, 대통령께서 허락하면 올라가겠습니다.”
아 불편해서 안 올라갑니다. 특히 화장실 때문에 못 가겠어요.
김정은은 쓴웃음을 지었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두고 있어서 부럽습니다. 대통령님.”
“언젠가 사람과 사람이 자유롭게 남북을 왕래하는 때가 오지 않겠습니까?”
그거 하면 북한이 ‘지옥’이 된다고 정은이 형이 ‘자유 왕래’ 안 한대요.
김정은은 대통령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비서실 사람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기자 앞에, 액자에 들어간 그림 3점과 액자에 들어간 각종 편지를 쭉 펼쳐 놓았다. 순간 야외 갤러리가 되었다.
그리고 비서관 할머니가 앞으로 나와서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김성열 대표가 이 공민왕 그림과 편지를 만월대에서 발굴했고 남한 국민께 꼭 보여주고 싶다고 간청을 해서 김정은 위원장님이 이 그림을 김성열 대표에게 선물하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추가로 북조선이 가지고 있는 고려청자 10점도 같이 공개되었다.
김정은이 가지고 있던 ‘컬렉션’이었다.
“이 고려청자는 김성열 대표가 고려 황제 위패를 발견한 공로로, 위원장님이 선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으나 비서는 새침한 표정으로 사라졌다.
김정은은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야. 김 선생.”
“깜짝 선물이 있군요.”
“내가 가지고 있던 컬렉션 중에 쓸만한 놈으로 추려 보았어. 계속 김 선생을 보고 싶다는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야.”
“감사합니다. 위원장님.”
“내가 자네에게 감사해야지.”
나는 대통령님께 말했다.
“이 그림과 도자기를 잠시 대한민국 정부에 맡기겠습니다. 하지만 소유권은 제 것이라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이 웃었다.
“소유권 등록과 판매할 곳도 우리가 알아서 해결해 주지.”
나는 강한 눈빛으로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북한에서 인터넷이 되지 않아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인화자원개발 방화 사건’의 처리는 잘 되고 있습니까?”
범인은 바로 ‘인화 그룹 회장님의 사모님’으로, 북한에 가기 전에 직접 찾아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대통령도 자신 있는 얼굴로 말했다.
“나도 위원장과 같은 말을 하고 싶네.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야. 김 대표.”
나는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통령님.”
“검찰 놈 중에 물 밑으로 움직이는 놈들이 있어서, 지방으로 보내 버렸어. 더 이상 검찰 내에 일을 방해할 놈은 없을 거야.”
김정은이 웃으면서 농담 한마디를 던졌다.
“김 선생. 나라면 장갑차를 보냈을 거야.”
김정은이 가볍게 마무리 인사를 하다가 명함 하나를 나의 주머니에 넣었다.
“스위스 계좌다. 1,000만 달러 넣어 놓았어. 꿈값으로 하지.”
나는 명함을 작게 찢어서 버렸다. 한국에서 절대 먹으면 안 되는 돈이다.
“마음이라면 방금 주신 고려청자로 충분합니다.”
김정은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은 편하게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군.”
나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제가 말한 ‘횃불을 든 인민’ 꿈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김정은도 머리를 끄덕였다.
“다른 ‘예지몽’을 꾸면 나에게 다시 연락해.”
나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으나, 다시 한번 ‘김정은 꿈’을 꾸고 싶지 않았다.
아이유 꿈이나 꿨으면 좋겠다.
아!!! 예지몽에서 아이유 님이 나오면 안 되지. 취소. 퉤퉤.
남북 정상회담은 전시성 이벤트로 잘 마무리되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성과는 북미 회담의 결과가 말해 줄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잔치’이고 ‘파티’였다. 남북 모두 오늘만은 행복했다.
나는 너무도 귀찮았지만, 어차피 할 것 한꺼번에 해결한다는 생각으로 기자들 앞에서 섰다.
그리고 만월대에서 발굴한 고려 왕의 황금 위패와 위화도 회군 이야기를 길고 재미있게 했다.
하지만 기자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김정은과의 관계.
특별한 사적 관계는 없다고 했다. 이렇게 딱 잘라 이야기하지 않으면, 내일 김정은 하고 사귄다(?)는 소문이 돌 것이 뻔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텍사스 수제 햄버거 먹기.
실장 스페셜 참치 먹기.
사케가 무슨 맛인지 마셔보기.
온종일 밀린 인터넷 보기.
진짜 코카콜라 마시기.
강남 백화점 가기.
···
등등의 이야기를 하며 행복해하고 있을 때.
경복이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야. 황금 나침반!!! 미션이 ‘위원장을 구해라’ 아니었어?”
위원장을 구하면, 황금 나침반을 충전해주는 보상이 있었다.
“아! 그랬지.”
“빨리 확인해봐.”
나는 품속에 있는 검은색 가죽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주머니를 열었다.
역시나 황금 나침반이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태경이가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거리는 얼마야? 방향은 어디고?”
나는 나침반을 보며 방향과 거리를 확인하려고 했다.
“어···. 그게···.?”
“왜 그래?”
나침반이 고장 났나? 바늘이 미친 듯이 회전하였고, 숫자도 999로 고정되어 있었다.
“차가 흔들려서 그러나? 잠깐 세워봐.”
차를 세워봤지만, 바늘은 계속해서 돌았다.
아 씨발! 개고생해서 미션 성공했는데 황금 나침반이 고장 났나? 순간 짜증이 나서 던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복이가 한마디 했다.
“숫자가 999라면 보물의 위치가 완전히 멀다는 이야기고, 방향은 목표가 너무 멀어서 찾지 못하는 것 아닐까?”
오. 설득력 있다.
여러 나라를 방문하다 보면 갑자기 나침반이 딱 멈추는 때 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번 기회에 유럽 여행도 해 볼까?
남아메리카?
브라질?
아르헨티나?
아님. 남극, 북극? 설마. 남극에 묻혀 있는 UFO를 발견하는 것 아닐까?
그래도. 거기는 추우니 빼자. 다른 사람이 발견할 것은 남겨 둬야지.
아님. 대륙 중국~~~ 가깝고 좋네. 여기도 왠지 뭐가 있을 것 같다.
이런저런 이야기 하고 있을 때 경복이가 운전하는 그랜저가. 새로운 인화자원개발 빌딩에 도착했다.
방화 사건으로 사무실이 모두 불타서 새롭게 임대한 곳이었다.
여기인가? 좀 허름한데? 서초구 최남단의 좀 오래된 건물에 입주해 있었다.
아버지와 서 상무 그리고 직원 몇 명이 밖으로 나와서 나를 반겼다.
아버지가 큰 말씀 없이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 많았다.”
“제가 없을 때, 사무실을 옮기느라고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죄송하네요.”
“김정은이랑 손을 잡은 것을 모든 직원이 보았어. 좀 놀랐다.”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으니, 웃을 수밖에···
“하하하. 그렇게 되었습니다.”
“네 엄마가 많이 놀랐다.”
등짝 스매싱인가?
“아셨으면 허락하시지 않을 것 같아서 말씀 안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대답 없이 낮게 웃기만 하셨다.
엄마는 혼자 상대하라는 것인가요?
우리는 새로운 사무실로 들어갔다. 전 사무실에서 불에 탄 자료와 가구를 최대한 구해서 이쪽으로 옮겼는지, 임시 사무실에서는 아직도 살짝 탄 냄새가 나고 있었다.
고모님의 손길이 닿은 인테리어의 사장실에 있다가, 절반쯤 중고 매장에서 산 가구로 꾸며진 사장실에 앉으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50평의 최신식 아파트에서 살다가, 지은 지 50년은 지난, 반쯤 무너져가는 빌라로 이사한 느낌.
그래서 지금의 임시 대표이사실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
새로운 사무실을 얻으면, 좀 더 심플하면서, 현대적이면서, 블랙&화이트로 꾸미겠다고 생각했다.
엘레강스 하면서 뷰리풀한···.
나는 서 상무님께 말했다.
“건물 하나 삽시다.”
서 상무는 잠깐 자기 귀를 의심했다가, 싼 빌딩도 많다고 생각했다.
“사무용 빌딩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직원들이 들어갈 곳입니다.”
“매입 비용을 얼마로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1,000억.”
서 상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천···. 천억이요?”
뉴욕 크리스티의 워렌이, 호주에서 발견한 ‘절규하는 현대의 황금인간’을 1억 달러에 산다는 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1억 달러는 1,100~1,200억.
대충 세금 및 수수료 떼면 1,000억 정도 되지 않을까?
“제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죠?”
서 상무는 머리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저는 골든보이를 완벽하게 믿습니다.”
“네. 그 정도 가격 선으로 알아보세요.”
조물주 위에 건물주 해 보자.
그럼 내가 그분(?)보다 레벨이 위가 되는 건가?
건물주 가즈아~
부족하면 공민왕 그림 판 돈과 고려청자 판 돈까지 집어넣으면 되었다.
그냥 건물주가 아니라.
강남 건물주.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