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철원의 한 커피숍. 이름은 닥터 두리틀.
80평 정도의 현대식 커피숍 건물이었는데, 앞에는 저수지가 있었고 잘 관리된 잔디밭도 있었다.
주말에는 많은 사람이 찾는 장소였지만,
지금은 평일, 9시 30분. 이 넓은 건물에는 손님이 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운치 있고 좋네.
오늘 만나기로 한 ‘유 장군’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손님’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마틴 대위였다.
“보스~”
호주에서 마틴 대위를 데리고 와, 직원 오피스텔에서 대기하라고 말을 하고 아무 명령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마틴은 한 3일쯤 대기했는데, 아무 연락이 없자 인화 자원개발 서 상무에게 전화하여 나의 위치를 확인했고 이렇게 찾아왔다.
아~ 마틴 대위를 호주에서 데리고 왔지. 완전히 미안하다!!!
여기는 대한민국. 내 ‘나와바리’인데 마틴 대위가 필요한가?
거꾸로 내가 마틴을 보호해주지 않으면 밥도 못 먹을 것 같았다. 한국말을 하나도 할 줄 모르던데.
마틴은 내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에, 옆 테이블로 넘어가서 앉아 있었다.
마틴의 엄청난 덩치에 카페에 온 사람들이 그를 꼭 바라보았다.
뭐랄까. 덩치 큰 골든 리트리버를 데리고 나온 견주가 된 느낌?
나는 조금은 미안한 마음에 들어서 커피 곱빼기···. 아니. 그랑데 사이즈로 주문하고 각종 케이크를 종류별로 사서 마틴에게 주었다.
밥은 먹고 살았냐?
커피는 나름 그랑데 사이즈 인데, 마틴의 손에 들어가니 마치 작은 에스프레소 커피잔 같았다. 게다가 케이크 조각도 절대 작지 않은데, 마치 한입에 먹는 마카롱처럼 보였다.
거대한 아메리카들소처럼 그 많은 양을 다 먹고 마시고, 다시 나를 바라본다.
어라? 이놈 봐라? 갑자기 호승심이 들었다.
나는 다시 한번 그랑데 사이즈로 라떼를 사고 치즈 케이크를 한판을 사줬다.
네가 어디까지 먹나 보자.
이때. 유 장군이 커피숍에 도착했다. 평소와 다르게 양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일어서서 유해준 장군님에게 인사했다.
“장군님 어서 오세요.”
유 장군은 절반은 반갑고, 절반은 왜 자신을 불렀는지 궁금해하는 눈빛이었다.
“안녕하세요. 김 대표님. 갑자기 보자고 해서 조금 놀랐습니다.”
나는 가벼운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좋은 일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곧 커피가 나왔는데, 마틴 대위가 먹고만 있기 미안했는지 번개같이 튀어나와 커피를 유 장군의 앞에 내려놓았다.
유 장군은 깜짝 놀랐다. 손님인 줄 알았던 거대한 덩치의 금발 외국인이 갑자기 자신의 앞에 커피를 내려놓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황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호주에서 고용한 마틴 대위입니다. 제 수행원으로 쓰고 있지요.”
“아. 외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직원도 글로벌 하시군요.”
나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늘은 소개해 주고 싶은 분이 있어서 장군님을 모셨습니다.”
“소개해 주고 싶은 분이요?”
이때 국산 중형차가 도착하더니 청와대 서진택 비서관이 내렸다. 사실 큰 재산가여서 비싼 차를 사고도 남았으나 보는 눈이 있어서 국산 중형차를 타고 다녔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비서관님.”
서진택 비서관도 정중하게 인사했다.
“김 대표님을 뵈면 늘 기분이 좋습니다.”
마틴 대위가 눈치껏 커피를 주문하여 서진택 비서관 앞에 가져왔다.
서진택 비서관도 마틴 대위를 보고 흠칫 놀랐지만 내가 웃고만 있자 머리를 끄덕이고 넘어갔다.
나는 유 장군과 서진택 비서관을 서로 소개했다.
“이분은 9사단 부사단장 유해준 준장이십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분은 서진택 청와대 의전 비서관님이십니다.
유해준 장군이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청와대요?”
서진택 비서관이 먼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서진택입니다.”
유해준 장군은 머리를 숙이며 악수를 하였다.
“준장. 유해준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당연히 영광이지. 유 장군이 청와대 실세를 이렇게 사석에서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진택 비서관은 예의상 몇 마디를 나누더니 이제 나를 바라보았다.
“어제 김 대표님 전화를 받고 잠을 못 잤습니다.”
“물건이 마음에 드셨습니까?”
서 비서관은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북한 땅굴은 너무도 필요한 아이템.
“대통령님을 지지하는 보수층 사람들을 결집할 수 있는 사건이 필요했는데, 김 대표님이 마침 좋은 제안을 했습니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30%의 바닥을 뚫고 25%로 내려왔다. 이대로 있으면 20% 밑으로 내려가서 식물인간 대통령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서 비서관님은 제값을 줄 것 같아서 가장 먼저 연락 드렸습니다.”
서 비서관은 머리를 끄덕였다.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 철원 미륵 대불을 발견했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운이 좋았다고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항상. 겸손하십니다.”
나는 웃음으로 대답을 먹었다.
그러자 서 비서관이 은근한 시선을 주었다.
“당연히 보상비를 드리겠지만···. 김 대표님 정도의 기업인에게 그런 것은 이제 큰 의미가 없겠지요?”
상장 기업을 먹어야 하는 미션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금은 10원 한 장이 아쉽다. 하지만 지금은 있는 척을 해야 했다.
“그렇습니다. 문화재 발굴은 이제 취미 생활에 가깝지요. 하하하하.”
지뢰밭에서 하는 취미 생활도 있냐? 점점 내 낯짝이 두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 비서관은 나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물건값을 치러야 할까요? 값을 정하기가 상당히 난해하더군요.”
“요즘 부동산값이 많이 올랐으니, 조금 비쌀 수도 있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되나요? 조금은 걱정되는군요.”
나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두원 솔라의 양장선 회장을 조사하여 주세요.”
서 비서관은 놀라지 않으려고 했지만, 돈이 아니라 사람의 이름이 나오자 당황했다.
“두원 솔라면······. 태양광 회사 아닙니까?”
“검찰 조사와 세무조사를 모두 진행해 주시면 됩니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두원 솔라를 인수하려고 합니다. 인수 가격을 낮추려면 압박이 필요합니다.”
청와대에서 기업인을 조이라는 오더를 주는 것은 불법이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조금만 더 지지율이 떨어지면 검찰이 청와대를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식물 대통령’만큼 먹음직한 먹이가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대통령을 보호해야 할 여당까지 공격하는 일도 있었다.
청와대가 백기를 올리는 일은 막아야 했다. 그러니 어떻게든 지지율을 30%까지 끌어 올려야 했다.
사실 대기업은 건들기 좀 어려우나, 두원 솔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검찰이 죄를 조사하고.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하는 것 당연한 일 아닌가?
“두원 솔라는 저희가 깨끗하게 조사해 보겠습니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다 털 수 있을 겁니다.”
“서 비서관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믿을 수 있지요.”
서 비서관은 이제서야 유해준 장군에게 시선을 주었다.
“장군님을 앞에 두고, 너무 저희끼리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군요.
유해준 장군은 갑자기 자신에게 시선이 오자 당황했다.
“아···. 아닙니다.”
“9사단. 부사단장이라고 들었습니다.”
“예. 사단장님께서는 부모님 상이라 1주일 동안 쉬고 계십니다. 그래서 제가 사단장 대리를 맞고 있습니다.”
서 비서관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늘이 유 장군님을 돕는군요.”
유 장군은 목이 마른 표정이었다.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유 장군에게 시선을 주었다.
“북한 땅굴이 몇 번까지 있는지 아십니까?”
대한민국 육군 사단장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4 땅굴까지 있습니다. 매년 새로운 땅굴 탐사를 하고 있는데, 다행히 추가로 발견된 것은 없습니다.”
나는 유 장군의 눈을 보며 정색하고 말했다.
“여기 철원에, ‘5 땅굴’이 있습니다.”
유 장군은 매우 놀란 얼굴이 되었다.
“뭐···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정색한 표정으로 발음을 정확하게 했다.
“여기에 북한군이 판 땅굴이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 쪽 입구까지 확인했습니다.”
“한국 쪽 입구요? 그것이 정말입니까?”
“대한민국 육군 사단장님 앞에서, 북한 땅굴을 확인했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농담으로 하겠습니까?”
유 장군이 다급한 얼굴이 되었다.
“북한군 땅굴이 진짜 있다면···. 당장 조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서 비서관은 유 장군을 보면서 말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정황상 땅굴을 통해서 북한군이 당장 내려올 것 같지 않습니다.”
“그렇기는 합니다.”
“땅굴로 의심되는 지점을 확인하면 어떻게 프로세스가 진행되죠?”
“일단··· 일개 분대의 기동타격대를 보냅니다.”
서 비서관님은 당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특공 중대를 보내세요. 김 대표님이 허튼소리를 하실 분이 아닙니다.”
골든보이가 말했던 믿기 힘들었던 말 중, 거짓말은 하나도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서 비서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변했다.
“땅굴을 확인하는 대로 국방부에 연락해 놓을 테니 9사단을 1급 전투태세로 전환하세요. 전방의 분위기를 무겁게 가져갈 필요가 있습니다.”
보수층을 집결시켜 대통령을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면 긴박한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방송과 신문이 떠드는 것이 먹힌다.
나는 여유 있는 얼굴로 말했다.
“두 눈으로 물건을 확인하러 가시지요. ‘국사’라는 것이 한 치의 오차도 있으면 아니 되니까요.”
각자 차를 타고 땅굴 입구를 발견했던 폐가로 향했다. 폐가 근처까지 가자 태경이가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들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뭐가 무서운데.”
“계속 보고 있으면 뚜껑이 조금씩 흔들리고 북한 놈들이 튀어나올 것 같다고.”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북한놈들이 진짜 있는지 까 봐야지.”
나는 유 장군과 서 비서관님에게, 계단이 있는 우물을 바로 보여줬다. 라이트로 비추자 사람이 서서 걸을 정도의 구멍이 보였다.
“이곳이 남측 땅굴 입구입니다.”
유 장군은 땅굴을 보고 완전히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망할 수도, 출셋길이 열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남쪽까지 땅굴이 뚫려 있다는 말입니까?”
나는 손가락으로 북쪽 휴전선 멀리 가리켰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북쪽 휴전선으로 길게 연결된 것이 보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같은 질문은 하지 않을 것으로 알겠습니다.”
서 비서관이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오랜만이라 물어볼 뻔했군요.”
“들어가실 거죠?”
“물건을 사려면 꼼꼼히 확인해 봐야지요.”
나는 정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눈으로 확인한 것은 입구까지입니다. 혹시 땅굴 속에 부비트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유 장군이 정색하고 말했다.
“폭발물 처리반을 이미 불렀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유 장군은 9사단의 1특공 중대가 단 15분 만에 도착했다. 지난번 절벽에서 철원 미륵 대불 조사에 도움을 준 부대였다.
유 장군은 3분 만에 브리핑을 끝내고, 5 땅굴 탐사를 바로 명령했다.
가장 먼저 폭발물 탐지견이 우물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 폭발물이나 독가스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카메라를 몸에 단 셰퍼드 폭발물 탐지견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서 한참 동안을 수색했으나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1시간을 조사한 후. 폭발물 처리반 상사가 보호복을 입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1시간을 확인했으나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했다.
이제 보호복을 입은 특공 중대를 투입하기로 했다.
유투뷰 촬영 차 내가 들어간다고 하자, 마틴 자신이 들어간다고 하였다.
서 비서관도 골든보이가 직접 들어가는 것은 절대 안 된다며 펄펄 뛰었다.
마틴은 카메라를 들었다. 평소와 다르게 긴장했는지 비 오듯 땀을 흘렸다.
“마틴 지금이라도 이야기해. 내가 들어갈게.”
“피보호자가 전투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미안하군. 마틴 대위. 한국은 원래 이런 곳이야. 언제라도 전쟁이 터질 수 있어.”
마틴은 다 좋은데 비무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정말 맨몸으로 들어가야 합니까?”
나는 대검 하나를 구해서 마틴의 허리에 채워주었다.
“총은 절대 안 돼. 한국의 모든 남자가 사격 훈련을 받지만, 총을 가진 민간인은 없어. 총기가 규제가 심한 나라야.”
마틴은 정말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땅굴에서 북한군을 만나면 어떻게 합니까?”
“한국 정예 병사들이 있으니 잘 보호해 줄 거야.”
“코만도스 대위에게 한국군의 보호는 필요 없습니다. 저는 강인합니다.”
195에 99kg의 근육질 몸. 마동석 뺨치는 이두근. 한 손으로 M60 기관총을 쏠 수 있을 것 같았다.
와. 이게 한국 군복이냐?
양복을 입고 온 그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초 특대 한국군 군복을 입었다. 비만인 사람을 위해서 만든 특수복이었다.
한국군 군복의 디자인이 미군 같지 않고 구리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한국군 군복을 입고 있는 마틴 대위는 캡틴 아메리카 그 자체였다.
이제 보니 군복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의 문제였다.
마틴 대위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스. 동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마틴 대위의 카메라로 본 땅굴은 누군가가 들어온 지 수십 년은 지난 듯 보였다.
갱도 기차 길은 완전히 녹 쓸어 있었고 부목은 완전히 썩어 있었다. 전깃줄과 동배관도 거의 삭아서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내가 본 것이 이 동관이었구나.
사방은 거미줄이 있었고 바닥에는 진흙이 잔뜩 있었다.
생각보다 화면은 지루했다.
들어간 지 40분 만에 굶어 죽어가는 독사 한 마리와 마주친 해프닝이 있었을 뿐 땅굴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9km쯤부터는 발목에 물이 차기 시작하더니 휴전선 근처까지 와서는 물에 완전히 잠겨서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것으로 작전이 끝났다.
모든 화면을 지켜본 서 비서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공포를 일으키기에는 내용이 너무 약했다.
나도 그것을 느끼고 서 비서관에게 말했다.
“시나리오가 좀 약해 보이네요.”
“물 빼는 작업을 할 겁니다.”
나는 살짝 놀라고 말했다.
“물은 뺀다고요? 그럼 북한으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
“절반 정도만 작업해서 실제로 길을 열지는 않을 겁니다. 소설가들이 소설을 쓸 정도만 작업할 겁니다.”
아마도 물이 빠지면 북한군을 만나서 서로 교전할 수 있다는 기사일 것이었다.
이 정도로 국민에게 먹힐까? 힘들 것 같은데···. 요즘 사람들은 점점 북한 뉴스에 반응은 안 하기 시작했다.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원하시는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군요.”
서 비서관도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10년부터 파악하고 있었던 아랍어 학과 교수 간첩 사건과 함께 5 땅굴 발견을 터트렸다.
나름 시너지가 일어나서 공안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대통령 지지율이 26%에서 33%까지 올랐다.
오랜만에 대통령의 얼굴이 밝아졌다.
“골든보이에게 좋은 선물을 받았군.”
서 비서관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
“괜찮은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지요. 특별 관리하고 있습니다.”
“능력을 쓸 기회를 줘봐.”
“원하는 것들이 제법 있습니다.”
“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네. 인심 쓸 수 있을 때, 줄 수 있는 것이면 최대한 해줘.”
서 비서관은 미세한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인천 송도 국제도시. 9지구에 두원 솔라.
두원 솔라 양장선 회장은 한 임원의 보고를 받고 깜짝 놀랐다. 회삿돈을 조금씩 빼돌린 정확을 포착하고 비자금을 검찰이 조사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검찰이 갑자기 왜? 지지율이 떨어지니 ‘재벌 때리기’인가? 그러기에는 두원은 작아서 뉴스가 안 되는데.
게다가 세무조사도 공식 예고되었다.
양장선 회장은 길게 신음을 흘렸다. 아들에게 불법으로 증여된 각종 주식과 자금들이 들통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양 회장은 임원들과 해결책을 생각해 보았지만, 답이 없었다. 대충 계산해 보아도 추징 세금만 200억을 맞을 수 있었다.
특히 회장의 외아들이 생각 이상으로 공포에 떨고 있었다.
2년 전 뺑소니 사고를 조용히 덮었는데, 그것이 밝혀질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양장선 회장의 외아들은 회사를 팔고 외국으로 넘어가는 것에 적극적이었다.
인화 자원이 두원 솔라의 회사 실사를 진행하기로 약속한 날이 되었다.
나는 인화 그룹 로열패밀리처럼 최고급 양복을 빼입고 머리까지 하고 선글라스를 꼈다. 뒤에는 병풍으로 10명의 직원이 따랐다.
오늘은 탐색전이라고 할까?
우리는 바로 두원 솔라의 공장 실사에 들어갔다. 괜히 입을 열면 무식한 것이 티 날까 봐 펄벅 교수와 영어로만 이야기했다.
사실 펄벅 교수가 쓰는 단어가 너무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이 50%는 넘었다. 하지만 나는 마치 알아듣는 것처럼 머리를 끄덕였다.
아마 펄벅 교수가 유창한 한국말로 했어도 이해 못 할 내용이었다.
이과는 어려워···.
하나 확실한 것은, 펄벅 교수가 두원 솔라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점이었다.
태양 플라스마 기술을 실증하고 양산하기 위해서는 잉곳과 웨이퍼 공장이 필요했는데, 두원에는 두 공장이 모두 있었다.
펄벅 교수에게 공장이 마음에 들어도 티를 내지 말라고 했는데, 감정 표현이 많아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두원 솔라 회장실로 가서 가볍게 차를 마셨다.
인화의 로열패밀리답게 여유 있는 얼굴을 꾸몄다.
“매매 가격은 얼마로 생각하십니까?”
으레 있는 인사도 없었다.
양장선 회장은 실무진 사이에서 이야기한 것보다 더 많은 숫자를 불렀다. 많이 부르고 조금씩 깎아 나가는 전략이었다.
“2200억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회사 구경 잘했습니다.”
나는 싸가지 없는 재벌집 손자 컨셉이기 때문에 거만하게 선글라스를 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두원 쪽에서 당황하고 있었다. 점점 가격을 내리려고 했는데 이렇게 바로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서 비서관님께 문자를 하나 보냈다.
‘양장선 회장은 검찰과 국세청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더군요. 대한민국은 민주화가 잘 된 것 같습니다.’
서 비서관의 답장이 바로 왔다.
“본격적으로 진행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