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화상 (2) >
"두분의 여행도 제법 길었군요."
"그렇소. 이제 끝이오만."
갑판에 붙어 바닷바람을 쐬던 두 조선인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보았다.
말을 건넨 이는 이 배의 선장이었다.
그렇다곤 하나 선장은 조선인은 아니다.
흰 피부에 큰 코. 어딜 보나 영락없는 유럽인.
몇년 전이라면 조선 사람과는 외양이 크게 다른 그의 모습에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꼈을 그들이지만, 이제는 익숙해져 있었다.
"나(羅) 선장은 조선이 처음이오?"
선장의 성은 따로 있었지만, 그들은 농담삼아 조선식으로 바꾼 나 선장이라고 부르곤 했다.
'나 선장'은 그런 호칭이 익숙해진듯 웃으며 말했다.
"주로 유럽 쪽을 다니며 교역을 했으니 말이지요. VOC에 고용되지 않았다면 조선에는 올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네덜란드가 조선과의 교역에서 이문이 많이 남는다고 들었소. 부디 이번 거래도 잘 성사하시기를 바라오."
달랑 사람 두 명 태워오자고 이 선장이 배를 끌고 조선까지 온 것은 아니다.
손님들은 어디까지나 덤일 뿐, 선창(船倉)에 가득 쌓인 물건들이야말로 이 극동에 온 목적이었다.
초석과 대포처럼 조선 정부에서 요청한 물건도 있지만 설탕과 향신료, 장식품 등도 인기가 좋았다.
이것을 도자기며 비단, 인삼과 바꿔서 본국으로 싣고 가면 어마어마한 이윤이 남는 것이다.
'나 선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덕담 감사합니다. 요즘은 일본보다 조선에서 더 많은 이득이 남는다고 하니 기대가 큽니다."
숭정제가 유구에서 올라오는 조공을 끊어버리면서 일본은 생사를 직수입할 루트가 끊겨버렸고, 이어서 도자기마저 우수한 조선제에 밀리기 시작했다.
인삼은 원래부터 조선의 특산물이었고.
거기다 그간 네덜란드가 일본과 겪어왔던 정치적 문제까지 겹치자, 정부의 간섭 자체가 훨씬 덜한 조선으로 VOC의 시선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경향에 힘입어 VOC의 조선 무역은 가파르게 성장해나가고 있었다.
지금 저 멀리 보이는 벽란도만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우암. 저것 보이나?"
"나도 보고 있네, 명보."
송시열과 송준길은 멍하니 고국의 포구를 바라보았다.
저곳이 과연 조선땅이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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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桑田碧海).
벽란도의 모습은 3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있었다.
본래 고려조에서 국제무역항으로 번성하던 벽란도는 원말(元末) 해상물류의 쇠락으로 인해 옛 영광을 잃은지 오래였었다.
이후 조선이 개국하고부터는 세곡(稅穀)이 거쳐가는 나루터 역할에 머물렀는데, 3년 전부터 네덜란드와의 교역이 시작되며 사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돈벼락을 맞았소이다. 오죽하면 벽란도에서는 개도 엽전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까요."
송시열과 송준길 일행을 맞이하러 나온 미청년은 제법 호쾌한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송준길은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심코 손을 내밀었다가, 이내 남만인들의 습속임을 떠올리고 다시 갈무리했다.
어쨌든 청년의 말처럼 벽란도는 척 보기에도 일행이 3년 전 조선을 떠나올 때와는 크게 달라져있었다.
어선, 혹은 조운선 몇척이나 드나들던 벽란도는 온데간데 없고, 유럽식으로 잘 정돈된 항구로 거듭난 것이다.
선착장에는 여러 군데 지어진 돌출 제방 사이로 선거(船渠)들이 크게 들어서서 배를 보관하거나 수리할 수 있게 되어있었고, 뭍에는 큰 창고가 줄줄이 세워져있었다.
"만조 때는 바닷물이 절로 들어와 많이 채워지므로 큰 배가 마음껏 출입하고, 간조 때는 물이 빠져 물품을 선적하기 편하게 만들어놓았지요."
"이곳 사람들이 주상 전하의 치세를 가리켜 성세(盛世), 성세하더니 실로 대단하오."
남만-이제는 유럽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진-에서 지내던 일행의 귀에까지 가끔씩 조선에 관한 소식이 들려오긴 했지만 이정도로 번화해있을줄은 몰랐던 그들이다.
"처음에 홀란도인들은 교하(交河)를 원하는 눈치였습니다만, 외인들을 한강까지 들인다면 도성의 허실을 넘볼 수 있으니 허용할 수가 없었지요. 게다가 교하의 수로가 조금 복잡해야지지요."
청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교하는 한강과 임진강이 맞닿는 파주의 한 일대로, 그는 제법 적극적으로 이쪽을 밀었지만 조정에서는 영 꺼림칙한 눈치였다.
게다가 네덜란드인들의 배는 오가다 좌초될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으니 벽란도가 최종 낙점된 것이다.
벽란도는 도성과 아주 멀지도 않을 뿐더러 예성강 하구의 수심이 깊어 네덜란드의 침저선(尖底船)도 무리 없이 드나들 수 있었다.
"뭐, 지금에 와서야 여러모로 벽란도가 최선의 개항장이었던 셈이오이다."
그러나 돈을 들여 벽란도를 다시 부흥시키는데는 적지 않은 반발 또한 따랐다.
'그저 포구라 하는 곳은 배를 묶어놓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나라 살림을 오랑캐와 통교하는데 쏟아야 한다는 말인가?'
"맞는 말이오. 우리가 떠나올 때도 나라의 풍흉을 가늠하기가 어렵고, 새로이 먹일 입은 늘어난 상태였으니 말이오."
송시열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백성을 구휼하기에도 모자란데 오랑캐와 교역하기 위해 돈을 쓴다는 것은 조정에서도 납득하기 힘들었으리라.
"그래서 나선 것이 소인 같은 사람들이지요."
네덜란드와의 무역을 실질적으로 관장하고 있던 이자원은 '북벌'을 위해 초석을 수입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대응했지만, 나라에 돈이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는 해결하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그는 성당을 건립할 때 썼던 방법을 다시 꺼내들었다.
'홀란도와 무역하고자 하는 역관과 상인들은 모두 돈을 내어놓어라.'
"물론 그냥 돈을 달라는 것이면 아무리 훈련대장의 엄명이라 해도 순순히 따를리가 없었겠지요."
원납전(怨納錢) 몇푼이야, 말 그대로 원망하면서 낼 수 있겠지만 이 모든 시설을 갖추려면 그정도로는 택도 없었다.
그래서 이자원은 선언했다.
'관세 외에 항만에서 나는 이익은 마땅히 돈을 투자한 자에게 고루 나누어줄 것이다.'
그러자 눈치 빠른 이들은 이것이 곧 기회임을 깨달았다.
곧 인동 장씨, 초계 변씨 같은 내노라하는 역관 집안부터 가까이는 송상(松商), 만상, 심지어 저 멀리 동래의 내상까지 돈을 싸들고 달려들었다.
조선 최초의 민자사업이었던 셈이다.
"그럼 돈을 투자한 사람들 말고는 거래하지는 못하는 것이오?"
"그럴리가요. 다른 이들도 마음껏 물건을 사고팔 수 있게 하고 있사오이다. 이용료를 받지만."
청년 장현이 불만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애초에 벽란도 자체가 네덜란드와의 교역 외에도 이용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조치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생긴 수입은 지분에 따라 나누어졌고, 이것은 정기적으로 포구에서 열리는 장에서 거래도 가능했다.
조선 최초의 민자 사업에서 최초의 주식 또한 탄생한 셈이다.
"허어, 우리 조선에도 그런 것이 생기다니."
"남만에도 있사오이까?"
장현의 물음에 송시열과 송준길은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럽에서는 이미 40년 전에 주식회사가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장현은 그에 관해 흥미가 동한 모양이었지만, 송준길의 물음이 빨랐다.
"그런데 나루를 쭉 둘러보니 새로이 개축된 모양이 유럽, 그러니까 남만의 양식인데 홀란도인들이 여기에도 참여한 것이오?"
"그들도 있지만 남만승들도 거들었습니다. 훈련대장 영감께서 애초에 대국에서 불러모으실 때 건축에 조예가 있는 자들도 데려오신 덕이지요."
예수회 신부들은 이자원의 명을 거부할 수 없어서, 네덜란드 상인들은 어차피 자신들이 쓸 항구였기에 아낌없이 기술을 쏟아부었다.
그 덕에 이제껏 조선에서 본 적 없는 대선(大船)들조차 마음대로 교역을 하러 들고 날 수 있었으니, 실로 대성공이었다.
"벽란도에서 성공했으니 가도의 포구 또한 마찬가지로 손을 보면 어떨까 하고 궁리 중이올시다. 중원과의 무역은 가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형편이니 말입니다."
기존 이루어지던 조공 무역과는 달리, 가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해상 무역에는 제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과 명 사이의 자유무역지대라는 이점을 톡톡히 살려 경덕진의 도자기와 산동의 초석, 생사까지 마구 수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도에도 한 다리를 걸치고 돈을 긁어모으는 중인 장현은 아예 홀란도로부터 배만드는 법을 배워 교역에 나설까 생각 중이었다.
"조선공들을 어찌 데려올 수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만."
"조선공은 모르겠지만 훈련대장이 홀란도에 기술자와 군관들을 많이 요청했다 들었소. 우리가 떠날 때쯤하여 그들도 조선에 도착했을 텐데······."
송준길이 그당시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해내고는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훈련대장 영감께서 그 문제로 여러분들을 부르셨사오이다."
장현이 그들을 마중나온 것은 이자원의 명령 때문이었다.
두 송씨가 도착하면 다른데로 새지 말고 곧장 도성으로 데려오라는 엄명이 이미 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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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림대군으로부터 송시열과 송준길이 네덜란드로 가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자원은 순순히 도와주기로 했다.
국내 정치에서도 도태되고, 사론에의 입김도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예 유럽으로 가겠다고 할줄은 몰랐던 이자원이었다.
'나름대로 세계관이 깨어진 결과인가.'
이자원은 그들을 굳이 막아세우진 않았다.
딱히 송시열과 송준길에게 극렬한 증오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고, 반드시 제거해야할 무리들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한번 이자원에게 칼을 들이댔던 것도 사실.
알아서 유럽에 가주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개인적으로 떠나는 것이니만큼 정식 외교사절로 분류할 수는 없겠지만 다리 정도야 충분히 놓아줄 수 있었다.
쿠케박케르를 통해 그들을 안전하게 네덜란드까지 실어나를 배와 언어, 문화를 가르칠 사람을 수배해준 것이다.
송씨들은 어디까지나 봉림대군 덕에 연결되었다 생각하고 있겠지만.
"실로 오래간만이오이다, 훈련대장 영감."
"오랜만이군."
송시열과 송준길은 며칠 전 장현에게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길게 읍했다.
이자원에게는 악수를 청해도 딱히 거부감없이 들어주었을 것이지만, 그들은 그것을 몰랐다.
이자원은 그들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조선 말씀이시오이까? 아니면 소인들이······?"
"둘 다."
이자원의 말에 송시열과 송준길은 서로 눈빛을 주고 받았다.
"3년의 기간 중 오가는데 넉넉잡아 2년. 그렇다면 유럽에서 머무르는 시간은 약 1년 정도였겠군. 어떠하던가?"
송준길은 이자원의 물음에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턱 내뱉으며 말했다.
"세상이 실로 넓었사오이다."
중원이 곧 천하이고, 그 옆에 조선이란 나라가 붙어있다는 인식 정도가 그들이 알던 세계의 전부였다.
그러나 송시열과 송준길이 탄 배는 가도 가도 끝없는 바다를 항해했고, 수많은 왕과 그들이 다스리는 나라들, 이국의 풍토와 문화를 보았다.
이들이 전부 중원의 변방에 붙어있는 오랑캐 부족들에 불과한가?
"항해 끝에 다다른 남만은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편의상 남만이라 칭하고는 있지만 실상 유럽이 남쪽이 아니라 서쪽 끝에 붙어있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항해 동안 열심히 네덜란드어를 배운 송시열과 송준길은, 긴 여행 끝에 유럽에 닿자마자 운좋게도 네덜란드 공화국의 총독을 알현할 수 있었다.
"할말이 많은 모양이군."
이자원은 그들의 말을 끊었다.
"하지만 지금은 잠시 접어두도록. 조금 뒤에 전하의 앞에서 훈련도감의 시범훈련이 있다."
이자원이 말했다.
"그간 조선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지. 따라오도록."
< 변화상 (2) > 끝
ⓒ 핏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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