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아멜리아를 데리고 나와 길드원들이 머무는 숙소로 이동했다.
내가 웬 지저분한 여자를 데리고 오자 파티원들의 얼굴에 의아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누구죠?”
“치료 좀 부탁드립니다. 마법사입니다.”
직업을 내뱉기 무섭게 일행의 얼굴에 납득한 기색이 어렸다.
내가 마법사들을 높이 평가하고 그들을 모은다는 사실은 길드 내에서 유명한 이야기니까.
“설마 이쪽 지역의 마법사들도 모두 모으려는 것은….”
설마. 뛰어난 이들이라면 추후 영입하면 그만이다. 솔직히 500명에게 들어가는 돈이 얼마인데 또 그만한 수를 모은다는 말인가?
지금 길드의 여력이라면 비슷한 수를 더 받더라도 어떻게 유지는 할 수 있겠지만 돈은 그곳 말고도 들어갈 곳이 많다.
앞으로 계속 하층이 개방될 텐데 그쪽 마법사들까지 일일이 포섭하는 것은 아무리 나라도 힘들었다.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뛰어난 이라면 모를까… 이쪽 지역에 가능성 있는 사람은 저 사람 말고는 안 보이더군요.”
더 찾아보면 있겠지만 목적을 이뤘는데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새로 할 일도 생겼고.
“그것보다 저분 덕분에 흥미로운 정보를 얻었죠. 그쪽에 가볼 생각입니다.”
“이런, 휴식이 끝난 겁니까?”
한바다가 가볍게 너스레를 떨었다.
솔직히 휴식은 이틀째에 이미 끝났다. 나연의 말대로 다들 느낀 게 많은 모양인지 3일 차에 들어서는 결국 다 같이 또 수련 삼매경에 빠졌다.
길드원들은 그런 내 파티원들을 보고는 역시 강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며 하나같이 수련에 동참하기에 이르렀고, 덕분에 한국 쪽 수련자들은 무척 독종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강해도 욕심이 끝이 없다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차피 도태될 뿐이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는 당연한거다. 티드린드 영지 쪽은 이런 분위기가 당연시되고 있었다.
이쪽도 나름 그런 분위기가 아닐까 했는데, 무법자들이 수련자들을 상당히 버려 놓았다.
노예들을 부리며 수련자들에게 능력만 있으면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꾄 것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친 모양이다.
그래도 훗날 영국 왕실 길드가 여러 길드 사이에서 손꼽히는 거대 길드가 되는 것을 보면 황제의 지원도 지원이지만 모든 수련자들의 얼이 빠진 것은 아닐 터다.
오크들을 처리한 다음 날부터 사냥을 나가는 수련자들이 많았던 것을 기억하면 그래도 살기 위한 몸부림은 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내가 보기에는 부족하지만.
‘나중에 정신 차리면 늦지. 우리는 계속해서 커질 테니까.’
나름 지구가 위험 상태인 것을 알아도 저러는 것을 보면 인간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주하연의 치료를 받던 아멜리아는 내 눈짓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입단 제의를 받은 아멜리아 그레이입니다. 아멜리아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아직 정식 소속은 아닙니다만….”
그러면서도 그녀의 시선이 이연솔을 향한다.
딱 봐도 마법사 같은 복장에 시선이 돌아가는 모양. 그러나 그런 시선도 잠시, 곧바로 말을 이었다.
“유신후 님께서 말씀하신 흥미로운 정보는… 제가 갔었던 던전입니다.”
그녀는 스밸러스의 무덤이라는 던전에 대한 설명을 읊었다.
“…해서 저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전원 사망했습니다.”
“…힘드셨겠네요.”
“그래도 저는 살아남았으니까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하연의 위로에 아멜리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럼 리더야, 거기 가는 거야?”
“맞아. 어차피 할 것도 없으니까. 우리 수준에 비하면 낮긴 하겠지만, 나름 흥미로우니까.”
특히 무덤이라는 호칭이 마음에 걸린다.
오크들도 부장품을 묻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그것과 상관없이 뭔가 보상이 있기는 할 거다. 알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던전화가 되었으니까.
‘하층이긴 하지만… 우리 쪽 하층에서 먹은 것들 생각하면 만만히 볼 것은 아니지.’
솔직히 아이템은 전설 급이라도 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도 전설 값을 하긴 할 거다. 어지간한 중층의 슈퍼 레어도 비비기 힘들 수준을 보이기는 하겠지.
하지만 스킬이라면 상관없었다.
아니, 아이템이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전설 값어치를 할지도 모른다.
극히 드물다는 성장형이라거나, 봉인되었다거나 하는 조건이 붙어있으면….
돌아가는 행복회로를 잠시 멈춘다.
생각만 해 봐야 모른다. 결국 부딪쳐 봐야 했다.
아멜리아는 대강 치료를 받았지만, 곧바로 완치되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게 상처를 입은 지 제법 오래되었고 상처 자체도 심한 편이라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몸 상태도 좋지 않아 잘 먹고 잘 쉬는 것도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도 던전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대강 설명을 듣고 지도를 받아 위치를 확인했다.
“그럼 이연솔 씨, 아멜리아 씨를 잘 부탁드립니다.”
“당연하죠. 저희 동료가 되실 분인데….”
내가 직접 데려온 사람인 만큼 신경 자체는 잘 쓸 거다.
그리고 환경이 받쳐주면 아멜리아는 쑥쑥 성장하겠지.
아멜리아를 완전히 맡긴 이후 나는 책임자들을 찾아가 당분간 자리를 비운다는 통보를 했다. 조금 난감해하기는 했지만 내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당장 내가 여기서 하는 일은 없었기에 거리낄 것도 없었고.
하나 걱정이 되는 것이 있다면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습격을 당하는 것이다. 어지간한 오크들의 공격은 내 길드원들이 남아 있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네임드 오크를 보낸 이가 카바락으로 예상되는 이상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던전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기에 행선지를 알리고는 최대한 빠르게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네임드 하나를 잃었는데 설마 곧바로 찾아오겠나 싶기도 했다. 모욕은 모욕이지만 그래도 사사로이 네임드 오크를 사용하고는 그 과정에서 하나의 네임드 오크가 사망한 것이다. 과연 오고 싶다고 올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솔직히 이쯤 되니까 무리를 해서라도 고른을 잡아 죽였어야 했나 싶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었다.
던전은 조금 애매한 거리에 있었다.
내 파티원들을 이끌고 던전에 도착했을 때는 2일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였다.
“여기가 던전이야? 내가 이런 곳에 있었다고?”
사샤의 새삼스럽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일단 거기도 던전이기는 했으니까.
“그러고 보면 너는 던전을 제대로 보는 것은 처음인가?”
“맞아. 태어나고 난 이후 그나마 던전에 가까운 것이라고는 그 이상한 신전 말고는 없었지.”
고난의 신전을 말하는 듯했다. 나연의 기억을 읽었다고 했으니 기억 자체는 있겠다만, 확실히 직접 가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르긴 하지.
“하층의 던전이라고는 하지만, 방심은 하지 맙시다. 뭔 일이 있을 줄 모르니까요.”
“물론이에요.”
“당연합니다.”
가볍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주의를 주고는 조심스럽게 던전 내부로 진입했다.
내부의 몬스터는 오크 전사들의 영혼이었고 마력이 없으면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확실히 아멜리아를 비롯한 이들이 실패할 만하다고 할까?
던전 자체가 엄청 크지는 않았다. 2층 정도 규모의 던전이었으니까. 수준도 높지는 않아 클리어가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
특히 몬스터가 제대로 된 영혼 계열이라 그런지 주하연이 제법 활약했다.
“악마 심판!”
정령에게는 일부 데미지만 들어갔지만 이쪽은 일단 완전 영혼 쪽 몬스터다 보니 공격이 제대로 먹혔고, 처음으로 메인 딜러와 같은 역할을 맡은 주하연은 물 만난 물고기 같은 모습을 보였다 .
“…네임드 오크를 상대할 때도 이렇게 공격이 먹히면 좋을 텐데….”
스무 마리에 가까운 오크 전사의 영혼을 단숨에 쓸어버린 주하연이 중얼거린다.
“대신 하연 씨만의 다른 역할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네, 맞아요. 그렇죠.”
주하연도 알고는 있을 거다. 단지 아쉬워서 그러는 것일 뿐.
확실히 그 상황이 나서윤에게만 스트레스가 되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파티원 전체가 나 하나만도 못하는 상황이 못내 초조하고 짜증 나는 모양이었다. 저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할 정도로.
던전 클리어는 하루에 한 층씩 2일이 걸렸다. 혹시 몰라 서두르지 않고 공략했음에도 불구하고 파티의 높은 수준 덕분에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만약 나오는 몬스터가 영혼 계열의, 일반적인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특성만 아니었다면 이미 클리어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장소였다. 그런 장소에 이미 중층에 진출한 내 파티가 와 버렸으니….
힘든 게 비정상이다.
“으음…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그런데 문제는 보상이었다.
난이도가 높지 않았기에 솔직히 중간부터는 반쯤 기대를 접었다. 이 수준에 나와 봤자라고 생각했다. 타락한 정령의 동굴처럼 보스라도 그럴듯했으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았다.
내심 보스는 대전사 스밸러스의 영혼 같은 강력한 존재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의 영혼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았으며 보스의 수준도 그냥 그랬다.
던전의 수준은 내 휘하 정예 길드원들이 막 중층에 올라오기 직전 수준으로 열 명 정도면 충분히 클리어하겠다 싶었다. 시간 자체는 제법 걸리긴 하겠지만 클리어는 가능할 거다.
그런데 보상은 또 이상했다.
[잠들어버린 스밸러스의 가죽 갑옷]
-등급 : 알 수 없음
-설명 : 한때 대전사의 직위에 오른 스밸러스가 죽기 직전까지 사용했던 갑옷. 그의 시련을 통과해야만 진정한 힘을 알 수 있다.
-방어력 : 1
-옵션 : ‘시련’을 시작할 수 있다.
솔직히 하층 수준의 상급 레어나 슈퍼 레어 정도의 아이템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하층에서 상대하기 힘든 영혼 계열의 몬스터가 상대이고 일단 대전사라는 이름이 붙은 이상 보통 던전은 아니긴 했으니까.
그런데 등급을 알 수 없는 아이템이라니…….
‘이거 시련을 통과하면 진짜 전설급이라도 될 수 있는 건가?’
얻은 것은 방어구 세 파츠에 대검 하나였다.
상갑, 부츠, 투구.
모두 설명이 같았다.
물론, 무기도 마찬가지였고.
“이게 뭐야? 시련? 난이도도 낮아서 쓰레기가 나오려나 했더니… 뭔 경우야?”
사샤가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아이템 주변을 빙빙 돈다.
“역시 신후 씨가 가져온 던전… 늘 예상을 못 하겠어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오빠?”
“…음….”
시련에 따라 아이템의 등급이 결정되는 모양인데, 그러면 역시 내가 쓰는 것이 좋으려나? 그런데 그렇게 되서 내게 귀속되면 귀찮다.
만약 시련을 통과했는데 슈퍼 레어 수준밖에 안 된다면? 얼마 쓰지도 않고 파기행이다. 대전사라는 이름값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하찮은 던전 난이도가 내 발목을 잡았다.
슈퍼 레어 수준의 아이템이 쓰레기라는 뜻이 아니다. 그 정도면 아주 귀한 아이템이고 1회차였다면 슈퍼 레어 하나만 얻어도 그날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겠지. 종류에 따라서는 평생 장비를 얻었다고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고나 할까? 대신할 전설급 장비만 아는 것이 몇 개나 되고, 황제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황실 창고도 몇 번 더 가볼 기회가 있을 테니까.
‘어차피 좋은 장비야 얻을 길이 많고….’
무엇보다 내가 탐내는 장비는 다른 장소에 있었다. 두 개의 전설급 문신을 챙기며 생각했던 장비다. 직업 중 하나가 성자가 되는 바람에 쓰기 애매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못 쓰지는 않을 것 같아서 일단 손에 넣기는 해볼 셈이었다.
스밸러스의 반지도 마침 도발 효과도 붙었겠다, 한바다에게 주면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었지. 기왕에 주는 김에 이것도 다 주면 나름 모양새가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생각한 뒤 대검을 손에 들었다. 이건 한바다와 맞지 않으니까.
“검은 제가 챙기죠. 한 번 시련이라는 것에 도전해 보겠습니다. 이후 괜찮다 싶으면… 장비는 한바다 씨에게 주고자 합니다.”
“좋은 선택 같아요. 일단 중갑에 가깝기도 하고….”
주하연이 동의를 표한다. 얻은 아이템들을 쓸만한 사람은 남은주와 한바다 그리고 나 정도다. 대검은 아예 쓸 사람이 없고. 그나마 내가 방패를 들지 않으니 가장 나은 선택이 나였기에 시험 삼아 시련도 확인할 겸 내가 챙긴 것이었다.
주하연은 말하면서도 슬쩍 남은주를 살핀다.
일단 그녀도 후보이기는 하니까.
시선을 느낀 그녀가 말했다.
“신후 오빠 말대로, 바다 언니에게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저야 아이템은… 성유물이 있으니까요.”
맞다. 나도 그걸 생각해서 한바다를 선택한 거였다. 남은주의 장비는 성유물을 노리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건 최종 장비에 한해서고 중간에 입을 장비는 따로 맞춰주거나 지원을 받아낼 생각이지만.
“축하드려요 바다 언니.”
“응… 받아도 되나 모르겠네.”
“신후가 선택한 거니까요. 일단 시련이란 것을 거쳐야 하기는 한데… 바로 사용하실 거예요?”
“일단은 신후 님이 먼저 해 보신다고 하셨….”
“바로는 하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기묘한 감각. 목소리가 들리기 직전 나는 그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장족의 발전이다. 과거에는 느끼지 못했었으니까. 경지가 좋기는 좋다.
갑작스레 들려온 남성의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은 우리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방랑상인 네비오스. 바로 그였다.
“또 뵙는군요.”
“하하. 벌써 또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솔직히 눈앞에 포탈이 나타났을 때만 해도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말이죠.”
아무래도 던전을 클리어하고 조건을 만족하면 방랑 상인들 앞에 포탈이 나타나는 모양이다. 몰랐던 사실이었다.
‘여기가 그리 수준이 높은 던전은 아닌데 방랑 상인이?’
확실히 특이한 던전이기는 하다. 타락한 정령의 동굴도 그렇고… 방랑 상인의 등장에는 클리어 시기도 계산에 포함되는 건가?
그렇지 않다면 이 수준의 던전에서 방랑 상인을 만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한 번이라면 우연이겠지만, 두 번도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확률이 너무나도 희박하다.
하지만 나는 짐짓 모르는 척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바로 하지 않는….”
방랑상인, 네비오스가 고개를 젓는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인벤토리에서 금화 주머니를 하나 꺼내 그에게 건넸다.
하기야 시스템과 연관된 방랑 상인이 정보료도 없이 입을 여는 것은 한계가 있겠지. 여기서부터는 유료인 모양이다.
내가 정보료를 건넨 이후에야 그는 입을 열었다.
“그거, 정말 좋은 겁니다. 되도록이면 더 강해진 이후에 시련을 받으시길 권하죠. 일단 기본적으로 시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한 번뿐이라 한 번에 완전한 힘을 꺼내지 못하면 거기서 끝입니다.”
“저도 안 됩니까?”
나는 확인차 물었다.
“신후 님이라면… 아슬아슬하게 가능할 것 같기는 한데… 아, 물론 개인의 의견입니다. 제가 책임져 드릴 수는 없어요.”
책임은 기대도 안 했다.
내 수준으로도 아슬아슬할 것이라는 말에 한바다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이거 혹시 목숨이 위험하거나 그런 건가요?”
나를 쳐다보는 네비오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무래도 정보료를 지불한 것이 나였기에 형식적이라도 허가가 필요한 모양이다.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힘을 다 끌어내지는 못하실 겁니다.”
그 말에 한바다가 조금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한바다의 반응에 네비오스는 가볍게 웃음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그거, 나름 모든 힘을 다 끌어내면 전설 등급까지 가능한 장비니까, 아껴 두시죠.”
전설 등급이라는 말에 한바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유일하게 일행 중 전설급 무언가가 단 하나도 없는 한바다다. 내심 부러웠겠지.
솔직히 나는 다지 놀라지 않았다. 시련의 난이도가 지금의 나도 아슬아슬하다는 말에 대강 짐작했으니까.
과신이나 자만이 아니다. 마스터 급에 전설 스킬을 둘둘 두른 내가 시련의 통과, 즉 아이템의 힘을 다 끌어내는 것 자체가 아슬아슬하다는 것은 이미 그 아이템의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뜻한다. 최소 전설. 그렇지 않으면 말이 되지 않는다.
한바다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동시에 조금 아쉽다는 표정이다. 한바다가 입을 열었다.
“…포기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한바다의 선언에 나연이 기겁한다.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전설 급이 될 가능성이 있는 아이템을 포기한다고? 기겁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제가 가져 봐야 쓸모도 없군요. 그나마 전설급 방어구면… 신후 님이 쓰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슬아슬하다고 하셨지만 그렇다는 얘기는 조금 시간이 더 지나면 확정적으로 전설급 장비로 만드실 수 있다는 뜻 아닙니까?”
그건 그렇다.
“당장 쓰지 못하는 것을 받아 봐야…. 차라리 신후 님이 시련을 받고 쓰시는 것이 전력 차원에서도 낫다고 봅니다.”
한바다의 말에 일행의 말문이 막혔다. 맞는 말이다.
“음, 그럼 이번에 얻은 것은 모두 리더에게 가는 건가?”
“…그렇네. 확실히 그래. 음….”
나연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가장 따르는 한바다가 기껏 좋은 아이템을 받았지만 능력이 되지 않아 소화시키지 못하는 것이 슬픈 모양이다.
“뭐 그래도 신후에게 가는 거니까….”
‘내키지 않는데.’
이미 줬던 아이템이고, 내가 탐내는 장비와 파츠가 겹친다.
“아, 이 분이 그때 그 알이었던 정령입니까?”
사샤와 나연의 대화에 네비오스가 끼어들었다.
“…네, 맞아요. 그때 그 알에서 나온 고대 정령, 사샤에요.”
“…반갑다. 상인아. 덕분에 빨리 깨어날 수 있었어. 네가 아니었으면 이 답답이가 날 깨우는데 얼마나 걸렸을지….”
“아하하. 아닙니다.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이군요. 그나저나….”
가볍게 미소를 지은 네비오스가 입을 열었다.
“그 장비들, 당장 쓰실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음?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른 말. 일행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