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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34화 (134/317)

# 134

한바다는 곧바로 고정 안전 구역을 그대로 봉쇄했다.

누구도 출입할 수 없도록. 동시에 수련자들 일부를 통제했다. 전부를 통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습격할 때까지 내부 인원이 위쪽에 정보를 알리지 못할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다.

그렇기에 나는 광진을 한바다에게 떠넘겨 숨겨버렸고 저들이 방비하기 전에 가장 많은 무법자들이 존재한다는 20층부터 빠르게 습격했다.

어차피 오래 걸리지 않을 터였다. 한나절, 아니 반나절의 시간만 있어도 충분하다.

20층은 보스 방까지 접근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운 상태였다.

한바다 파티가 최대한의 전력을 투입해 이쪽을 방비했기 때문이었다.

무법자를 제외한 이들은 실력을 증명하고 신청만 하면 별다른 제지가 없지만, 무법자들은 다르다.

그렇기에 20층에 가장 많은 무법자들이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미궁을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스를 잡아야만 했으니까.

과거에는 며칠의 시간이 필요했을 거리도 몇 시간이면 주파한다.

그리고 일부 무법자들은 거리가 멀지도 않았다. 내부에 심어 놓은 이들과 연락을 해야 하는데, 너무 깊숙한 곳에 있으면 어떻게 연락을 하겠는가?

나는 그러한 연락책들을 피한 채 곧바로 '반란'계파가 존재하는 20층 공동으로부터 급습했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왜 학살자가 여기에…!"

"광진 님이 실패하신 건가!"

"이런 씨발… 근데 어떻게 여기를… 설마!"

그들은 나와 내 파티의 급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도망치는 이들이 있었고, 나는 하유진에게 지시해 그들을 쫓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도망친 이들은 대부분몬스터가 있는 공동에 걸려서 죽었지만, 일부는 타 계파의 본거지에 도착하기도 했다. 하유진은, 용케 그런 이들의 흔적을 추적해 다른 계파 하나의 본거지를 찾아냈다.

광진이 준 정보로 셋, 하유진이 발견한 하나. 그렇게 네 계파를 순식간에 토벌했고, 다른 세 계파를 찾기 위해서 사로잡은 이들을 고문했다.

무법자들의 수는 상상 이상이었다. 광진으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20층에만 천에 가까운 수가 존재할 거라고.

정확히는 계파마다 적게는 100에서 많게는 300에 가까운 수를 자랑한다고 한다. 현재 절반 이상의 계파를 처리한 상태지만, 가장 큰 계파인 '반란'을 처리한 덕분에 600이 넘는 무법자들을 처리한 상태였다.

한바다 휘하의 수련자들에 비하면 그 수가 적기는 하지만, 이들은 전원 목숨을 내놓고 싸워온 이들이라 정예화가 돼버린 상태였다.

농담이 아니라 한바다 휘하에서 나름 열심히 커온 평균 수준의 수련자들이 20층 무법자들의 세 배수는 돼야 이들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 정도였다. 괜히 반란을 시도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재능과 무관하게, 능력치 자체도 평범한 수준의 수련자들에 비해 무법자 쪽이 평균 3 이상 높았고 전투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능숙함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마치 재능이 부족해도 노력으로 그걸 채웠던 과거의 남은주가 생각나게 만들었다.

그나마 한바다가 최대의 전력인 지금이라도 당장 미궁을 벗어날 수 있는 인원 300명을 20층 방어에 모조리 투자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진작 20층은 무법자들이 점령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법자들이 아무리 다른 수련자들에 비해 평균 능력치가 높고 경험이 풍부하다고 한들, 한바다 휘하의 정예들에 비하면 확실히 부족하기는 했다. 진작 20층을 클리어해 하층에 갈 수 있는 준비를 마친 데다, 무법자들과의 전투를 통해 경험도 부족하지 않으며 능력치도 이쪽이 우수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20층으로만 한정하면, 무법자들의 세력이 조금 더 우세했다. 한바다의 개입을 배제하고 두 세력이 맞붙는다면 피해는 크겠지만 결과적으로 무법자가 이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숫자가 문제였다. 20층 수준이 아닌데, 반란을 위해 수를 억지로 늘렸다고. 그게 효과를 본 것이었다.

한바다 쪽 수련자들 대부분이 16층~18층에 머무르는 수준이라면 무법자들은 전체적으로 18~19층에 어울리는 수준이었다. 대부분 억지로 올라가 20층에 있지만.

문제는, 이들이 이 뛰어난 능력으로 수련자들 등이나 처먹었다는 것이었다.

한 계파당 최소 백, 많게는 300에 가까운 인원을 자랑하는 계파들이었다. 그들 아래에, 최소 열, 많게는 수십에 달하는 노예들이 존재했다. 그건 한바다와 대립했기에 무법자가 되었다는, '반란' 쪽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또한 결국 마찬가지였다. 무법자들은… 상대할 가치가 없음을 재확인했을 뿐이었다. 아직 초기라 1회차처럼 막장은 아니지 않을까 싶었는데…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성공적인 전향? 정말 극소수의, 예외의 이야기다. 재능이고 자시고, 일단 걸러야 함을 깨달았다.

노예들의 쓰임새는 대부분 무법자들의 노리개 신세였다.

그건 남성이든 여성이든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옷을 입은 자가 사실상 없다시피 했다. 대부분 전신에 상처가 즐비했고, 이미 아물어 흉터가 새겨진 곳 또한 수없이 많았다.

스트레스를 푸는 용도, 성욕을 푸는 용도, 모욕감을 주는 용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된 듯했다.

게다가 아문 흉터들은 그냥 아물지도 않았다. 이들은 흉터로 글씨를 써 놓았다.

대부분, 수련자나 한바다를 비하하는 말들이었고 음란한 낙서 또한 수없이 존재했다.

또한 상처가 심각한 이들 중에는 등에 이런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식용.'

어지간하다 싶었다.

무법자들 중 상당수는 다들 이런 노예 처지였다가 무법자로 전향했다고 한다.

저런 흉터들은 상당수 무법자들의 몸에서도 발견되었다.

낙서형 흉터가 없는 이들은 처음부터 작정한 이들이거나 눈치 빠르게 배신한 경우가 다수였다고 한다.

"씨발! 어떻게! 어떻게!"

계파 '도축'의 우두머리라는, 덩치가 상당히 큰 편에 속한 중년 남자가 몸을 뒤틀며 소리 질렀다.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가 배신했어! 어차피 니들도 무법자야! 한바다가 가만히 둘 것 같아? 결국 다 죽는다고 시팔!"

원독에 찬 목소리.

아마 주변에 사로잡힌 무법자들 중에 누군가가 배신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무법자 대부분을 사살하기는 했지만 상당수는 사로잡았다. 우리 쪽 무력에 겁을 집어먹고 조기에 항복했거나 우두머리나 간부 정도로 보이는 이들은 대부분 사로잡았다.

추가 정보도 필요하고, 아래층을 수색할 필요도 있었으니까.

이번 기회에 한 번 더 뿌리를 뽑을 필요가 있었다. 과연 이번에도 다시 자라날까?

'자라나 봤자 지만.'

나는 여전히 소리치는 도축의 우두머리를 향해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도축의 우두머리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란을 멈췄다.

"왜? 계속 떠들지?"

"……."

나는 도축의 우두머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머지 세 계파의 위치, 그리고 아래층에 존재하는 무법자들의 위치를 말해. 그럼 편히 죽여주지."

"……살려준다면 말하지."

"글쎄. 너 말고도 물어볼 사람은 많아서."

"하. 어차피 죽을 것 누가 말할까? 아무래도 알아낸 정보는 이게 다 인가봐?"

어차피 죽을 거라는 것을 알았는지 도축의 우두머리는 최대한 반항적인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나는 무감정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내 눈을 보더니 흠칫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금 눈을 내리깔았다.

"신후 씨."

그때 저 멀리서 다른 계파의 인원을 정리한 주하연이 내게 다가왔다.

"다른 계파 위치를 찾았어요."

호오.

주하연이? 의외였다. 회복시키면서 고문이라도 했나?

남은주와 주하연은 노예들의 취급과 상태를 보면서 경악했다. 이전, 쓰레기들을 처리할 때보다 되려 한층 더 증가한 잔혹함에 치를 떨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찾다 보니, 괴롭히는 방법도 다양화된 만큼 예전 수준의 수위를 생각했던 둘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온 듯했다.

나서윤마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고 하유진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하기야 하유진은 직접 잡히기도 했었으니까.

"어디입니까?"

나는 주하연이 알아낸 정보를 물었다.

"…여기요."

그녀는 내게 노예로 잡혀있던 수련자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그녀가 내게 왜 수련자를 넘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상처는 사실상 주하연이 거의 치료한 상태였지만, 등만은 건드리지 않은 상태였다.

노예의 등에는,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빠르게 지도를 확인했다.

기준이 되는 지점은 이 수련자가 잡혀 있던 곳이었던 만큼 장소를 옮겨야만 했다.

사로잡은 상당수의 무법자들을 기절시켜 한 장소에 묶어 두었고, 하유진을 통해 그들의 위치를 한바다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남은 세 계파를 마저 습격, 20층의 모든 무법자들을 죽이거나 사로잡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멈추지 않았다. 사로잡은 이들과 노예로 잡혀 있던 수련자들을 인수 받기 위해 찾아온 한바다에게 모조리 넘긴 이후에 청소를 이어갔다.

고문과 주하연의 스킬을 통한 회복을 반복해 정보를 더 얻어낸 뒤 차례차례 아래층으로 향했다.

19층에는 사실상 무법자가 거의 없었고, 18층부터 15층까지 소수의 무법자가 존재하고 있었다.

다 합쳐도 몇백 남짓에 불과한 숫자.

억지로 20층에 집결한 후유증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위층에서 사로잡은 이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하나씩 찾아갔으며, 우리가 18층을 반쯤 청소했을 무렵에는 한바다도 움직이고 있었다.

광진의 정보를 바탕으로 스파이, 즉 배신자들을 잡아 20층에서 사로잡은 무법자들을 보여주며, 이미 끝났다는 말과 함께 그들로부터 정보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미궁 내의 사실상 모든 무법자를 청소하는 데는 3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

되려 저들이 꼭꼭 숨었었는데도 불구하고 속도는 훨씬 빨라진 상태였다.

"…잡혔던 이들은… 어떤가요?"

"대부분 피폐한 상태네요. 일부는… 아예 미쳐버렸구요."

한창 바쁜 한바다를 대신해 조연은이 대신 소식을 전해왔다.

"사로잡은 이들은… 어쩔 계획이죠?"

"공개적으로 처형할 생각이에요. 무법자들을 사로잡았다는 소식이 알려지니까… 복수할 기회를 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최대한 잔인하게 죽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처형 방식에 관한 재판이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전원 사형은 확정된 상태라고.

수련자들은 그만큼 무법자들을 증오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와 내 파티, 한바다의 인지도는 하늘 끝까지 솟아오른 상태였다. 게다가 결국 신분이 노출되버린 광진 또한 내가 약속을 지켜 한바다의 지시 하에 이중 스파이로 지내 왔다는 거짓 발표가 곁들여져 그 또한 상당한 칭송을 받고 있었다.

내심 현재 무법자들의 상태 때문에 내 일행의 반발이 커 나중에 쓸 예정이었던 광진을 그냥 버려야 하나 싶었지만, '반란' 계파 아래에서 고통받았던 노예를 본 그의 반응이 그 자신을 살렸다.

그는 명백하게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나마 정신이 멀쩡한 노예들에게 물어본 결과, 그는 최근 1년 이상 반란 계파 본거지에 돌아온 적이 없었다고 한다. 죄를 들켜, 당황한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었다.

하기야 돌아온 적이 있었다면 진즉 한바다에게 들켰겠지. 그렇다고 광진을 좋은 놈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다른 계파의 노예들이 저런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을 테니까. 자신만 깨끗하면 그만도 아니고, 한바다와 대립하겠답시고 저런 꼴의 수련자들을 알면서도 방조했다는 것 자체가 그 또한 한때 무법자였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번 일로 수련자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심각하게 변해 버렸다. 이전에는 고마운 사람 정도였다면, 이제는 반쯤 숭배하는 지경. 그냥 걸어만 갈 뿐인데 나를 발견하고는 내가 지나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그 분위기로 봐서는 무법자에게 누군가를 잃은 것 같았다.

그렇게 무법자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재판이 열렸고, 나는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 나는 미궁의 플로어 마스터, 아키밀리를 소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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